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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32:1-2 /마하나임강의창세기

마하나임 2002년 12월 1일 본문 말씀: 창세기 32:1-2 32: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위기라는 것이 사실상 사람마다 다 틀립니다. 불우한 이웃들이 느끼는 위기라는 것과 잘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와 정치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 국가 별로 느끼는 위기들은 다들 다릅니다. 하지만 모두들 늘 위기를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자.. 이런 위기들이 닥치게 되면 종교에 입문한 사람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행여 신께서 지금 자기에게 닥친 위기상황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주리라 기대를 하고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들의 이런 위기들을 해결하시는 분이 참 하나님이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위기를 해결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 인간 세계의 위기를 달리 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기에 대해서만 급급했지 하나님이 인간 세계를 보고 있는 그 위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너무나도 자기 일에 열중하고 몰두하고자 하니 하나님을 만나서 자기 넋두리 풀기에만 우선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 청년들이 교회 이름을 걸고하는 체육대회에 나가서 공휴일날 온종일 경기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자기 교회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 주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몸소 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잘하는 본인 편들어주는 것이 뻔한 일이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런 교회 간의 체육 대회를 통해서 더욱 가까이에서 체험하고자 하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거기에는 일상의 위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취업 문제라든지, 혼인 문제라든지, 장래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낮에 자기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운동한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이 말입니다. 즉 위기란 교회 봉사 일로 해소되지 않는겁니다. 도리어 자기 자신을 압박해 오는 실질적인 위기는 일상에서 너무나도 현실감있게 닥쳐올 뿐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문제가 위기일까요? 오늘 본문은, 맨 처음 야곱이 천사 무리와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잠간 소개하다가 그 뒤로는 길게 야곱이 이번에는 형을 만나야만 하는 위기 상황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교회 체육대회에 나가서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한 그 청년에게 있어 집에 들어오면 자신의 장래 문제가 위기처럼 여전히 산재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할까요? 물론 신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수시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말래도 늘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위기라는 것이 쉴 틈도 없이 계속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위기 앞에서의 답답함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당사자는, 나의 위기가 항상 하나님의 기도 응답으로 늘 해결이 된다는 편안한 생각을 강제로 늘 자기에게 주입시키고 싶어합니다. 따라서 그러기 위해서 '기도 했음', 혹은 '기도 열심히 했음' 자체를 훌륭한 하나님의 일로 스스로 인정하고 싶어합니다. 기도라는 이 훌륭한 일을 했기에 하나님께서도 이 훌륭한 일에 대해서 섭섭지 않게 보상을 해 줄 것이라고 여기고 싶어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들이란 자기 욕심에 의해서 고민과 걱정을 자청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떼 천사들을 만나고서는 '하늘의 군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천사들은 분명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될 천사들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만남과는 전혀 상관없이 야곱은 나름대로 위기의식을 지니게 됩니다. 그는 결국 자신이 딴 고장으로는 갈 수도 없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는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는 형이 있다는 것이 자기에게 곧 위기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야곱은 형을 달래기 위해 타협책을 제시합니다. 자기에게 각양 가축과 종들이 있으니 이것을 미리 받으시고 이 아우를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 형의 반응이 몹시도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형이 무려 400명이나 되는 군사를 대동하고 야곱 쪽으로 출발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이 하나님의 군대 마하나임을 만난 사실과 야곱의 위기 상황이 풀리는 것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야곱이 아무리 하나님의 천사들과 만났지만 야곱이 실제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야곱 본인의 책략에서만 나옵니다. 이것이 야곱의 모습이고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교회 나가서 열심히 봉사하고, 하나님을 뜻을 알고 사랑하고 이해했노라고 큰 소리치지만 실상 일상 생활에서 계속 밀려오는 위기상황에 대해서는 순전히 자기 머리 쓰기에만 매달리는 식입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은 우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빈 몸으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다가 이제 풍성한 축복 보따리를 안고 다시 하나님이 지시하던 곳으로 귀환하려고 하는데 이제와서 형에 맞아 죽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친히 나서서 이 야곱이 형에게 맞아죽지 않게 해달라는 겁니다. 야곱의 기도는 순전히 자기 중심적입니다.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 천사들이 어떤 전쟁을 벌리기를 원하는 가에 대해서는 전혀 깜깜합니다. 야곱은 그동안 모아 놓았던 재물과 식구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내는 것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대열을 네 개의 나눕니다. 앞선 3개의 대열은 모두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한 예물의 대열입니다. 자기 종들에게 부탁해서 이 동생 야곱의 뜻을 형이 깊이 헤아려 주기를 당부했습니다. 이런 선물들을 받으시고 부디 동생을 용서해 주십사 하는 인간적인 방식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처 자식마저 앞서 보내고 마지막 자기 홀로 남게 됩니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위기입니까? 참된 위기를 자기의 소유를 지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위기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자기 자신이 과연 무엇인지를 모르는데서 비롯됩니다. 대단히 바쁘게 산다고해서 위기가 없어지는 아닙니다. 단지 잠시 대충 덮어질 뿐입니다. 참된 그 인간의 본질은, 그 인간과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혀져야 할 그 때입니다. 이런 경우의 예가 열왕기하 2장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엘리야가 등장하고 그리고 그를 집요하게 쫓는 엘리사가 나옵니다. 엘리사는 무엇이 궁금했습니까? 그것은 엘리야 본질입니다. 엘리야가 행하는 그 모든 놀라운 일들과 사역이 도대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기에 나올 수 밖에 없었는가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결국 엘리야가 세상을 떠날 때는 시신이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에서 불말과 불병거가 내려와서 엘리야를 데리고 갔습니다. 엘리야는 바로 엘리사가 그대로 고백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병거요 그 마병이었습니다. 엘리사 외에 다른 선지자들은 엘리야의 시신을 찾기 위해 사흘 동안이나 헤매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을 모르고 있습니다. 단지 엘리사만 알았기에 엘리야가 떨어뜨리고 간 그 겉옷을 가지고 다시 강물을 헤치면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저 평범한 이스라엘의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는 마병으로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위기 상황은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힘이 모아져서 해결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위기란 하나님 앞에서 진정 자기 자신의 면모를 제대로 모를 때 생겨나는 법입니다. 야곱이 만났던 마하나임, 즉 하나님의 군대는 일방적으로 야곱을 도와주기 위해 있는 군대가 아닙니다. 도리어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질을 바로 알게 하기 위한 군대입니다. 야곱은 형을 보고 위기를 느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신의 본질을 되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나는 과연 무엇이냐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있는 위기만 없어진다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위기도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은 야곱에게 본래의 하나님의 뜻을 담고자 합니다. 오늘날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통해서 실시되는 것을 겁낼 것이 아닙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족한 줄로 알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통해서 실시되는 것을 운없다고 여기지 마시고 도리어 영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야곱이 그러했고 엘리야, 엘리사가 그러한 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운동하고 작용하는 것을 황공스럽게 여기기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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