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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5:25-32 /저주와 안식강의창세기

저주와 안식 2001년 11월 25일 22강 본문 말씀: 창세기 5:25-32 5:25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5: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27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5:28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5: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5:30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31 그는 칠백 칠십 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5:32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인간들이 수고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이 땅에서 고생하는 원인 제공자가 여호와라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지 안 했으면 결코 인간은 이 땅에서 고생할 이유가 없는 일이지요. 그래도 과연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 겁니까? 사랑을 하신다면 아예 땅을 저주 안 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병 주고 난 뒤 약 준다고 해서 약 준 그 행위가 올바른 사랑의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그저 '구원 챙기기'에 급급하면 안됩니다. '구원 얻어내기'를 놓고 하나님과의 의견 충돌이 생길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 방식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땅 저주'는 그 다음에 주어지는 '땅의 안식'에 대해서 모든 인간들이 주목을 해야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에 머물지 않고서는 참다운 인간이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안식이나 고생이나 인간들이 자신의 손으로 달성하는 것은 전혀 피조물답지 못한 모습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가 자기가 태어날 것을 미리 알아서 미지의 남녀를 중매시켜 자기 부모를 삼을 수 있습니까? 방금 제가 말한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짐작하시겠지요. 그렇다면 이것 못지 않게 불합리한 것이 뭐냐 하면, 인간이 피조물이면서도 부모의 위치에 있는 하나님과 상관 두지 않고 자기 자신을 가꾸어 나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입니다. 인간에게 비록 저주가 주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 저주조차 어찌 할 수 없도록 평안한 안식이 심어져 있는 존재만이 참다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고생이 아예 없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고생 속에서도 평안의 요소가 눅눅하게 배겨나올 수 있는 인간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오셔서 고생을 어마어마하게 하셨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 고생이 무겁고 무서워서 뒤로 나자빠져 버렸습니까? 자살하셨습니까? 운명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습니까?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다시피 인생 자체가 고생입니다. 칠순 잔치 같은데 가보게 되면 여럿 자식을 둔 것을 큰 자랑인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얼마나 부모를 위하는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떠버려 자랑하고 싶은 겁니다. 사실 부모가 되어서 많은 자식을 다 키워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고통의 긴 긴 나날이라는 것을 이들 부모는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힘들었기에 이 수고로움을 잠시 잊겠다는 의미에서 잠시 기쁨의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 칠순 잔치의 의의입니다. 하지만 그 잔치의 날이 지나고 다시 내일이 되면 또 수고로움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것이 인간들의 안식의 한계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더 잘 논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 농사짓던 시절에는 일 년의 반을 놀았습니다. 원래 겨울철에는 완전히 놀았고 농사철에도 보름이다, 단오다, 하는 식으로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틈만 나면 놀았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사람들은 거의 쉬는 날 없이 노동합니다. 얼마나 수고로이 일했으면 그것을 푸는 스트레스 오락마저도 얼마나 발전되겠습니까. 노는 것이 발달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수고의 양이 더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으시는 안식은 이런 수고를 새로운 노는 수고로 푸는 식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의 극한, 고난의 극한 속에서 마르지 낳고 소진되지 않고 생긋생긋 살아있는 안식을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시편 90:8-10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성경도 인간에게는 일생을 통해 밀러오는 수고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보다 간편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전도서 5:15-17에 나옵니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 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여기에 보면 인간의 한평생은 번뇌와 병과 분노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수고한 모든 것이 바람을 잡는 셈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시들지 않는 안식은 어떻게 주어지는 겁니까? 오늘 본문 29절에 끝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즉 어떤 인물을 통해 안식을 주시는 방법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역할이라는 것이 단순히 자기 구원만 챙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기에 내 멋대로 살겠다고 내빼는 짓이 얼마나 비겁한 행동입니까! 요한복음 6:65-6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즉 하나님의 일에 성도가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구원 소망을 챙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생과 고난 속으로 몰아넣되 그로 인해 타인에게 안식과 영생을 주는 증거인으로 삼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자리입니까? 누가 교회 안나온다고 해서 섭섭해 할 것이 아니라 이 엄청난 자리를 타인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우리 자신들에게 맡겨주신 것에 도리어 황송해 해야 합니다. 즉 남들이 나의 일에 협조 안 해준다고 괘씸해 여길 것이 아니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 일에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이 간택되었다는 점에 황홀해 있어야하고 고마워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만큼 영광스러운 자리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 아들'의 역할을 하기 위해 뽑혀서 창조된 자입니다. 이 노아의 위치는 장차 한 인물에 의해서 안식을 제공하는 바를 미리 보여주게 됩니다. 그 증거로서 데살로니가 후서 1:6-7절을 소개하겠습니다.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라는 한 인물이 나옵니다. 왜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불꽃 중에 하늘로부터 나타나시는 겁니까? 그것은 안식을 성도에게 제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영원한 안식은 이처럼 한 인물, 한 아들에 의해서 주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아무런 고생도 안하고 그냥 안식을 누리기만 했을까요? 안식을 얻게 된 우리도 이 땅에서 아무런 고생을 안 하게 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8:15-17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미 성도이기에 고난을 받는 겁니다. 영광도 함께 받기 위한 고난입니다. 로마서 8:18은 이렇게 덧붙여져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 노아는 고생을 안 했습니까? 방주를 만들지 않고 그냥 안식만 누린 사람입니까? 전도도 안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많은 전도를 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준 사람은 없고 기껏 자기 식구들만 결국 방주에 들어가서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노아 식구에게만 느꼈던 안식의 경우입니다. 이처럼 안식이란 안식을 주는 자의 고생과 수고에 의해서 제공되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해 그 분은 모든 인간들의 수고 속에 들어오셨고 그 고난과 희생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이 거룩한 고난 안으로 초청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외롭게 사셨습니까?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단순히 우리가 구원받기 위한 외로움이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영원한 안식과 생명을 주기 위한 외로움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 속에서 하는 기도와 봉사를 피해서 따로 도망치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상투적인 교회 사업을 위해 우리가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수고로움을 세상 적인 획득으로 보상받기 위해 주의 일을 수행해서는 아니 됩니다. 주님의 무지무지한 고통 속에서도 안식이 주는 기쁨은 평안은 지속적으로 따로 솟아난다는 점을 고마워하라고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입니다. 제발 노아처럼만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외로움을 우리가 이해하시고 이러한 외로움 속에서도 안식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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