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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설교자,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나?성경신학[신학]

설교자,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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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나?

본인에게는 설교에 임할 때 몇 가지 원칙이 서 있다.
첫째, 내가 있는 이 교회를 거부 할 것.
둘째, 이미 있는 교인을 교인이라고 간주하지 말 것.
셋째, 새로운 교회를 지금 이 시간, 이 곳에서 새로 창조 할 것.
첫째 원칙은, 설교자가 자칫하면 설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교회를 자기 소유화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즉 내 교회가 있다는 말은 내 소유의 교회가 있다는 말이고 그렇게 되면 은연중에 설교자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생계와 자아 실현을 위한 도구로서 교회를 인식하게 되고 필히 사기성이 함유된 설교가 튀어나오게 된다. 따라서 자기 소유의 교회를 없애 버리는 것은 곧 설교를 설교자 자신의 생존 문제와 분리시키는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둘째 원칙은, 민중들이 자기 종교성의 표출로서 교회를 세워 놓고 그 교회의 무궁한 역사와 전통을 주님의 현존하심 보다 더 우상시하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 자신이 은혜 받았다는 체험이나 간증을 한평생 우겨 먹으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우월감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인간이 사는 보람을 갖는 방법 중의 하나가 타인보다 자신이 늘 월등하다고 느끼는 포만감에 있다. 교회 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 이 교회에 헌금을 듬뿍 했다든지 정치적으로 큰 공적을 남겼다든지, 자신이 부임해서 교인이 급작스럽게 불어났다든지 했으면 그것으로 장래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 내에서 계속 큰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설교자는 이런 자들을 다독거려 주거나 용납해서는 아니된다.
셋째 원칙은, 지금도 주님은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신다는 말이다. 결코 교회 일을 목사나 설교자나 특정 소수에게 일임하신 것이 아니다. 따라서 주님은 어느 교회든지 늘 촛대를 옮길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갖추고 계신다. 만약 교회가 날마다 자신의 과거를 죽이고 현재에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태어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교회는 주님과 무관한 교회로 남는다. 간판이 붙어 있더라도 인간들의 친목 단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창조란, 기존의 것을 죽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작업을 위해 설교자가 있고 설교가 있다.
이와 같은 원칙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신학적 바탕이 준비되어야 한다.
첫째,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 존재하는 아담들이기에 필연적으로 악마에 의해 지배받다 는 흔적과 증거를 보여주게 되어 있음.
둘째, 그 중에서 오직 그리스도에 안에 있어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있게 마련인데 이들을 가지고 성경에서 '남은 자'라고 말함. 이 '남은 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과 그리고 오직 은총으로만 구원을 말함.
여기서 첫 번째 인간 경향이 바로 '아담의 보편성'이다. '아담의 보편적 경향'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종교성'이다. '종교성'이란 다름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신에게 접근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든지 신을 형상화 하다든지 신의 가시적 업적으로 본다든지 신의 사건으로 간주하려는 시도이다. 이 모두가 악마의 지배를 받아서 생성된 경향이다.
신학적으로 예수님 생애를 중심으로 해서 네 가지 패턴이 정립되어지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예수님 죽이는데 한 몫을 한 세력들이다. 첫째, 사두개인파 둘 째, 바리새인파 셋째, 쿰란 공동체 넷째, 열심 당원들이다. 각 종파가 가지는 종교성의 특징을 보면
사두개인 파는, 소위 교단주위자들이다. 교단이 튼튼한 것을 신의 은총으로 간주하여 모든 계시가 자기가 속한 그 교단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들은 어떤 사회 권력층과 연계해서라도 교단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모든 정치적 합의와 압력을 병행하면서 힘을 긁어모으는데 주력한다. 즉 때로는 당근을 주고, 때로는 채찍을 동원하면서 기존 종교 조직체의 테두리를 보다 넓게 확산시켜 나가는 것을 유일한 궁극적 목표로 삼는 자들이다.
바리새인들은 거룩한 성직자에게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는 중산층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삶 속에 말씀'이라는 운동을 벌렸던 자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수월하고 합리적으로 지켜 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보조 율법들을 창안한 자들이다. 그래서 인간의 종교 행위를 매개로 하여 얼마든지 주의 말씀을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민중들 속에 파고든 자들이다.
쿰란 공동체의 사상,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 하루하루 일과를 성스러운 일과표로 조정하여 어둡고 세속된 세상에서 스스로 격리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즉 묵상과 노동과 정갈하고 알뜰한 식단과 건강식을 통해 세상과는 격리된 삶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방법은, 마지막 심판의 때를 대비해서 거듭난 사람끼리 모여 이상적인 공동의 생활에 있다고 여긴다. 공동 생산과 공동 소비야말로 하나님이 내려 주신 이상적인 사회 생활이라는 것이다.
열심 당원들의 이상은, 현실 정치와 경제 속에서 신의 뜻을 실현시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종교의 테두리를 철폐해 버리고 하늘의 뜻이 온 땅 전체에 두루 확산시키기 위해 인간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죄란,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소수의 권력가나 자본가에게 있다고 여기는 자들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자에게 향한 사회적 관심이 곧 신의 관심사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가진 자 위주의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법도 실제로 폭력의 일종으로 간주되기에 그것을 전복하는데 폭력이 또한 동원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네 가지 계통을 거부하고 오직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이 취지는 다름이 아니라, 말씀은 오직 말씀 스스로의 성취력에 의해 달성된다는 뜻이다. 즉 구약 말씀이 때가 되매 예언된 뜻에 의해 예수님과 세례 요한 만남과 성령의 강림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경향은, 아담 안에 있는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이점을 위해 유대인들은 선택된 것이다. 즉 "과연 인간의 종교적 한계와 실존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라는 점이다.
이 점을 오늘날 파악하기 위해서 본인은 여러 가지 책읽기에 나선다.
첫째, 경제사에 관한 책 (대표적인 책: 소유의 역사. E.K. 헌트. 중원 문화/자본주의의 역사 미셸 보. 창작과 비평사)
역사 속에서의 교회란, 곧 민중들이 만들어 낸다. 곧 교회의 역사란 타락의 역사이다. 과거의 교회들의 입지를 알기 위해서 민중들이 살았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된다. 즉 "그들은 교회 안에서 신을 향하여 어떤 이슈를 가지고 기도했었나?"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이들 민중들의 이슈가 곧 그 시대의 경제상을 반영해 주기 때문이다. 과거 농경 시절 때에 민중들은 신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으며 중세 농노 시대에서 어떤 식으로 신을 섬겼으며 후기 자본주의에 접어든 오늘날에 있어 민중들은 무엇을 노리면서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심층에 숨어 있는 악마성과 죄악을 지적해 낼 수가 있지 아니한가? 하나님 자체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에 주신다는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본성은 세월이 지나가도 보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은밀화되고 정밀화되고 고급스러운 윤리로서 포장된 채 나타나기 마련이다.
둘 째, 언어학에 관한 책(대표적인 책: 성서와 문학. 노드롭 프라이 숭실대학교 출판부 /가스통 바슐라르. 곽상수. 민음사/두 지평 A.C. 씨슬튼. 총신대학 출판부/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 프랭크 커머드. 문학과 지성사)
인간은 신의 말씀을 언어를 통해 받아 드린다. 언어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따라서 모든 언어는 해석과 이해라는 방식으로 타인과 대화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해석학과 기호학을 연구하므로 서 인간의 악마성과 죄성이 어떤 해석으로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가를 잘 파악된다. 같은 성경 구절과 본문을 가지고서 각가지 다양한 의미가 쏟아져 나오지만 그 쏟아져 나오는 것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다. 그 묶여진 인간들의 선 이해를 분석하면 언어를 사용한 기본 의도도 알 수 있게 된다.
셋째, 경영학에 관한 책(대표적인 책: 심리학자 삐아제가 지은 모든 책/21세기를 대비해서 내놓은 모든 경영학에 관한 책/니체의 사상과 철학에 관한 책)
목회자가 교회를 담임하게 되면 여기에는 필히 소위 지도자들이 토해 놓는 악마성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배후에서 잘 조종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기술 갖추기에 나선다. 즉 '사람 영혼 다루는 법'이다. 이 점을 보다 잘 파악하기 위하여 기존 사회 기업체에서 영업 사원들이나 간부 사원들에게 필히 익히는 경영학에 관한 서적이 있다. 소위 리드 쉽에 관한 기술 책이다. 이런 책들의 원리는 간단하다. "잠자고 놀고 있는 당신의 잠재된 신을 깨워 활성화시켜라!", "사람은 훈련하기 나름이다!" 라는 류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다 교육과 훈련에 관한 책들이다. 이 원리는 예외 없이 니체의 초인 사상에서 빌려 온 것들이다. 이런 책을 대하면서 목회자가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엉뚱한 데로 팔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자기 자신을 없애고 죽이고 부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넷째, 문화에 관한 책 (대표적인 책: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다니엘 벨. 문학세계사/메시야 왕국. 한국 신학 연구소/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F.카프라. 범양사출판부)
문화란, 인간들의 뱉아 낸 죄악들의 총체적 덩어리이다. 어떤 발상 속에서, 어떠한 의식 속에서 오늘도 인간들은 살아가고 있는 가에 대해서 조감도를 그려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하는 사항은, 이들 인간들의 지향점이다. 그들이 구상하고 있는 장래 구원의 미래상과 오늘날 교회를 찾는 발길들의 마음속과 연관지어 봐야 한다.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된다는 점에 대해서 설교자는 경악하게 될 것이다.

어느 정도 세상 원리에 익숙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철학에 관한 책을 접하게 되었다. 몇 년전부터 본인이 본 책들은, 독일 철학과 프랑스 철학에 관한 것이다. 들뤼즈, 마이클 라이언(미국 학자), 데리다, 하버머스, 마르쿠제, 보드리야르, 미셀 푸코, 자크 라캉, 레비 스트로쓰, 레비나스, 후셀, 하이데거, 마르셀, 메를로 뽕띠, 리꾀르, 그리고 프랑스 문학의 고전에 해당되는 프루스트나 카뮈, 카프카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철학자와 저술은, G. 들뤼즈가 쓴 [감각의 논리]이다.(민음사) 평소에 난제로 여겼던 '하나님의 형상' 문제에 대해서 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즉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형상화' 할 줄 아는 존재임을 이 철학자는 명확히 밝혀 놓았다. 인간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자기 형상화 작업을 멈추지 않는 것인데 사실은 그 과정이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 철학자가 잘 말해 준 것이다. 이 원리는 본인이 구약의 우상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신학에 관한 책을 말하고자 한다.

신학교 들어오기 이 전부터 보아 두었던 [기독교 사상 전집 12권 (태양 출판사)]을 기초로 해서 신학교에서 우선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설교집을 탐독하는데 주력했다. 로마서 강해 (1,2,3권이 압권임. 4권 이후의 나오는 내용 중에 성령론에 관한 것은 문제점이 있음)와 그리고 에베소서 강해를 가지고 실제 교회에 나가 실습했었다. 설교에 대해서 우선 [설교와 성경 신학]이라는 책을 권하고 싶다.(에드먼드 클라우니. 한국기독교교욱연구원)
신학교 입학 이후에 보았던 책 중에서 후배들의 도움이 되고자 적어 놓은 책 목록이 있다. 이것을 여기에서 소개하고 싶다.

신학생이 꼭 봐야 하는 책 L I S T

1.도입 단계
[회개하소서,십가자의 원수된 교회여] 허성 지음 홍성사

2.기본단계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로핑크 분도출판사
[교회란 무엇인가?] 한스 큉 분도출판사
[로마서 강해 1,2,3] 로이드 존스 기독교문서선교회
[에베소서 강해 1-8] 로이드 존스 기독교문서선교회
[산상설교 상,하] 로이드존스 기독교문서선교회
[하나님의 열심] [구원 그 이후] 등등 박영선 새순출판사
[히브리식 사고와 기독교] 존 밀턴 컨쿨디아사
[하나님의 나라] 죤 브라이트 컨쿨디아사
[예수] 루카스 그롤렌버그 종로서적
3.초등 단계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김이곤 한국신학연구소
[예언자들 상] 아브라함 헤셀 종로서적
[신약성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제임스 던 무림출판사
[신의 세속화] 박 봉랑 대한기독교출판사

4.중급단계
[예수 그리스도] 발트 카스퍼 분도출판사
[그리스도와 시간] 오스카 쿨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몰트만 한국신학연구소
[예수 그리스도의 길] 몰트만 대한기독교서회
[구약 성서의 인간학] 한스 발트 볼프 분도출판사
[교의학] 푈만 한국신학연구소
[조직신학] 크라우스 한국신학연구소

5.고급단계
[교회직무론] 스힐레벡스 분도출판사
[바울과 예수] 에버하르트 융겔 이대출판사
[구약신학] 발트 침멀리 한국신학연구소
[복음의 회복] 이근호 대장간

필수 교양서적

[교회:카리스마와 권력] 레오나르도 보프 일월서각
[카오스와 문명] 김상일 동아출판사
[메시야 왕국] 류터 한국신학연구소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김용옥 통나무
[헤겔 철학과 현대신학] 김균진 대한기독교출판사

철학 입문을 위한 좋은 책: [삶과 철학] 한국철학사상 연구회 동녘.
불교에 대해서 가장 바르게 기술한 책: [장군죽비 상 하] 휴암. 명상
종교학에 대한 입문 책: [성과 속-종교의 본질] 엘리아데. 학민사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서는, 최근에 외국에서 학위 따 온 강사나 젊은 교수들의 논문들을 도서관이나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수집하고 뒤지며 다녔다. 뿐만아니라 국내에서 나오는 구속사나 성경 신학의 관한 석사 논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기적으로 신학교 도서관을 방문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나름대로 기존의 신학에서 +α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α가 신학교 강의실에 몇 개월 지나면 다시 바닥이 나는 것이지만 최근의 외국의 신학 동향과 또는 자신들의 처한 삶의 상황 속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과 한계 같은 것을 간접적이나마 엿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담임 설교자로서 출발하면서 철학과 구속사를 병행하여 설교를 했다. 한 주간에 보통 유초등부 설교로부터 시작해서 22번이 주어졌지만 하나 하나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논문 숙제]라 여기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해서 줄기차게 강해 설교해 나갔다. (기존 주석은 참고로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주석을 손에 놓으면 일단 다 읽어 버려야 한다. 그래서 저자가 그런 주석하게 된 그 신학적 배경을 찾아내어 그것이 과연 전체 성경과 뜻과 모순점 없이 맞아 떨어지는가를 검토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기서 밝히고 싶은 바는, 구속사적 강해 설교는, 구속사에 관한 책을 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면서도 끈기 있고 꼼꼼하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구절의 구조를 총체적으로 생각하면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것 가운데 열매로서 도출된다는 사실이다. 즉 어디에서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모순점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속사적 강해 설교란 마치 도심 밑을 흐르는 지하수의 한 맨홀과 같다고 본다.(물론 각 지점의 수위는 균등하지 않다) 어느 맨홀의 뚜껑을 열고 들어가도 도시 전체와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을 통해 설교 내용이 점점 더 심오해 질 수 있다. 하지만 점점 심오해지는 기존의 철학 작업과 병행해서 설교해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철학이라는 것이 (특히 유신론적 철학이나 창조과학회가 주장하는 과학 철학들이) 인간의 죄악을 극히 교묘하게 종교화시켜 놓은 작업에 불과하다는 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크 엘룰이 이점을 일부 밝혀 놓았지만 이 분은 성경 내용에 대해서 좀 더 심사숙고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더욱 더 경악스러운 사실은, 막 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국내로 들어온 학자들의 논문의 내용들이, 실제 성경에서 고발하는 죄악을 마치 고상한 하나님의 뜻인 줄 아는 그런 성급한 결론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율법에 관해서, 몇 년에 걸쳐 성경 전체를 심사숙고해서 내린 강해 설교자의 결론과는 다르게 같은 신학자 레벨에서 책을 참고해서 학적인 권위를 최우선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의 내용이 필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방언에 관한 내용도 마찬가지이고 성령에 대한 신학도 마찬가지이다.(여기에 대해서는 [신오순절 운동 비판]이라는 좋은 책이 있다. (레이몬드. 개혁주의 신행협회)

결론적으로 말해서, 설교자가 철학과 병행하여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과거 신앙고백서 작성이나 교리 체제 작성에 있어 그 당시의 철학과 교회 사정과 성경 이해도에 준해서 작성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중들은 교회에 들어와서 자기의 한부터 먼저 털어 내어놓는다. 그 다음 설교자의 위로를 기다린다. 즉 설교자가 성경 말씀을 외쳐도 꼭 자기 사정에 부합되는 쪽으로 재해석해 버리는 사태를 늘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까지는 설교자는 유념해서 그들이 그런 잘못까지도 이미 성경 안에서 하나님이 고발하고 있음을 정확히 말씀을 통해 지적해 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작업을 위해 설교자는 사채 시장의 흐름이나 고급 오락의 실태와 내막까지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중들은 자신의 속은 뒤로 빼돌리고 종교적인 형식만 앞장세워 교회를 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들이 배부르고 시간이 남아 돌 때, 어디에다 정력을 쏟고 있는가를 문화적, 시대적 분위기를 철학적 분석을 통해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화투 패를 설교자가 미리 다 갖고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껏해야 '아담 안'이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서 5:12) 죄를 모르고 어떻게 설교자라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죄라는 한계에 빠져 있다. 이것이 설교자 자신의 체험이어야 한다. 즉 늘 십자가 위에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쉴새없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다. 나는 왜 이 교회에서,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 짝이 없는 인간인가를 날마다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왜 교회 목회와 설교를 주님이 나서서 해야만하고 나는 왜 할 수 없는 가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미 예수 안에서 의인된 자만이 필히 일어나는 십자가 체험이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5) 그 십자가 위에서 비로소 세상의 죄가 밝히 보인다. 그 자세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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