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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26:12-22 /복과 원수성경창세기

창세기 26:12-22 /복과 원수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복과 원수
2002년 10월 6일
본문 말씀: 창세기 26:12-22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26: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26:15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26: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26:18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6: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6: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6: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복이란 양(量)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질(質)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맨처럼 우주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을 담아놓겠다는 취지에 준해서 이 자연물에 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질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면 그 합당한 질은 팽창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질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없애버리는 겁니다. 맨 처음 인간이 기분좋게 살았던 에덴동산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축복 안에는 축복을 유지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축복이 깨어지느냐를 가름하는 요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그 축복의 동산에서 추방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를 시기하고 미워한 요소에 의해 축복이 질적으로 와해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주심은, 이런 사건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인 하나님의 전달하는 수단이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 12절-14절 중간까지만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라거 양적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편 1:1-2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이삭에게 내려진 복을 하나님이 이 지상의 인간이 미처 몰랐던 하나님의 뜻과 본질을 보여주는 통로라고 봐야 합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이삭도 복받고 아브라함도 복받고 야곱도 복받았으니 우리도 동일한 복, 즉 소 떼가 많아지고 양 떼가 많아지고, 재물이 늘어나고 노비도 많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삭처럼 되려고 하지 말고 이삭을 관리하시고 인도하신 이삭의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믿지 말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시므로서 그 복을 둘러싸고 그동안 정체를 드러내지 않던 불신 세계의 정체를 들추어내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겁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관리할 때는 각자의 형편에 맞도록 복을 주시는데, 그 내려주신 복으로 인하여 그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하나님의 적이 나타내는 계기로 하나님은 삼으시는 겁니다.

그러면 이삭에게 내려준 복을 인하여 무슨 일이 연이어 이어집니까? 지금 이삭이 살던 땅은 대단히 흉년들어 있습니다. 너나 할 것없이 모두 어려워하는 때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삭의 농산물은 무려 백배나 증가하였습니다.

결코 이삭이, 주위 종족들의 자존심을 꺽어놓기 위해 자기에게만 특별조치 해달라고 요청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이삭을 데리고 사용하시는 겁니다. 난데없이 수확물이 100배나 증가된 자로 등장되게 했습니다.

주위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그들은 이삭을 그 지역에서 추방하고자 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서는 시기했다고 되어 있고 미워해서 그렇다고도 했습니다. 만약 이삭에게 난데없이 복이 내려오지 아니하면 이삭과 그들 사이에 하등의 문제가 발생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인해 이삭은 이제 그 동네 사람들부터 기피인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삭을 미워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 깊은 내막은 신약 때 와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28-34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만하더라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찐대 돼지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 대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여기에 예수님과 관계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는 마귀들린 혹은 마귀가 나오고 다른 한 무리들은 마을 사람입니다. 마귀와 예수님과의 사이에서는 이 세상의 본질을 보여주는 관계이지만, 마을 사람과 예수님 사이에는, 모든 것을 양적으로 따지는 이 세상의 겉모습을 보여주는 관계가 됩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해서 귀신 들린 청년에서 악한 귀신이 나갔느냐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내 돼지가 저 예수라는 자 때문에 다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 예수가 계속 우리 동네에 있는한 자기네 소유물에 손해가 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삭에게도 그 동네 추장이 와서 자기 동네에서 떠나기를 요구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삭이 갖고 있는 질적 가치를 모릅니다.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그들 앞에서 백배나 소유가 증가하도록 하는지 이유를 모릅니다. 이삭은 그들의 요구되고 그 지역을 떠나 넓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우물을 팝니다. 그랬더니 물이 나옵니다.

그러자 그 지역 사람들이 또 따라와서는 그 우물은 자기 것이라고 우깁니다. 그래서 첫 번째 우물 이름이 '다툼'입니다. 이삭의 가족은 다시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전에서 거기서 우물을 팠더니 또 물이 나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 우물에 탐을 내면서 쫓아와서는 자기 우물이라고 우깁니다. 그래서 그 우물의 이름을 '대적함'이라고 짓게 됩니다.

그래서 이삭 가족은 다시 다른 지역에 가서 우물을 파서 그 우물 이름을 '장소가 넓음'으로 짓습니다. 즉 이삭의 복이 가는 곳마다 이삭이 받은 복으로 인하여 다툼이 유발되고, 그래서 원수가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결국에는 그것으로 인해 이삭의 정착지가 예상외로 크게 넓혀짐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이삭을 인도하실까요? 그것은 이삭의 복이 지니고 있는 질적 요소, 즉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식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소유만 염두에 두고 사는 사람 같으면 이삭이 느꼈던 '장소의 넓음'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보다 쉬운 예가 창세기 39:19-23에 나옵니다.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우리가 요셉 본인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가 생각하는 '만사 형통'은 오직 하나 뿐일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옥에서 나오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에게 복을 주시되 그런 식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옥에는 그대로 갇히게 하시고 단지 그 감옥 내에서 요셉의 활동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편하도록 조치하시면서 그것은 '만사 형통'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자기 생존에만 연관해서 복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만사 형통'에 대해 화날 만할 것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무슨 복이란 말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복의 본질은 우리들로 하여금 복이 갖고 있는 그 내막의 '자리를 넓히기'와 관련있습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의 희생이 과연 복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복이 갖는 본질을 넓게 보느냐와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소유물만 늘어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과 함께 있음' 그 자체에 있음을 알게 하는끔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복이 가는 곳에는 가는 곳마다 다툼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원수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성도로 하여금 "우리가 거할 자리가 참으로 크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창세기 26:26-28에 보면,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로 더불어 그랄에서 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 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즉 그 지역 사람들은, 자기네들에게 없는 것이 이삭에게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늘어난 재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그 자체였습니다. 복의 이런 질적 요인으로 인해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원수가 아직도 있음이 파악됩니다.

마태복음 10:34-3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있는 복을 받은 사람은 불신자라는 새로운 원수들을 불러내는 계기가 됩니다. 심지어 자기 식구라고 말입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적이 복을 추구하면 도리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참된 복된 자의 원수가 됨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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