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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 44:1-5 /이유있는 모함성경창세기

창세기 44:1-5 /이유있는 모함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이유있는 모함
2003년 4월 6일
본문 말씀: 창세기 44:1-5

44:1 요셉이 그 청지기에게 명하여 가로되 양식을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44: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소년의 자루 아구에 넣고 그 양식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44:3 개동시에 사람들과 그 나귀를 보내니라
44:4 그들이 성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미칠 때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
44: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인간에게 있어 제일 큰 비극은 육이 영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고생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육는 육으로 끝난다는 데 있습니다. 개인적인 인품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비신사적이라서 영의 사람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육은 육으로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이가 진정한 하늘의 복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그동안 육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의 형들은 육의 사람들입니다. 아직 요셉이 알고 있는 영의 세계를 모릅니다. 형들은 사실 신사적인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이 간첩이 아니라 평범한 집안의 사람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인 사람입니다.

애굽의 총리대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해서 막내동생 베냐민을 대동하고 위험한 애굽 땅까지 왔습니다. 형들은 애굽의 총리대신을 대할 때 여전히 육적인 관점에서 행동을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애굽 나라의 총리대신은 양식을 파는 상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돈을 주고 그 양식을 사오는 소비자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일단 양식을 확보하고 난 뒤에는 얼른 애굽 땅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고향에서 한 많은 아버지 야곱이 막내동생을 걱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의 생각은 다릅니다. 의도적으로 형들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적인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은 요셉 본인입니다. 따라서 요셉은 자신의 세계 안으로 그들을 끌어넣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안목에서 볼 때에 애굽의 총리대신 자리는 대단히 높은 자리입니다. 그래서 형들을 그 총리대신 앞에서 굽신거립니다. 하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애초부터 성립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다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들어올 수 있는 입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천국에서는 너 나 할 것없이 모두 십자가의 피에 의한 용서받음으로 구원된 처지입니다. 즉 상대방이 얻은 것과 내가 얻은 것이 동일한데 어떻게 높낮이가 발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요셉이 누리고 있는 권세가 육의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것 같지만 당사자인 요셉은 그 자리를 영적 입장에서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형들의 육적 사고방식을 다 제거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작업이 바로 그들 모두다 다 졸지에 악한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요셉은 길을 떠나는 베냐민의 짐 보따리에다 몰래 은잔을 집어넣도록 하인에게 시켰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 절도죄를 구실삼아 형들을 붙잡으러고 합니다. 즉 형들은 될 수 있는한 높은 권세자인 요셉 곁을 벗어나려고한 반면에 요셉은 도리어 총리대신의 자리를 영적으로 이해해서 현재 육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형들에게 육적 사고방식의 한계를 깨닫게 하려고 합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요셉 자신의 종으로 팔리도록 조치를 합니다. 쉽게 설명해서 이렇습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하는 말이, 영생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릴 적부터 모든 율법을 다 준수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그 후에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육의 한계를 잘 아시고 졸지에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작전입니다. 즉 어떤 인간도 자신의 공로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마치 요셉이 일부로 형들을 절도범으로 모함한 행위와 같습니다.

육의 관점에서는 선과 악의 차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죄인이라면 더 이상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자 청년은 영생도 못얻고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본문을 보고서, 부자 청년이 못한 행함을 자신이 이루겠노라 하고 모든 재산을 교회나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주고 빈털터리 되어 있으면 그 사람은 과연 구원받겠습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우리들의 소망에 따라 하나님께서 부응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은 아예 구원받을 염치도 없는 죄인임을 분명히 하시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임의로 원하시는 자에게만 구원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쪽에서 계속 놓치지 않고 그 사람을 인도하게 된다는 점이 구원의 있어 관권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부자 되기를 그리워하는 하는 사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바늘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낙타와 같이 스스로 훈련하고 신앙적으로 단련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도 자신의 희망사항에 의해 구원되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불가능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영의 세계쪽에서 택함받은 쪽으로 다가서시는 겁니다.

구원받을 자가 아무리 내빼고 거부해도 결코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본인은 전적으로 죄인됨을 고백하면서 구원받는 자가 되고마는 것입니다. 요셉도 이런 방식을 사용합니다. 요셉이 베냐민의 짐보따리 속에 집어넣은 것은 다름아닌 은잔이었습니다. 이 은잔은 점을 칠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왜 요셉은 점치는 도구를 베냐민의 짐 속에넣었을까요? 그것은 창세기 44:15의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칠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즉 요셉은 형들 앞에서 하나님처럼 다른 차원에 속한 인물, 즉 육에 속한 자에게는 감히 따질 수도 없는 세계에 속한는 인물로 등장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형들로 하여금 자기네들이 알 수 없는 하나님 같은 권세, 즉 애굽의 총리대신의 권세에 붙잡히게 된 현실을 인정하게 합니다. 육적으로 따져 봤을 때 형들은 참으로 억울합니다. 결코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을 마음조차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든 벌어진 사태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저항해 볼 도리가 없는 사태입니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했는가를 가지고 그 총리대신 앞에 나아가 따져 볼 이유까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손에 잡혀 있을 때의 입장이 이러합니다. 선악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못했고를 하나님 앞에 따져본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우리로 하여금 흔히, 우리들이 실수다 혹은 죄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경우를 당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요셉이 형을 죄수들로 몰아내우기 위해 일부로 일을 꾸민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중요한 사실은 그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를 따지시는 것이 아니라 "왜 너희들이 하나님의 종이 되었음을 느끼지 못하느냐"를 가지고 따지십니다.

흔히 성도에게 있어 징계란 선악 차원에서의 죄를 따져 물어서가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관계를 무시하고나 놓치면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차원에서 징계를 하십니다. 그래서 징계를 통해서 완벽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징계를 통해서 완벽한 주인과 종의 신자의 관계를 유지시키도록 인도하시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갖는 자유입니다.

나쁜 짓을 하기 위한 자유가 아니라 이러한 관계를 증거하기 위한 사명 수행을 위한 자유입니다. 이와 형들은 자신의 장래는 망쳐버린 상태입니다. 애굽의 총리대신과 관계를 마감하고자 했던 그들이 영문도 모르는체 졸지요 종이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들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막내 동생을 무사히 아버지에게 데려가서 아버지 야곱으로 하여금 편히 눈감고 돌아가시게 하는 일을 말합니다. 유다는 점 잘치는 하나님같은 애굽의 총리대신에게 사정을 합니다. 차라리 자신이 베냐민 대신 종이 될터이니 그 베냐민을 석방시켜 아버지와 재회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오늘날 성도도 이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하나님의 종이 된 입장에 있습니다.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대로 죄짓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일방적인 은총으로 구원해주신 그 사랑을 증거하는 것을 놓쳐서는 아니됩니다. 물론 이제부터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란 성립되지 않습니다. 몽땅 예수님에게 다 빼앗긴 입장입니다.

로마서 14:7-9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사도 바울 뿐만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성도 다루기 법칙'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요셉 식으로 말하자면, 점을 잘 치는 분입니다. 그 점으로 인해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그 경위를 세상을 널리 전하는 사람이 됩시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편하게 이용할 생각만 하지 말고 예수님의 진정한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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