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8:15-22 /안정성
창세기 8:15-22 /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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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성
2002년 1월 13일 28강
본문 말씀 : 창세기 8:15-22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사람이 살다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나 사건이 터질지 아무도 장담 못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안정된 세상을 꿈꾸어 왔습니다. 환경이 안정되면 우리 마음도 안정되고 환경이 복잡해지면 우리 마음도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환경의 안정을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흔히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과연 하나님만 믿으면 환경도 안정되고 따라서 우리의 마음도 편안해집니까? 이점에 대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눈만 뜨면 이 사회는 불안정하고 우리들에게 위협이 되는 요소가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평안하게 해줄 환경조차 안정되도록 만들어주어야 되지 않느냐고 따지게 됩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더불어 바다를 통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설마 어려운 환경이 올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난데 없이 풍랑이 일고 곧 이어 그 파도가 제자들의 배를 덮쳤습니다. 왜 세상을 주관한다는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환경의 위협이 덮쳐오는 걸까요? 제자는 자기들만의 노력으로 난경을 이겨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배밑에서 주무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헷갈리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예수님은 자기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주무시는 예수님은 자기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으로 결론지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자는 주님을 깨웠습니다. 자기 딴에 이것을 신앙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들이 갖는 안정의 조건이 너무나도 일방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마음 먹은 대로 되어야만 자신들의 마음이 안정되면서 예수 믿는 보람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주무신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우왕 좌왕하는 모습을 유발시켜 제자들이 정말 고쳐야 되고 회개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 줄 참이었습니다. 일반 가정에서 조직에 어려움이 왔을 때, 힘을 써 줄 사람이 힘을 쓰지 않고 혼자서 잠을 잔다면 사태의 책임을 그 지도자에게 짊어지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고방식을 그대로 예수님에게 적용시킨 겁니다.
자기들과 힘을 합해야 난관을 극복된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제자들을 평가하시기를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깨우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불안심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무라는 점이 이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과 바다의 풍랑과 상호 비교 대상일 수가 있느냐?" 말입니다.
불안정한 환경의 변화가 어떻게 안정된 예수님과 견줄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우주의 중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주의 근원이신 분이 우리들과 함께 있다는 그 자체로서 우리는 안정된 채 살아가야 합니다.
똑같은 환경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아 홍수 사건입니다. 맹렬한 대홍수가 있고 난 후, 하나님은 노아보고 방주에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때까지 자구상 어느 곳보다 안정성을 주던 그 환경에서 나오라는 겁니다. 만약에 나오고 난 뒤에 또다시 저주의 비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에게 순종해서 과감하게 방주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 지구 상에 홍수의 심판을 내렸는지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7에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이 세상을 정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는 어떻게 해서 구원받았습니까? 노아는 바로 자신이 의인이라서 구원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것이 안정성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환경이 안정될 때만 마음이 안정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 땅에 와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가 관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0-21절에 보니,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비록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릴 때부터 악하지만 정결한 제물의 희생을 보고서 다시는 전에 하던 것처럼 물로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일을 보고 노아는 안심하고 방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의롭다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방주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정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안정성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환경보고 새삼스럽게 예수님을 깨워야겠다는 의식과는 너무나도 다름니다. 환경이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이 환경이 어떤 기준과 규칙 속에서 움직이냐 하는 것을 노아는 분명하게 알았던 것입니다. 로마서 8:1에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안정적인 말씀이 또 있습니까! 환경 따라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는 그런 종교적 태도가 얼마나 불신앙적인 행위입니까!
하나님의 일관된 뜻을 남긴 노아의 제사는 사실 노아 때 처음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아벨의 제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서도 희생의 정신이 배겨 나옵니다. 제사드린 자가 도리어 악에 희생을 당하는 모호함이 노아 제사를 통해 다소 분명해졌습니다. 어쨌든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서 보면 결코 불안정한 것이 아닙니다. 불안정한 것은 도리어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압시다. 그리고 환경 따라 마음이 정하지 마시고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수용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환경 따라 저의 마음이 농락 당하지 않게 하시고 노아처럼 하나님의 중심되는 일에 전부를 걸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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