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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41:37-45 /세상의 중심성경창세기

창세기 41:37-45 /세상의 중심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세상의 중심
2003년 3월 9일
본문 말씀: 창세기 41:37-45

41:37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41: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41: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1:40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 뿐이니라
41: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41: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41: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총리하게 하였더라
41: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1: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실 '중심'을 찾아 나서는 일입니다. 견고한 중심, 변동되지 않을 중심,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중심, 언제 되돌아와도 편히 쉴 수 있는 중심, 늘 보호받을 수 있는 중심 말입니다.

어린애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만의 중심처를 갖게 되었을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직장인이 힘든 가운데서도 어렵게 직장 생활을 해나가는 것은 그 직장이 자기의 중심처가 되기에 그곳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교회를 찾아나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어서 진정한 중심처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각자 자기 중심처에 단단히 닻을 내리고 안정감을 갖고 더욱 더 자기의 세력을 확대시켜 나가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과연 타인의 간섭이나 위협이 전혀 없이 언제까지나 독자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자유를 구가하면서도 과연 생존이 가능하겠습니까? 자신만의 행복의 둥지가 타인으로부터 빼앗기기도 하고 또 남의 둥지에서 뺏아오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이 세상 한 구석에서 가만히 숨어지낼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깊은 산골에서 살다가 오랜간 만에 도시에 나왔는데 법을 몰라서 함부로 실내에서 침을 뱉고 담배를 피우다가는 범칙금을 물어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인정에 끌리어 아무런 담보도 없이 보증섰다가 수십년 모아놓은 재산을 하루 아침에 날릴 수도 있고, 또 반대로 기어이 보증을 안 써주다가 막상 자신이 아쉬울 때에 도와줄 유력한 인사들을 모두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위험성이 적은 중심터를 향해 매진하고 달려갑니다. 그것은 모두가 부러워하고 흠모할 만한 큰 중심터입니다. 이 중심터에서 대세가 회오리쳐 발산됩니다. 마치 큰 소용돌이 물살이 다른 물살들까지 자기 쪽으로 사정없이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

그 큰 물살에 동조하지 아니하면 어느새 자신의 세계는 큰 중심에서 멀리 내동댕이쳐 있고 형편없이 축소되어 있고 보잘 것 없음을 발견합니다. 과연 물살을 거스릴 수는 없을까요? 시대에 반역할 수는 없을까요? 그래서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진정 나의 중심처를 가질 수는 없을까요?

오늘 본문 39절의 말씀에 보면,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요셉은, 나름대로 중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알려주신 '지혜'라는 겁니다.

즉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가 요셉만의 지혜가 아니라 이 인간 세상의 중심되는 지혜였던 것입니다. 즉 세상에는 분명 중심이 있는데 그 중심은 어떤 특정 인물이나 특정 지역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서 발생되는 겁니다.

새삼스럽게 세계를 정복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도리어 세계 정복에 대해 탐욕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세계의 중심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세계를 정복하고 최고의 권좌에 앉아본다고 해도 그것은 엉뚱한 곳을 중심인 줄 알고 붙잡으려고 하는 헛된 애씀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중심처라고 여기고 온 청춘을 투자했는데 결국은 아무런 행복은 꽂혀 나오지 않고 무거운 짐만 주렁주렁 달려 나올 때 참으로 자신이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실감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해서 세상을 움직이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요셉 쪽에서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의 중심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 열매가 바깥으로 나오니 그것이 바로 세상의 중심되는 지혜로 나타나는 겁니다.

요셉이 알고 있는 바가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소위 성도라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마음을 압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장에서 3장에서 명백하게 잘 나와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20-23에 보면,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요셉의 화려함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도리어 요셉이 오늘날 우리를 더 부러워합니다. 그 때는 요셉이 하나님의 지혜를 최종 확정분으로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중심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만 파악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요셉에게 있어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 자리가 결코 진리의 최종 중심지가 아님을 본인이 그 자리에 앉으므로서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도에게 약속하신 중심 자리는 그것보다 더 높은 자리입니다.

빌립보서 3:20-21에 보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총리대신이 되어 입은 옷도 화려하고 가락지도 멋있고 행사한 권세도 대단하지만 오늘날 성도가 장차 누릴 영화와 아름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요셉이 우리를 더욱 더 부러워할 판입니다.

그렇다면 왜 고린도전서에서 세상 지혜를 붙잡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에 비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까? 그것은 세상 지혜를 의지하고 붙잡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불신앙이 되고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0-23에 보면,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십자가의 지혜를 아는 자는 사실상 세상 전부를 알게 된 자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지혜 전부가 죄로 뒤덮여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것을 의지하고, 그런 것을 자기 중심으로 삼다가는 하나님의 지혜를 모독한 죄로 인해 저주를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8-9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는 한없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십자가 지시고 부활되신 예수님이 자기와 함께 동행해서 우리 각자 각자를 이 더러운 세상의 중심으로, 빛으로 소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이 점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돈없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중심에서 제거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성도라는 자가 도리어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가치를 모독한 셈이 됩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되 그것에 멈추면 안되고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중심성을 밖으로 자랑하면서 드러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예수님이 하신 일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의 경우 애굽 나라에서 하나님의 지혜는 어떤 식으로 보여집니까? 기분좋은 7년 대 풍년이 찾아들더니만 급기에 그 대풍년을 완전히 제거하고 아예 삼켜 버려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7년 대 흉년이 찾아드는 식으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것은 이 인간 세계의 진수를 보여주는 바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신없이 세상의 번영을 위해 박차를 가합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의 희망을 완전히 저주로 바뀌어지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 어디에서 일말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대 참사가 인류의 미래에 찾아들게 됩니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 그 어떤 사태에도 하나님이 남기신 축복의 선물은 얻어집니다. 그 증거가 바로 요셉에게 두 자녀가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녀의 이름은 이러합니다. 50-52에 보면,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을 낳되 곧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 낳은지라 요셉이 그 장자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차자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음 아이는 요셉의 힘든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그 고난의 결과의 표현입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풍년에서 흉년으로 치닫게 되지만 요셉의 운명은, 고난 다음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요셉을 다른 이와 다르게 했습니다. 성도는 사실 '거꾸로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믿는 것은 세상의 정경이 아니라 그 세상을 소용돌이의 중심점으로 끌어당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록 세상은 망해도 말씀은 그 성취상황으로 영원히 지속됩니다. 이점을 믿읍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돈 없다고 스스로 세상 중심에서 제거된 양 의기소침한 저희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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