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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11:1-9 /비벨탑성경창세기

창세기 11:1-9 /비벨탑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바벨탑
2002년 2월 17일 33강
본문 말씀 : 창 11:1-9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지레 짐작해서 취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오, 주여 용서하소서"라는 태도 말입니다. 참으로 겸손해 보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동정이라도 이끌어 낼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같은 경우를 보면, 우리의 용서를 이끌어 낼 만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회개할 만한 건덕지가 없습니다. 바벨탑 이야기가 옛날 이야기잖아요.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집 마당에 탑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건덕지가 없습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다 우리하고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이요 옛날 지나간 이야기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의 나오는 선악과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한 선악과 과실을 따먹었다"라는 말씀을 보고서 내심 우리들은 주장하기를 "저 안 따먹어요. 원죄라는 이름 하에 저희들까지 책임을 묻지 마세요"라고 하고 싶지요.

그러니까 성경을 보고 회개하고 싶고 "주여 용서하소서"라고 제대로 겸손의 띠를 내고 싶어도 그 근거가 불확실합니다. 에베소서 5장에는 "술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고서는 우리들을 말하지요. "저는 15년 전에 이미 술 끊었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미리 "회개 해야겠다, 죄를 자복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마음을 낮춘다고해서 하나님이 우리보고, "참 훌륭하다, 대견하다"고 칭찬하지 않습니다. 축구 시합 같으면 오히려 동정을 유도한 벌로 옐로 카드를 받을 짓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우리가 알아주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매를 들고 자식을 때리려고 하니까, 자식이 매가 무서워서 지레 짐작 반성의 띠를 내면서,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하고 싹싹 비는 모습은 아버지가 별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정 아버지께서 매를 드는 이유는 모르는채 과도한 제스쳐를 취하면서 그 위기의 순간만 어떻게 모면하려는 얕팍한 몸짓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자기 유리한 것만 생각하는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화가 나서 더 때리고 싶지요. '저 인간이 저토록 자기 아픈 것만 무서워하고 정작 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왜 그리 관심이 없을꼬"하고 말입니다.

순간적인 고통만 면하려는 그 태도가 오히려 크게 불량스럽기만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은, 그냥 내가 살기에 편하다는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그 사실에 기초해 있는 것입니다. 화목스럽게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싹싹 빌 생각부터 먼저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에 대해서 곡해하고 오해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증인인고로 남들에게 잘못된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면 하나님께 누가 되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우리 인간이 선악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토대에서 은혜로 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시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즉 아담이 선행 덕분이 아담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겼다는 것이 곧 은혜로움의 시작인 것을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서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은 선악에 관한 지혜는 인간들이 몰라도 인간이 인간되는데 있어 전혀 상관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선악을 아는 지혜가 있음으로 그것이 인간됨이 와해시켜 흙이 되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나는 선악과 안 따먹어도. 선악과 따먹은 죄에 대한 대가를 저에게는 찾지 마세요"라고 따지는 것 자체가 선악에 기준으로 한 것이기에 비은혜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이 생각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도 악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저에게 저주를 내리지 마세요"라는 생각이 바로 선악과 따막은 그 여파로 인한 것이기에 이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선악과 이야기가 성경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은혜 덩어리입니다"라는 고백과 같이 선악과 무관한 고백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은 내가 잘났기 때문이다"라는 의식이 비 은혜적입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 못하고 단지 매 안맞기 위해 자기 변명과 의로운 것을 챙기는데 신경 쓰는 자식과 같은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벨탑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탑 쌓는데 동조 안했어요"라고 발뺌부터 하려고 하지 말고, 선악과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몰랐고 오해했던 것을 발견하고 수정케하자는 의도로서 이 바벨탑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선악과 따먹는 일을 통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또다른 어떤 면을 알려주시는 겁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인간 입장에서 이해가 잘 안되는 하나님의 처리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탑을 쌓았다고 했는데 하나님을 그 작업을 저지하십니다. 하나님은 더 높은 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인간들이 아무리 탑을 쌓아 본들 설마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탑을 쌓겠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불가능한 일을 하시는 것을 그냥 못본척 하시고 넘어가셔도 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속 좁아 보이는 것이 하나님의 태도입니다. 또 하나는, 탑 쌓는 것이 문제가 되면 하나님께서 큰 망치라도 들고 오셔서 그 꼴보기 싫은 탑을 그냥 부셔버리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것을 가지고 왜 인간들을 온 세계에 흩어버리십니까? 행위와 거기에 따른 징계가 서로 맞지 않는 듯이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탑이나 건물을 쌓을 때 그것을 벽돌과 같은 사물의 탑이나 건물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탑이 된 것으로 보신다는 점입니다. 건물을 헤치시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헤치시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벽돌로 지은 탑이 아니라 인간들에 의한 탑이요 역청으로 벽돌로 연결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언어로 그 인간들과 인간 사이를 떼운 것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대신'라는 말이 연이어 나옵니다. 즉 인간들은 돌을 대신하여 벽돌을 사용하므로서 탑 자체에 새로움을 가미하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대신해서 거대한 탑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다시금 하나님의 의중을 헤아려 봅시다. 설사 인간이 인간의 탑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그것이 뭐가 하나님에게 문제가 될 수 있습니까? 그냥 내버려 두시면 안되는 겁니까? 왜 그것마저 꼭 관여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인간끼리 뭉치는 것을 왜 못보시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대신하려는 그 본래의 속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면은 다니엘 2: 32-35에 나옵니다. "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탑이라는 대체물을 만들어 자신으로부터 분리를 꾀했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인간 세계 자체를 금신상이라는 거대한 사물로 표현해서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못박습니다. 덩달아 하나님 나라까지 하나님께서 사물로 통해서 표현하시는데 금신상이 와장창 부서버리는 것은 어디선가 날라온 작은 돌입니다. 그 돌은 결국 금신상이 무너진 그 현장에서 거대한 태산을 이룬다는 겁니다.

즉 인간이 만든 문명은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제국만이 인간의 제국을 대신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확고한 의지는 시편 127:1절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지은 집만이 인정하십니다.

시편 28:5에도 같은 취지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바벨탑에 대한 조치가 결코 심판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사람들은 바벨탑 쌓으면서, "하나님 저희들이 탑 쌓습니다. 하나님 허락하실거죠?"라고 물어 보지도 않았으며,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얘들아, 너희들도 절대로 탑 같은 것을 쌓아서 하늘에 닿게하려고 해서는 아니된다. 만약에 내 말 안들으면 너희들 심판받는다"라는 말씀도 사전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벨탑 이야기는 예전에 인간들이 미쳐 몰랐던 하나님의 마음을 새삼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밝혀진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즉 인간들은 그들도 예상못한 새로운 실패의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흔히 교인들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런 오류에 빠집니다. "전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더니만 하나님께서 내 사업체를 벌을 내리셨다. 따라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내 사업체가 해가 오도록 하지 않아야지"라는 식으로 신앙 생활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무엇을해도 항상 그것이 자신에게 바벨탑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름을 그 작업을 통해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그것을 실패케 하십니다. 그래도 그것을 심판이라고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 또 다시 확인되기 때문에 이 점을 알게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실패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네 인생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미 성사시켜 놓은 하나님의 제국을 우리가 알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민족들을 흩으셨지만 그 흩어진 곳곳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아니주시던가요? 모든 이에게 여전히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 것만이 영원함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의 실패에 절망하시지 마시고 원래부터 부셔져야 될 것임을 미리 인정합시다. 행여 우리가 평소에 이런 점을 놓치고 불안에 떨며 살지 않았는지를 오늘 본문을 통해서 나타난 확고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회개합시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서져야 할 것을 영원한 것처럼 목숨걸고 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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