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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39:1-6 /요셉의 고난성경창세기

창세기 39:1-6 /요셉의 고난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요셉의 고난
2003년 2월 16일
본문 말씀: 창세기 39:1-6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창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 39: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 본성대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복음 근처 얼씬거려봐야 지옥으로 갈 사람은 지옥을 택하게 마련입니다. 복음을 설득력 있게 못전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죄의 본질이 뿌리채 뽑히는 것을 두려워해서 차라리 복음쪽을 거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2:14-16에 보면,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되어 있습니다.

같은 복음이건만 각자 이 복음과 접한 결과로 인해 가는 길은 다릅니다. 요셉에게 하늘의 계시가 주어진 것도 이런 세상 실정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입니다. 분명히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한 사람입니다. 이 요셉 덕분으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있습니다.

이로서 마치 요셉과 주위 사람들의 관계는 서로 신뢰하고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은 개인적인 평안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요셉에게 그런 상상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명백히 하나님이 함께 있는 자가 어떤 식으로 인생이 꼬이는지를 똑똑히 보라는 겁니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하나님이 함께 있는 자라면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엉터리 하나님관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선입견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말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다는 내비치겠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벌어지는 일로 인해 하나님의 진정한 실체와 마음을 전달하겠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경우에 보면, '범사에 형통'이라는 신나는 단어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 '만사형통', 즉 '만사형통'에 매료되고 싶어합니다.

나도 요셉처럼 '범사에 형통'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내심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만사형통'의 혜택을 입은 자들이 '만사형통'을 제공케 한 장본인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한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복을 받는 경우가 창세기 9장 1절에도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자들은 노아의 가족 뿐입니다.

따라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은 사실 모든 인류의 후손에게 똑같이 복을 주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복이 오게 된 것은 그 중심에 노아가 하나님께서 비친 희생 제물이 있었습니다. 정결한 새를 잡아 하나님께 제사드렸드니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즉 하나님의 복은 뭔가 하나님께서도 받으실만한 만족스러운 상태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노아의 경우는 정결한 새의 희생제물이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의로운 예수님께서 택한 자를 위한 대속의 희생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 예수님의 몸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므로서 하나님께서 복을 안줄래야 안줄 수 없는 입장입니다. 스스로 내린 약속에 따라 이것은 불변의 진리가 됩니다. 참된 기독교 신자는 이 사실을 받아드리는 자이요, 불신자는 이러한 계획을 무시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무서운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경우나 혹은 예수님의 경우나 모두 왜 하필이면 희생제물이어야 하는 겁니까? 즉 노아가 앞으로 바르게 살겠다는 맹세하고 다짐하면 그것을 근거로해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주면 그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창세기 8:21에 보면, "사람들이 계획하던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실상을 꿰뚫어보십니다. 비록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실천에 옮길 능력은 전무한 것을 아십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함은 복을 줄 토대가 되지를 못합니다.

그 대신, 인간처럼 악하지 않는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구약의 제사 때 동원되는 정결한 새나 정결한 소나 짐승들은 모두 그 뒤에 오시게 되는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기 위한 예형들이었습니다. 즉 이 세상에 예수님 외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할만큼 의로운 자가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복의 중심에 놓여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이 당하는 경우는 바로 예수님의 하실 일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어 누가 보더라도 흠잡을데 없는 사람으로서 요셉은 사람 앞에 등장됩니다.

뿐만아니라 외모적으로도 흠모할 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그런데 이 아름다운 외모가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악한 인간 세계에서는 그것이 죄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보고 동침을 요구했습니다. 소위 직장 내에 있어 상급자에 의한 성폭행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날마다 동침을 요구했습니다. 그 때마다 요셉을 더욱 강경하게 대처했습니다.

그것은 현재 요셉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주인이나 주인의 처만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께서 자기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요"

그러나 주인의 처는 그 소리를 듣고도 막무가내입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미소년 요셉의 얼굴만 보이지 결코 함께 계시다는 하나님을 그녀는 전혀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녀는 요셉을 단지 자신의 성적 상대로만 여겼습니다.

이것이 보디발의 처와 요셉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견해 차이란 마냥 차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에 대해 악의 보복으로 이어집니다. 보디발의 처는 주위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유포합니다. 요셉이 오히려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는 겁니다.

그 때부터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달리 봅니다. 요셉은 옥에 갇히게 됩니다. 이로서 요셉의 형편은 더욱 나빠졌습니다. 요셉이 꾸었다는 그 꿈은 성취되기가 더욱 요원해졌습니다. 인간 세상의 악이 너무나도 지독해서 요셉에 내린 하나님의 뜻이 자꾸만 방해를 받는 것같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요셉이 당한 이 억울한 일에 직접 나서지 않으시고 방치시는 겁니까? 그것은 요셉을 통해서 인간들이 얼마나 악한가를 노출시키려고 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보디발의 아내가 갖게 되는 마음의 상처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여겨봅시다.

과연 우리 눈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휼륭한 분으로서 요셉을 제대로 인정해 줄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아니면 "잘난 너, 이제 나한테 당해봐라. 내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몰랐을 것이다"라는 오기가 치밀어 오르게 될 것입니다.

선과 악을 떠나서 일단 자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옳고 그름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가 만들어낸 분노로만 충만할 뿐입니다. 이것이 보디발의 처가 당한 아픔입니다.

과연 우리라고해서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교회 나와 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기를 자신의 훼손된 자존심을 한껏 높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나 성경 말씀으로 인해 만약 그 자존심이 훼손당했다고 느껴지면, 하나님이든, 예수님이든 누구든 다 해치고 싶은 충동을 갖게 됩니다.

안일하고 평온할 때는 곧잘 하나님의 은혜나 예수님의 공로를 거론하다가도 막상 자기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사태가 일어나면 하나님마저 적으로 삼을려고 합니다. 마치 살기를 머금은 살모사의 머리처럼 말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이런 정도로 악독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껴야 합니다.

요셉에게 있어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은 이 요셉을 통해 주위 인간들의 악한 반응을 유발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의 운명입니다. 그렇다면 보디발의 가정은 진정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사야 26:10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찌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하는도다" 노아의 후손들이 우리들로서는 신자이든 불신자든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덕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은총을 입지만 정작 하나님의 의는 배우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자와의 차이점입니다. 신자는 압니다. 자신의 구원이 결코 자신의 의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되어진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편 71:2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그렇습니다. '주의 의'로 우리가 구원받는 겁니다. 그 정도로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자기 자존심이 뭉개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하지만 신자만이 하나님 의앞에서 회개하며 하나님의 의를 배우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로서 같은 복음을 듣고도 그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의를 아는 자만이 천국갈 신자가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지금 누구 덕분으로 사는 지를 쉬지 않고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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