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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29:16-30 /야곱의 사랑성경창세기

창세기29:16-30 /야곱의 사랑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야곱의 사랑
2002년 11월 10일
본문 말씀 : 창세기 29:16-30

29:16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29:17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29:18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
29:19 라반이 가로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29: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9:22 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9:23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9:24 라반이 또 그 여종 실바를 그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9: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29:26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9:27 이를 위하여 칠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년을 내게 봉사할찌니라
29: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29 라반이 또 그 여종 빌하를 그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고 다시 칠년을 라반에게 봉사하였더라

위대한 신앙인 이라고 간주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사생활까지 사람들이 본받아 되는 것으로 오인되기 일 수입니다. 사람이란 성경이라는 일점일획 말씀을 놓고서도 자신의 행위를 정당시할 만한 구절만 뽑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같이 한 남성의 지독한 사랑 행각은 평소에 인간들의 본성을 정당화해 주기에 적당하게 보이게 쉽상입니다. 과연 인간들의 사랑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당한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야곱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사노라 하면서 구체적인 실생활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뜻은 뒤전으로 밀리고 평소의 감정대로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신지와 불신자로 구분지을 필요도 없는 일들에 매진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어떻게 7년이라는 긴긴 시간이 수일처럼 지나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으로 인해 시간의 흐름조차 단축케 하니 사랑이 위대하다고 보겠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시간조차 무색할 정도로 철저한 자기 집착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한 지독한 집념이 흔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 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지독한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본질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으로 삽니까? 인간은 타인으로 삽니다. 인간은 대상체를 만남으로 비로소 자기 존재의 가치를 파악하는 겁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인간은 혼자가 되면 못견딥니다. "왜 내가 혼자가 되면 외롭고 괴롭는가? 그 이유와 원인이 무엇인가?"를 따지지 않고 "나는 결코 혼자 있지 않을거야"라고 설쳐대는 것이 인간입니다. 흔히 혼자 사는 사람 곁에는 개나 고양이나 금붕어 같은 애완용 동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중얼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 어떤 대상을 향해 말을 던지고 관계를 맺음으로서 그 쪽의 반응을 보고 자기의 가치를 얻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이사왔다고 떡을 조금 가지고 이웃집 아파트를 방문합니다.

그럴 때 옆집 사람이 반기면서 말하기를, "아이 이 귀한 떡을 주기기 위해 일부로 오셨군요. 정말 착한 분이 우리 옆집에 이사왔군요. 저도 정말 반갑습니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냅시다."라는 반응을 나타내면, 그 사람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다음과 같은 마음씨가 됩니다. "오, 하나님 저는 과연 이 땅에 살 이유와 보람이 있군요. 나의 행위가 이렇게 좋은 반응으로 돌아오다니. 그래 내가 나이다는 사실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라고 말입니다.

반면에 옆집 사람이 말하기를, "요즈음 떡 좋아 하는 사람 누가 있다고 떡을 가지고 왔어요. 이것 준다고 내가 당신은 좋은 분으로 볼 줄 아십니까?"라고 쌀쌀맞게 나오면, 그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 하나님, 저 당장 이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죽을까요? 나는 도무지 이 세상에 살 이유를 찾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딴 게 아니라 어떤 대상에게 말이나 행위를 보내어서 거기서 보내오는 반응에 매달리는 집착을 뜻하는 겁니다. 즉 사람이란 사랑의 대상이 없이는 현재 자신의 살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짝지어준 그 짝을 에덴동산의 범죄로 인하여 상실해 버리고 남은 것은 오직 자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되지 못하고 '나'가 되어 버린 상태에서 인간적인 힘으로 '우리'를 찾아나서야 된다는 본능 때문에 사랑이 생겨나는 겁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에 속을 줄 알면서도 그래도 사랑 행위만큼도 한 순간도 멈추지 못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 내가 누군지를 점검하지 아니하면 시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TV 드라마에 보면, 자기 약혼자가 다른 여자와 혼인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그 여자는 미쳐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가 그 여자에게 폭행을 했습니까 아니면 강제로 미쳐라고 육체적 입력을 가했습니까? 아무 일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미쳐버린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동안 그 여자는 자기라는 존재를 자기 신체에서 스스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그 약혼자의 관계를 통해서 자기를 규정했는데 그만 그 남자가 자기와의 사랑의 관계를 파기시켜 버리니까 도무지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졸지에 날아가 버린 겁니다.

실체는 없고 남은 것은 아름다웠던 추억만 있으니 이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허구가 되버린 현실을 정말이지 허구하고 받아드리기에는 그동안 다듬어 놓은 자신의 정신세계가 용납하지 못하는 겁니다.

실체가 날아가버린 그 대상을 계속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고 모든 행동을 여기에 맞추고 있으니 주위 사람들이 미쳤다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과연 이래도 인간의 사랑이란 과연 순결하고 고귀한 것이라고 봐 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랑은 지독한 자기주의의 발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은 자칫하면 오해하기 쉬운 요소가 있습니다. 즉 사랑이 온전히 옳지 않기 때문에 해서는 안되는 행위로 생각해서는 아니된다는 점입니다. 사람이란 옳고 그르고가 우선이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겠다"가 우선입니다. 이점을 이성적으로 가로막을 재주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동생 라헬을 사랑하고 언니 레아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왜 이런 태도를 나타냅니까? 17절에 보니,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동생을 사랑하는 것은 동생이 이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은 상대방이 이쁘나 이쁘지 않으나 똑같이 사랑해야지"라고 나온다면 이것은 본인의 본 마음을 숨기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둘 다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사람은 타인을 대하면서 타인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군지를 재정립하기 위해 타인의 반응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보다 이쁜 여인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그 여인과 하나 되는 것이 못생긴 여인과 하나 되는 것보다 더 우수한 자신의 존재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수해야 된다는 이것도 오로지 나에게만 당연하다는 겁니다.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너와 나의 모습입니다. 신자냐 불신자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이런 본능이 이끄는대로 행동에 나섭니다.

그렇다면 신자라면 신자답게 뭔가 실생활에서도 불신자와 차이나는 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 소관입니다. 창세기 28:15에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즉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이라는 이 맹세가 과연 헛말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 일을 실시하십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것, 야곱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허락하십니다.

그래놓고서 하나님은 나름대로 작업에 나섭니다. 야곱의 자기 사랑이 방해를 받게 하므로서 참으로 우리가 사랑해야 될 분을 일깨워줍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가 자기가 선택한 대상에게 사랑한다는 말이요 이는 곧 자기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한다는 말이요, 곧 자기가 자기를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이 자기 만족에 7년이라는 세월도 무색합니다. 드디어 혼인 날이 되었습니다. 신부는 얼굴을 가린채 들어옵니다. 야곱은 삼촌과 약조한대로 예쁜 라헬이라고 철떡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새고 옆에 같이 잔 여인의 얼굴을 보고 그는 화를 내었습니다.

자기 사랑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삼촌을 변명하기를, 우리 동네에서는 동생를 언니보다 먼저 시집보내는 법이 아니라는 겁니다. 언니를 버리지 않고 정식 아내라는 징표로서 7일동안 같이 있어주면 약조대로 동생도 건네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곱도 사랑하지도 않는 여인과 먼저 혼인해야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뒤늦게 라헬과 혼인하고 다시 7년간 삼촌에게 봉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지만 그녀는 야곱의 아이를 낳다가 횡사하고 만 비극의 여인이 됩니다.

야곱의 인간적 사랑이 결국 비극으로 끝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런 식으로 함께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 모두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시지만 결국에는 온갖 방해와 장애물을 등장시켜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것에 하나님을 개입시켰나 하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물론 성도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인간의 꿈을 정당화하지 말고 그것과 대체시키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더 크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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