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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요한계시록의 문단 구성에 관해서성경신학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의 문단 구성에 관해서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요한계시록의 문단 구성에 관해서 - 꼭 성경을 찾아 대조해 가면서 글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Ⅰ. 문단 구성의 기반
문단 구성이 되려면 어떤 주제가 요한계시록 흐름을 주도하는데 적당한지를 골라야 된다. 사도가 주님으로부터 핵심 계시로 받았다는 짐작되는 항목부터 요한계시록 안에서 들추어내어 나열해 보는 작업부터 전개되어야 한다. 그 여러 가지를 끄집어 내어 본다.

1. 하늘의 보좌
1:4→4:2→5:1→7:9→8:3→11:16→14:3→16:17→19:4→20:4→21:5→22:1
이 흐름을 보면, 지상의 세계는 끊임없이 하늘의 보좌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고 구원받은 자들은 하늘의 보좌 곁까지 접근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한다. 지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이처럼 하늘의 연관성에 비롯된 사항이다. 따라서 하늘의 지시에 무관하게 지상 세계 단독의 역사 구성하기는 요한계시록에서 적절치 않다는 것이 이 항목에 준해서 보면 알 수 있다. 하늘에서의 흐름이 곧 지상의 역사이다. 마치 하늘의 구름이 흐르는 방향 따라 지상에서도 그 그림자가 이동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하늘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일의 흐름은 어떻게 되나? 그것은 어린 양이 하시는 기능을 조립해 보면 알 수 있다.

2. 어린 양
5:6-13→6:1,16→7:14→14:1,10→15:3→17:14→19:7,9→21:22,23→22:1,3
이 흐름을 보면, 처음에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호칭 받는 이유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어린 양에게 역사의 내막을 풀어놓을 수 있는 권세를 부여했고 이로 인해 어린 양을 죽게 한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해서 하늘의 보좌에서 저주를 퍼붓게 되고 동시에 마치 애굽에서 모세가 자기 백성을 인도한 것처럼 어린 양의 피를 믿는 모든 자에게 하늘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어린 양과 성도가 혼인을 하게 되고 어린 양은 하늘 나라에게 영원토록 경배 받고 하늘 나라는 어린 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생명수로 젖셔지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요한계시록은 예수님 자신의 복수극이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아예 요한계시록 처음부터 다시 오시겠다고 천명하신다. 이러한 주님의 복수를 믿고 위안을 삼는 자가 참 교회요 성도이다. 그런데 성도의 수는 144,000명으로 제한적이다. 왜 성도의 수치가 무제한이 아닌가? 그것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에게만 국한하기 때문이다.(계 20:15) 그렇다면 과연 이 지상에 악한 세력들이 생명책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혹독한 탄압으로 성도로 하여금 좌절하게 만들 수 있는가? 바로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의 징벌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조율된다. 이 조율성에 어떤 원칙과 법칙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지상과 천상의 계시는 번갈아 가면서 응답을 내려 주고받듯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응답을 가운데서 운반하고 또 그 지시대로 실천에 옮기는 능력자는 인간이 아니라 천사이다. 성도는 그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끝까지 인내하다가 죽는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 12:10-12/20:4)

어린 양의 세상 징벌에 대해서 왜 조정하시는가? 그것은 징벌 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공개하기 위해서이다. 즉 정말 궁극적으로 예수님 자신을 공격했던 세력이 누구이며 지금 이들이 이 지상에서 무슨 짓을 자행하고 있는지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가며 드러내시기 위하여 징벌의 수위를 조절하시는 것이다. 즉 하늘에서 징벌을 내릴 때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지상에 있는 어린 양의 사람을 압박하며 하늘로부터의 징벌에 대해서 집단적으로 반발을 드러낸다. 하늘의 전쟁이 그대로 지상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점을 파악하기 위해서 저주를 유발시키는 성도의 순교 당하는 장면을 차례로 연결시켜 조사할 필요가 있다.

3. 죽도록 싸워라. 그래서 신앙 면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라!
1:9→2:7,10,11,17,26/3:5,10,12,21-22→6:9-11→7:17→12:11→14:4,12-13→15:2→18:20→18:24→19:2→20:4→21:4
예수님의 고난이 사도의 고난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성도의 고난으로 이어진다. 즉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된 자만 성도인 것이다. 성도들은 여기에 대하여 기도로서 대항했다. 악의 세력들이 이 세상에서의 활동이 얼마나 엄청나고 대규모적이고 매력적인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거기에 빠져 자발적으로 경배하지 않을 수 없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13:8/17:8 참조)
악의 대항이 어떻게 확대되는지 그 경로를 연결해 본다.

4. 악의 대항
2:2(거짓 사도)→2:9(사단의 모임)→2:15(니골라당)→2:20(자칭 여자 선지자)→2:24(사단의 깊은 곳)→3:9(사단의 회)→9:3-11(황충:무저갱의 사자 아바돈)→11:8(소돔사람들)→12:3-17(용이 지상으로 쫓겨와서 여자의 후손을 상대로 공격함)→13:1-7(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3:11-18(땅에서 올라온 짐승)→16:9-11,21(하나님의 행위에 대하여 극도로 비난함)→16:13(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아마겟돈 전쟁 준비)→17:1-16(음녀 바벨론 성의 유혹)→20:7-9(성도를 향한 사단의 공격)
악의 대항에 대해서 하늘의 대처는 철저한 분쇄뿐이다. 결말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어떤 식으로 결말이 되는지 그 경로를 연결해 본다.

5. 악에 대한 하늘의 궁극적 조치
2:27(철장을 가지고 깨트린다)→3:3(도적같이 임하신다)→6:12-17(우주가 해체되는 진노의 큰 날)→14:8(바벨론 성의 멸망)→14:14-20(마지막 추수 같은 심판)→16:17-21(바벨론성이 세갈래로 깨어지고 섬과 산악이 사라짐)→18:2,21(바벨론성이 크게 무너지고 보이지 않음)→19:11-21(주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심판 상대를 구체적으로 밝히시면서 공격하시는데 그들은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거짓 선지자들이다)→20:10(마귀가 불못에 던져진다)→20:11-15(흰 보좌에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을 심판하여 불 못에 던진다)→21:8(일반 불신자들이 갈 곳은 유황불 못)

악이란,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 양에 속한 자들에게 공격 성향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일곱 교회의 구체적 현실성을 기초로 하여 이 일곱 교회의 지키시는 어린 양의 속성을 중심점으로 삼아 이 속성에 위배되는 면이 어떤 것인지를 계시로 알려준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문단 구성은 일단 일곱 교회의 구체적 실태를 소개하는 대목과 다른 문단과 구분 지어야 한다.

Ⅱ. 요한계시록의 문단 나누기
(1)우선 1:1-8과 22:6-21은 서론과 결론으로 따로 떼어 낼 수 있다.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22:6)의 말씀은 1:1-3을 그대로 되풀이 한 것이다.

(2) 2장-3장은 구체적으로 지목된 일곱 교회의 실정을 소개함

(3)1:9-20은 계시자 사도 요한의 입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사도의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지금 사도는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밝힌 동시에 모든 성도에게도 동일하게 주님의 통치 아래서 관리됨도 확실히 한다.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1:12-13) 그래서 요한 계시록의 기본 정신이 이 대목에 다 들어 있다. 그 정신이란, 예수님의 신적인 구원 사역에 대한 그 어떠한 방해나 반발이나 비영광적 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1:9-3:22는 한 단락으로 묶을 수 있다. 하늘의 정신과 땅의 실정이 한 세트로 확정되어 앞으로 전개되는 모든 사역이 다 이 정신 아래서 일관되게 추진됨을 미리 선포한 셈이 된다. 이 단락 안에서는 예수님의 재림 의사가 분명히 들어 있다. 주님은 이미 왕이시고 영원한 제사장이 되어 계시다. 따라서 자기 사람을 건드리는 세력이 주님이 가만 두지 않으신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18) 벌써 이긴 자로서 예수님은 군림하고 계시다. 남은 것은 이러한 실정의 구체적 내막이 역사 안에서 보여지는 것밖에 없다. 왜 하늘은 하늘이요 왜 땅은 땅일 수밖에 없는지는 하늘의 본 뜻과 거기에 따라 반응되는 땅의 모습을 세트로해서 알려진다. 그 어떤 일도 초림과 재림 사이를 벗어날 수 없다. 세계는 이미 주님의 사역 안에 갇혀 있다. 시간의 흐름이 문제가 안되고 또한 고려해야 될 요소가 아니다.

이미 시간조차 갇혀 버렸는데 '언제?'라는 질문조차 성립될 수 없는 것이 주님 앞에서이다. 성도는 하늘 나라에서나 지상에서나 이미 성도이며 '악'은 하늘에서는 지상에서 이미 '악'이다. 생명책의 존재와 그 내용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본질이 갇혀진 시간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속성이 배출되느냐 하는 것이다.

지상의 일곱 교회는 이미 인류의 전체 역사의 질(質)을 다 품고 있다. 일곱 금촛대로서의 교회는 결코 교회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금 촛대를 쥐고 계신 분이 따로 있다. 인자 되시는 주님이시다. 교회를 더럽히거나 괴멸하려는 자는 주님을 공격하는 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이 사실이 비밀스러운 것이다.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10:7) 비밀이 실제의 세상을 이끈다. 그런데 이 비밀은 십자가 사건의 재현으로 드러난다.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11:8) 교회에 관해서 세상은 다음과 같은 이상스러운 말씀에 직면해야 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7,11,17,29/3:6,13,22) 예수님은 일곱 영을 쥐고 계신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3:1/1:20)

그래서 주님은 일곱 교회를 일곱 영으로서 존재하시는 성령의 뜻과 견주어 보신다. 그래야 참된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주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이 이 점을 관리하신다. 정말 교회라면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물론 들을 귀 있는 자에 국한된다. 들을 귀가 없는 자는 교회도 아니요 성도도 아니다. 사도는 순전히 성령의 도움으로 계시를 받아 적을 수 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성령 안에서의 계시 환경을 지니고 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1: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4:1-2)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 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17:1-3)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21:9-10)

앞에 있는 두 구절(1:10/4:1-2)은 사도 요한이 있는 자리에 머물러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계시를 제공받지만 뒤의 두 구절(17:3/21:10)은 사도의 육체가 공간을 실제로 이동 당한 상태에서 계시를 제공받는다. 이렇게 차이나는 이유는, 앞의 두 구절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더불어 직접적인 음성으로 계시를 받는 환경에서는 '성령의 감동' 상태에 사도가 놓이게 되고, 뒤의 두 구절은, 일곱 천사 중 하나에 의해서 계시의 내용 안으로 직접 사도 요한의 육체가 참여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려 주고 난 뒤에 실제로 성령이 사도 요한을 데리고 그 약속을 지켜 주는 차원에서 작용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차이로 인해 요한계시록 전체 문단 구획에 있어 절대적 권한을 지닌다고 해야 하는가?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라는 표현은,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계시적 현실 안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당기신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은 계시가 이런 표현을 달지 않고 받은 다른 계시와 비교해 볼 때 별다른 차이성을 찾을 수 없다. 만약 '성령의 감동'이나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라는 구절을 경계선으로 삼아 문단 구성에 나선다면 이런 표현이 없이 얻어진 계시와는 내용상 전혀 극변적인 큰 전환점을 이루고 있음이 부각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 내용상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모든 계시 소개가 다 '성령의 감동'된 상태에서 주어졌기에 맨 처음 표현 (1:10)과 다음 표현(4:1-3)만이 배경이 전혀 다를 뿐이지 후의 두 구절은 모두 이 내용 속에 함유된 내용을 지닌다. 뒤의 두 구절은 내용상 차이가 아니라 사도 개인적 경험상 차이이다. 즉 일곱번째 진노의 대접을 다루는 천사는, 하나님의 진노가 최절정에 달했음을 보이는 위치에서 일하는 천사이다.

이 천사의 사명 수행 속에 사도 요한을 직접 참여 시켜주므로서 주님의 약속은 기필코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강조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계시록 전체의 내용은 '들을 귀' 안에 놓여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문단 구성은 '성령의 감동으로'라는 대목으로만 둘로 나눈다면 충분하다. 즉 1:10-3:22의 부분과 4:1-22:5 까지가 그러한데, 앞부분은 지상교회의 구체적 모습이요 뒷부분은, 앞의 부분에 남긴 주님의 약속 내용이 어떤 영적인 상태를 배경으로 해서 제시될 수밖에 없는 내용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4)4:1-22:5.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내용은 일곱 천사들이 일곱 단계에 나뉘어서 일을 진행한다는데 초점이 있다. 이 단계가 지닌 의의를 제대로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문단이 나뉘어져야 한다. 이 일곱 단계로 구분되어서 떨어지는 저주는 2장-3장에서 일곱 교회에게 당부했던 그 약속이 적절했음을 확실히 하기 보장하기 위한 저주이다. 예를 들면,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2:10)라는 말씀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는 약속이 주님 입장에서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구원의 성과인가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교회를 교회답게 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환란받는 시험을 받게 만들고야 만다는 것이다. 즉 교회의 교회 됨은 주님께서 이루어 내신 구원의 성과가 참여하느냐의 여부로 판명 나는 것이 이 세상 안에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교회에 남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어떤 책으로 묶여져 있는 상태이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5:1) 그런데 그 인은 일곱 사람이나 일곱 천사에 의해서 개봉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도장은 일곱이지만 떼시는 분은 한 분이시다. 즉 동일한 분에 의해서 인이 떼어지기에 인이 떼어질 때마다 떼시는 분의 속성과 본질은 그 구원성과 축복성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이 터져 나오게 된다.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5:5-6) 이 본문에 나오는 떼시는 분의 인상은 이미 전 번에 받은 계시에 종합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즉 일곱 교회를 중심으로 세계는 구성되어 있어 교회에 남기신 그 말씀밖에 못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떼시는 분이 그 떼시는 활동을 개시하면서 '인자'라는 용어는 버리시고 '어린 양'이라는 표현으로 등장된 주체자로서 계시를 전개시키신다. 이것은 인자 되시는 그 분이, 인간들의 죄 때문에 희생되어 고난과 죽음의 본질을 안은 '어린 양'의 운명을 지상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이 표현으로 말미암아 인자 되시는 분은 이 세상을 복수하는데 있어 그 복수의 정당한 근거성을 놓치지 않게 된다. 한편 이 복수가 근거가 되어 교회가 세워진다. 그렇기에 일곱 인으로 봉인되었던 그 내용은 이미 교회에 주신 말씀의 구체적 확인에 불과하다. 세상의 입장에 봐서는 저주이지만 교회의 입장으로 봐서는 복된 일이다.(1:3/14:13/16:15/20:6/22:7,14)

세상은 새삼스럽게 저주받는 것이 아니라 꼭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속성으로 되어져 있다. 세상은 주님으로부터 매맞기 위해 준비된 대상에 불과하다. 다만 그 저주받는 상황이 심화되면 될수록 악의 실체는 더 근본에 가까이 간다. 동시에 교회도 그 고난의 본질에 가까이 간다.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이 양면을 성령을 통해서 들을 귀 안으로 담게 된다.

(5)저주의 일곱 단계
저주의 일곱 단계는 하늘의 보좌의 소개로부터 시작되는데 보좌란 본래의 거룩성으로 인해 세상에 계시될 때는 엄청난 심판과 두려움의 터져나오게 마련이다. 그 위엄성이 그대로 세상에 떨어진다는 것 자체가 세상에서는 재앙이다. 이런 경우는 출애굽기에서 이미 나오고 있다.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19:6) 이 출애굽의 상황이 재현이라도 하듯이 저주의 기능을 수행하는 보좌는 무서운 위엄성이 나타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4:1) 그런데 그 무서운 보좌에서 누군가가 사도 요한을 불러 올리고 있다. 마땅히 될 일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때 사도는 마치 옛날 모세 같은 입장이 된다. 과연 누가 보좌에서 사도를 불러 올릴까? 그것은 보좌의 형편을 보고 짐작할 수 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4:5) 즉 보좌에 앉으신 이가 주도적으로 심판을 행사하는데 있어 하나님의 일곱 영이 보좌의 않으신 분의 지시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즉 2장과 3장에서 일곱 영을 쥐고 계시는 분이 계시는 곳은 딴 곳이 아니라 바로 하늘의 보좌였다. 거기에 네 생물이 있는 곳인데 5:6-8에서는 그곳에 어린 양이 계시다고 하였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어린 양이 나아 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5:6-8)

이렇게 보면 보좌에서부터 터져나오는 저주는 어린 양이 가지신 책의 내용에 따라 어린 양 주도 하에 실시되는데 바로 이런 점을 감사하고 의지하기 위해 땅에서 성도들이 기도를 하게 된다. 그 기도를 네 생물과 24 장로들이 어린 양에서 바친다. 그래서 보좌에서 떨어지는 저주는, 어린 양되시는 분의 왕노릇이 기준이 되어 실시된다. 누구든지 어린 양의 왕되심을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자에게는 가차없는 저주가 주어진다. 어린 양의 통치는 성전 안에 있는 언약궤의 내용대로 성취된 결과이다. 바로 어린 양께서 보좌에서 심판을 행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합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있어 저주성은 바로 이점을 근거로 해서 실시된다. 그래서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저주,

즉 일곱째 인, 일곱 째 나팔, 일곱 째 대접 때에는 심판의 원초적 위치를 다시 한번 뇌성과 번개와 지진과 나팔 소리로 확인시켜 합당함을 나타내는 광경들을 묘사된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일곱 째 인: 8: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일곱 째 나팔 11:15, 18)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일곱 째 대접: 16:17-18)
이제 어린 양께서 봉인된 인을 떼시니까 그 책의 내용이 준해서 하늘의 천사가 활동을 개시한다. 일곱 인을 떼는 것이 6장부터이지만 5장에 보면 이미 확인될 어린 양의 속성이 하늘 나라 안에서 성도들에 의해 소개된다.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더라"(5:9-10)

그렇다면 이러한 속성으로 일곱 인에 담긴 내용이 폭로되는 것이다. 이 '어린 양' 두 가지 주목된 바는, 하나는 '사람들을 피로 산다'는 대목과 다른 하나는 성도가 땅에서 왕노릇한다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일곱 번째 인이 뗄 때쯤 되면 이 내용이 성취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실제로 20:4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이 구절의 끝에 보면 '왕노릇'한다고 분명하게 기재되어 있다. 그래서 일곱 인 작업의 완성은 20장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왕노릇 할 자들이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라고 아직 드러나지 않는 내용이나 그리고 이들을 이렇게 고난 준 세력이 '짐승'이라는 것도 아직 계시상 밝혀지지 아니했기에 이것을 더욱 세밀화 하기 위해 더 심화된 저주 작업이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일곱 인' 작업 속에는 필히 하나님 저주에 대해서 교회를 핍박하는 식으로 악이 반발하는 대목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나오는 대목이 꼭 5번째 재앙을 내릴 때이다. 즉 7인, 7 나팔, 7 대접은, 네번째와 다섯번째 사이에서 경계선이 쳐지며 그 이후와 내용상 따로 떨어진다.

즉 첫째에서 네째까지는 하나님편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장면이요, 다섯번째부터 여섯번째는, 하나님에 대해 악의 세력들이 성도들을 상대로 분풀이하면서 세상 인간들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어 집단적인 반발을 드러내는 대목이며 마지막 일곱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그 반발을 근거로 해서 더 극단적이며 궁극적인 차원으로 하나님께서 저주의 도를 끌어올리는 장면이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9:20. 더불어 6:9-11/9:1/16:10 참조)

물론 인간들은 주님의 재림의 심판 때에는 그 반발과 저항이 극에 달하게 되는데 비로소 그 때의 그 인간들을 배후에서 조정하여 하나님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갖게 한 세력이 등장한다. 그 세력이 그 전에 용으로 표현되는 사단이다. 그러니까 7 나팔과 7 대접의 진행에서는, 6인이 떼는 작업과는 달리 악의 정체가 본격적으로 노골화는 되는 과정 속에 돌입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 무리(6:14-17)→무저갱의 사자(9장)→용(12장)→짐승(13장)→바벨론(17장)이 바로 그것인데 멸망할 때는 역순이 된다. 바벨론(18장/14:8)→짐승(19:19)→무저갱의 사자,(용, 사단)(20:2,10)→인간 무리( (21:8) 이는 일곱 번째 저주의 대접을 붓는 과정이 모든 저주를 마무리 지음과 동시에 이들 악의 무리들이 등장되게 된 근본 원인을 원천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다시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 가 주기 때문이다.

20:1-3의 내용에 보면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에서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라는 대목이 나온다. 또 20:7-10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씀이 나온다.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즉 왜 사단이 이 세상에서 그 동안 설치 대고 있었는가 말이다.

그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어 일부러 무저갱에 묶어 놓은 사단을 풀어놓게 했는데 그 이유는, 왕노릇 할 수밖에 없는 신분의 있는 성도를 이 악의 세력을 통해 공격케 하므로서 이들의 왕노릇의 근거가 성도 자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사단으로부터 구원하신 주님에게 있으면 또한 사단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유황불에 집어넣는 심판의 정당성도, 성도의 고난을 통해서 온 천하에 확인되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시간적 흐름이 무의미해진 요한계시록에서 '후에 잠깐 놓인다'는 뜻은, '확고한 왕적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에 의해 잠깐 사단의 활동이 용인된다는 점을 '1000년'이라는 기간성 표현을 축으로 했을 때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던 요한계시록에서는 '1000년'이라는 기간성으로 표현된 궁극적인 하늘 나라의 왕적 신분성은 가능해도, 1000년 동안만 유효한 '천년 왕국' 개념은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생길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약 시대 이후부터가 '천년 왕국'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아예 '천년 왕국' 개념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말이다. 누가복음 17:20-21, 즉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계신 공간이 천국이라는 말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통치 그 자체가 천국이라는 말이다. (참조: 골로새서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6) 저주 실행에 있어 결정적 이유가 담겨 있는 문단 (11장-12장),
어린 양에게 일어났던 지상 사건은 사실 하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연속이었다. 바로 이런 비밀을 품고 지상에 두 증인이 증거 하지만 이들은 사람들에 의해 곧장 순교하고 만다. 이들 순교의 책임을 물어 그 땅에 큰 지진이 일어나서 이 두 증인의 죽음이 하늘과 어떠한 관련성이 있음이 암시된다.(11:13) 이들 증인이 하늘의 비밀이란(10:7) 다름이 아니라 하늘에서 있었던 기적이었다. 이 기적이 일곱 번째 나팔에 의해서 개봉됨에 지상에서 두 증인을 살해했던 악의 배후 세력이 갖는 하늘에서의 위상이 근원적으로 파악되게 되었다.

그 악들은 하늘에서 쫓겨난 자들이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 12:7-10) 이런 하늘의 전쟁이 어떤 계기로서 지상의 전쟁으로 연결되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 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12:1-6) 문제는 '여자의 아들' 때문이다. 옛 뱀, 즉 용은 그 '여자의 아들'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이기를 원치아니했다.

따라서 사단은 이 지상에서 '여자의 아들'의 흔적조차 지우려고 한다. 아기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베들레헴 근처에 사는 두 살 이내의 아이를 다 죽인 것도 모두 용의 짓이었음이 요한계시록에 와서 밝혀진다. 이로서 하늘 전쟁의 연장선에서 '여자의 후손' 사단을 끝까지 추적하여 멸망시킬 그만한 심판의 권한을 가진 분으로 하늘에서 인정된다.
예수님이 지상 생활 때 귀신들린 자에게 다가가니 귀신은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반응을 토해 내었다.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마 8:29) 이 본문에서 '때가 이르기 전'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귀신은 이미 자기의 멸망 때는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 12:12/ 벧전 5:8 참조)

(7) 예루살렘 성에서의 혼인 잔치 (19:1-22:5)
어린 양의 보좌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은 2장-3장에 나오는 인자 되시는 분이 하시는 일의 본질을 나타낸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3:5) 이 옷은 인자 되시는 분이 친히 입히시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신분을 염두에 두고 옷을 입힐까? 요한계시록에는 옷에 준해서 신분을 나타내는 의미의 층이 형성되어 흐른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19:7-8) 즉 신랑이 신부에게 입힐 옷이 흰옷이다. 이 흰 옷 마련을 위해 신랑 되시는 어린 양이 피를 흘렸다.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14)

이렇게 흰옷을 입게 된 신부는 바벨론성의 음녀와 다르다. 성도는 음녀를 거부한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14:4) 비록 음녀의 옷은 사치스럽고 화려하지만 어린 양의 심판으로 인해 수치스럽게도 벌거벗기게 됨으로 저주받는 신분인 것으로 드러낸다.(17:16) 이러한 사실은 이미 라오디게아 교회 안에서 암시되어 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3:17-18) 즉 신랑 되시는 어린 양은 휜 옷을 원하신다.

혼인은 궁극적으로 같이 사는데 의의가 있다. 이 사실도 이미 라오디게아 교회에 알려준바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3:20) 바로 이러한 취지가 21장-22장에서 아름다운 새예루살렘성으로 구체화된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21:2-3)

Ⅲ 결 론

1. 1:1-8 : 세상은 예수님과 초림과 재림 안에 갇혀 있다.
2. 1:9-20 : 교회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안에 갇혀 있다.
3. 2:1-3:29 :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안에 갇혀 있는 지상의 7 교회의 구체적 실정
4. 4:1-7:17 :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안에 갇힌 자연 세상에 대한 심판
5. 8:1-15:8 :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안에 갇힌 인간과 연관된 사회에 대한 심판
6. 16:1-20:15 :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안에 갇혀 있는 개별적 악의 세력과 인간에 대한 심판
7. 21:1-22:5 :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안에 갇혀 있는 성도에 대한 축복
8. 22:6-21: 세상은 이 요한의 계시 안에 놓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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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