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 최신 두뇌과학이 밝혀낸 종교의 실체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 최신 두뇌과학이 밝혀낸 종교의 실체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 최신 두뇌과학이 밝혀낸 종교의 실체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엔드루 뉴버그(Andrew Newberg), 유진 다킬리(Eugene d’Aquili), 빈스 라우즈(Vince Rause)
번 역 : 이충호
출판사 : 한울림 출판사 (서울 : 2001)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해야 이야기가 통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신(神)의 문제는 남겨진 숙제처럼 과학 외곽에 방치되어 있다. 어쩌면 신을 있는 둥 없는 둥 취급하는 것이 요령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느낀다든지,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람이 등장할 때, 그 사람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은 과학의 임무 중의 하나이다.
신경생물학은, 이런 체험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점차 폭을 넓혀서 다른 동물의 두뇌와 사람의 두뇌를 비교하므로서, 신에 대한 감정은 정상적인 두뇌 활동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려 한다. 본 책은, 그동안 종교나 신비주의나 신앙에 대해서 불결한 미신처럼 다루었던 기존의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쓴 책이다. 과학이 스스로 자신의 폭을 좁혀서는 아니 된다고 보고 있다. 신에 대한 신앙까지 과학이 손을 대므로서 과학이 갖는 자폐증적인 증세를 과학적 신비주의로 치료를 하려고 한다.
사람의 두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름진 대뇌피질 속에는 모든 고차원의 지각 기능이 일어나는 곳이다. 뇌에서 가장 진화한 부분이다. 이 신피질이 진화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대뇌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언어와 예술, 신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차원 기능도 기초적인 생명 유지 체계와 호르몬의 활동과 기본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더 원시적인 '피질하' 구조들의 바탕과 연관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원시적 두뇌조직은 인간의 신체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두뇌는 마음과 육체가 함께 결합하여 우리의 자아상과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장소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아상과 세계관도 외부적인 종교적 의식(儀式)이 없이는 신적 느낌을 갖는 효과를 볼 수 없다. 불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연구자들은 종교 의례가 순전히 문화적 현상이라고 믿었으며 사회적 조건화의 산물이지 생물학적 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간 의식의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해보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관찰에 따르면 인간의 종교 형식과 동물의 행태에는 그 방식이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그 기본 형태에서 동물의 행동에는 구조화되고 패턴화된 반응들- 춤추기, 소리지르기, 머리 까닥거리기 등-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들은 리드미컬하고 반복적이다. 이 행위들은 종종 아주 극적이고 특이하여 의례 행위 외에는 어떤 실용적인 기능도 없다. 인간들에게도 이런 요소들이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그레고리오 성가의 장엄한 리듬에서부터 폴리네시아의 생동감 넘치는 다산(多産)의 춤 리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의례 행위에서 리듬과 반복은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또 사람의 의식에는 일상 생활에서는 아무런 실용적인 의미도 없는 독특한 행위 -절, 느린 행진, 손과 팔의 이상한 제스처 등 -볼 수 있다. 그것은 집단 구성원 간에 공격 행위를 감소시키고 집단 간의 강한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사회의 종교 행위의 뿌리에는 자신의 제한적인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생물의 신경생물학적 필요가 정교한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외부적 자극이 개인들의 두뇌에 어떤 영향을 주며 이런 행위에 같이 동참케 되는가?
리듬감이 가득한 종교행위는 신체의 억제계와 흥분계에서 자율 반응을 변화시킨다. 리듬이 빠를 경우- 예컨대 수피족의 춤이나 부두교의 열광적인 의식에서처럼- 흥분계는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활성화된다. 이렇게 신경 활동의 수준이 점점 증가하면, 뇌의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외교관 해마회가 관여하게 된다. 이곳은 종종 다양한 부분들 사이에 신경 입력 정보의 흐름을 조절하는 일종의 수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조절 기능은 신경 활동의 수준을 완화시키고 뇌를 비교적 안정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예를 들면, 뇌의 활동이 너무 과도한 수준에 도달한 것을 감지한 해마회는 뇌의 활동이 진정될 때까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실상 뇌의 활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셈이다) 그 결과로 어떤 뇌 구조에는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신경 입력 정보의 정상적인 공급이 차단된다.
그러한 구조들 중 하나가 정위연합영역(자신을 나머지 세계와 구별하는 것을 도와주고, 공간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해주는 부분)인데, 그러한 정보의 흐름이 차단될 경우, 정위 영역은 이용할 수 있는 나머지 정보를 가지고 일을 수행한다. 신경학 용어로 표현한다면, 정위영역은 수입로(輸入路)가 차단된 것이다. 즉 신경 입력 정보를 거의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동해야 한다. 수입로 차단은 자아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덜 명확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종종 경험하는 일체감의 원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일체감의 원인이 되는 이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찬송이나 명상기도와 같은 느릿한 의식 행동을 오랫동안 지속할 때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 수도 있다. 느린 리드미컬한 행위는 억제계를 자극한다. 억제계가 아주 높은 수준으로 작동할 때, 해마회의 억제 효과를 직접 활성화시켜 결국 정위영역의 수입로 차단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뇌가 느끼는 자아의 경계를 흐릿하게 함으로써 종교 의식의 주요 목표인 일체의 상태에 이르는 문을 열어준다. 한 연구에 의하면 반복적인 청각 및 시각 자극(의식적인 춤, 노래처럼)이 피질에 일으키는 리듬은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연구들에서는 리드미컬한 행위는 동시에 여러 감각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종종 의식의 일부를 이루는 다른 활동들-단식, 호흡 조절, 향 또는 그 밖의 방향제의 흡입 등-과 결합되어 여러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신체생리학에 비상한 정신 상태를 초래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자율 신경계의 활동만으로는 의식 도중에 경험하는 강한 감정적 상태들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하고 그 이상이 필요한 데 개인적인 의미(추상적인 단어나 소리가 아니라)를 가진 주문을 사용하는 명상자들이 높은 명상 단계에 도달하는 데 훨씬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넓게 볼 때, 명상 기법들은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마음에서 모든 의식적인 생각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동적 접근 방법과, 마음을 특정 대상에 완전히 집중시키는 것(예를 들어, 만트나나 다른 상징 또는 성경 구절)을 목적으로 하는 능동적 접근 방법이 그것이다.
수동적 접근 방법은 뇌의 오른쪽 주의영역(의지 행동의 주요 근원)에서 시작되어 마음을 감각 입력 정보뿐만 아니라 인지적 입력 정보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필요로 나타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의영역은 시상을 통해 변연계의 구조인 해마회로 하여금 신경 입력 정보의 흐름을 줄이게 만든다. 이 신경 정보의 차단은 정위영역을 포함한 많은 뇌구조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은 정보가 차단된다.(수입로가 차단된다) 명상의 초기 단계에서는 수입로 차단은 경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명상의 단계가 심화되면서 주의영역이 마음에서 생각을 없애려고 더 강하게 노력함에 따라 이 영역은 해마화와 협력하여 점점 더 많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차단한다.
신경 신호의 완전한 차단은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공간적 내용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를 결여하게 된다. 감각 입력 정보가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 정위영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음은 이것을 무한한 공간과 영원으로 또는 시간도 공간도 없는 텅 빈 진공으로 해석된다. 한편 자아라는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던 왼쪽 정위영역은 신체의 경계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마음이 지각하는 자아는 이제 한계가 없어진다. 사실 이제 자아라는 감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평 가
본 책은, 십자가가 중심이 되지 않는 인간의 모든 종교가 단지 동물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밝혀주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만든 rule 안에서만 행위한다. 밖으로 나가게 되면 의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뇌라는 기재를 분석하고 그 활용도를 아무리 넓혀도 자기에게만 용납되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승낙 받지 못한다. 자기를 위해 예수, 자기를 의한 신, 바로 이점을 고발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 지셨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지혜는 죄악이다.
첨부파일 : 신은왜우리곁을떠나지않는가.hwp (48.0K), Down:17
관리자(IP:124.♡.84.82)
09-03-03 23:19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 최신 두뇌과학이 밝혀낸 종교의 실체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엔드루 뉴버그(Andrew Newberg), 유진 다킬리(Eugene d’Aquili), 빈스 라우즈(Vince Rause)
번 역 : 이충호
출판사 : 한울림 출판사 (서울 : 2001)
모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해야 이야기가 통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신(神)의 문제는 남겨진 숙제처럼 과학 외곽에 방치되어 있다. 어쩌면 신을 있는 둥 없는 둥 취급하는 것이 요령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느낀다든지,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람이 등장할 때, 그 사람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은 과학의 임무 중의 하나이다.
신경생물학은, 이런 체험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점차 폭을 넓혀서 다른 동물의 두뇌와 사람의 두뇌를 비교하므로서, 신에 대한 감정은 정상적인 두뇌 활동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려 한다. 본 책은, 그동안 종교나 신비주의나 신앙에 대해서 불결한 미신처럼 다루었던 기존의 정신분석학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쓴 책이다. 과학이 스스로 자신의 폭을 좁혀서는 아니 된다고 보고 있다. 신에 대한 신앙까지 과학이 손을 대므로서 과학이 갖는 자폐증적인 증세를 과학적 신비주의로 치료를 하려고 한다.
사람의 두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름진 대뇌피질 속에는 모든 고차원의 지각 기능이 일어나는 곳이다. 뇌에서 가장 진화한 부분이다. 이 신피질이 진화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대뇌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언어와 예술, 신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차원 기능도 기초적인 생명 유지 체계와 호르몬의 활동과 기본적인 감정을 조절하는 더 원시적인 '피질하' 구조들의 바탕과 연관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원시적 두뇌조직은 인간의 신체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서 두뇌는 마음과 육체가 함께 결합하여 우리의 자아상과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장소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아상과 세계관도 외부적인 종교적 의식(儀式)이 없이는 신적 느낌을 갖는 효과를 볼 수 없다. 불과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연구자들은 종교 의례가 순전히 문화적 현상이라고 믿었으며 사회적 조건화의 산물이지 생물학적 산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인간 의식의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해보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관찰에 따르면 인간의 종교 형식과 동물의 행태에는 그 방식이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를 들면, 그 기본 형태에서 동물의 행동에는 구조화되고 패턴화된 반응들- 춤추기, 소리지르기, 머리 까닥거리기 등-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들은 리드미컬하고 반복적이다. 이 행위들은 종종 아주 극적이고 특이하여 의례 행위 외에는 어떤 실용적인 기능도 없다. 인간들에게도 이런 요소들이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그레고리오 성가의 장엄한 리듬에서부터 폴리네시아의 생동감 넘치는 다산(多産)의 춤 리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의례 행위에서 리듬과 반복은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또 사람의 의식에는 일상 생활에서는 아무런 실용적인 의미도 없는 독특한 행위 -절, 느린 행진, 손과 팔의 이상한 제스처 등 -볼 수 있다. 그것은 집단 구성원 간에 공격 행위를 감소시키고 집단 간의 강한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사회의 종교 행위의 뿌리에는 자신의 제한적인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생물의 신경생물학적 필요가 정교한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외부적 자극이 개인들의 두뇌에 어떤 영향을 주며 이런 행위에 같이 동참케 되는가?
리듬감이 가득한 종교행위는 신체의 억제계와 흥분계에서 자율 반응을 변화시킨다. 리듬이 빠를 경우- 예컨대 수피족의 춤이나 부두교의 열광적인 의식에서처럼- 흥분계는 점점 더 높은 수준으로 활성화된다. 이렇게 신경 활동의 수준이 점점 증가하면, 뇌의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일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외교관 해마회가 관여하게 된다. 이곳은 종종 다양한 부분들 사이에 신경 입력 정보의 흐름을 조절하는 일종의 수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조절 기능은 신경 활동의 수준을 완화시키고 뇌를 비교적 안정 상태로 유지시켜 준다. 예를 들면, 뇌의 활동이 너무 과도한 수준에 도달한 것을 감지한 해마회는 뇌의 활동이 진정될 때까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실상 뇌의 활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셈이다) 그 결과로 어떤 뇌 구조에는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신경 입력 정보의 정상적인 공급이 차단된다.
그러한 구조들 중 하나가 정위연합영역(자신을 나머지 세계와 구별하는 것을 도와주고, 공간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해주는 부분)인데, 그러한 정보의 흐름이 차단될 경우, 정위 영역은 이용할 수 있는 나머지 정보를 가지고 일을 수행한다. 신경학 용어로 표현한다면, 정위영역은 수입로(輸入路)가 차단된 것이다. 즉 신경 입력 정보를 거의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작동해야 한다. 수입로 차단은 자아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덜 명확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이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이 종종 경험하는 일체감의 원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일체감의 원인이 되는 이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찬송이나 명상기도와 같은 느릿한 의식 행동을 오랫동안 지속할 때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 수도 있다. 느린 리드미컬한 행위는 억제계를 자극한다. 억제계가 아주 높은 수준으로 작동할 때, 해마회의 억제 효과를 직접 활성화시켜 결국 정위영역의 수입로 차단을 가져오고, 결국에는 뇌가 느끼는 자아의 경계를 흐릿하게 함으로써 종교 의식의 주요 목표인 일체의 상태에 이르는 문을 열어준다. 한 연구에 의하면 반복적인 청각 및 시각 자극(의식적인 춤, 노래처럼)이 피질에 일으키는 리듬은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연구들에서는 리드미컬한 행위는 동시에 여러 감각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종종 의식의 일부를 이루는 다른 활동들-단식, 호흡 조절, 향 또는 그 밖의 방향제의 흡입 등-과 결합되어 여러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신체생리학에 비상한 정신 상태를 초래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 자율 신경계의 활동만으로는 의식 도중에 경험하는 강한 감정적 상태들을 만들어내기에 부족하고 그 이상이 필요한 데 개인적인 의미(추상적인 단어나 소리가 아니라)를 가진 주문을 사용하는 명상자들이 높은 명상 단계에 도달하는 데 훨씬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넓게 볼 때, 명상 기법들은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마음에서 모든 의식적인 생각을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수동적 접근 방법과, 마음을 특정 대상에 완전히 집중시키는 것(예를 들어, 만트나나 다른 상징 또는 성경 구절)을 목적으로 하는 능동적 접근 방법이 그것이다.
수동적 접근 방법은 뇌의 오른쪽 주의영역(의지 행동의 주요 근원)에서 시작되어 마음을 감각 입력 정보뿐만 아니라 인지적 입력 정보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필요로 나타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의영역은 시상을 통해 변연계의 구조인 해마회로 하여금 신경 입력 정보의 흐름을 줄이게 만든다. 이 신경 정보의 차단은 정위영역을 포함한 많은 뇌구조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은 정보가 차단된다.(수입로가 차단된다) 명상의 초기 단계에서는 수입로 차단은 경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명상의 단계가 심화되면서 주의영역이 마음에서 생각을 없애려고 더 강하게 노력함에 따라 이 영역은 해마화와 협력하여 점점 더 많은 신경 정보의 흐름을 차단한다.
신경 신호의 완전한 차단은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공간적 내용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를 결여하게 된다. 감각 입력 정보가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 정위영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음은 이것을 무한한 공간과 영원으로 또는 시간도 공간도 없는 텅 빈 진공으로 해석된다. 한편 자아라는 주관적인 감각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던 왼쪽 정위영역은 신체의 경계를 찾을 수 없게 된다. 마음이 지각하는 자아는 이제 한계가 없어진다. 사실 이제 자아라는 감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평 가
본 책은, 십자가가 중심이 되지 않는 인간의 모든 종교가 단지 동물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밝혀주고 있다. 인간은 자기가 만든 rule 안에서만 행위한다. 밖으로 나가게 되면 의미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뇌라는 기재를 분석하고 그 활용도를 아무리 넓혀도 자기에게만 용납되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승낙 받지 못한다. 자기를 위해 예수, 자기를 의한 신, 바로 이점을 고발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 지셨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지혜는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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