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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22:19-25 /아브라함의 씨성경창세기

창세기 22:19-25 /아브라함의 씨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아브라함의 씨
2002년 8월 18일
본문 말씀: 창세기 22:19-2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성경에 나오는 일들은 세상적으로 봐서 유명해질 건덕지가 전혀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중앙에서 벌어지는 정치판에 관심이 있지 이런 류의 일은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지금 서울에서는 올해 대통령 선거 경향이 화제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어느 깊은 강원도 산골에서 어느 할머니께서 하나님과 조용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이 사실은 화제거리가 될 수 없겠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아들 바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에 국한 될 뿐입니다. 정말이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관심을 둘 화제거리가 많고 많은데 그런 것 다 제쳐두고 아브라함의 아들 바친 일에 신경써야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인간 가운데 놓여 있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하나님께서 세상 창조하면서 피조 세계와 창조주 사이에 인간을 세워주었습니다. 인간은 이 자연 세계가 아름다운 하나님의 거룩성으로 유지되도록 조치해야 될 그 책임자의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죄를 짓고 난 뒤에는 하나님의 방식을 원천부터 거부하는 쪽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이런 인간 세계의 형편을 보고 그만보고만 계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적의 문'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원수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세력에 대해 가만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자... 이 원수들이 뭘 노리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자연 세계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을 자기 세력 하에 둠으로서 아예 이 자연 세계 자체를 반 하나님 세력화 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과연 하나님께서 어떤 인간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하나님의 일을 수행케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아침 예배 때 같이 보았던 교독문 32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이것은 시편 143:2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인간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인간의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과 저주의 터널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피조세계와 더불어 인간은 함께 하나님의 영광으로 회복불가능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보았듯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위하여 수풀에 수양을 우연히 걸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수양 덕에 아브라함의 씨는 무사히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자... 이제 죽음마저 통과한 그 아브라함의 씨는 그 어떤 효력을 지닐까요?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 나타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나타나신다는 말은 첫 번째 나타나셔서 지시하는 일이 결코 허사로 끝맺어질 것이 아니라 이제 두 번째 나타나셔서 제시하는 맹세와 연관이 있다는 말입니다.

첫 번째 일로 말미암아 두 번째 맹세가 효력을 제대로 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 주신 맹세의 내용은, 바로 악의 세력에 대한 토벌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을 이겨내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확산된다는 겁니다.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인정받음에서도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 다른 말로 해서 하나님의 맹세가 담겨 있어야만 실현됩니다.

아까 우리 장로님께서 선창하기기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에베소서 2:8의 말씀을 소개했습니다. 선물이란 일방적으로 위로부터 받는 겁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선물을 받았는지 아니면 인간들의 지레짐작으로 자기 욕심의 선물을 염두에 두고 하늘의 선물이라고 일방적으로 여기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그 선물 보따리를 뜯어봐야겠지요. 흥부와 놀부의 선물이 다르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한 역할을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나 아브라함이나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역할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냥 시내산 위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역할은 이 땅에서 아들을 바치는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두 분다 성경에서 '순종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종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받을 선물을 미리 내막을 알고 의도적으로 순종한 순종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지시한 어떤 인간의 역할이 드러날 때, 하나님은 그것은 '순종'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창세기 18:19에 이 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즉 아브라함을 택하거나 또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것이나, 또 아브라함의 순종 조차도 모두 하나님의 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함이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위에서 주시는 선물이라고해서 그 선물의 내용을 뜯어보지 않고서 단지 선물 받았다고 외치는 것만으로 구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저는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교해 놓은 갈라디아서 3장의 내용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갈라디아서 3:7-8에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소개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믿음으로만 의인이 되는 원칙이 아브라함 때 이미 확정이 되었다면 그 이후에 그 어떤 하늘의 조치는 더 이상 필요없다고 여길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미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선물을 받았으면 더 이상 하늘의 선물은 불필요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새삼스럽게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불러 세웁니까?

갈라디아서 3:17에는 모세가 한 역할의 의의가 나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또 주셨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아브라함에게 준 원칙을 무산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21-21에 보면 보다 상세한 이유가 나옵니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그저 주신다고해서 다 구원되는 선물이 아니라는 겁니다. 참된 선물은 먼저 이 지상에서 진정한 의로운 제사에 의해 죽음마저 극복한 방침이 있음으로해서 그것만을 내용으로 한 선물이 진정한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의 참됨을 말씀하시기 위해 또 다른 선물을 모세를 통해 보내셨는데 그것은 율법입니다. 이 율법으로 인해 그 어떤 인간도 자기 자신의 행함으로 도저히 구원이 가능치 않음을 분명히 하라는 겁니다. 율법으로 인해 모두를 죄 안에 가두어 두었다는 말씀이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순종한다고해서 그 순종이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아는 상태에서 참작하여 순종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모든 뜻을 알고 순종하신 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누가복음 22:42에 보니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바로 이런 순종만이 진정한 순종입니다.

이런 순종으로 인해 이 지상에 의로운 백성이 출현했고 이들만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악을 지배하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의 얻는 그룹들이 됩니다. 결코 우리 자신들의 순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순종과 연결되도록 조치하신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순종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채 임시적인 우리의 변명으로 늘 전환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순종하신 그 덕분에 악에서 벗어났음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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