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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앙띠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성경신학고린도후서

앙띠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앙띠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쥘르 들뢰즈 (Gilles Deleuze), 펠릭스 가따리 (Fe'lix Guattari)
번 역 : 최명관
출판사 : 민음사

절대적인 객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차이성에 의한 생성되는 존재들과 양상들에 주목하는 들뢰즈의 철학은 본 책을 통해서도 그의 수평적 인식관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오이디푸스 이론을 반대한다는 제목을 달고 등장되는 이 책은 특히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을 반대하고 있는데, 정신적 외상(外傷)으로 드러난 결핍성으로서 인간의 욕망을 설명하는 라캉 이론에 반해 들뢰즈는 욕망은 도리어 다양한 질적 풍요로움을 생산하는 원천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인간에게 욕망이라는 있는데 이 욕망의 요구를 인간이 원대로 채워 줄 입장은 못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욕망을 부정적인 것보다 오히려 생산적인 힘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욕망에 대해서 인간이 과도하게 간섭하고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원초적 욕망이 발생된 생물적으로 열린 체제로서의 기계에 그대로 맡겨버려야 한다. 여기서 들뢰즈와 가따리는, 생성하는 기계론을 도입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만드는 나가는 기계이다. 생물을 기계라고 부르는 이유는, 욕망의 주체를 인간에게 의도적으로 두지 않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나 라캉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들뢰즈는 보고 있다. 즉 오이디푸스적 가족관은 실제적으로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화와 상당히 깊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부수지 않고서는 힘의 흐름의 다양화와 다형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실을 추상화하게 되면 구조화될 것이 뻔한데 여기에 구조 외부에 남겨진 잔여 부분의 혼돈적 역할이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의미라는 것은 구조 기호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연상이 발생되자마자 곧 이탈하여 해석 과정에서 새로움을 계속 창출하게 되고 창출되는 동기는, 탈규범적이다. 이 탈 규범적인 욕망에 준해서 현실을 파악해야 된다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생물들은 탈규범적 속성을 지닌 분자 차원에서 시발이 되는 기관 없는 신체로 구성되어 있다. 기관 없는 신체란 원질료와 같은 것으로서 욕망들은 이 기관 없는 신체를 통해 무한정으로 그 생산력을 리좀적으로 사회 전체에 확산시켜 나간다.

따라서 욕망이나 인간의 정신을 분석할 때, 정신분열증을 개별적 환자만 붙들고 모델로 삼을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제도와 법률과 조직과 역사 속에서 재발견해야 한다. 들뢰즈는 우선 토지사회부터 시작한다. 그는 국가 출현 이전의 원시 사회를 '토지기계'(여기서 '기계' 란 욕망을 생산하는 '공장'과 유사한 개념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므로서 욕망을 생산 기계의 일종으로 정렬시킨다. 토지 위에다가 자기 이름을 등록시키는 방식으로 토지는 하나의 신체가 된다. 욕망이 기계처럼 작렬하는 신체이다. 이 사회에서의 욕망은 친족 유지와 혼인 관계를 따라 일어나는 욕망이다. 선물을 주고받고 증여가 과잉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빚' 체계가 형성되었다.

이 체제가 욕망을 묶어 놓는 일종의 코드 같은 것이다. 빚에 대한 징벌이 가해지지만 그것은 채무자의 고통을 통해 채권자의 쾌감을 조성하기 위한 축제의 마당이다. 하지만 화폐가 등장하면서 부채가 값이라는 체계 안에서 등록이 되어 고정된 가치를 지닌 채 돈이 태어난 것이다. 값이 변동되면 덩달아 빚도 달라지고 돈 가치도 달라진다. 가치의 고갈 현상이 일어난다. 욕망의 흐름은 국가와 통치자인 군주를 출현시켰다. 이들을 법을 제정했다. 빚에 대한 보복적 관점에서 처벌하기 위해서이다. 질서체제를 잡아갔다.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초월적 기계가 된다.

야만스러운 전제군주기계이다. 소위 우등 계급이 열등 계급의 욕망을 거세시킴으로 오이디푸스적인 체제를 의식화시키고 절대 군주 체제를 다져 나갔다. 여기에 등장된 것이 국가 윤리, 사회 윤리이다. 대단히 강압적이다. 마치 무서운 아버지 같다. 이 기능을 사제와 경찰이 담당했다. 사실상 이런 것들은 집권자들의 오이디푸스적인 욕망을 봉합하기 위한 수작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토지의 교환에서 나오는 부채는 곧이어 국가에 대한 세금으로 바뀐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갑자기 새로운 창조 정신이 터져 나왔다. 욕망이 전제군주라는 사회적 신체로부터 탈예속된 것이다. 돈과, 지식의 풍성함과 토지 굴레에서 탈출을 원하는 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 자본주의가 발생된 것이다. 모든 체제에 대한 역작용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지금까지의 사회적 기계와 완전히 다른 것은, 초위치나 어떤 지정된 위치를 부여함으로서 정적인 안정화를 이루는 메카니즘이 아니라 일정 방향으로 욕망을 달리게 하용 함으로서 역동적인 면에서 안정화를 이루는 메카니즘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욕망의 구동은 아버지부터 억압을 염두에 두고 거기서 탈출을 시도하는 아들의 일생에서 계속 나타나는 분열증세 같은 징후를 보인다.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는 방식이 새로운 가치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곧 일정한 가치가 계속 기재되어 있는 돈을 통해서 모든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유형의 기관 없는 욕망의 신체로 간주되는 자본주의는 새롭게 모든 것을 돈에 속박시키는 연결 코드를 만들고야 만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끊임없이 극한으로 생산에 나서지만 또한 의도적으로 자원을 과잉으로 생산에다 투입하므로서 새로운 모자람을 항상 조장하고 늘 탈선을 강요하게 된다. 따라 잡으면서도 한편으로서 쫓기듯이 현장에서 도망치고 있다.

미친 듯이 계속해서 투자하는 것만이 욕망의 흐름을 유지하는 예속적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과잉생산이 평상적인 자유로운 욕망의 흐름까지 괴롭게 만든 것이다. 나중에 그저 돈의 흐름만 존재할 뿐이다. 잉여가치를 모르는 자연주의적 욕망과 이상론은 이 사회에서 정신병자로 취급당한다. 오, 이 잔인한 욕망의 법칙! 자본주의가 새로운 욕망의 흐름과 접속되지 않는 한 역사는 자본주의와 더불어 막을 내린다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저자는 세상을 보는 눈은, 인간의 실존에 근거하지 않는 욕망이론이다. 욕망의 흐름이 접속되지 않은 신체는 자신의 신체 기관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 원리가 역사 안의 사회체 속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 어떠한 권력체조차 이 욕망을 영구히 붙잡아 둘 수 없었던 것이다.

평 가

본 책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알려 준 사항은, 인간의 욕망을 다 담아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그릇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도 무한히 생산하고자하는 권력의지만이 인류의 역사 속을 홀로 휘젓고 다닐 뿐이라는 것이다.

힘은, 그것을 소지하려는 자를 도리어 소유해버리게 된다. 힘을 가져야 뭐든지 가치 있는 것을 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 허구를 저자는 철저하게 노출시키고 공박하고 있다. 이 공박은 소위 교회라고 불리우는 사회체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벌리는 모든 일은, 실상에 있어 자신의 무한한 욕망에 장악당한 채 그것을 코드화시켜 보려고 애쓴 결과이다. 성도가 참으로 이 시대와 이 세상을 사는 방식은 소리 없이 나즉히 숨죽이며 사는 것이다. 지극히 약하고 약한 분이 예수님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 13: 4)

힘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의 원리에 따라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천국의 원리이다. 무명의 신앙인은 그 어떤 세태 속에서도 결코 들뜨지 않는다. 환상을 찾아 해매는 혁명가도 아니요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는 개혁자도 아니라 단지 이미 완성된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영혼일 뿐이다. 이점을 발견하게 된 자가 참으로 진리를 아는 자이다.

첨부파일 : 앙띠오이디푸스.hwp (32.0K), Down:19

관리자(IP:124.♡.84.82)

09-02-24 23:31

앙띠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쥘르 들뢰즈 (Gilles Deleuze), 펠릭스 가따리 (Fe'lix Guattari)
번 역 : 최명관
출판사 : 민음사

절대적인 객관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차이성에 의한 생성되는 존재들과 양상들에 주목하는 들뢰즈의 철학은 본 책을 통해서도 그의 수평적 인식관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오이디푸스 이론을 반대한다는 제목을 달고 등장되는 이 책은 특히 자크 라캉의 욕망 이론을 반대하고 있는데, 정신적 외상(外傷)으로 드러난 결핍성으로서 인간의 욕망을 설명하는 라캉 이론에 반해 들뢰즈는 욕망은 도리어 다양한 질적 풍요로움을 생산하는 원천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인간에게 욕망이라는 있는데 이 욕망의 요구를 인간이 원대로 채워 줄 입장은 못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욕망을 부정적인 것보다 오히려 생산적인 힘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욕망에 대해서 인간이 과도하게 간섭하고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원초적 욕망이 발생된 생물적으로 열린 체제로서의 기계에 그대로 맡겨버려야 한다. 여기서 들뢰즈와 가따리는, 생성하는 기계론을 도입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만드는 나가는 기계이다. 생물을 기계라고 부르는 이유는, 욕망의 주체를 인간에게 의도적으로 두지 않기 위함이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나 라캉이 오해를 하고 있다고 들뢰즈는 보고 있다. 즉 오이디푸스적 가족관은 실제적으로 자본주의의 상대적 안정화와 상당히 깊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부수지 않고서는 힘의 흐름의 다양화와 다형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실을 추상화하게 되면 구조화될 것이 뻔한데 여기에 구조 외부에 남겨진 잔여 부분의 혼돈적 역할이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의미라는 것은 구조 기호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연상이 발생되자마자 곧 이탈하여 해석 과정에서 새로움을 계속 창출하게 되고 창출되는 동기는, 탈규범적이다. 이 탈 규범적인 욕망에 준해서 현실을 파악해야 된다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인간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생물들은 탈규범적 속성을 지닌 분자 차원에서 시발이 되는 기관 없는 신체로 구성되어 있다. 기관 없는 신체란 원질료와 같은 것으로서 욕망들은 이 기관 없는 신체를 통해 무한정으로 그 생산력을 리좀적으로 사회 전체에 확산시켜 나간다.

따라서 욕망이나 인간의 정신을 분석할 때, 정신분열증을 개별적 환자만 붙들고 모델로 삼을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제도와 법률과 조직과 역사 속에서 재발견해야 한다. 들뢰즈는 우선 토지사회부터 시작한다. 그는 국가 출현 이전의 원시 사회를 '토지기계'(여기서 '기계' 란 욕망을 생산하는 '공장'과 유사한 개념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므로서 욕망을 생산 기계의 일종으로 정렬시킨다. 토지 위에다가 자기 이름을 등록시키는 방식으로 토지는 하나의 신체가 된다. 욕망이 기계처럼 작렬하는 신체이다. 이 사회에서의 욕망은 친족 유지와 혼인 관계를 따라 일어나는 욕망이다. 선물을 주고받고 증여가 과잉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빚' 체계가 형성되었다.

이 체제가 욕망을 묶어 놓는 일종의 코드 같은 것이다. 빚에 대한 징벌이 가해지지만 그것은 채무자의 고통을 통해 채권자의 쾌감을 조성하기 위한 축제의 마당이다. 하지만 화폐가 등장하면서 부채가 값이라는 체계 안에서 등록이 되어 고정된 가치를 지닌 채 돈이 태어난 것이다. 값이 변동되면 덩달아 빚도 달라지고 돈 가치도 달라진다. 가치의 고갈 현상이 일어난다. 욕망의 흐름은 국가와 통치자인 군주를 출현시켰다. 이들을 법을 제정했다. 빚에 대한 보복적 관점에서 처벌하기 위해서이다. 질서체제를 잡아갔다.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초월적 기계가 된다.

야만스러운 전제군주기계이다. 소위 우등 계급이 열등 계급의 욕망을 거세시킴으로 오이디푸스적인 체제를 의식화시키고 절대 군주 체제를 다져 나갔다. 여기에 등장된 것이 국가 윤리, 사회 윤리이다. 대단히 강압적이다. 마치 무서운 아버지 같다. 이 기능을 사제와 경찰이 담당했다. 사실상 이런 것들은 집권자들의 오이디푸스적인 욕망을 봉합하기 위한 수작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토지의 교환에서 나오는 부채는 곧이어 국가에 대한 세금으로 바뀐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갑자기 새로운 창조 정신이 터져 나왔다. 욕망이 전제군주라는 사회적 신체로부터 탈예속된 것이다. 돈과, 지식의 풍성함과 토지 굴레에서 탈출을 원하는 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 자본주의가 발생된 것이다. 모든 체제에 대한 역작용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지금까지의 사회적 기계와 완전히 다른 것은, 초위치나 어떤 지정된 위치를 부여함으로서 정적인 안정화를 이루는 메카니즘이 아니라 일정 방향으로 욕망을 달리게 하용 함으로서 역동적인 면에서 안정화를 이루는 메카니즘이라는 점에 있다. 이러한 욕망의 구동은 아버지부터 억압을 염두에 두고 거기서 탈출을 시도하는 아들의 일생에서 계속 나타나는 분열증세 같은 징후를 보인다.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는 방식이 새로운 가치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곧 일정한 가치가 계속 기재되어 있는 돈을 통해서 모든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유형의 기관 없는 욕망의 신체로 간주되는 자본주의는 새롭게 모든 것을 돈에 속박시키는 연결 코드를 만들고야 만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끊임없이 극한으로 생산에 나서지만 또한 의도적으로 자원을 과잉으로 생산에다 투입하므로서 새로운 모자람을 항상 조장하고 늘 탈선을 강요하게 된다. 따라 잡으면서도 한편으로서 쫓기듯이 현장에서 도망치고 있다.

미친 듯이 계속해서 투자하는 것만이 욕망의 흐름을 유지하는 예속적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과잉생산이 평상적인 자유로운 욕망의 흐름까지 괴롭게 만든 것이다. 나중에 그저 돈의 흐름만 존재할 뿐이다. 잉여가치를 모르는 자연주의적 욕망과 이상론은 이 사회에서 정신병자로 취급당한다. 오, 이 잔인한 욕망의 법칙! 자본주의가 새로운 욕망의 흐름과 접속되지 않는 한 역사는 자본주의와 더불어 막을 내린다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저자는 세상을 보는 눈은, 인간의 실존에 근거하지 않는 욕망이론이다. 욕망의 흐름이 접속되지 않은 신체는 자신의 신체 기관이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 원리가 역사 안의 사회체 속에 그대로 적용된다. 그 어떠한 권력체조차 이 욕망을 영구히 붙잡아 둘 수 없었던 것이다.

평 가

본 책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알려 준 사항은, 인간의 욕망을 다 담아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그릇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도 무한히 생산하고자하는 권력의지만이 인류의 역사 속을 홀로 휘젓고 다닐 뿐이라는 것이다.

힘은, 그것을 소지하려는 자를 도리어 소유해버리게 된다. 힘을 가져야 뭐든지 가치 있는 것을 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 허구를 저자는 철저하게 노출시키고 공박하고 있다. 이 공박은 소위 교회라고 불리우는 사회체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앞세우고 벌리는 모든 일은, 실상에 있어 자신의 무한한 욕망에 장악당한 채 그것을 코드화시켜 보려고 애쓴 결과이다. 성도가 참으로 이 시대와 이 세상을 사는 방식은 소리 없이 나즉히 숨죽이며 사는 것이다. 지극히 약하고 약한 분이 예수님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 13: 4)

힘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의 원리에 따라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천국의 원리이다. 무명의 신앙인은 그 어떤 세태 속에서도 결코 들뜨지 않는다. 환상을 찾아 해매는 혁명가도 아니요 교회의 개혁을 시도하는 개혁자도 아니라 단지 이미 완성된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영혼일 뿐이다. 이점을 발견하게 된 자가 참으로 진리를 아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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