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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30:25-29 /야곱의 욕심성경창세기

창세기 30:25-29 /야곱의 욕심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야곱의 욕심
2002년 11월 24일
본문 말씀: 창세기 30:25-29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30: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30:28 또 가로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30: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짐승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사람은 어떤 식이든 조직체 안에 놓이게 됩니다. 남에게 애써 노동해 주고 그 댓가를 받아 생활하게 됩니다. 따라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제대로 받느냐 못받느냐가 그 사람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실컷 일해주었는데 한푼도 못받았다고 한다면 가만 있을 사람이 아마 없겠지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외삼촌 집에 들어온 야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외삼촌은 일종의 거대한 목장 주인격입니다. 기업주가 되지요. 거기에 비해 야곱은 목부, 즉 고용된 임금 노동자의 관계입니다. 비록 삼촌과 조카 사이이지만 돈과 재산 앞에서는 일체의 양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 이런 광경을 보면, 야곱과 함께 하신다는 그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구현될지 사뭇 궁금합니다. 흔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분주한 일상을 잠시 밀어두고 한적한 여유를 가져야 가능한 것처럼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사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정신 집중 하에 참선한다고해서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질의를 해왔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뜻과 아닌 것을 어떻게 구분합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변해 드렸습니다. "은혜를 알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요, 은혜를 잊게 만들면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입니다. 흔히들 죄 안지으면 하나님의 일로 보지만 인간에게는 죄 안 짓는 경우는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죄는 거기에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은 그 행동으로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하나님의 일이란, 바로 이러한 인간의 악한 본심이 유감없이 들추어 내어 주는 바로 그 능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 같은 죄인도 주님께서 용서해주셨구나"를 또다시 알게 하게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전부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겁니다. 잠시 세속을 잊고자 깊은 산 속에서 홀로 기도에 정진하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을 조작해 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오랜만에 기도 생활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기도원을 내려 올 때 쯤에 뭔가 큰 성과라도 건지겠다는 욕망이 소위 은혜성까지 창작해 내게 합니다. 참 위험한 종교 노름입니다. 악마와 합작해서 은혜 게임을 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특별한 시간이나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상황이 자동적으로 은혜를 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지니고 있는 죄는 평생을 걸쳐 지속적으로 드러나야하기에 시도 때도 없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은혜가 터집니다. 물론 성도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그 은혜로 인해 우리는 언제든지 자신의 죄악됨을 새삼스럽게 더 깊이 자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의 뜻을 빙자해서 야욕을 채울 수 있고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으로 위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살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는 행위를 계속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목사가 설교하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일인 것 같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목사는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자신의 생존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고 설교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설교를 성의있고 훌륭하게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교인들이 그 목사를 굶겨 죽이는 식으로 처우한다면 그 목사는 은근히 부하가 날 것입니다. 사실은 전혀 화낼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전하는 그 설교의 청중은 교인들만이 아니라 설교하는 본인도 같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말씀이 좋으면, "나 설교 마치고 단박 죽어도 좋아!"라는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교인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하지만 교인들의 반응을 살피고 더 나아가서 계속 이 교회에서 설교해서 고정된 수입원을 확보하겠다는 생존 욕구가 발동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 "저의 설교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위장합니다. 이런 경우에 하나님의 뜻은 딴게 아니라, "더 살고자하는 제가 바로 죽을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하는 그 자체입니다.

야곱과 그의 삼촌 라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웁니다. 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있습니다. 기업주인 삼촌은 야곱이 친척이라는 이유 때문에 단 한푼의 품삯도 쳐주지 않으려고 하고, 거기에 비해서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후광입고 있기에 그 뜻에 따라 축복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산을 불리야겠다는 야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자신의 본심을 상대방에게 안들키면서도 목적을 달성하느냐 하는 것이 관권입니다. 야곱이 먼저 삼촌에게 도전장을 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곳을 떠야겠다는 겁니다. 20년 세월동안 일한 품삯을 받아내야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삼촌도 다음과 같이 응수합니다. "야곱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는 것을 보았다. 네 덕분이 우리 목축이 이만큼 성공했으니 내가 정당한 품삯을 쳐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삼촌의 재산 전부를 차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에게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한 결과이기에 다 자기 것으로 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안을 했습니다. "단 한 푼도 받지 않겠습니다. 다만 특이하게 생긴 양과 염소만 골라서 제 것으로 여기겠습니다. 줄무늬 있는 양과 얼룩진 염소를 제 것으로 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삼촌도 흔쾌히 동의하고서는 곧장 자기 아들들을 불러다가 자기 가축 떼에서 줄무늬 있는 양과 얼룩진 염소는 따로 골라 멀리 멀리 가서 목축치라고 지시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축들이 왕성하게 번식해버리면 몽땅 야곱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삼촌은 단 한푼의 재산도 야곱에게 줄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과연 야곱이 이 삼촌과의 기 싸움에서 밀릴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목축하는 실무자로서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었던 것입니다.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껍질을 벗겨서 교미하는 가축들로 보게 하면 그 새끼에서 줄무늬와 거룩 무늬 가축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야곱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무리 삼촌이 줄무늬와 거룩진 가축을 빼돌려도 나머지 가축으로도 얼마든지 야곱의 자기 소유를 삼게 되는 비법을 알았던 것입니다. 가끔 부실한 가축이 와서 교미하면 야곱은 도리어 교미를 방해했습니다.

비실비실 한 것은 몽땅 삼촌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하고 그 대신 실하고 알찬 가축은 몽땅 자기 것이 되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해서 획득한 재산을 두고 야곱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야곱이 삼촌에게 철저히 노동 착취당한 것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그 보상을 이렇게 많이 해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정당하다"는 겁니다.

과연 삼촌의 재산을 빼돌려 자기 재산 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마련한 것이 따로 존재한다는 아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인간들이 야심 속에서 소원한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면, 누가복음 16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름과 곡물을 파는 가게 한 점원이 주인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난 뒤 그 점원은 자기 살 궁리를 하게 됩니다. 그가 생각해 낸 것은 이것입니다. 단골되는 손님들을 불러다가 그들이 유리한대로 장부를 임의로 뜯어고칩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자기가 퇴직하고 난 뒤에는 자기로 인해 혜택을 입은 자들을 찾아가서 그 혜택을 돌려받겠다는 겁니다. 기름 백 말을 가져간 사람은 오십말 가졌다고 짐을 반으로 줄여줍니다. 밀 백석을 빚진 자는 오십만 졌다고 장부를 조작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 이 점원의 행세는 참으로 나쁘지요? 횡령죄에 해당됩니다. 주인 입장에서 보면 파렴치한 인간입니다. 불의한 자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 불의한 점원이 그 시대에서 자칭 의롭다 하는 자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장래를 대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점원은 현재의 절망을 미래의 희망으로 바꿀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짐원을 불의하다고 비웃는 그 당시 성직자들은 심판주가 그들 코 앞에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장래를 대비할 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야곱의 행위 자체는 분명 생존의 사투입니다. 자기 탐욕의 결정판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버리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행위가 곧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야곱이 어떤 행위를 하든지 간에 세상 인간은 야곱을 건드려서 위기에 몰아넣지 못합니다.

야곱이 획득한 재산을 나쁜 것이라고 비난 하지 못합니다. 나중에 삼촌이 야곱을 뒤쫓아왔지만 결국 야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정하고 되돌아 가버립니다. 야곱이 완전하게 행동해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뜻이 야곱의 욕심보다 더 우선적이기에 하나님은 야곱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생활 속에서 성도는 불신자와 똑같이 생존의 사투를 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이 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성도를 버리지 않기에 성도는 결국 이 시대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할 수 있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 성도들이 자기 행위를 변명하려고 하지 말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는 사람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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