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6: 9-17 /방 주성경창세기

창세기 6: 9-17 /방 주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방 주
2001년 12월 16일 24강
본문 말씀: 창세기 6: 9-17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옛날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온 세계가 물에 잠겨버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홍수가 자연의 우연적인 부조화로 생긴 일이 아니라 어떤 분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계획된 이라는 겁니다. 그 분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대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에게 위기가 오면 스스로 대비하고 극복하는 방식으로 나갑니다. 홍수나 지진이나 화산 같은 것이 터지면 인간의 지혜로 그것을 벗어나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 의하면, 세계의 움직임은 그저 자연의 조화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분의 지시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은 자신의 힘으로 자연을 상대로 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하고 해결해야 될 문제입니다. 누가 일으켰느냐에 대해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화산이나 지진이나 홍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야기 시킨 어떤 어르신네에 대해 주목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연의 존재는 믿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아예 안 믿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제쳐놓고 살고 싶어합니다.

여러분, 몸살, 감기 드신 적이 있습니까? 자신의 육체 하나도 감당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무리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육체가 아프면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나는 법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거대한 자연은커녕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간수 못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어디서부터 왔으면 동시에 그 인간에게 떨어지는 재앙은 또한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를 주목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사와 의견과 계획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홍수를 일으킨 분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에다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대입해 주세요. "하나님 저도 여기 포함됩니까?"하고 말입니다.

이 본문에 의하면 분명, 숨쉬는 자는 다 죽인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네가 무슨 통뼈야?"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 분명합니다. "옆 사람들아 다 죽어라 나는 내 힘으로 견뎌보겠다"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것이 성립된다면 예수님이 우리 대신 돌아가실 이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노아가 은혜를 입었더라"라는 말도 무의미해져 버립니다. "나는 잘났기에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큰 오해입니다. 구원의 장치도 물론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은혜를 입었다'에서 진정 은혜가 은혜답게 확실히 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다 저주받는 상황이 필히 생겨야 합니다. 즉 은혜가 은혜답게 나타나기 위해서라도 모든 존재에 대한 멸절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지켜내고 구원이 될 것 같으면 '은혜'라는 것이 유입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나중에 모든 인간에 대한 멸망이 아예 없을 경우에도 은혜라는 것은 있으나 마나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은 저주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또한 그 어떤 인간도 자체적인 능력으로 이 멸망에서 상황에서 빠져 나올 수 없음을 분명히 해주는 현상입니다.

"노아가 은혜를 입었다"라는 말씀은, 노아조차도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숱한 재앙과 고통이 쉴새없이 터집니다. 그 때마다 우리들은 그런 문제를 우리 스스로가 해결하려고 나서게 됩니다. "감기? 쌍화탕으로 잠재우지 뭐"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재앙을 주시는 것은 우리 스스로 버텨내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의 문제점을 발췌하기 위함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실로암이라는 지역에 망대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그 밑에 있던 사람, 18명이 깔려 죽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과연 망대에 깔려 죽는 사태를 사전에 대비할 수 없었을까요? 예수님은 "대비를 잘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런 말씀주신 것이 아닙니다. 시도 때도 없이 무슨 사건이 터지더라도 늘 회개하는 마음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잘 대비했는데 저자는 나처럼 대비하지 못해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았다'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이 던져주시는 사태에 대비할 수 없는 존재이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사건이 인간의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은 노아가 개인적으로 잘 대비했다는 말이 아니라 노아로서는 대비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일으키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은혜'가 따로 입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아가 그 은혜를 마치 자기가 잘나서 획득한 것처럼 자랑해서는 아니 되는 겁니다. 은혜로서 은혜 주신 자의 공로로만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노아의 이러한 혜택에 대해서 우리가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노아를 부러워하는 그 심성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당히 수상한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도 노아처럼 은혜를 받았으면 얼마나 편하겠느냐"하는 식의 잘못된 생각을 떠오를 수가 있습니다. 은혜가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편해졌다는 것에 관심이 가서 좋아라 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이런 태도는 은혜를 곡해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란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라는 것이 은혜 받는 자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전파하기 위해 은혜를 주시더라 이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탁 깨어보면 그 안에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꼭 심판해야만 하는 이유가 담겨 있게 됩니다.

따라서 은혜를 입은 사람의 삶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삶이라는 것은 곧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꼭 멸망을 받아야 되는 삼인지를 보여주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 12-13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강포가 무엇인지 그들의 패괴의 원인이지는 아직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노아의 삶을 통해서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은혜를 입고 난 뒤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는데 무슨 사명을 받았느냐 하면 방주를 만들라는 겁니다. 방주는 원 뜻이 '상자'라는 겁니다. 길이가 135미터, 폭이 23미터, 높이가 13미터가 되는 거대한 상자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상자, 즉 방주에 노아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노아의 삶이 갇혀 있는 셈이 됩니다. 방주에 들어가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서 폐쇄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담겨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사랑의 한복판에 노아는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지배와 통치에 둘러싸여 있는 삶이 바로 노아의 삶이요 이것이 곧 은혜를 입고 사는 인생입니다.

온통 사방이 하나님의 용서하심이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세계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노아 이외의 사람들의 삶은 무엇입니까? 무척이나 개방되고 자유자재로 활개 칠 수 있는 삶으로 보이지요. 그러나 이는 곧 신을 삭제한 삶이요 신의 지시와 간섭을 배제한 삶입니다. 자기 자신이 절대적 신이 되어 있는 개방된 삶입니다. 이들은 사명도 뭐도 없는 삶입니다. 자신이 곧 신이기에 오직 자신의 명령 따라만 사는 인간들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자신의 고민거리를 자신이 해결하자고 나서기 보다는 그 와중에서 놓쳐버린 주님의 은혜를 다시 파악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에 포위되고 갇혀 있다면 우리들 둘러 싼 이 사죄의 은총이 마지막 때에 얼마나 요긴한 일인가에 대해 충분히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면서 그 의도가 자기 자신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고자 하는 음흉한 의도가 있습니다. 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라이벌로 여기서 하나님을 충분히 알아서 다루기 쉬운 분으로 조정에 나서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나름대로의 자기만의 자유를 따로 즐기는 개구멍을 만들어 보겠다는 심보입니다.

과연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태도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속이겠다는 태도입니까? 정말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만을 드러내는 사명자 된 것,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 입지 않는 자들을 대단히 부러워하는 태도를 버리고 감히 주님에 대해서 남에게 알려줄 사람이 된 것을 감사히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14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3,317 강의 창세기 4:9-15 /저주와 보호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16 성경 창세기 4:9-15 /저주와 보호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15 강의 창세기 4:16-24 /가인의 가족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14 성경 창세기 4:16-24 /가인의 가족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13 강의 창세기 4: 25-26 /여호와의 일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12 성경 창세기 4: 25-26 /여호와의 일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11 강의 창세기 5:1-5 /아담의 이름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10 성경 창세기 5:1-5 /아담의 이름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9 강의 창세기 5:6-24 /동행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8 성경 창세기 5:6-24 /동행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7 강의 창세기 5:25-32 /저주와 안식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6 성경 창세기 5:25-32 /저주와 안식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5 강의 창세기 6:1-4 /육 체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4 성경 창세기 6:1-4 /육 체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3 강의 창세기 6:5-8 /마음의 죄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2 성경 창세기 6:5-8 /마음의 죄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301 강의 창세기 6: 9-17 /방 주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열람 ➜ 성경 창세기 6: 9-17 /방 주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99 강의 창세기 7:1-5 /거룩에 의한 심판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98 성경 창세기 7:1-5 /거룩에 의한 심판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97 성경 창세기 7:4-16 /심판 속의 노아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96 강의 창세기 7:4-16 /심판 속의 노아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95 성경 창세기 8:1-12 /노아의 사명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94 강의 창세기 8:1-12 /노아의 사명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93 성경 창세기 8:15-22 /안정성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