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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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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수수께끼 :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성경신학레위기

금기의 수수께끼 :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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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수수께끼 :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최창모
출판사 : 한길사 (서울 : 2003)

성경에서 어떻게 본래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당시의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본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자연과 문화의 만남에서 '의미'가 나오기 때문이다. 기존의 성경 해석은 성경 속 그 당시의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현대인들의 요청하는 의미만 얻어내기 위해 문구들을 재조립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취약점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이란 사회의 구조를 살피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에는 통시적 안목이 끼어들면 안 된다. 그 대신 그 시대의 사회 질서 구조와 시스템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회는 차이와 차별의 항목들로 망처럼 짜여져 있다. 이 차이점을 부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기 시 되는 조항들의 집합으로 유지된다. 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유대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구약에 나오는 율법들이 바로 유대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금기(taboo)들이었다. 따라서 구약 율법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금기'라는 문화인류학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금기란 성스러움을 심어 넣기 '위험'을 통고하는 식으로 통용되는 법적 규약 같은 것이다. 그 사회 안에 애매모호하거나 어중간한 영역이 남아 있으면 질서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

따라서 상충되는 가치가 혼합될 소지가 있는 행위나 사태에 대해서는 성스러움의 이름으로 정죄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금기사항은 경계선에서 발생된다. 문지방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창세기 4:7에 보면, "문지방에 죄가 귀신으로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한글 개혁 성경에서는, "문에 죄가 도사리고 있다"고 번역됨) 이 문구에 담긴 의미는,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로 버티는 가인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대한 평가를 내리시면서, 그와 같은 태도는 마치 문턱에 웅크리고 있는 '죄'라는 나쁜 귀신의 입장과 같다는 것이다. 금기 위반으로 불길한 기운이 돌면 반드시 정결의식이 동원되어야 한다. 오염이란 단순히 겉만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다. 성스러운 생산의 힘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창세기 4:10에서는, 살인죄에 의해 피가 땅을 적시자 땅은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게 된다. 왜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가? 동물은 소와 같이 되새김질하고 굽이 갈라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낙타는 되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고(그러나 사실은 낙타는 굽이 갈라져 있다)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되며, 돼지는 그 반대의 경우로 애매모호한 비정상 동물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아니 된다. 물고기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어야 정상이고 날개를 가진 곤충은 날아야 정상인데 메뚜기는 날지 못하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오소리의 경우, 귀없는 토끼처럼 작은 발굽을 가졌으면서도 무소와 같은 이빨이 코끼리처럼 보이기 때문에 기형이고, 말미잘의 경우, 식물과 동물의 어중간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못 먹고, 날다람쥐는 새로 뭍동물도 아니기에 회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금기를 채택했는가? 고대 중동 지역에서는 가축과 인간들이 상호 좋은 생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소와 양과 염소 같은 것은 인간이 먹어야 할 곡물을 나누어 먹지 않더라도 고기와 젖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들 가축은 먹이를 놓고 인간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돼지는 그렇지 못하니, 돼지고기를 금하는 금기가 우세한 것이다. 또 출애굽기 23:19/34:26/ 신명기 14:21에 보면, "너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금기 사항이 나온다. 젖과 새끼 염소는 근친 관계에 놓여 있다. 둘 다 어미로부터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근친 관계란 근친결혼이 금지시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욕망, 똑같은 논거, 똑같은 가치와 평형이 형성된다. 따라서 근친 간에 서로 인접하거나 섞어 놓으면 상호 폭력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둘이 함께 섞는다는 것은 곧 친족 사이를 섞는 것과 같다. 신명기 22;6에 나오는, "어미 새가 새끼나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만나거든, 어미 새와 새끼를 동시에 잡지 말라"라는 말씀이나, 레위기 22:28에 나오는, "그 어미나 새끼를 같은 날에 죽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과 다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금기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은, 우유를 놓고 인간과 새끼 염소가 경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들은 가능한 한 우유와 새끼 염소를 말리 떨어뜨려 놓고 싶었던 것이다. 왜 육류는 금하지 않으면서 피를 먹는 것은 금기 사항인가? 그것은 피를 생명과 동일시하여 죄를 씻기 위한 수단으로 특별하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그 희생자의 가족으로부터 보복이 들어오게 되고 그 보복으로 말미암아 이번에는 범죄자의 가족이 가만 있지를 않는다. 이렇게 되면 피의 복수극이 영구히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사회 질서의 혼란으로 치닫는 길이다.

따라서 죽여도 아무 뒷 탈이 없는 대상을 골라 대신 그 희생물을 죽여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피의 보복극을 도중에 멈추게 하기 위해서 이런 금기 사항이 등장된 것이다. 즉 희생자의 고귀한 죽음을 존중해 주기 위해 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재수 없는 존재인가? 그것은 정기적으로 땅을 더럽히는 피를 흘리기 때문이다. 동방정교회에서 여성을 사제를 세우지 않는 것도 월경 때문이다. 이로서 여성은 문제가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남성의 할례는 정결을 위한 자발적으로 흘리는 피인 반면에, 여성이 흘리는 피는 여성의 불완전함의 증거물로서 필연적으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흘리는 피이다. 그래서 아들을 출산할 때보다 여아를 출산할 때의 정화 기간이 두 배나 더 길다. 불결한 것이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염을 걸러주는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 불결 상태와 중립 상태가 만나면 중립상태도 불결하게 되지만, 이 중립상태가 정결한 상태를 만나면 다시 정결하게 되기 때문에 불결상태가 해소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결하다는 독립적으로 존립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반드시 정결함이 어떤 것인가를 같이 끌고 들어가서 보여주는 사건이다. 유대인들이 회당에 들어가기 전에 수돗물에서 나오는 물로 바로 직접 씻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용기에 물을 담아서 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친족간의 근친상간을 금하고 있는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가족이 있기 전에 먼저 사회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각 가정마다 갖고 있는 선물들(자식들)을 타 가정의 선물들(자식들)을 상호 교환하므로서 적이 동지로 변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그래야지만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가정'이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 사회에서는 이 원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정을 볼 때, 항상 현 세대보다 다음 세대를 기약하기 위한 토대로 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넘겨줄 씨는 순수성이 유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혼인 대상이 단순히 섹스 파트너용으로 전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혈통 고립주의를 고수해야 했다. 동성애를 금지하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왜 유대 사회에는 남성이 여성 옷을, 여성이 남성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가? 그것은, 옷이란 살이라는 물체와 닫는 순간부터 그 존재와 일체화가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옷을 바꾸어 입는다는 것은 권리를 바꾸는 것과 같다. 특히 룻기에서는 '옷을 덮는다'는 것이 '재산권'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에 여성이 남성의 복장을 하는 것은 남성의 지위를 갖는 것이기에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밖에, 유대 사회에서 문신을 금지하는 것은, 이방 민족들의 장례 풍습에 있어 죽은 혼령으로부터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처를 내는 풍습과 차별화하기 위한 금기 사항이다. 이처럼 구약 율법은, 속됨에서 거룩함으로 이전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꾸며져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평 가

구약에서의 죄란, 인간에게 묻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아예 인간 자체를 두고 말한다. 즉 아무리 정결법을 동원하고, 아무리 율법이 금기시하는 조항들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지를 못한다. 거룩이란 인간의 행함의 차원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한계성은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 달성의 배경이 된다. 언약, 혹은 거룩은 순전히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만 나타나게 되어 있다. 사람이 율법 지켜서 못해 낸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경로를 통해 하나님의 자신의 거룩을 성취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의 성취 원리에 '문화인류학'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십자가 앞에서만 왜 인간 사회가 죄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가가 비로소 밝혀진다. 그 어떤 식으로 정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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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IP:124.♡.84.82)

09-03-04 22:44

금기의 수수께끼 : 성서 속의 금기와 인간의 지혜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최창모
출판사 : 한길사 (서울 : 2003)

성경에서 어떻게 본래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당시의 문화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본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자연과 문화의 만남에서 '의미'가 나오기 때문이다. 기존의 성경 해석은 성경 속 그 당시의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현대인들의 요청하는 의미만 얻어내기 위해 문구들을 재조립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취약점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이란 사회의 구조를 살피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에는 통시적 안목이 끼어들면 안 된다. 그 대신 그 시대의 사회 질서 구조와 시스템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회는 차이와 차별의 항목들로 망처럼 짜여져 있다. 이 차이점을 부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기 시 되는 조항들의 집합으로 유지된다. 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유대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구약에 나오는 율법들이 바로 유대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금기(taboo)들이었다. 따라서 구약 율법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금기'라는 문화인류학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금기란 성스러움을 심어 넣기 '위험'을 통고하는 식으로 통용되는 법적 규약 같은 것이다. 그 사회 안에 애매모호하거나 어중간한 영역이 남아 있으면 질서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

따라서 상충되는 가치가 혼합될 소지가 있는 행위나 사태에 대해서는 성스러움의 이름으로 정죄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금기사항은 경계선에서 발생된다. 문지방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창세기 4:7에 보면, "문지방에 죄가 귀신으로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한글 개혁 성경에서는, "문에 죄가 도사리고 있다"고 번역됨) 이 문구에 담긴 의미는,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로 버티는 가인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대한 평가를 내리시면서, 그와 같은 태도는 마치 문턱에 웅크리고 있는 '죄'라는 나쁜 귀신의 입장과 같다는 것이다. 금기 위반으로 불길한 기운이 돌면 반드시 정결의식이 동원되어야 한다. 오염이란 단순히 겉만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다. 성스러운 생산의 힘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창세기 4:10에서는, 살인죄에 의해 피가 땅을 적시자 땅은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게 된다. 왜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가? 동물은 소와 같이 되새김질하고 굽이 갈라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낙타는 되새김질을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고(그러나 사실은 낙타는 굽이 갈라져 있다)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되며, 돼지는 그 반대의 경우로 애매모호한 비정상 동물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아니 된다. 물고기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어야 정상이고 날개를 가진 곤충은 날아야 정상인데 메뚜기는 날지 못하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오소리의 경우, 귀없는 토끼처럼 작은 발굽을 가졌으면서도 무소와 같은 이빨이 코끼리처럼 보이기 때문에 기형이고, 말미잘의 경우, 식물과 동물의 어중간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못 먹고, 날다람쥐는 새로 뭍동물도 아니기에 회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금기를 채택했는가? 고대 중동 지역에서는 가축과 인간들이 상호 좋은 생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소와 양과 염소 같은 것은 인간이 먹어야 할 곡물을 나누어 먹지 않더라도 고기와 젖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들 가축은 먹이를 놓고 인간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돼지는 그렇지 못하니, 돼지고기를 금하는 금기가 우세한 것이다. 또 출애굽기 23:19/34:26/ 신명기 14:21에 보면, "너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금기 사항이 나온다. 젖과 새끼 염소는 근친 관계에 놓여 있다. 둘 다 어미로부터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근친 관계란 근친결혼이 금지시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욕망, 똑같은 논거, 똑같은 가치와 평형이 형성된다. 따라서 근친 간에 서로 인접하거나 섞어 놓으면 상호 폭력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둘이 함께 섞는다는 것은 곧 친족 사이를 섞는 것과 같다. 신명기 22;6에 나오는, "어미 새가 새끼나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만나거든, 어미 새와 새끼를 동시에 잡지 말라"라는 말씀이나, 레위기 22:28에 나오는, "그 어미나 새끼를 같은 날에 죽여서는 안 된다"는 조항과 다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금기가 만들어진 것은 사실은, 우유를 놓고 인간과 새끼 염소가 경쟁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들은 가능한 한 우유와 새끼 염소를 말리 떨어뜨려 놓고 싶었던 것이다. 왜 육류는 금하지 않으면서 피를 먹는 것은 금기 사항인가? 그것은 피를 생명과 동일시하여 죄를 씻기 위한 수단으로 특별하게 사용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그 희생자의 가족으로부터 보복이 들어오게 되고 그 보복으로 말미암아 이번에는 범죄자의 가족이 가만 있지를 않는다. 이렇게 되면 피의 복수극이 영구히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사회 질서의 혼란으로 치닫는 길이다.

따라서 죽여도 아무 뒷 탈이 없는 대상을 골라 대신 그 희생물을 죽여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피의 보복극을 도중에 멈추게 하기 위해서 이런 금기 사항이 등장된 것이다. 즉 희생자의 고귀한 죽음을 존중해 주기 위해 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더 재수 없는 존재인가? 그것은 정기적으로 땅을 더럽히는 피를 흘리기 때문이다. 동방정교회에서 여성을 사제를 세우지 않는 것도 월경 때문이다. 이로서 여성은 문제가 있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남성의 할례는 정결을 위한 자발적으로 흘리는 피인 반면에, 여성이 흘리는 피는 여성의 불완전함의 증거물로서 필연적으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흘리는 피이다. 그래서 아들을 출산할 때보다 여아를 출산할 때의 정화 기간이 두 배나 더 길다. 불결한 것이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염을 걸러주는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 불결 상태와 중립 상태가 만나면 중립상태도 불결하게 되지만, 이 중립상태가 정결한 상태를 만나면 다시 정결하게 되기 때문에 불결상태가 해소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결하다는 독립적으로 존립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반드시 정결함이 어떤 것인가를 같이 끌고 들어가서 보여주는 사건이다. 유대인들이 회당에 들어가기 전에 수돗물에서 나오는 물로 바로 직접 씻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용기에 물을 담아서 씻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친족간의 근친상간을 금하고 있는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가족이 있기 전에 먼저 사회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각 가정마다 갖고 있는 선물들(자식들)을 타 가정의 선물들(자식들)을 상호 교환하므로서 적이 동지로 변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그래야지만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가정'이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 사회에서는 이 원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가정을 볼 때, 항상 현 세대보다 다음 세대를 기약하기 위한 토대로 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에 넘겨줄 씨는 순수성이 유지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혼인 대상이 단순히 섹스 파트너용으로 전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혈통 고립주의를 고수해야 했다. 동성애를 금지하는 것도 이런 차원이다. 왜 유대 사회에는 남성이 여성 옷을, 여성이 남성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가? 그것은, 옷이란 살이라는 물체와 닫는 순간부터 그 존재와 일체화가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옷을 바꾸어 입는다는 것은 권리를 바꾸는 것과 같다. 특히 룻기에서는 '옷을 덮는다'는 것이 '재산권'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에 여성이 남성의 복장을 하는 것은 남성의 지위를 갖는 것이기에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밖에, 유대 사회에서 문신을 금지하는 것은, 이방 민족들의 장례 풍습에 있어 죽은 혼령으로부터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처를 내는 풍습과 차별화하기 위한 금기 사항이다. 이처럼 구약 율법은, 속됨에서 거룩함으로 이전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꾸며져 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평 가

구약에서의 죄란, 인간에게 묻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아예 인간 자체를 두고 말한다. 즉 아무리 정결법을 동원하고, 아무리 율법이 금기시하는 조항들을 철저하게 준수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지를 못한다. 거룩이란 인간의 행함의 차원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한계성은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 달성의 배경이 된다. 언약, 혹은 거룩은 순전히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만 나타나게 되어 있다. 사람이 율법 지켜서 못해 낸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경로를 통해 하나님의 자신의 거룩을 성취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의 성취 원리에 '문화인류학'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십자가 앞에서만 왜 인간 사회가 죄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가가 비로소 밝혀진다. 그 어떤 식으로 정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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