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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20:8-18 /이방인의 회개성경창세기

창세기 20:8-18 /이방인의 회개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이방인의 회개

2002년 7월 14일

본문 말씀: 창세기 20:8-18

20:8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20: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20: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20:11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20:12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20:13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20: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20: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대로 거하라 하고

20: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20: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하나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안 믿는 동네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은 분명 무지막지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머리 꼭대기에 최고의 지배자가 없다면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타인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원대로 마구 행동에 나설 것이니까 피해는 결국 하나님만 믿는 사람에게 돌아올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겨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면 이 점까지도 믿어야 합니다. 즉, 무지막지한 불신자의 행동 하나 하나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관리와 지배와 조절 하에 있다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불평하기를, "복음을 전해도 먹히지를 않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복음을 전할 필요가 있습니까? 차라리 설교 할 때에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전해서 예배 분위가를 평화롭게 가져 가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이 설교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꼭 아브라함 같습니다.

자신은 복음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지만 막상 하나님께서 불신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붙여주니 본인이 담박 불신자 못지 않는 행동으로 돌변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충고를 해 줍니다. "그들과의 만남도 우연이 아닙니다"고 말입니다. 불교신자를 만나든, 여호와 증인을 만나든, 이러한 만남 조차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 증인이 집안에 들어와도, 여호와 증인, 본인들은 특별한 사명을 띠었다고 주장하든 말든 ,우리는 그냥 동사무소 직원이나 아니면 검침하려 온 한전 직원이라고 보자 이 말입니다. 발걸음을 세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처음 교회 나가게 된 분들에게는 이런 점에 주의를 요합니다.

본인이 기독교 교인이라는 자부심에 도취되어서 패를 갈라서 타인을 모멸하려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렇게해서 자신의 결정에 정당함을 한껏 부여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기 보다는 자신이 결단 내린 그 행위를 고귀하게 간직하려고 합니다. 남과 갈라서려고 애쓴다고해서 하나님께서 더욱 강렬하게 내 편되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내 편이 아니라 하나님편입니다. 그것 뿐입니다. 계속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되는 것마저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같이 봅시다.

아브라함은, 무지막지하다고 간주되는 불신의 땅에 살면서 자신도 살고 아내도 살리는 방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불신자들이 아브라함 자신들에게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예상하는 것에 따라 대응책도 나오겠지요. 비록 아내로서 사라를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나도 살고 아내도 사는 방법은 결국 한 가지 방도 뿐이었습니다. 부부가 아니라 남매로 위장하는 겁니다.

그러면 장차 이삭이 이 부부에서 태어난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설마 남매 사이에서나, 혹은 다른 남편감에서 약속된 자식이 태어날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잖아요?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있어 그런 것은 자기 알 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고사하고 자기 살 방도가 급했던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밀고 나갔고 여기에 이방인 추장이 걸려들었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이방 민족의 추장은 얼시구나 하고 사라를 아내를 맞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하나님이 개입했습니다. 강제로 사라를 다시 아브라함으로 되돌려 보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되면 다시 아내 사라만 되돌려 받는 것 뿐이지, 여전히 아브라함은 심령 상태를 달라지지 않겠지요.

여기서 하나님은 다른 조치를 내리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여기서 잠시 요나 선지자의 경우와 비교해 봅시다. 구약의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서도 그 사명을 거부하고자 멀리 다시스로 배를 타고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으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요나가 타고 있는 그 배를 겨냥해서 큰 바다 풍랑을 일으켰습니다. "배가 뒤집여 질래 아니면 요나를 내 놓을래"입니다. 요나가 바다에 빠지고 난 뒤에야 배도 안정을 찾고 바다도 고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요나 선지자가 익사하고 말았습니까? 아닙니다.

요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요나가 해야될 일이 중요합니다. 기어이 요나를 살려내면서 요나에게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요나는 바다 깊은 곳까지 잠기게 되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서 다시 사명을 받들 방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큰 고기를 준비하셔서 그 요나 삼키게 했고 요나는 그 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위력을 느꼈습니다.

즉 하나님은 어디서나 하나님이신 것을 말입니다. 이 점을 깨닫자 하나님께서 고기로 하여금 육지 근처에서 토하게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그곳이 요나가 원래 사명 받들고 가야할 니느웨 나라 근처였습니다. 요나는 원래 받은 명대로 니느웨 나라의 장래 운명에 대해서 담담히 전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게 왠 변화입니까? 예상치 못한 변화가 온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마치 붉은 악마의 응원파도처럼 말입니다. 그 대목이 요나 3:5-8에 나와 있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이것은 정말 요나 본인도 전혀 감잡지 못한 일입니다. 처음에 요나가 하나님으로부터 명받을 때는 니느웨 성읍의 사람들은 40일 지나면 다 멸망한다는 시나니리오였지 다 단박에 회개한다는 시나리오가 아니었습니다.

요나 생각은 이러합니다. 멸망한다는 소식을 전하나 안전하나 망하게 된 도성이라면 자신의 전도가 별 의미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설마 멸망의 소식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온 나라가 통째로, 그것도 짐승까지 베옷을 입고 식음을 전폐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겁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아브라함은 불신 세계의 생리를 제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믿는다는 더러운 본성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뜻함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잊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주체자는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점을 그는 안믿고서 그저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신자인 자신이 요령껏 버티기 나름이라고 여긴 겁니다.

그렇게해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질까요? 아브라함은 그저 봉사자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진짜 신앙의 주도권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 점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 오늘 본문 끝에 나옵니다.

17-18절에 보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이 기도하니 닫혀진 태가 열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 본인의 가정은 태가 계속 닫혀있는 겁니까? 왜 약속의 태는 아직 열리지 않는 겁니까? 자기는 자신을 위해 태가 열리도록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그는 기꺼이 이삭을 데리고 번제드리려 가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신앙심은 철저히 자신을 비웠을 때나 가능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자신의 소유의 자식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이삭을 태어나게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비록 남들은 자기 소유의 자식을 낳더라도 아브라함에게 있어 이삭은 그런 대상의 자식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태가 열려 자식이 태어난다면 그것은 아브라함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의 자식이어야 합니다. 비록 사라가 분명 아브라함의 아내이지만 아브라함의 아내라는 자격으로 잉태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된 분에 의해 여인으로 자식을 잉태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아브라함은 봉사자로 부름받은 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왔다 갔다 한 인물이 나오지요. 바로 사라라는 여인입니다. 남편 아브라함의 소유에서 잠시나마 아비멜렉의 소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므로 다시 아브라함의 아내로 돌아왔습니다만 그러나 그 와중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 사라의 보호자가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도한다고해서 남들처럼 사라의 태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여전히 아브라함은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일의 봉사자로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봉사자란 하나님의 일을 독점한 자라고 오해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요나 선지자의 잘못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하나님의 상을 이 봉사자에게 심어주기 위해 난데없이 불신자라고 할 수 있는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아브라함보다 보다 더 하나님을 신봉하는 사람으로 행동하게 했습니다. 마치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 선지자 앞에서 졸지에 회개해서 요나 선지자로 하여금 당황스럽게 만든 경우와 같습니다.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 모든 것은 봉사자란 어디까지 봉사자에 머물러야 한다는 점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줍니다. 참된 신앙과 하나님의 봉사자란, 결코 자신이 신앙 가짐이 남들에게 자신이 우월하다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을 철저히 알아서 하나님의 것을 달라고 할 때에 언제든지, "네!"하고 바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데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봉사자끼리 신앙 시합하는 일이 없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무시했던 자를 통해서 얼마든지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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