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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26:1-11 /맹세와 율법강의창세기

맹세와 율법 2002년 9월 29일 본문 말씀: 창세기 26:1-11 26: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6: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26:3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6: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26:6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26:7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 함이었더라 26:8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26: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26:10 아비멜렉이 가로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하기 쉬웠을뻔 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26:11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나 그 아내에게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게 되면 일단 성도에게 유리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허나 그것은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맹세를 이루기 위해 성도를 불러낸 것이지 결코 성도가 노리는 바를 부수로 얻게 하기 위해 부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 믿어 이익보자고 교회 찾아든 사람은 성도도 아니요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달성하기 위해 불러준 사람만이 성도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삭이 살던 동네에 흉년이 들게 하십니다. 우리가 이삭 같아도 당연히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곳을 떠나라도 이곳에 흉년을 내리셨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삭이 그렇게 생각할까봐 미리 다짐을 해놓습니다. 절대로 이곳을 떠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흉년은 흉년대로 발생시켜놓고서는 결코 그 흉년든 땅을 떠나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 보면 뭔가 섭섭한 것이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신다면 흉년이 아니라 아예 풍년을 늘 주셔어 그곳을 축복의 땅으로 만드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약 이삭을 소재로해서 소설을 쓴다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이삭을 최고의 강자로 만들어서 이삭이 머무는 곳마다 풍년, 풍년이 넘치도록 생겨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연 하나님이 그와 함께 있구나"라는 것을 알리는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은 풍년대신 흉년을 일으키십니다. 이삭이 얼마나 괴롭고 살기 힘들 것인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맹세를 이루기 위해서 그래야만 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었더니만 이삭 때에도 흉년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 때의 흉년은 아브라함을 통한 맹세를 성취하는 환경이었듯이 이삭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해서 흉년 때에 하나님의 맹세를 이루어내었습니까? 오늘 본문 4-5절에 보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자... 과연 아브라함이 그 때 뭘 했습니까? 별로 한 것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지키도록 몰아넣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달리 생각을 못하도록 궁지로 몰아세운 것입니다. 이점은 이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흉년이 들게 하므로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자신이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달리 어떻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곳에 거하면서 이삭이 일부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철저히 지켜려는 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성질대로 합니다. 그 예가 바로 자기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고 속인점입니다. 이 수법은 아버지 아브라함도 써먹었던 바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그런 비겁한 술책을 통해 오히려 아브라함이 복의 중앙에 존재하는 인물임을 사방에 널리 알리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속으로 이끄시는 맹세의 작업입니다. 이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은 그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을 살리는 최선의 방도를 강구할 뿐입니다. 그 어떤 윤리적, 도덕적 기준보다 먼저 앞선 것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살아남고 보자 하는 겁니다. 자신이 살아남을 때 하나님의 맹세도 산다고 본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아버지 아브라함 행세의 재탕입니까! 즉 이삭은 하나님의 맹세로 인해 자신의 것이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분명코 자신과 그 가족이 살아남는데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선배가 저질은 잘못을 후배가 그 내막을 안다고해서 그 잘못을 반복 안한다고 보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타인의 회개는 결코 자신의 회개로 이어지는 법이 아닙니다. 타인의 실수도 타인의 경험에 머물기에 언제든지 본인의 실수로 재현될 수가 있습니다. 남에게 교훈을 배운다는 것으로 곧 자신의 본성으로 달라지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한다는 사람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행위의 밑바탕에는 "무조건 살고보자"정신이 먼저 자리잡고 있는 이상, 외부에게 주입되는 그 어떤 교훈도 잔소리에 불과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순종하며 살지만 그 땅에서 사는 태도는 자신의 본성을 작용시켜가면서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너무나 아리따웠기 때문에 자기 아내를 빼앗기 위해 남편되는 자기 목숨을 노리는 일도 미리 예상할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어떤 자가 자기 아내 리브가를 탐내어 강제로 아내 삼으려고 한다면 아내는 아내대로 살아 남을 수 있고, 자기는 오빠라는 신분이 되어 또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남매로 위장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 과연 이런 식으로 자기 생존의 위주로 사는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맹세를 이룰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맹세의 인물 앞에 도덕적이고 정의를 부르짖는 인물과 마주치게 했습니다. 그는 그 지역의 부족장인 아비멜렉입니다. 이삭의 부부가 남매가 아니라 부인인 것을 그는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불러서 크게 나무랍니다. "당신의 거짓말로 인해 우리 부족에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질 뻔했다"는 겁니다. "만약 당신의 말을 듣고 우리 부족 중의 어느 자가 당신 아내와 관계를 맺었다면 신의 노를 유발시켜 우리 부족에 큰 화가 떨어질 것이는"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삭은 이런 불상사를 고려하지 않는 겁니까? 상대방이 범죄에서 하늘의 저주를 자초하는 경우를 이삭이 왜 미리 헤아리지 않는 겁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맹세가 갖는 취지가 밝혀집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맹세의 내막을 밝혀주기 위해 하나님의 맹세와 인간의 정의감을 직접 마주치게 했습니다. 정의감을 갖고 있는 아비멜렉은 이삭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정의가 이삭 쪽에서 아니라 아비멜렉 쪽에서 성취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맹세의 본질은 인간들의 윤리적 정의감이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지금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삭을 통해서 구현되는 겁니다. 즉 아비멜렉은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고 있는가에 주목해야만 합니다. 이삭의 처신이 아비멜렉의 입장에서 볼 때 옳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하나님의 보호로부터 철회되거나 취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사랑의 내막을 알아야 했습니다. 인간의 정의감에서는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이삭의 처신술에서도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삭을 데리고 이룩하시는 그 맹세로 인해서만 사랑이 나오는 겁니다. 못난 이삭, 못난 아브라함으로 통해서 하나님의 자신의 사랑의 실체를 드러내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은 꼭 인간들의 윤리적, 도덕적 감성과 마주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 인간들은, 자신의 행함 여부에 따라 신의 축복과 저주가 결정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이삭의 나름대로 살아남고자 하는 근원적 본성을 통해서 수정받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진정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얻어낼 만한 것을 얻어내어서 그것으로 우리의 생존을 영위할 수 있는 겁니까? 혹시 그런 것을 바라고 교회나오시는 겁니까?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성도 중의 누가 음주 운전을 했다고 칩시다. 하나님께서 그 성도를 통해서 맹세를 이루기 위해 그로 하여금 음주 측정하는 경찰관과 만나게 합니다. 거기서 이 성도는 경찰관으로부터 실컷 훈계를 듣습니다. "선생님, 저는 경찰관입니다. 저도 교회 다니는 교인입니다. 교인들은 절대로 술을 먹어서는 아니됩니다. 만약 술을 먹게 되면 하나님께서 큰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아 있음을 경히 여기지 마시고 앞으로 음주 운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면허 취소에 벌금 150만원 입니다."라고 통보를 해 줍니다. 여기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즉 술을 먹으면 하나님께서 저주의 벌을 내린다는 그 윤리적인 경찰관을 만나서 그의 주장이 결코 복음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그 사랑을 말입니다. 이로소 성도는 왜 자신의 본심대로 술을 먹도록 허용하셨는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음주 단속 경찰관과 마주치게 했는지를 압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의 관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사랑의 보호 하에서 사적으로 얻고자 하는 그 어떤 이익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술을 끊고, 음주운전 안하고 바르게 살게 되면 하늘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은 교회를 다니든 아니 다니든 상관없이 성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진정 성도라면 단지 사랑, 이 사랑을 알도록 인도될 뿐입니다. "아, 내 자신은 그저 살고자 하는 욕심 뿐이구나 그런데 이런 나를 아직도 사랑해 주시다니!"라는 이 사랑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그것은 생존의 기술에 불과합니다. 다만 주님쪽에서 용서하시는 그 사랑만이 사랑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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