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5:8-21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언약 2002년 4월 14일 41강 본문 말씀 : 창 15:8-21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신앙인 사이에 대화하는 것이 숱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는 내용은 인간들의 머리에서 나온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나 그리고 여타 신앙인 사이의 대화는 마치 장래의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대화를 미리 보는 것 같습니다. 대화의 내용을 인간 쪽으로 구성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말씀이 곧 현실적으로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곧 그 사람의 미래가 됩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과 대화하시면서 일방적으로 통고하는 식으로 진행하십니까? 그것은 신앙이란, 내 인생을 내가 다듬어 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뽑힌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 맞잖아"하면서 살라고 말입니다. 이 일방적인 통고의 내용을 바로 '언약'이라고 합니다. 보통 언약이라고 하면 상방간에 약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합작해서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울 수는 없습니다. 언약이란 우주의 비밀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서 우리 인간이 관여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신앙인이 언약을 받았다는 말은, 우주의 비밀을 담아서 그것을 증거하는 일꾼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언약을 생각하지 않으면 자칫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 왜 이렇게 사는거야"하고 좌절해 버립니다. 하지만 성도는 스스로 버티거나 스스로를 제촉하는 식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주는 황홀에 빠져사는 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자기 처지를 비관할 입장이 아닙니다. 이것은 일종의 마음의 낭비요 사치입니다. 하나님이 내일 어떻게 인도하실까? 하나님께서 모레는 어떻게 인도하실까? 이것 만이 관심사이어야 합니다. 사실 성도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으면 얻을 것 다 얻은 겁니다. 무엇을 더 기대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는 어둠 속에서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자기 신세 타령할 마음이 싹 가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언약 안에서는 신앙인의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웬 제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까? 그것은 언약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미래상을 가지고 봅시다. 13절에서 21절까지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일어날 일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왜 후손들이 이런 축복을 퍼부어주시는 겁니까? 그것은 이방 민족에게 없는 것이 아브라함 후손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내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내용은 제사의 제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내용으로 인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거룩한 백성, 의로운 백성으로 규정되고 반면에 이 언약적 내용이 없는 민족들은 악한 민족, 비거룩한 거룩으로 취급받는 겁니다. 그러면 3년 된 암수소, 3년 된 암염소, 3년도 수양, 그리고 새와 비둘가 담고 있는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제물에는 등급이 있습니다. 큰 가치를 담고 있는 재물과 보다 작은 가치를 담고 있는 재물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 같은 제물은 온 백성의 모든 죄나 대제사장의 위한 제물에 바쳐지는 제물입니다. 염소 같은 것은 장로급의 속죄제에 등장됩니다. 양은 일반인들의 제물로 사용됩니다. 새나 비둘기는 가난한 민중들을 위한 제물입니다. 이것 저것도 살 돈에 없는 자는 곡물을 바쳐라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소나 염소나 양 등 제물의 등급 별로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위계 질서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런데 왜 등급에 속한 소나 염소는 왜 수컷이 아니고 암컷입니까? 그것은 상위 등급, 즉 하나님께로 가까운 쪽에 있는 제물이 유독 암컷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위 등급, 즉 인간 쪽에 가까운 제물이 수컷으로 시작한다는 점도 아울러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합니다. 위에는 암컷만 있고 아래에서 수컷이 지배한다. 즉 하나님이 어머니 역할을 해서 수컷, 즉 아들을 낳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3:15에 있는 말씀, "여자의 후손이 악마를 이긴다"는 내용의 연장선에 같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 이어져 아브라함에게는 제물의 형태로 전달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3년입니까? 그것은 제물이 되는 동물을 가지고 고유의 속성을 표출 할 때는 년수를 가지고 표현합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유월절에서는 1년 된 수양으로 '흠없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3년은 무엇을 표현하는 겁니까? 그것은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쪽으로 나온 3 분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이 분들이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 부부를 찾아온 것은, 그대들이 받은 언약이 무용지물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언약대로 진행된다는 증거로 이 세 명의 천사가 들이닥쳤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언약대로 주변에 있는 이방민족을 칠 수 있는 후손이 나타나는 것과 아브라함의 언약과 연관이 있는 겁니다. 즉 이삭의 출생을 통고하려 이 세 분의 천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세 분의 천사는 지상 쪽에 속한 분들이 아니라 하나님 쪽의 사람입니다. 이들은 곧 하나님의 대표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어머니 역할을 상위 등급에 속한 제물로 표현하기 위해서 3년이라는 기간을 표현방식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1년과 비교해서 더 늙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더 노숙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3년이란 '3'과 관련된 분의 작품으로서 아브라함의 언약대로 후손이 출생한다는 겁니다. 자... 이러한 언약 내용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해야 될 몫은 무엇입니까? 아예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언약의 내용을 실천하는 주체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 증거가 17절에 나옵니다.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제물을 중간을 쪼개어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으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제물의 본질과 속성이 무엇인가를 아브라함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무엇이 과연 그 쪼개진 중앙에서 나오는가요? 하나님은 횃불로서 그 중앙을 통과하십니다. 이는 곧 이 제물이 말씀하는 실체는 하나님이며 하나님께서는 이 제물로 통한 언약의 실제적 기능자라는 점을 보이는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언약의 내용을 보았습니다. 과연 이 언약이 인간의 머리 속에서 창안한 것입니까? 참으로 기이하고 괴이하기까지 한 내용입니다. 횃불이 제물의 중간을 '휙' 통과하는 일이 어떻게 인간의 생각에 의해 조종되는 일일까요! 이처럼 신앙은 우리 식으로 조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바자회나 열고 꼬박꼬박 예배 참석한 것으로 신앙 생활을 대신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괴이하고 기이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자신의 전부를 바쳐도 아깝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신비로운 언약의 내용입니다. 성도는 이 점을 보이기 위해 뽑혀나온 자입니다. 그 자의 속에는 하나님이 작용하는 자입니다. 언약대로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남들이 기이하고 괴이하게 본다 할지라도 조금도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가지 마시고 정말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인도하시는지 맡기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학대하지 말게 하옵시고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인생임을 마음껏 보이게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