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5-8 /마음의 죄
마음의 죄 2001년 12월 9일 23강 본문 말씀 : 창세기 6:5-8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에녹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창세기 5장에 보았습니다. 동행이라는 것이 단순히 자신의 구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늘 나타내면서 진행됩니다. 그 상황이 무엇인지는 신약 성경 유다서 1:15절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에녹은 단지 구원받은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실효성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지요. 실효성이 없다면 한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동행'의 가치를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을 것이 뻔합니다. "너는 하나님 동행하며 살아라. 나는 내 힘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입장에서도 선지자를 통해서 엄포 하실 것이 아니지요? 실제적으로 말씀대로 이루어져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의 내용이 나오는 겁니다. 7절에 보면,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녹에게 내린 심판의 저주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선지자가 미리 예고한 바에 의해서 인간들이 갑작스러운 심판이라고 하나님께 항의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 이 인간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무서운 저주를 받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5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이라는 표현이 나오지요.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 마음을 솔직하게 평하고 나쁘게 본다고 할지라도 항상 악하지는 않잖아요? 아무리 악한 자라도 가끔은 착한 마음을 가질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인간의 마음이 항상 악하다는 겁니다. 가끔, 자주 악한 것이 아니고 늘 악한 마음이고 또한 거기서 나온 계획도 항상 악하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그런 평가를 내리실까요? 로마서 1:28에 보면,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여기에 나오는 표현대로라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항상 합당치 못한 일과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의 주도권을 하나님에게 양도하지 않으려고 투쟁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 안에 하나님이 있지 않고 자기 자신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것이 그저 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자기를 최우선적으로 섬기는 생활을 할 것이 뻔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타고났습니다. 손톱은 늘 자라나기 마련입니다. 수염도 깎아도 계속 나옵니다. 악이고 선이고 모두 마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마음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신명기 6:5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에 보면, '다하고'가 세 번씩이나 나옵니다. 마음의 일부를 쪼개어 그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전부를 바치라는 말입니다. 조금이라도 남겨 두지 말고 말입니다. 이런 마음은 예수님만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어느 때고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항상 하나님에게 바치는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에서만 나올 일입니다. 자, 이 예수님의 마음이 어떻게 우리들의 마음을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요? 에녹이 선지자를 할 때는 에녹 대로의 언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때는 노아 때의 언약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준해서 은혜도 받고 하나님과 동행을 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오늘날 나름대로 언약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언약일까요? 히브리서 8:9-10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바로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에 의하면, 옛날 하나님은 모세에게 언약을 새겨 줄 때 마음에 새겨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돌 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새겨진 말씀에 대해서 우리들의 마음과 의지를 동원해서 그것을 지켜내어야 할 임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돌판 삼아 아예 마음에다 말씀을 새기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러니까 마음의 주도권이 완전히 하나님께 넘어간 겁니다. 우리 마음이 항상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의 주도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런 것이 바로 언약이 주는 은혜입니다. 노아가 이런 은혜를 받고 살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은혜를 못 받은 자는 어떤 식으로 살아갈까요? 마태복음 15:7-8에 보면,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즉 형식적으로 셀 수 없이 걸핏하면 "하나님, 하나님"을 외치나 마음은 전혀 무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마음을 고치기 위해 오셨습니다. 어떤 문둥 병자 10명이 예수님에게 자기 병에서 구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열 명의 문둥 병자 전부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단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한 명의 문둥 병자에게만 칭찬하고자 해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 상태가 이런 식이 아닙니까? 예수님 피 찍어 바르면서 "나 구원받았어. 그러면 됐지 뭐"하는 식이 아닙니까? 왜 주님에게 안 돌아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나님과의 동행이란 자기 구원만 챙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언약을 기준 삼아 언약을 증거 해야 합니다. 늘 주님에게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까지 구원된 진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흠모하고 사모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은 신체적으로 모자라고 직업상 욕을 얻어먹는 사람이지만 예수님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흠모하고 또 사모하고 또 자기 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즉 우리들의 마음이 이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이 지금 우리 마음 속에도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분간하게 하시어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을 주님이 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