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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마태복음 8장 1-4절 제목 : 일시 : 2003. 5. 4설교마태복음

Re..마 8: 1- 4 (문둥병자의 구원)

이름 : 이근호(IP:)

문둥병자의 구원
2003년 5월 4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8:1-4

8: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8:2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사람은 스스로 사느냐 아니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사느냐로 두 부류로 나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신앙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서 현대인들은 매우 측은하게 여깁니다.

현대인들의 삶이란 외부에서 정보나 지식들을 모아다가 최종적으로 자신이 책임지고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을 보면 무책임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이런 신앙인의 입장이 되지 못하면 우리는 전혀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의 말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골라서 도움받고자 하는 자는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접근도 못해보고 튕겨나갈 사람입니다.

반면에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맡긴 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담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아무 것도 없으니 전부 오로지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일반인들은 대단히 못마땅해 합니다. 사람이란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존심만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급함이 없이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집이 없다고 간절히 기도하다가 막상 집이 한 채 생겨버리면 그 다음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할 말도, 기도 내용도 제대로 못채우기 십상입니다. 즉 예수님이 더 이상 불필요한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담고자해서 오신 분입니다. 즉 "너희 인간들은 하늘의 뜻을 모르고 나만 안다"는 겁니다. 이러한 그 뜻을 예수님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에게만 담기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5:8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즉 하나님의 사랑이 담길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는 자는 사랑이 들어와서 담길 자리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말씀에 대한 갈급함으로 나타납니다. 천국이란 그냥 보험하나 들여놓듯이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러한 세상적인 정신 자체를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마음의 전적인 변화없이는 천국은 남의 나라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이러한 마음 변화에 굳이 신경 쓸 시간조차 못하게 만듭니다. 즉 말씀에 대한 다급함이 상실되어 있습니다. 시편 42:1-3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이 성경 구절에 나오는 사람의 심정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동감하고 있습니까? 아예 동참하고 싶습니까? 도대체 누가 이 사람을 목마른 사슴으로 만들었습니까?

오늘날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은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어놓고 무차별적인 광고를 통해 소비를 창출하는 방식입니다. 원하는 자에게는 빠른 속도로 배달이 가능하여 손쉽게 욕망을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없는 것이 없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것도 새로 만들어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풍족한 만큼 행복도 풍족하게 따라오지 않습니다.

어릴적에는 모든 것이 갈급함의 대상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어쩌다가 신기한 것을 구경만 하게 되어도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따라서 갈급함이라는 고통이 있었기에 고마움을 느끼는 행복이 비로소 발생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갈급함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모든 것이 넘쳐나게 주어져도 행복은 거기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갈급함이 없기에 행복도 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호세아 4:7에 보면,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광이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번성함과 화려함이 도리어 당시자들을 망치게 한다는 이 현실성을 제대로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모스 8:11에 봐도,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라고 인류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식을 갈급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대다수가 풍족한 것들을 찾아다닐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풍족함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다른 것에 눈에 돌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모스 8:11과 같이 이런 모든 예언은 성령을 통해서 그대로 오늘날 성도에게 적용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옛날 내려졌던 예언이 흐지부지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진정한 성도라면 아모스 8:11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상황이라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12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이 상봉의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고통을 휠씬 능가하는 겁니다. 세상에서 남들이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기대하고 있다면 이런 예수님과의 상봉의 기쁨을 병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드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보고 물어보시지도 않고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위하여 자진해서 제물이 되셨습니다. 성령님은 이런 분의 영으로 우리에게 임하게 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평생동안 보내신 그 서러움과 괴로움이 우리 마음 안에 가득 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자신이 왜 진정한 죄인일 수 밖에 없는가를 알게 됩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 전혀 생겨나지 않게 됩니다. 죄인 주제에 그런 것을 넘볼 입장이 못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목사 같으면 목회 성공에 대한 탐욕도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자식을 잘 키우겠다든지, 자신의 몸이 좀 더 건강해야겠다든지, 자기가 시작한 사업이 번창해야겠다는 욕심들이 왜 진정 욕심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에 더 갈급함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깨끗함에 대한 갈급함을 갖고 있는 어떤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낫게 해주셨습니다. 문둥병이란 저주, 즉 죽음의 표상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64:6에 이런 말씀이 나와있습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성경은 우리의 육신을 옷으로 비유하며 동시에 그 옷이 낡아지고 후패하고 썩어지는 것을 인간의 죄성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하게 내린 조치라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저주스러운 저 문둥병자야말로 대중들 앞에서 죄악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그 시대의 흉측한 패션 모델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병이 말씀 한마디로 말끔하게 나았습니다. 그것도 즉시로 말입니다. '즉시로' 깨끗함을 받았는 것을 보아서, 이 치료는 어디까지 순전히 예수님 자신이 원하심에 의한 예수님의 능력인 것이 분명합니다. 결코 문둥병자의 끈질김이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즉시로 나은 것은 아닙니다.

문둥병자가 아무리 요청한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구원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을 이 문둥병자가 알고 있었다는 것이 우리들로 놀라게 합니다. 흔히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 그 마음 자체가 이런 문둥병자처럼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기도하니 하나님은 당연히 응답해주시는 것이 마땅하다"는 식입니다. 반면에 "내가 이렇게 요청하셔도 응답해주시고 아니해주시는 것은 어디까지 예수님 마음에 달렸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뜻대로 되는 것만해도 저는 만족합니다"라는 마음가짐은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에 의해 믿음이 있어야만 생겨나는 겁니다.

즉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는 제가 되겠습니다"라는 마음 가짐은 인위적으로 생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문둥병자같은 마음도 역시 성령이 임하는 그 순간, 즉 구원의 주께서 임하는 순간에만 보여지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문둥병자를 어디에서 써먹었습니까? 예수님은 그 환자를 예수님 자신을 증거하는 자로 세웠습니다. 예수님은 그 환자에게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 환자를 고치시면서, 자신의 일을 통해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신자를 알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율법을 신봉하는 세계였습니다. 그 율법대로 메시야가 오심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과연 문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을 보내셔서 율법을 완성시키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취지에 부합되시는 분이 이미 와버렸다는 사실을 제사장에게 알리라고 합니다.

즉 이미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 그 구세주는 이미 와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예수님께서 율법 완성 차원에서 행하셔야 하는 그 일과 율법의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자, 예수님께서 일려준 모세가 명한 예물에 대해서는 레위기 14장에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저주가 풀린 문둥병 환자는 모세 율법에 따라 두 마리의 새를 잡아 제사장에게 바칩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한 마리의 새에 대해서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아 그 새의 피를 냅니다. 그리고 그 피를 살아있는 다른 새의 날개쭉지 찍어 바르면서 문둥병 환자에게 말하되 "당신은 이제 깨끗합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난 뒤 피가 묻힌 그 산 새를 들로 나가 공중으로 날려 보냅니다. 바로 이 제물을 제사장에게 보여라는 것입니다. 옛날 제사장이 문둥병자이었던 사람에게 선언했던 그 말 "당신은 이제 깨끗합니다"라는 그 기능을 오늘날에는 예수님께서 영원한 제사장이 되셔서 똑같은 선언을 우리에게 해 주시므로서 우리도 문둥병자처럼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되기까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 치유될 수 없는 저주성 불치병 환자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리고 너무나 절실하게 인정하기에 생명의 말씀을 갈급함으로 사모하고 계십니까?

이 세상의 어느 신자치고 자신이 전적인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하는 신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어느 불신자치고 자신이 전적인 죄인인 것을 느끼지는 불신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마서 5:8의 말씀처럼,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비로소 예수님이 제대로 이해되는 법입니다. 이러한 법칙은 결코 하나님께서 철회하신 적이 없습니다.
영원히 저주스러운 문둥병자인 우리가 이 시대에 무엇에 대한 갈급함을 가져야 겠습니까? 제발 목마른 사슴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본질을 외면해버리면 예수님에 대한 갈급함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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