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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창세기47:12-19 /요셉의 세상성경창세기

창세기47:12-19 /요셉의 세상

이름 : 우리교회(IP:219.249.86.250)

요셉의 세상
2003년 5월 4일
본문 말씀: 창세기47:12-19

47:12 또 그 아비와 형들과 아비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
47: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47: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몰수히 거두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오니
47: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진한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가로되 돈이 진하였사오니 우리에게 식물을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47:16 요셉이 가로되 너희의 짐승을 내라 돈이 진하였은즉 내가 너희의 짐승과 바꾸어 주리라
47:17 그들이 그 짐승을 요셉에게 끌어 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떼와 소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식물을 주되 곧 그 모든 짐승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식물로 그들을 기르니라
47:18 그 해가 다하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고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짐승 떼가 주께로 돌아 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전지뿐이라
47: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전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식물로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고 전지도 황폐치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에 감히 우리 인간은 관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종노릇 하는 것만해도 영광스러운 일이요 황공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있어 불평이란 사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신 행적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헛된 망상에 물들어 있는기를 절실히 감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이 살아온 길과 우리의 길과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사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야곱의 험악한 세월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록 수난많은 지난 날이지만 그것이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코오스였기에 그런 어려운 인생길을 통해서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비록 대국의 왕이지만 야곱은 오히려 애굽의 왕에게 축복 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에 있어서의 세상 실체란 하나님 중심 세계입니다. 자... 그렇다면, 야곱이 아닌 사람들, 즉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 못한 사람들은 현실을 어떤 식으로 살게 됩니까?

야곱의 체제란 하나님 중심 체제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체제를 갖추면서 살게 됩니다. 물론 외딴 곳에서 홀로 농사짓고 살 수는 있습니다만 그럴 경우에 막상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닥치면 도움이 요청할 데가 전혀 없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다 더 큰 체제를 원하게 됩니다. 흔히 큰 물에서 놀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각분야에 있어 자기보다 능력이 훨등하게 뛰어난 영웅들이 수두룩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영웅들을 흠모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보호막 속에 들어와서 스스로를 지켜보려고 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믿음이 없기에 생기는 현상들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확실히 믿을 만한 것들이 없기에 자꾸만 찾아다녀야 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욕망이 작렬합니다. 들짐승 근성으로 인해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은 찾아다니게 되고 강요하게 되니 결국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남에게 죄가 되는 법입니다.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자꾸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강요하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의 행복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한 요청이 됩니다.

하지만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이나 요셉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신이 믿을 만한 것을 계속 찾아다닐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함께해 주셨기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가만히 보면, 애굽 나라 주변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요셉에게 굴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남에게 작은 것 하나, 도움을 요청할 때도 참기 힘든 창피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이 사는 보람은, 남들 보기에 자랑스러운 일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기는커녕 도리어 남들이 알았으면 창피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사는 보람이 여지없이 날라가 버리기 마련입니다. 혼자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제일 보람된 일인데 세상 일이 그렇게 내 마음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어디서 무슨 사건이 터질 지도 모를 일이요, 또한 그 일에 본인이 관여될 수 밖에 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랑스러운 일은 과장시키고 성급하게 미리 알리고 싶어하다가도 반대로 창피스러운 일은 조심 조심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애굽 나라에 양식을 사러 오는 다른 주민들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가진 돈을 주고 요셉에게 와서 양식을 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돈마저 떨어지자 농사지을 때 꼭 필요한 가축마저 끌고 와서 양식과 바꾸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팔아야 될 가축조차 남지 않자 남은 것은 자신들의 몸과 토지 뿐입니다.

자신의 몸을 판다는 것은 스스로 가축같은 노예라도 되겠다는 지경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토지를 팔아서 요셉에게 양식을 사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나라 안의 모든 토지가 자연적으로 왕실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왕의 권세는 더욱 강화되고 모든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왕의 노예가 될 판입니다. 25절에 보면, 그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이제 바로왕은 요셉의 지혜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전 국토의 생산물의 5분지를 일을 상납받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바로왕에게 지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입장에 놓여 있어도 도리어 바로 왕의 은덕으로 살게 되었다고 감지덕지 합니다. 그리고 자신해서 종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런 판국이 되면 애굽의 사회 구조는 극단적으로 한 사람에게 철저히 묶인 그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사장의 토지는 왕도 어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이란 단순히 양식을 벌기 위해 사는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양식을 위하여 토지를 함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제사장에도 없습니다.

제사장제도는 민주주의 제도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왕에게 철저하게 복속되어 왕 위에 있다는 신을 위하여 봉사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제사장제도의 취지를 확대한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온 사태입니다. 즉 이 애굽 나라의 모두가 오로지 제사장처럼 왕을 위해 종사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우리들 보기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왕 제도나 혹은 제사장 제도가 극히 비민주적이고 독재적인 형태로 보여서 대단히 못마땅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존엄성이 모독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애굽 나라 체제가 이렇게 돌변해 버린 것은 모두 요셉 하나가 등장해서 생긴 현상입니다. 그리고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에서 그런 지위를 차지하도록 하신 분은 다름아닌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궁극적으로 의도하신 바는 이런 체제였습니다.

비록 지금의 우리들의 체질에서 안 맞지만 천국의 실체가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신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보았듯이 이런 체제가 가능하려면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에게 몽땅 다 빼앗겨야 합니다.

결코 교회에게 다 빼앗겨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조직체요 시설체인 교회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에게 다 빼앗겨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불만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지덕지하고 고마워하고 게다가 자진해서 예수님의 종이 되겠다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천국백성이 아닙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발달했지만 이 민주주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즉 자본주의의 핵심은 개인적인 사유재산에 대한 인정입니다. 사유재산이 절대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비록 국가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사유재산 위에 군림할 수는 없습니다.

홉스라는 학자에 따르면 국가란 사유재산을 지켜 주겠다는 것은 핵심으로 계약 내용으로 하여 서로 뭉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는 부자이거나 많이 배운 자라고 해서 투표권이 두 배나 더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적인 재산이 보잘 것 없다고 한다면 겉으로는 민주주의이지만 실제로는 큰 힘을 발휘 못하고 개인이 갖고 있는 권리까지 권세있는 자에게 양도하게 됩니다.

즉 민주사회는 골고루 잘 살아서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기 없기'라는 게임의 규칙을 지키자는 제도입니다. 이런 제도는 자연 환경이나 사회가 평화로운 유지되게 되면 퍽 이상적인 제도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큰 재난이 온다든지 큰 전쟁을 벌릴 때에 개인적인 재산과 그리고 개인적인 가족까지 국가에 공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인간의 능력으로도 개인적인 권리를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애굽 나라의 상황이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르킨 7년 대 풍년과 7년 대 흉년은 그 어떤 인간들의 결집력과 지혜로도 감당치 못합니다. 이러한 대 격변 지나고 난 뒤에 하나님은 애굽 나라의 사회 체제를 재편성하셨습니다. 마치 큰 장마비가 휠쓸고 지나고 난 뒤 자연의 모든 풍경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왜 이런 식으로 재편성되어야 합니까?

그것은 지금 애굽 나라 안에는 야곱, 즉 이스라엘 후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어야 될 입장에 있는 자들입니다. 즉 축복을 받은 자녀와 그렇지 못한 자녀들 사이에 어떠한 현격한 차별이 있는지를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시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빼앗기는커녕 전에 가나안 땅에서 흉년 때문에 잃어버린 모든 것을 이 애굽 나라에서는 넘치도록 보상받고 있는 중입니다. 사람이란 끝이 좋아야 합니다. 끝이 될 때 그 사람의 모든 실상이 드러납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산다고 내심 부끄러워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부끄러운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무관하는 사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나름대로 경제적인 힘을 기르고 재산을 갖고 있어야 사람 구실하고 인간 대접받는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생각해 놓은 사회를 모릅니다. 그 사회는 예수님 혼자 주님이 되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자기 것'이라는 것은 전혀 없으면서도 도리어 주님의 종이 된 것을 감지덕지 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기 가진 재산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주님이 되시는 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축복으로 자랑하게 됩니다.

거기에 비해서 불신자들은 자신의 재주와 재산과 힘되는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인류 역사 최후의 변란이 찾아들면 다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말입니다. 그들에게 아무 것도 자랑할 것도 없이 끔찍한 파멸만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잠깐 보이다가 흘러가버리는 것에 현혹되지 말게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준비하신 새 질서에 들어갈 마음 준비를 하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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