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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32:22-32 /야곱과 이스라엘강의창세기

야곱과 이스라엘 2002년 12월 8일 본문 말씀: 창세기 32:22-32 32: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 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쌔 32: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32: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사람들과 사귀게 되면 여기에는 필히 인간의 본성은 감추어지고 포장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의상으로도 점잖아야 되고 자신의 야심을 속으로 움츠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혼자 있게 되면 이것 저것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과 야곱의 만남에 주목해야 될 것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 평소에 인간들이 안 들킨 야심이나 본능이 유감없이 펼쳐진다는 것이고, 또다른 면에서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모든 야심을 그대로 다 인정하고 받아준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겸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야심을 불태우는 이유는, 평소에 나름대로 축복관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무의식 중에서도 축복을 기대하고 요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황에서 축복의 양과 종류도 계속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자기 속에서 끊임없이 야심이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각종 야심이 희망하는 목표가 바로 축복이 됩니다. 덩달아 '신'이라는 개념도 축복 성사에 따라서 존재하고 존재안하고를 측정해 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근성은 그 누구나 할 것없이 다 지니고 있는 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보면 실제로 제대로 된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 외 신앙인들이 이들입니다. 물론 이들이 본질적으로 인간성이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무슨 권리로 축복을 받은 것입니까? 축복이란 인간에게 그런 권리가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아예 없는 하나님의 권리가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들이 부름을 당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이들의 만남 사이에는 축복관의 사이의 차이성으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겠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과 야곱의 싸움이 바로 그런 이유가 벌어집니다. 야곱은 재산과 처 자식을 앞서 보내고 얍복강 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축복을 받아내고 또한 그것을 지켜내는데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의 주위에 다른 인간은 없습니다. 따라서 예의를 갖춘다는지 점잖을 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속마음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그만인 상태입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야곱은 난데없이 누군가와 붙들고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왜 야곱이 지금까지 모아놓은 재산과 가족에 탐을 내느냐 말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야곱의 것인데 말입니다. 과연 이 싸움이 밤을 지내고 그 다음날까지 이어질까요? 오늘 본문 32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해가 돋았을 때, 야곱과 싸웠던 그 낯선 인물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일반 사람같았으면 대낮까지 계속 싸워 사생결단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나이는 결코 야곱의 재물이나 가족에 탐을 낸 분이 아니었습니다. 야곱과 직접 상대하고자 했던 분입니다. 왜 이 분은 야곱과 씨름을 했을까요? 그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진정한 축복이 따로 있음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32:1-2절에서 야곱의 고향 방문 길에 만났던 큰 무리의 천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단의 이름은 마하나님, 즉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군대의 임무는 전투입니다. 그냥 빈둥빈둥 놀고 이 세상을 두루다니며 관광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가 아닙니다. 과연 이 천사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의해서 어떤 식으로 수행이 될까요? 여기서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의 축복관이 정립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관이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것이 곧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름과 같이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28:15을 보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란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에게 철저하게 적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당사자는 자기 뜻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굴복당하는 상태가 되고 자기 뜻을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매여 사는 사람이 될 때, 이것이 곧 축복된 사람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성사되려면 그 과정에서 필히 하나님의 측복관과 인간의 축복관으로 야기된 싸움이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비단 야곱 뿐만아니고 오늘날 모든 성도에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요강같습니다. 우리들 내장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다 토하고 다 싸고해서 내어놓는 배설물을 남김없이 다 받아내어주는 요강말입니다. 물론 성도가 아닌 자에게는 이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도이기에 하나님이 몸소 찾아오셔서 이 작업을 하시는 겁니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성도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해 놓은 축복관을 유감없이 철없게 발휘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하나님, 제가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우리 교회는 부흥이 더딥니까? 하나님, 제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헌신적으로 일하시는데 왜 우리 가족에서 어려움이 닥치게 합니까?"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놓고서 그 다음의 대응은 그야말로 야곱식입니다. "하나님, 아무리 하나님께서 저에게 압력을 가해도 저의 축복은 제가 알아서 지킵니다. 제가 유지시킵니다. 제가 알아서 기도하고 헌신하고 복종하고 순종할 때니, 하나님은 제발 저의 소원들을 때마다 성취시켜 주옵소서. 그래야 다른 사람이 볼 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누이좋고 매부좋은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바로 이런 야곱적인 사고 방식으로 인해 야곱은 자기를 찾아온 상대와 밤새도록 붙들고 싸웠습니다. 자기 축복 자기가 지키겠다는 일념 하에서 말입니다. 바로 이 점이 평소에 야곱 안에 들어 있었는 그야말로 야곱적인 본성입니다. 호세아 12:2-4에 보면, 이러한 야곱적인 정신상태에 대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벌받을 짓이라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변하시고 야곱의 소행대로 벌 주시며 그 소위대로 보응하시리라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그 당시 유다나라의 소행이 딴데서 온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이 야곱의 행동이 그 당시 '야곱, 즉 이스라엘의 소행'의 원조가 된다는 겁니다. 야곱은 진정한 축복이 뭔지를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본인이 염두에 둔 처 자식과 재물이 결코 하나님이 주고자 했던 그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뭡니까? 야곱을 진정한 싸움꾼으로 변모되는 것이 야곱이 받을 축복의 전부입니다. 마하나임이라는 천사들의 싸움 군단으로 하여금 야곱을 만나게 했던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함께 들어가 있는 바입니다. 싸움하다 보니 밤이 다 샙니다. 이제 낮을 피해 떠나야 될 그 인물로부터 환도뼈를 얻어맞고서는 싸움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그 천사를 붙들고 싸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낯선 상대를 만나 자신의 본성을 다 드러나고 만 상태가 되고 말입니다. 모든 것이 들켜 버렸을 때에 야곱은 자신에게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가져간 그를 붙들고 이번에는 싸움이 아니라 애원을 합니다. 제발 축복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 때 그 낯선 분은 야곱의 이름을 묻게 됩니다. 야곱의 모든 것을 회수하려 하는 겁니다. 야곱식으로 생각한 축복은 이제 끝났습니다. 야곱식으로 축복을 지키려는 결과로서 야곱에게 돌아온 것은 절둑절둑 절게 되는 장애를 입은 신체 뿐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축복을 내립니다. 이것은 야곱이라는 이름이 없어진 근거에서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가지고 전쟁을 벌리려는 것입니다. 야곱식으로 버티는 모든 자를 향한 이스라엘식의 공격입니다. 사실 성도라는 자들은 모두 이스라엘입니다. 이름만 이스라엘을 사용한다고 성도가 아닙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뀌게 한 그 하나님의 일관된 능력이 임한 자만이 참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은 야곱식의 사고방식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그리고 야곱식의 축복관이 무엇인지도 압니다. 내 힘으로, 내 기도로, 내 헌신으로 내 축복을 지킨다는 것이 하나님께 원수가 되는 사고방식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축복관입니다. 이스라엘이 되면 애시당초 내 것, 내 축복이라는 것이 도무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만이 작렬할 뿐입니다. 시편 73:1-5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 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안미끌어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결코 육적인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악마와의 싸움입니다. 즉 인간 자신의 능력과 솜씨에 의존해서 사는 그런 야곱식을 좋아하고 옹호하는 세력입니다. 이 싸움은 타인과의 싸움 이전에 우리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의 것이 따로 있게 되면 그것은 어찌되었던 지키려고 힘쓰고 또한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미워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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