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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21:22-34 /맹세의 우물성경창세기

창세기 21:22-34 /맹세의 우물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맹세의 우물

2002년 8월 4일

본문 말씀: 창세기 21:22-34

21: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21: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1:24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1: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21:26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21: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1: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1: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21: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21: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 하였더라
21: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21:34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평소에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달리 생소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는 아브라함 자체가 보통 사람하고 다르게 때문입니다. 창세기 12:3에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아브라함과 여타의 사람들을 구분짓는 차이점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러한 위치는 확정된 겁니다. 수정이 아니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예상치도 못한 일을 당할 준비를 해야하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가진 이러한 위상으로 인해 세상은 새로운 전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 대대로 이어지는 하늘의 숙명입니다. 사람의 운명이란 이제, 아브라함을 어떻게 보느냐로 결정날 판입니다. 지난 20장에서 아브라함과 그 아내되는 사라를 만났던 아비멜렉 추장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날 이후 아비멜렉 추장은 과연 아브라함의 존재를 계속 무시할 것입니까 아니면 미리 아브라함에게 고개 숙이고 들어갈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고개 숙이고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난데없는 자기 동네에 살게 된 낯선 인물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비멜렉 추장은, 축복과 저주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겸손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 때나 지금이나 불신자들이 세상을 살기 힘듭니까 아니면 신자가 살기 힘듭니까? 누가 유리합니까? 불신자의 경우는 한 가지 일만 매진하면 되잖아요. 밤 낮으로 뛰면 그 노력의 댓가로 자신들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비해 신자는, 돈 벌기를 통해서 자신을 살리는 일과 또 하나님과 교회를 봉사 일도 겸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돈 벌기에만 전부를 바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신자는 불신자가 안해도 되는 일까지 겸해서 하기에 이 세상에서 살기가 더욱 힘든 것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 나라에 갔을 때나 혹은 아비멜렉 앞에서나 살기 위하여 자기 아내를 자기 누이로 속이면서 처신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전혀 생소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다 같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들을 장악하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갑자기 아비멜렉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비골이라는 군대장관을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난데없이 조약을 맺어 상호간에 굳게 맹세하자고 나섭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들과 후손들이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눈치챘습니다. 아브라함을 쥐고 움직이시는 그 여호와라는 하나님이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장악해서 자기 땅에서 운신한다면 아비멜렉의 후손들에게 큰 피해가 될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전에 아브라함과 자신과 굳게 맹세를 해 놓으면 그 맹세로 인해 자신과 자기 후손들에게 이브라함 민족의 존재가 큰 재앙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는 결코 자신의 힘으로 신앙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신자를 향한 자신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은 신자 뿐만 아니라 불신자도 거역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주위에 있는 불신자들이 알아서 신자를 신자처럼 대우하는 경우가 일어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신앙 생활을 포기하고자 해서 전혀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는 지역에 가서 하나님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살고자 다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요나 선지자의 경우처럼 난데없이 불신자 쪽에서 먼저 그 사람이 신자임을 알아보고 자신의 신앙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경우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신자를 인도하는 것은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활동이 인간의 활동보다 덜 실제적일 것이라고 여기서는 아니됩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에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듯이 하나님은 순전히 자신의 약속 성취를 위해서 그 어떤 장애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 점을 신자가 먼저 눈치해는 경우도 있지만 불신자들이 먼저 눈치채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에 여호수아 9장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 6장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서 거침없이 땅 점령에 나서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모습입니다. 따라서 주위에 살던 이방민족들은 초비상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여호와의 위력을 인정하고 미리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한 번 싸워보느냐를 놓고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이방 민족에게는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해놓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여호와에 대들다가 다 망하게 되는 운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 진영의 근처에 기브온 거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이스라엘의 위력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힘인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들이 알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맹세와 은혜에는 변동이 없음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살기 위해 멀리서 이 지역을 통과하는 하나의 나그네 무리로 위장했습니다. 일부러 헤어진 옷을 걸쳐 입었고, 양식은 일부로 오래 방치해서 곰팡이가 피게 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여호수아를 찾아옵니다. 무리들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들과 화친하고자 일방적으로 그들과 언약을 맺고 맹세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나서야 그들이 먼 지방사람들이 아니라 근처사는 이방민족들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그들을 치는 것은 하나님의 맹세를 하나님을 믿는 자기네들이 깨는 것이기에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바로 맹세란 이러한 위력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브온 거주민들처럼 비굴하게 비실거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아브라함이 지닌 신기한 능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뜻을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제안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갑자기 아비멜렉의 종들이 이전의 약탈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고 나섭니다. 이는 아비멜렉이 제시한 맹세의 취지를 거부하고 아브라함 자신의 원하는 맹세로 진행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아비멜렉 쪽에서 아브라함쪽에게 범죄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려주신 축복의 기준이란 단순히 인간들 나름대로의 동등함을 인정해주고 또 그들의 바른 선택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이 전적으로 은혜받을 만한 인물들이 되지 못함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대단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브라함을 인정해주고 그와 맹세를 맺은 나도 괜찮은 인간이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은 일체 인정해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있어야지 그 일부라도 인간에게 넘어 가서는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맹세를 체결하면서 아비멜렉에 일곱 암양 새끼를 주면서 그것을 받으라고 합니다. 일종의 맹세의 혜택을 미리 맛보라는 것과 같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도 아니요 그런 위치에서 맹세를 한 것도 아닌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은혜를 주는 입장이요 아비멜렉은 은혜를 받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내세운 맹세의 우물은, 이 지역에서의 아브라함의 우월과 은혜의 주도권자임을 분명히 증거케 하는 우물이 됩니다.

인간의 것을 받고 주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일방적으로 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방식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이 브엘세바의 우물은 나중에 이삭의 우물이 되고 야곱의 우물이 됩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이 야곱의 우물에서 어떤 사마리아 여인이 목마르신 예수님에게 물을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으로부터 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구원의 샘터가 되어 그 생수를 여인에게 주어 여인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구원의 맹세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맹세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 간의 체결된 맹세입니다. 우리는 그 혜택을 입고 있을 뿐입니다. 그 맹세 속에는 인간의 먼저 하나님에게 대들고 범죄한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자기가 잘나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도인 우리 힘으로, 우리의 판단으로 구원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쉴 새없이 낯선 상황을 만드시고 그 가운데서 우리를 성도라 확인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구원됨을 우리가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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