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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19:30-38 /인간들의 대책강의창세기

2002년 6월 30일 51강 인간들의 대책 본문 말씀 : 창 19:30-38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에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족속의 조상이었더라" 성경은 선과 악에 대해서 서로 마주보게 배치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있고 빛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둡다, 어둡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빛만 있고 의만 있는 세계가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어두움 자체를 탐닉해서 즐겨서는 아니된다는 말입니다. 빛을 알려면 놀랍게도 어두움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은 그냥 가만히 대치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전쟁 중에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역사의 90%가 전쟁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패배와 억압의 과정이 거기에 적혀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세상을 이겨보려고 애쓰다가 패배한 그 패배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패배케 하시는 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왕 당사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패배케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것은 그 와중에 속에 하나님의 의의 승리를 바라보라는 겁니다. 전쟁에 능하시고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왜 진작부터 바라보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즉 이 세상은 빛과 어두움의 전쟁 중에 있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패배케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나서서 모든 것을 승리로 돌리시는 식으로 하나님은 이 세계를 지배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백성이 위대해서 스스로 구원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구원받은 자가 어두움에 속한 모습이 나옵니다. 롯은 물론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딸도 엄연히 유황불의 재앙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롯의 처는 소금기둥이 되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알 성에는 이번 유황불 심판에서 살아 남은 단 세 명 밖에 없습니다. 한 가정이지요.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불거져 터져나옵니다. 불신자 다 죽고 신자만 세 명 남았으면 이제부터 뭘 합니까? 교회에서 처음에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 기쁨으로 시작했다가 곧 얼마안가서 인간들끼리 노는 단체로 전환됩니다. 이것은 애초부터 그들이 완벽 안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인간은 원래부터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항상 온전치 못한 인간을 구원하는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빛의 세계란 어두움이 어두움으로 짙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이란 어느 가정, 어느 환경을 가리지 않고 다 있는 것입니다. 어두움 때문에 구원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이제 왜 우리가 어두움일 수 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만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롯의 가정은 평지가 무서워서 산으로 피신했습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서운 유황불에 살아남은 것은 다행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 속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포부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바따유는 말하기를, 자기 몸의 확산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세계의 모든 인간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노력하고 시도하는 바는 딴 게 아니라 어떻게하든지 자신의 몸을 영구히 보존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도킨스라는 생물학자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하여 말하기를, 인간의 의식과 마음이 자신의 신체 특히 DNA, 즉 유전인자를 지배하고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DNA가 오로지 자신의 번식과 확장과 배포를 위해 인간의 신체까지 이용한다고 보았습니다. 남들 보기에 대단히 거룩하고 희생적으로 보이는 이타적 행위까지 사실은 자신의 유전인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자연적 현상이라는 겁니다. 지금 롯의 가정만 있습니다. 아버지하고 딸 둘이 남았습니다. 나이가 많아 오로지 죽을 날을 고대하는 롯 말고 젊은 두 딸은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자손 번식은 자아 보존에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자식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두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자아가 위험 부담없이 될 수 있는대로 많이 확산 시키겠다는 신체적 본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 기초한 문화적 산물입니다. 비록 인간은 나이 늙어 죽지만 결코 자아 자체는 자식들과 그 대대의 후손들의 개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겁니다. 거의 불멸이지요. 따라서 모든 생물체는 이런 식으로 자아를 이어보려는 욕구와 더불어 번식에 몰두하게 됩니다. 따라서 롯의 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손 번식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는 내심의 본능입니다. 문제는 그 방법에 있어 하나님의 지시라고 볼 수 없는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이러한 내심의 금지마저 넘어설 정도로 강렬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두움의 특징입니다. 인간의 자기 본성을 강제로 금지할 그 어떤 요건도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의롭다하게 할 수 없는 겁니다. 다시금 말씀드립니다만, 구원받았다고해서 옳다고 봐서는 아니됩니다. 어두움의 여전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롯의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서 결국 다 아들을 얻게 됩니다. 하나는 모압, 즉 '아버지 부터'라는 뜻입니다. 다른 아들 이름은 벤암미입니다. 즉 내 혈육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곧 암몬 족속이지요. 그런데 신명기 23:5에 보면 이 두 민족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구원받은 자에서 나온 후손들은 다 구원받는 겁니까? 아버지가 신자이고 어머니가 신자이며 자식들은 자동적으로 구원받은 자식들이 되는 겁니까? 결코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신자라는 것이 완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은 죄인인데 오로지 예수님의 용서와 자비로만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자식이 구원되지 못하고 지옥간다고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인간의 새로운 민족을 계속 퍼뜨리고 양상해 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압과 암몬 민족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총회는 오직 여호와의 사랑에 의해 탄생된 민족 뿐입니다. 그렇다면 모압은 모두 지옥갑니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모압 여인 룻은 다윗 왕의 반열을 낳는 여인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모압 나라 출신의 여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왕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든 조직과 혈통을 초월하는 다른 나라 곧 하나님 나라에 주도권이 있음을 나타내는 겁니다. 즉 롯의 가정이 구원받은 것은 롯이 단지 아브라함 혈통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없이 그 해당 죄인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저항할 수 있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리만이 통하는 나라가 진정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언약 밖에 존재했던 이방 나라입니다. 아예 구원이란 전혀 해당사항이 없는 민족입니다. 우리가 모압이며 우리가 암몬입니다.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그 어두움의 요소에 의해서 생겨난 핏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겨주지 않더라도 무방한 어두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저 자손번식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는 민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압 여인 룻처럼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로서 무상으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나서도 아니요 우리가 남들보다 더 가치있고 귀해서도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이 떨어졌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과 그 분의 메시야를 알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가치나 자존심에 연연하면 안됩니다. 계속해서 주의 은총만을 길이 높이는 우리들이 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구원받았다고 안일에 빠질까봐 두렵습니다. 구원받은 자라고해서 교만하기 싶습니다. 자기 주제 파악을 늘 제대로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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