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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13:1-13 /아브라함의 선택성경창세기

창세기 13:1-13 /아브라함의 선택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아브라함의 선택
2002년 3월 17일 37강
본문 말씀 : 창 13:1-13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오늘 성경 내용은, 현재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그냥 그렇게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생활 이야기가 왜 거룩한 성경에 담겨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사는 토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있고요.

쉽게 생각해서, 인간들은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토대가 있습니다. 이 토대가 요구하는 대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껏 자유롭게 사는 것 같지만 토대가 이끄는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이 토대에 대해서 마르크스라는 학자는 경제로 보았습니다. 재물이지요. 소유 의지입니다. 이 소유가 이끄는대로 살다보면 "내가 누구냐?"라든지 자신의 인격관이 갈수록 상실되고 엷어지는 겁니다. 관심 밖으로 밀려가는 겁니다. 내가 누구냐를 모르면서 그냥 막무가내 밀어붙이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애굽에서 삼촌 가정과 조카 가정이 같이 나왔는데 조금 지냈다가 헤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두 가정으로 헤어지는 원인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소유라는 토대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유라는 토대는 겉보기에 불과하며 내면에는 신앙의 토대가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두 가정이 소유가 막강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발전에 방해로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아브람은 갈라서기로 마음 먹습니다. 이처럼 단지 소유의 대결로 비치고 믿음의 질의 차이로 보여지지 않는 것은, 믿음이란 각자의 세계만을 통보하기 때문에 협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속성을 지닙니다.

그래서 소유 자체에 대해 아브람이 양보를 하므로서 애초부터 신앙성에서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자 합니다. 9절에 보면,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브람은 조카 롯의 내심의 선택에 우선권을 부여하므로서 자신의 선택하는 바가 따로 있음을 내비칩니다. 즉 롯의 선택권 안에서 롯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네가 선택하는 바대로 다 하되 너의 선택 정신과 동일하게 내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롯의 선택 정신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오늘 본문 10-11에 보면,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롯은 어느 쪽을 선택했습니까?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 동산 같고, 더구나 그 뒷 단어, '애굽 땅' 같은 곳이라고 표현된 땅을 선택했습니다. 삼촌 아브람과 조카 롯 가정이 애굽에서 나올 때 모두 많은 재물을 얻어 나온 자들입니다. 자기들이 노력해서 얻은 재물이 아니라 거저 얻은 것입니다. 따라서 애굽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풍족하고 잘 산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그 풍부한 재물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우선 비옥한 땅이었고 그리고 물도 넉넉했던 지역이라는 엄청난 땅의 소산물을 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서로 갖고 있는 가축이나 재물을 증식하려면 애굽 나라와 같은 조건을 가진 땅을 점거하는 것이 계속된 성공의 조건임을 롯이 모를 리 없습니다. 바로 이 점을 삼촌 아브람이 잘 알고 있기에 롯에게 우선권을 넘긴 것입니다. "너의 토대의 길로 가거라"는 뜻에서 말입니다. 아브람의 소유라는 토대를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토대를 고대했습니다.

과연 롯이 아브람 곁을 떠난 후, 그 때 하나님은 홀로 남은 아브람에게 다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4-17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을 대하면서 여러분들이 좀 의아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이 뭔데 이 땅을 준다는 겁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럴 능력이 있는 겁니까? 그럴 자격자라도 되는 겁니까? 만약에 그 땅을 아브람에게 안 주면 그 때가서 아브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상당히 불안스러운 제안이 아닙니까?

아브람이나 조차 롯이 애굽에서 익히 알았듯이 재물은 인간이 얻고자 얻고자 대단히 애를 써서 쟁취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저 받을 수 있다니요? 누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여기서 믿음이 가치가 꽃핍니다. 즉 아브람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비록 소유라는 토대는 롯에게 넘겼지만 그 빈 자리에 '하나님의 약속 성취'라는 새로운 토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롯과 같은 소유의 토대를 버린 것은 그가 애굽에서 나온 후 느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가 조카 롯과 다투게 된 재산과 재물은 결국 애굽 사람들로부터 얻은 것이잖아요. 그리고 그 재물은, 아브람 자신이 치사하게 자기 살고 아내를 내팽개친 그 댓가로 주어진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그 재물들을 자기 노력의 댓가인 것처럼 계속 고수한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지 않고 어쨋던 하나의 생존 요령이었다고 긍정하는 정신 속에서 살아가는 것 밖에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는 다른 생존의 토대가 필요했습니다. 애굽식으로 재물을 증식시키는 것은 조카 롯의 것으로 넘겨 버리고 롯과 헤어지고 다른 길로 가게 됩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하나님의 일관된 약속이 다시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롯이 선택한 땅까지 사방팔방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이 다 아브람의 것이 된다고 하나님의 일방적으로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이 바로 신앙의 바른 토대입니다. 인간의 힘이나 선택이나 생존 요령에서 주어진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그 약속에만 기대를 걸고 사는 자가 바로 참 신앙인입니다.

거기에 비해 롯은 여전히 애굽 정신의 토대를 지니고 있어 자기 가축들이 늘어날 좋은 조건의 땅을 가지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나에게도 좋은 것은 남에게도 같이 좋은 것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에덴 동산 같은 곳을 어찌 롯만 탐을 낼까요. 자연적으로 이곳에는 수많은 욕심꾸러기들이 다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거기에서 풍족한 돈 흐름이 생성되겠지요. 돈이란, 돈이 모여 드는 곳에서 얻어지는 법입니다. 그리고 돈만 많아진다면 온갖 환락가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그 환락가에서 맛본 그 기쁨을 계속 갖기 위해 더욱 많은 돈을 찾아 헤맵니다.

사람들이 돈을 열심히 버는 것도 다 목적이 있습니다. 더 큰 즐거움을 획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쾌락이란 즐기면 즐길수록 더욱 도가 지나치고 더 비싸게 치는 쾌락을 찾기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니,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라고 되어 있고 10절에 봐도,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망한 곳이 비록 살기 좋고 땅의 질이 좋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재물의 토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됨됨이를 보시는 겁니다. 아까 불렀던 찬양,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 하신다"는 가사처럼 ...

하나님에 의해서 친히 인도 받는 신앙인들은, 늘 자신의 토대를 바꾸기를 원하게 됩니다. 즉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는 심정으로 사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마음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더 확실한 쪽이기 때문입니다.

좋다고 유명한 것은 누구에게나 좋아 보이는 법입니다. 따라서 너도 나도 그것을 얻기 위해 달려들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진정 누구이며 자신은 무슨 토대 위에 사는 지를 무관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구원되어야 될 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와서만 신앙인척 하지 말게 하시고 평소에 살면서 자신의 토대를 늘 돌아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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