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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22:1-14 /하나님의 시험성경창세기

창세기 22:1-14 /하나님의 시험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하나님의 시험

2002년 8월 11일

본문 말씀: 창세기 22:1-14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2: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22: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22: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22: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22: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서 교제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요?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보면 알 수 있겠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1절에 보면,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라고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는 과연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경외하는지 아니하는지, 혹은 히브리서 11장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천국에 올라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시험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보고서 1:13-14에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 자체를 탈락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험하시는 것은 아니십니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을 정당화하려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마치 탈락을 위한 시험을 하시는 분으로 보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성도들에게 시험을 하시는 겁니다. 그것은 그들의 구원받았음을 보다 확실히 해주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가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옵시며"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즉 성도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식으로 교제를 해야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버티기 힘든 각가지 유혹과 시련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실체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이미 당하셨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은 사탄보고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18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즉 하나님은 성도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 용서와 세상이 주는 압박감, 이 둘 중에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살아가고 있느냐는 겁니다. 어느 것이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인도하는 힘이 되는 겁니까? 예수님의 구원의 위력이지요. 이 위력이 이 악한 세상 속에서 실감을 느끼는 것은 세상에서 오는 각가지 시험과 유혹이 강렬한 때일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나약함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자는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점을 인정한다면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사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낮추게 하십니다.

신명기 8:2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의 길로 인도하신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주가 되심을 알아서 온갖 이 세상 유혹과 시험에서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시편 26:2에 보면,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광야라는 곳은 온통 없는 것 뿐인 장소입니다. 마실 물이 풍족하겠습니까 아니면 먹을 양식이 넉넉한 장소겠습니까. 인간이, 자신이 자신을 살리는 식의 교만은 일체 용납되지 않는 공간이 광야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낮추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다는 의미는, 바로 떡으로 사는 인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해 살게된 존재임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자 어느 정도까지 낮아지도록 시험하시는 겁니까? 전도서 3:18에 보니,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 자신이 짐승보다 나을 것이 하등 없음을 깨닫야지만 시험을 이길 수가 있는 마음 상태가 되는 겁니다.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우리들이 그러면 어떻게 해서 구원된 겁니까? 바로 여기에 엄청난 하나님의 구원의 위력으로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이 낮아진 상태입니다. 이 때만 하나님께 제대로 경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것을 차버렸는데 불구하고 아직도 뭔가 남아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복입니다. 형제, 자매, 부모, 자식, 다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아직도 하늘에게 주신 것이 남아 있는 것,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흐리게 하는 것이 바로 시험거리, 유혹거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관점에서 아브라함에게 다가오신 것입니다. 시험도 없다면 자신의 진정한 정체가 파악되기 곤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시험될 만한 세력을 밀려오게 허락하심으로서 성도로 하여금 자신이 진정 구원된 자임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시는 그 현장에 만약 우리 자신들이 참관자로 있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자 마자 아브라함은 번제 드릴 채비를 챙기는 것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까?

"아, 하나님이나 아브라함이나 두 분 다 고집 되게 세다. 아들 바치라는 하나님의 지시에도 정말 무리성이 다분하지만, 아들 바치란다고 해서 넙죽 아들 잡겠다고 나선 아브라함의 성질도 정말 불같다"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들 바치라고 했기에 아들 죽여서 하나님께 바쳐도 내 책임이 아니니까 단단한 오기만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행동처럼 보이게 마련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런 식이라면 결코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신의 행함에 대해서는 차후에 조금의 정당함도 보장받기 위해 온갖 변명책으로 사전 대비를 하기 마련입니다. 정말 아브라함이 이런 의식을 가지고 아들을 데리고 번제 드리려 모리아 산으로 갔다면 다음과 같은 경우에 엉뚱한 답변을 했을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이삭과 단 둘이 산을 올라가는데 그동안 침묵해 있던 이삭이 불쑥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아버지 번제할 불과 나무는 있지만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만약 아브라함이 자신의 무모한 행위를 하나님 책임으로 미룬다면 주저없이 다음과 같이 답변했을 것입니다. "얘야 바로 너란다. 네가 제물이야. 이 아버지를 원망하지 말라. 네가 죽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고 다 네 팔자이니 운명에 순응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렇게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히시리라" 즉 아브라함은 이 번제를 자신이 드리는 제사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관장하는 하나님의 제사로 느꼈던 것입니다. 물론 철없는 이삭은 이 번제를 아버지 아브라함이 드리는 제사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불과 나무 뿐만 아니라 번제물까지 다 준비하셔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이란 인간이 바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장만한 것에 우리가 초청받고 초대받음으로 구원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둘 다 하나님의 친히 벌리시는 엄청난 작업 속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즉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다듬어 나는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친히 지배하고 장악하시며 다루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고자 하는 '하나님 경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지금 아브라함은 번제를 드리려 가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감동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는 상태란, 나름대로 악을 물리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감나는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그 위력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즐기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미 우리는 엄청난 구원의 힘 속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 시험들지 않겠다는 시도로서 사소한 세상 일을 가지고 폭로하느니 마느니 라는 고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악마의 시험입니다.

사람에 대한 신뢰성보다 우선해야 되는 것은,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통치성에 대한 신뢰입니다. 고린도후서 5:19에 보면, "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정당함을 따로 받아서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추가적 복을 받으려고 하지말고 예수님 안에서 지금도 주어지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통치를 더 즐거워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통치 안에 놓여 있기에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평안함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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