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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27:1-4 /이삭의 결정성경창세기

창세기 27:1-4 /이삭의 결정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이삭의 결정

2002년 10월 13일

본문 말씀: 창세기 27:1-4

27: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7:2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날 죽을는지 알지못하노니

27:3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27:4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축복, 혹은 복을 얻는 방식에 대해서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향하여 정성과 마음씨를 깨끗이 하고 겸손한 태도로서 복을 달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냥 주신다는 겁니다.

다른 방식 하나는 이렇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복을 달라고해도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따로 복을 독점해 있는 인물을 세우시고 그 인물이 주고자 하는 자에게만 복이 돌아간다는 견해입니다.

과연 이 견해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둘 다 틀린 이론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첫 번째 견해가 아니고 두 번째 견해가 옳을 것처럼 보입니다. 즉 누구든지 하나님을 향하여 복달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복의 중심지로 서 있는 사람에 의해 비로소 복이 전달되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이런 지시를 큰 아들 에서에게 내리게 됩니다.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에게는 복을 남에게 넘길 그만한 권한이 있다는 점을 보이는 장면입니다.

즉 복을 주고 안 주고, 혹은 복을 주고 저주를 주는 것이 특정 인물의 권한으로 이미 넘어 왔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인간들이 방법을 동원해서 이 복을 도중에 가로챌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만약 복을 가로 챌 수 있다고 한다면, 복 제공자의 권한이 사실은 유명무실해져 버리는 것이 됩니다. 만약 인간들의 그 어떤 계략이라도 복이 도중에 인간들의 힘에 의해서라도 가로챔을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복을 뺏고자 하는 리브가와 야곱의 노력도 헛수고가 됩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아무리 리브가와 야곱이 합작해서 맏아들 에서에게 돌아갈 복을 갈취했다고해도 나중에 그 사실이 들통난 다음에는 마땅히 아버지 이삭이 자신의 축복 베풀어주심을 당장 취소시키면 그만입니다.

실제로 야곱은 이점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12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찐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찌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자식이 아버지를 속이고 있다는 것이 들통이 나는 날에는 축복은커녕 엄청난 저주만 떨어질 것이 뻔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축복과 저주권은 아버지께서 독점해 있다는 것은 하나님도 인정한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나중에 이삭은, 아내가 자기 둘째 아들이 합작에서 자신을 철저히 속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내린 결정을 철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야곱은 축복과 저주권이 순전히 아버지 소관임을 인정하면서도 뭔가 포기하는 기색이 없이 기어이 공작을 벌려서 아버지의 복을 자기 쪽으로 돌려놓겠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여기서 우리는 일단 온 식구가 모두 하나님의 복에 대해서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그 오해가 무엇일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을 요약한 소요리 문답, 제 첫 번째 물음이 이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냐는 겁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바로 밑에 즉시 등장하는데 사람이 사는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답변이 과연 옳은지를 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과 관계하면서, 자신이 사는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고백을 통해서 뭔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즉 "저는 하나님의 영화롭게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쪽으로 목적을 두고 살겠습니다. 그러니 그런 저에게 이런 태도에 합당한 반대급부를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인간의 모든 목적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자기 자신으로 귀착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사람이 제 잘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랄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런 점을 우리가 어떻게 파헤칠 수 있는가 하면,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을 왜 묻느냐?를 따져보는데서 밝혀집니다. 사람은 어떤 목적 의식없이 묻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란 항상 하나님의 뜻과 차이나게 마련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의 축복 전달 의사도 마찬가집니다. 죽기 전에 축복권을 자기 맏이에게 전달하는 것은 당연히 복의 근원자로서 해야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시켰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당연한 행위를 하는 그 와중에서도 이삭은 본인도 모르는 가은데 본인 중심주의적 사고가 그의 행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복을 주겠다, 혹은 복을 주세요 라고 요구하는 인간의 행위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자기 뜻에 장악된 채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의 행위 속에서 역시 이런 취지가 작동합니다.

이삭이라는 인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축복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가 축복하면 무조건 축복된 인물이 되고, 그가 저주하면 이유없이 무조건 저주의 인물이 된다는 점을 리브가와 아들 야곱은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자는 복 자체에 대해서 아버지 이삭처럼 큰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축복권을 어떤 사물처럼 다룰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마치 현금 카드처럼 말입니다. 다가오는 그 축복의 길목을 노렸다가 그 축복 덩어리를 가로챌 수 있는 대상으로 본 것입니다.

복의 능력이 이삭에게 있으니 이삭만 속이면 복의 능력은 그 어떤 외부의 간섭도 받지 않고 복도 변형되지 않은채 고스란히 자기네들 손아귀에 넘어 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들도 복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나중에 들통나도 이미 복이라는 현금카드는 자기네 손아귀로 들어왔으니 아무리 나중에 취소해도 불가능하다고 본 겁니다. 과연 복이라는 그런 겁니까? 리브가와 야곱은 이삭을 속이기 위해 모든 수완을 다 발휘합니다.

이삭은 이미 복을 맏이 에서쪽으로 밀어주기로 마음 먹고, 에서와 야곱이 차이나는 조건을 가지고 복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그 차이란 바로, 에서는 사냥을 잘해서 별미를 만들 줄 안다는 것이요 또 온 몸에 털이 많이 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삭은 단지 외형적의 차이만으로 야곱과 에서의 차이를 생각한 것은 애초에 큰 잘못이었습니다. 근원적으로 다른 차이가 난다는 점을 아버지 이삭은 알지 못했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은 이런 이삭이 제시한 차이성을 쉽게 흉내내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이삭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장님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체의 한계를 극복못한 이삭이나, 이런 신체의 한계를 이용해서 상대방을 속이면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 리브가와 야곱도 모두 진정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그것은 복이란 인간이 달라고해서 비로소 주어지는 것도 아니요, 그리고 인간은 전달한다고해서 비로서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복은 어떻게 주어집니까? 이미 복받기로 작정된 자가 따로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이 점에 대해서 이삭은 알았기 때문에 이미 자기가 내린 축복권을 나중에 철회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 자신을 속이도록 허용하면서까지 복이 돌아갈 자에게만 복이 돌아가도록 조치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복의 실체는 과연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6: 7-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여기서 과연 성도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무소유적으로 계속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성도는 세상에 올 때 비록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성도의 존재 자체가 은혜요 축복이다는 겁니다. 그러니 새삼스럽게 축복을 달라고해서 그것으로 자기를 덧칠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을 알게하시고자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이삭의 가정에 야곱을 나중에 태어나게 하고,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이삭에게 에서의 별미를 찾게 만들었고, 바로 이런 점을 알게 하기 위해 집요하게 야곱으로 하여금 장자의 축복권에 탐을 내도록했고, 바로 이런 점을 알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리브가가 남편을 속이도록 허용하신 겁니다.

흔히 축복이란, 지상의 인간이 천상의 신에게 새삼스럽게 요구할 수 있는 어떤 대상으로 보지만, 그러나 이런 마음이 달라져야 합니다. 창세기 27:27에서 이삭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보여줍니다.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이삭은 아들의 내음 자체를 복의 산물로 봅니다. 즉 야곱이라는 아들 존재 자체가 하나님 복의 작품이라는 겁니다. 마치 이삭 본인의 존재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이 만들어낸 작품이요 생산물입니다.

참새도 하나님이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 법이듯이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의 입은 옷보다 들에 있는 들풀이 하나님께서 더 귀한 축복으로 봅니다. 바로 이런 하나님의 뜻을 진정 아는 자가 바로 축복된 사람이 아닐까요?

자... 그렇다면 에서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냥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열심히 사냥해서 나중에 집에 돌아온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것은 저주였습니다. 왜 그에게 저주가 떨어져야 하는 겁니까? 차라리 둘 다를 축복하는 것이 공평한 게임의 법칙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이미 축복받기로 예정된 자에게만 돌아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 죄가 바로 에서의 한계요 무지요 어두움입니다. 복은 지킨다고 비로소 자기 소유가 될 정도로 소유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압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우리의 작품이 아님을 명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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