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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33:1-6 /야곱의 변화성경창세기

창세기 33:1-6 /야곱의 변화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야곱의 변화
2002년 12월 15일
본문 말씀: 창세기 33:1-6

33: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33:2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3: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33: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33:6 때에 여종들이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사람이 일단 구원받고 난 뒤에는 어떤 사람으로 바뀌게 될까요? 그런데 이 질의를 흔히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예수의 피를 믿고 일단 구원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고 말입니다.

이 질의가 옳지 않는 것은 구원 관계에 돌입된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한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관리 체제 안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간이 자기 구원을 지탱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구원을 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인도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들의 인식부터 따지고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단력 있는 행위로 구원을 따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걱정거리는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습니다.

죽어서 천국간다는 구원은 받았지만 이 세상에 떠날 때까지 긴 긴 여백의 세월이 아직 남아 있으니 그 여백을 자신의 행함으로 다 채워넣어야 될 임무가 아직 남아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 행함은 항상 하나님 보시기에 착해야 되고 의로운 행함들이어야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생각이 이렇게 되니 바르게 살아야 될 주체가 최종적으로 계속 자기 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더욱 분명해지는 겁니다.

나는 내가 책임지지 아니하면 책임질 사람이 없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그저 하나님께서 나를 계속해서 감시하는 분으로만 머물고 실제로 바르게 살 주체자는 자기 자신이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자아가 우선이어야겠고, 또 그러면서도 착하고 바른 인간으로 살아남아야 될 이중고를 짊어지게 되는 겁니다. 과연 이러한 난제를 우리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쉬운 예가 있습니다. 어릴 때보면, 자기가 놀던 곳이 모두 크게 보이고 넓어보이고 골목길도 참 길게 보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른이 되어 다시 옛적 놀던 곳에 가보면 모든 것이 좁고 작아 보이고 긴 골목길도 짧게 보이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보다 넓은 세계를 봤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처음 믿고 구원받은 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 때까지 자신이 살던 모든 삶은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좁게만 되어 있습니다.

즉 남 한테지지 않아야 만족하고,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이쁘다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주어야 살 맛이 나고, 세상에 나가도 모두들 자신에게 굽신거려 주어야 기쁨을 느끼고,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감기 들리지 않아야 자기답다고 여기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자... 이런 상태에서 설교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하심'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때부터 "옳다구나 평소에 갖고 싶고, 되고 싶고, 누리고 싶고, 얻고 싶은 것을 나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께 마구 졸라서 한껏 얻어내야지. 만약 진짜 내 소원하는 바를 딱딱 이루어주시면 비로소 하나님께 함께 있는 것이 증명될 것이고 만약 딱 안 이루어지면 그것은 내 기도 정성이 부족해서 그러하고 하나님께 졸려대는 강도가 약해서, 즉 신앙심이 부족해서 일어난 현상이니 더욱 애걸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사실 이런 강탈의 기도를 신앙심 있는 기도로 이해하고자 하는 그 마음바탕에는 평소에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나온 현상입니다. 즉 마음이 변화되지 않았기에 세상적인 욕구가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넘쳐 나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심을 이런 식으로 써먹겠다는 겁니다. 마음의 변화가 없는 이런 상태에서 이해되는 잘못된 신앙의 성장이나 신앙의 강함이란 곧 자신의 욕심으로 가득찬 빈보따리를 뻔뻔스럽게도 하나님 앞에 내던지고서는 그 빈 보자리를 채워라고 협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식의 삶은, 자신의 고통과 고민을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식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 식으로 처리하겠다는 고집에 불과합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를 만날 때 이런 본성이 그대로 다 드러났습니다. 내 축복과 내 소유물은 내가 지킨다는 주의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기는 하지만 그 축복물을 계속 축복물로 유지시키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홀로 남아 있는 야곱을 공격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있음'의 참된 의미를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축복인지 야곱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편 121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힘께나 쓴다는 주위 사람들을 의지하고 앞장 세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신앙인은 참으로 배포가 큽니다. 천지의 산악을 두루 살피고서는 하는 말이, 자신은 도움을 사람이나 세상에서 얻고자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올꼬? 여기에 대해서 대담무쌍하게도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는 겁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나 대단한 분으로 함께 하신지, 세상에 자신이 잠을 잘 때에 그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시고, 자신의 출입을 지키시고 자신의 영혼을 책임져 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아동 때에 그저 자기 동네만 세상의 전부인줄로 알았던 철없던 시절의 마음과 성인이 되어 세계 일주를 마치고 세상 넓은 줄 아는 마음과 비교해 보세요. 참으로 큰 의미의 차이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심도 이와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세상적인 것이 없다고 불안에 떠는 그 모습은 마치 철없던 어린 시절의 모습과 같습니다. 보다 郪고, 깊은 큰 세계을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친지나 친구, 모두가 다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조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쓸데없는 타인과의 비교의식과 경쟁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런 것으로 마음 조이고 조마조마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좋은 예가 되시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이 분은 말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음식도 다른 나라로 잡혀 들어왔습니다. 물론 자기를 위해주고 자기에게 편들어 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세계로 옮겨와서 살게 된 것입니다.

과연 좌절할까요? 그리고 살기 위해서 권세있는 사람들에게 굽신거릴까요? 늘 살아나야만 한다는 강박감으로 쫓긴채 살게 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분은 어디가서나 당당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출세나 영달을 위해 '하나님과 함께 있음'을 사용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하나님의 지시와 말씀에 붙잡힌 상태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있음'의 상태인지를 제대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개인적인 생존으로 인해 더 이상 불안해할 이유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습니다. 단지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인해 주위의 세계와 앞으로의 세계 역사가 어떻게 전개 될 것인지에 관심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내심 조마조마 했습니다. 왜냐하면 형은 자기를 죽이기 위해 400명이나 되는 군사를 끌고 온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33:20절에 보면,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왜 이런 고백을 했을까요? 사실 형 에서가 400명의 인원을 끌고 자기 무리에 다가온 것은 공격해서 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동생을 반기고 환영하기 위한 환영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그 전까지 야곱은 참으로 마음 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야곱에게 그런 마음을 심어주는 상황을 조성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지만 진정 하나님과 함께 있음의 의미를 야곱에게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이 단순히 재물이나 자식 생산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스로 자신을 지탱하고 수호하고 방어하고 지켜 나가겠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쪽으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축복으로 제공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불안하고 걱정하는 모든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 겁니까? 그것은 야곱처럼 나 스스로 나를 지키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수호하는 방식도 평소에 알고 있던 모든 세속적인 장치들을 염두도 두고 있습니다.

집안 재산이 늘어난다든지, 자식이 출세한다든지, 큰 세력을 지닌 기업이나 교회를 갖고 있다든지, 늘 건강하고 젊음이 유지된 신체를 가졌다든지, 가정이 화목하고 웃음꽃이 피어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 없으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의의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정작 찾아든 것은 그 사람 본인의 마음의 초조와 불안감입니다. 하나님은 성도와 함께 하시어 이 마음 조차 바뀌어주시려고 하십니다. 마치 다니엘처럼 말입니다.

남들보다 자연스럽게 일이 처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도 성도 그 개인의 마음의 변화를 염두에 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타인이 볼 때에는 에서는 처음부터 야곱을 헤칠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형을 만나기 전에는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올지 염려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에서 야곱에게 이런 마음을 유발시켜서 진정 축복의 하나님으로 함께 하심을 알게 합니다. 이로서 야곱은 이제 진정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잘못 기대하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잘못된 기도를 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 위에 계신 하나님의 지시만 귀 기울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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