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17: 15-22 /이삭과 언약성경창세기

창세기 17: 15-22 /이삭과 언약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이삭과 언약

2002년 5월 5일 44강

본문 말씀 : 창 17:15-22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찌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여러분 가운데 이미 아들을 가진 자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해도 별로 반가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는 것이 단지 무자식를 면하고 대를 이으라고 자식하나 점지해 주겠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아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존의 아들을 아들로 여기지 말라고 주시는 아들입니다. 기존의 사람의 흐름을 진정한 참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뜻에 주시는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계통의 아들을 주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복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복이라는 것은 그 나머지는 반드시 저주스럽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식이 진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식입니까?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그 해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즉 아들 속에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육체적 관계를 통해서 생산 된 자에게 언약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관계없이 태어난 자식에다 언약까지 덧입힙니다. 그렇게해서 영원히 복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되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절대적으로 믿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아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태어난 아들이어야 하고 또한 그에게 함께 있는 언약을 믿는 자에게는 영원히 복이 조건도 함께 주어집니다. 즉 내가 나를 믿는다고해서 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를 믿어서는 아니되지"라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복이 되는 겁니다. 나의 행동, 나의 태도, 나의 습관, 나의 성질, 나의 관행을 믿어서는 아니됩니다. 이런 점을 보고 우쭐댄다든지 아니면 좌절한다든지 해서는 아니됩니다.

이 세상에 심각한 일은 없습니다. 지나가 보면 다 시시한 일들 뿐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입학식하고 난 뒤에 할아버지의 손이 이끌려 중국음식집에 갔는데 그 때 저는 무척 고민했습니다.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우동을 먹을 것인가를 놓고서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요즈음 청년들은 세피아를 탈 것인가 엑센트를 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나중에 지나놓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입니다. 할부로 할 것인가 현찰로 지불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적으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내 약속이 아니니라" 이 한마디로 끝내버리십니다. 즉 "그런 문제는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자 하는 요건이 되지 못하느니라" 이 말입니다.

이렇게보니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과연 복된 언약과 연관맺게 되느냐 아니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기 입장만 생각해서 하나님의 뜻을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니,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려서 피식 웃었습니다. 그 웃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자기는 100살이요 내 아내는 90살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가문을 위한 자식을 둔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네가 생각한 자식 개념은 아니야! 그것은 복이 될 수 없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참으로 진지해야 하고 심각히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따로 마련해서 주신 것 뿐입니다. 인간의 것은 모두 시시한 것들 뿐입니다. 정말 웃음이 날 수도 있는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점을 이해해서 새로 태어날 자식의 이름까지 이삭, 즉 웃음이라고 지으신 것입니다.

전혀 심각하지 않아 보지만 실제로는 복과 저주가 가름되는 엄청난 심각한 실체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딸이든 아들이든 자식이 있다면 이 자식들이 심각한 복의 근원과 연관을 맺는 것이 가장 진지하게 기도해야 될 문제이지요. 본인이 믿든 안믿든 그것은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하나님께서 이런 엄청한 계획이 수행중에 있음을 죽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서는 아브라함은 자기 온 집안 식구들 중 남자라는 남자는 모두 할례를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아들과 복의 약속을 맺고 내년에는 그 아들이 실제로 생긴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아브라함 내외는 그냥 그 약속만 믿고 세월만 보내면 그만이 아닙니까?

왜 갑자기 온 집안에 할례를 행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할례를 행하므로서 저주받는 대상에서 복의 대상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메시야가 오시는데 우리의 할 일은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메시야는 할례된 자를 찾으러 왔고 우리는 그 약속을 준수하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유대인들은 육체적 할례가 할례의 전부로 알았던 것이었습니다.

메시야가 요구하시던 할례는 그런 할례가 아닙니다. 로마서 2:28-29에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육체의 할례란 면도칼만 있으면 누구든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가 따라주지 아니하는 육체의 할례란 소용없는 겁니다. 사람에게 있어 자신의 옛 마음이 가죽이 벗겨진 것을 본인만은 압니다.

마음의 할례가 무엇을 벗겨내는 것입니까? 마음의 옛 껍질을 벗겨내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옛 껍질이고 무엇이 속살입니까? 이점에 대해서는 신명기 10:12-16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즉 여호와를 경외하고 사랑하는 것이 마음의 할례 된 자의 모습이라면 자기 자신 위주로 살아가는 마음은 옛 마음의 껍질이 되겠습니다. 위대한 스타나 유명인사가 되겠다든지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모아 으시대어 보겠다든지 하는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마음의 할례을 받은 자 중에 대표적인 자가 아브라함입니다. 로마서 4:18에 보면,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랬다고 되어 있고 또 로마서 4:19에 보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사랑하고 자기의 재주를 신뢰하면 결코 아브라함과 같은 마음의 할례나 믿음을 지닐 수 없습니다.

자기를 극도로 존중하는 가운데서 어찌 자기 외의 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외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몸은 이미 죽었다는 겁니다. 아니 죽은 자가 뭘 바라고 뭘 할 수 있습니까? 자기의 죽은 몸에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약속이 운동하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을 인정한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의 할례와 여호와 경외는 이렇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런 마음과 약속이 비로소 만납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찾으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서 전 가족에게 할례를 행한 것도 이런 취지였습니다. 메시야는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죽은 몸인 것을 아는 마음의 할례자로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의 약속은 이런 자의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것이 전부임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1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3,267 성경 창세기 15:8-21 /하나님의 언약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66 강의 창세기 15:8-21 /하나님의 언약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65 성경 창세기 16:1-14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64 강의 창세기 16:1-14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63 성경 창세기 17: 1-14 /할례언약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62 강의 창세기 17: 1-14 /할례언약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열람 ➜ 성경 창세기 17: 15-22 /이삭과 언약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60 강의 창세기 17: 15-22 /이삭과 언약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9 성경 창세기 18: 1-10 /세 천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8 강의 창세기 18: 1-10 /세 천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7 성경 창세기 18:16-21 /하나님의 선택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6 강의 창세기 18:16-21 /하나님의 선택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5 성경 창세기 18:22-33 /의인과 심판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4 강의 창세기 18:22-33 /의인과 심판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3 성경 창세기 19:1-11 /소돔의 죄악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2 강의 창세기 19:1-11 /소돔의 죄악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1 성경 창세기 19:12-22 /천사의 소식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50 강의 창세기 19:12-22 /천사의 소식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49 성경 창세기 19:17-29 /소금 기둥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48 강의 창세기 19:17-29 /소금 기둥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47 성경 창세기 19:30-38 /인간들의 대책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46 강의 창세기 19:30-38 /인간들의 대책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45 성경 창세기 20:1-7 /아브라함의 위상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44 강의 창세기 20:1-7 /아브라함의 위상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3,243 성경 창세기 20:8-18 /이방인의 회개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8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