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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36:1-8 /에서의 세계성경창세기

창세기 36:1-8 /에서의 세계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에서의 세계
2003년 1월 12일
본문 말씀: 창세기 36:1-8

36:1 에서 곧 에돔의 대략이 이러하니라
36:2 에서가 가나안 여인중 헷 족속중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중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취하고
36:3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취하였더니
36:4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36:5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36: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36: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의 우 거한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36: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산에 거하니라

약속의 땅이라는 지역과 여타의 지역간의 차이점이 어디 있습니까? 겉으로 보기에 전혀 차이점이 없습니다. 그냥 목축하고 농사가 가능한 땅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가나안 땅을 유독 약속의 땅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것은 그 가나안 지역이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약속이 드러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안 믿는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네들이 사는 지역도 신께서 축복한 땅으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 한반도 땅은 단군의 후손들에게 있어서는 축복받은 땅이라고 간주할 만합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지요, 저마다 행복을 누릴 자유가 있으니 더할 나위없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주장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이 한반도는 축복의 땅이 아니라 저주의 땅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으면 하늘에게는 주어지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가나안 땅은 약속이 있으니 축복의 땅입니다.

하지만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역에는 축복의 민족 뿐만 아니라 저주받을 민족도 함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저주받은 민족이 축복의 땅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 그것은 축복받을 민족이 어떻게 해서 축복을 받는 가를 보여주기 위해 저주의 민족도 함께 거주하게 됩니다.

이 저주의 민족이 바로 에돔이라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이 에돔 민족의 조상은 바로 에서입니다. 에서는 야곱과 형제간입니다. 같은 부모를 통해서 한 날 한시에 같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축복을 받는다면 다같이 축복을 누려야 하고 저주를 받는다면 다같이 저주를 받아야 할 처지인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한 사람은 축복의 사람이요 다른 한 사람은 저주의 사람입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겁니까? 그것은 '운명'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운명을 믿으십니까? 확정되어서 더 이상 변경이 불가능한 원칙의 지배를 받게 되는 그 현실성을 믿으십니까?

이 운명에 관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운명의 확정됨이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식으로 등장하느냐에 관한 겁니다.

먼저 출애굽기 17:8-14에 보면,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진행하는 도중에 난데없이 아말렉 민족의 침공에 직면하게 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싸우도록 명령하고서는 자신은 산 위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모세는 나름대로 전혀 싸움과는 무관해 보이는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지팡이를 들고서 팔을 높이 드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전쟁의 양상은 전쟁 터에서 마주치는 장수의 애씀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도리어 저만치 떨어져 있는 산 위에서의 모세의 자세와 관련있습니다. 지팡이를 든 팔이 올라가면 무조건적으로 이스라엘이 이기고, 팔이 내려가면 이스라엘이 무조건적으로 밀리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애시당초 이스라엘이 모세의 지팡이의 위치에 의해 결판날 것같으면 여호수아를 적 앞에 내보낼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왜 모세는 구태여 여호수아를 싸움장에 보낸 것입니까? 이것이 바로 확정된 운명이 이 인간 세계에서 활약하는 모습니다.

즉 운명이란 우리가 선택해서 얻어진 운명이 아니라는 점을 보이는 식으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사람의 선택이란 항상 자신의 인생을 좋은 운명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저주받을 운명자나 그렇지 않고 축복받은 운명의 소지자나 전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마치 여호수아가 산 밑에서 열심히 전투에 임하면서, 자기 칼 솜씨에 의해서 적들이 밀리고, 혹은 자신의 방심이나 안일함 때문에 적들의 공격력이 강해졌다고 오해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듯이 말입니다. 산 밑의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마땅히 생각 할 수 있는 바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만약 산 위의 모세의 팔의 높낮이를 알 수 있었다면 자신의 활동상과 전쟁의 승리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즉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그 운명의 여파 때문입니다.

운명의 힘은 인간의 선택보다 더 월등한 법입니다. 죽기 살기로 전투하는 여호수아, 그러나 결과는 자신의 노력과는 전혀 별개입니다. 비록 축복받기로 선택된 자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자신의 운명 결정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 딴에 죽기 살기로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모든 시도를 다 하게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축복받기로 작정된 자에게는 위를 보며 살도록 하늘의 운명이 인도하십니다. 자신의 노력과 무관하게 은혜로 인도됨을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가나안 땅에 이처럼 축복의 민족과 저주의 민족이 함께 살게 하신 것은, 이들의 축복이나 저들의 저주가 결코 자신의 행위의 결과로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 자체가 곧 하나님의 약속이 지닌 본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 다른 공간에서는 이러한 약속의 면면을 보여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그런 동네에서는, 사람의 축복과 저주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원칙만 통용될 것이 뻔합니다.

이런 관점을 성경이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성경을 한군데 찾아봅시다. 말라기 1:3-5이 바로 그것입니다.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여러분, 이 대목을 보고 비상식적인 발상을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사람이란 자기가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좋은 결과가 얻어지는가 아니면 나쁜 결과가 얻어지느냐 로 결판나는 것일 아닐까요? 하지만 이러한 상식적인 발상은 하나님에 의해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이 말라기의 말씀을 보면, 에서의 경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황무하고 황폐한 지역을 개간해서 보란 듯이 결실을 맺어도 곧 하나님께서 나서서 허물어버리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하시는 이유도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미움'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이란 미움 받을 짓을 했을 경우를 따져서 미워하는 것이 순리처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리조차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에서의 입장에서 봐서는 참으로 불공평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왜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사랑으로 사랑답게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에서의 경우를 가지고 야곱의 사랑을 설명해봅시다. 야곱이 아무리 미움을 많이 받기 위해 저주받을 짓에 몰두하고 몸부림쳐가며 노력해도 그에게는 계속해서 사랑만 주어질 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사랑답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미움과 사랑은 그 자체로 운명으로 고정되어 버릴 속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외부에서 인간들의 그 어떤 시도에도 영향을 타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타 민족의 하나님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 이런 점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계십니다. 신명기 5:7에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단언하시면서 곧 이어 나오시는 말씀입니다. 질투라는 말씀에서 '독점'이라는 늬앙스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후차적으로 등장된 분이 아니라 아예 인간의 여망과 기대를 고려하지 않고 특정인을 독점적으로 사랑하기 위한 전략을 실천에 옮기신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에서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천국가고 싶으냐 아니면 지옥 가고 싶으냐"고 물으셔서 에서가 "나는 죽어도 지옥이 더 좋아"라고 배도적인 발언을 듣고 그제사 저주를 퍼붓기를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에서에게는 운명적으로 저주받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무조적으로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자비의 하나님에서 이유없는 미움이 나온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기이한 일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에게서 이유없이 거저 주시는 사랑이 한량 없이 나오고 이것을 근거로 질투까지 하신다? 이것은 안 이상합니까?

다같이 하나님의 한마음에서 나온 귀결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행사하자면 반드시 미움이 동반되어야 하고, 미움이 미움답게 되는 것은 일방적인 사랑의 처사가 엄연히 있는 상황 안에서만 통용되는 법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서는 이방여인과 마구 혼인합니다. 왜요? 일부로 여호와 하나님이 싫어서요? 아닙니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기에 그 길로 가야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라면 이 세상에 살면서 반드시 당해야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한다는 이유 때문에 당하는 수모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 여부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미움도 받을 수 있고 귀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과연 성도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봐야 될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사고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만이 나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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