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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국가 권력 사회주의성경신학-

국가 권력 사회주의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국가 권력 사회주의

이 근 호 목사

저 자 : 니코스 풀란차스
번 역 : 박병영
출판사 : 백의 출판사

일, 이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이상적인 국가 정체성 정립을 시도했던 것이 20세기였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하는 국가 체제는 모호한 상태에 있다. 그렇지만 그 동안 시도했던 실험들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들이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귀중한 교훈들을 참작하면 현 시대에 적합한 국가상을 정립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저자가 왜 이런 결론을 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점검해 본다.

현 시대는 '권위적 국가주의' 시대가 되어 있다. 그것은 권력을 국가가 전부 함유해야만 된다는 의식 때문에 정당한 것처럼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장안에서의 하나의 계급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도 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생산관계 및 사회적 분업에 기초한 현 경제 구조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경제 안에는 끊임없이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권력이란 바로 이런 계급투쟁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노동력 자체를 상품화함으로써 잉여노동을 잉여가치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 구조로 인해 국가와 경제의 공간 사이에 상대적인 분리가 일어난다. 각자 고유한 공간을 따로 갖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치적 공간이 경제적인 타사회계급 공간에 정치적으로 관여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생산관계의 실제적 모습을 은폐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권력'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이데올로기는 결코 중립일 수 없으며 도리어 계급적으로 다가와서 억압하고 지배하면서 경제 재생산에 관여한다.

요컨대 계급권력은 다른 권력에 대해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미셀 푸코는 말하기를, 권력이란 경제적 과정의 외재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권력이 경제적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권력이 착취 기능을 계속 수행하는 것을 통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선행하는 '자연 상태'니 '사회 상태'니 하는 것은 없다. 시초부터 바로 국가는 생산관계의 투쟁을 포함하는 투쟁의 장을 조직하는데 이것이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이다.

근대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적 분업의 거대한 재 조직화 기반이다. 사회적 분업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나뉘어진다. 이것에서 정신노동(지식-권력)은 국가 장치에서 물질화 된다. 지식은 곧 권력과 통하게 된 것이다. 국가는 육체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정신노동을 구현하고 구조화한다. 마치 중세 시대의 교회를 대신하는 역할이다. 이 지식-권력에서 전략과 전술을 낳는 실천 담론이 형성된다. 국가 자체가 과잉코드화 되는 것이다. 이 틀에 의해 재생산을 위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재분할이 이루어진다.

언어의 통일도 그 일환 중의 하나이다. 문법과 철자법을 권력 조직망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국가 내에서 개인-인격은 정치적 존재를 획득하지 않고서는 통일될 수 없으며 사회적 존재에 도달할 수도 없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는 국가의 권위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근대 국가가 사적 영역을 침해하는 것에는 법적인 또는 원리적인 제한이 없다. 이는 권력에 어떠한 한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가 개인적-사적 영역의 어떠한 자연 상태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권력을 제한하는 한계는 대중 투쟁과 계급들 사이의 세력관계에 의존한다. 이러한 한계가 바로 대의제 민주주의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지형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 대의제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인권과 시민권이 발생된 뿌리도 국가와 대치한 개인에 의해 획득한 것이 아니라 피억압계급들의 획득성과이다. 자본주의의 계급은 열려 있는 계급이다. 따라서 사회의 개체화의 존재성 자체로부터 국가의 조직적 틀을 연역하고 그리고 다음으로 그 틀을 계급투쟁과 정치적 지배와 관계 짓는 것이 국가의 물질화 과정의 전부가 아니다.

개체화된 행위자의 분배와 할당과 유통이 국가 역할을 발생시킨다. 국가는 행위자가 혈통이나 출생과는 무관한 계급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자격을 부여하고, 복종시키는 역할을 요구받게 된다. 이러한 개체화의 메카니즘은 국가의 물질성에 자본주의적 계급성들의 특수성을 새겨 넣는 과정이다. 여기에 법이 동원된다.

법치국가는 전쟁을 독점한다는 의미에서 폭력의 조직화는 필수적이다. 미셸 푸코의 이론에 의하면, 현대에 와서 국가 권력은 법률이 아니라 기술에, 법이 아니라 표준화에, 형벌이 아니라 통제에 의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근대 권력은 조직된 물리적 폭력에 기초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상징적 조직 및 동의의 조직화와 억압의 내면화('두뇌 속의 경찰')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에 대한 원망(願望) 또는 애호(愛好) 속에서 '복종의 근거'를 찾으려는 형태를 취하는 권력행사의 주관화이다. 이 때 법이 개입된다면, 법은 물리적 억압의 코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존재와 언표 및 담론을 통해서 신민들의 원망과 애호를 이끌어 내는 지배자라는 형상으로서 등장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오류이다. 근대 권력이 더 이상 물리적 폭력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 널리 펴져 있는 환상이다. 국가 폭력의 역할이 과소평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어떻게 투쟁의 존재를 허용할 수 있는가가 밝혀질 수 없다. 권력에 대한 저항의 논거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실제로 조직된 물리적 폭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의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같은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현실 국가에 있어 투쟁은 항상 권력의 기초이다. 고대나 중세 국가와는 달리 자본주의 국가는 합법적인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고 있다. 국가에 의해 독점된 물리적 폭력은, 이 폭력이 직접 행사되지 않을 때조차도, 그것은 지배가 작용하는 사회체의 물질성을 형성한다.

심지어 국가 권력을 한계 지우는 의회의 구성조차도 근대 국민군대라는 제도가 없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국가는 종종 법의 외부에서 행동할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법에 반(反)하여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제정한 법-규범을 위반한다.

자본주의의 법은 생산관계로부터 국가의 상대적 분리와 관련되어 있다. 즉 경제적 지배계급(부르주아)의 행위자와 국가의 지지자 및 국가의 행위자가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밀접히 관련 있는 것이다. 일치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치 투쟁에서 고유한 좌표를 정해 놓고 규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자본주의 법이다.

자본주의는 특수한 공간, 영토, 국경 개념을 창출했다. 들뢰즈-콰타리가 주장하는 그런 자연주의적 고정된 영토 개념이 아니다. 노동자가 노동수단에서 분리되고 생산분업이 활성화되면서 자본의 이동과 단순재생산이 아닌 확대재생산, 대량의 화폐유통으로 인해 코드로 분절되는 공간과 시간이 발생했다.

여기에서는 주체는 없고 단지 계급투쟁만 있을 뿐이다. 권력이란 측정가능한 양도 아니요 소유될 사물도 아니다. 모든 것이 관계적이다. 현대 사회의 특징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민주주의의 거리의 멀어짐이다. 즉 중앙집권화의 강화이다. 의회의 쇠퇴와 행정부-행정부처의 우월적 역할은 국민적 대표성의 단절 현상이다. 현재의 모든 권력은 권위적 국가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민중운동의 전개를 통해서, 그리고 직접 기층 민주주의적 기구 및 자주관리적 거점의 분산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권력이란 누가 무엇을 하기 위해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민주주의란 국가장치의 분쇄와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표성이 상실된 대의제 민주주의와 국가 우상주의를 철폐시키고 그 자리에 자주관리적 '대항 권력'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중권력' 상황으로 이끌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평 가

인간이 자기를 스스로 지탱하고자 하는 것은 가나안 이방민족에서나 현대 국가에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국가란, 보이지 않는 우상일 뿐이다. 곧 인간의 자기 모습이다.

첨부파일 : 국가권력사회주의.hwp (32.0K), Down:10

관리자(IP:124.♡.84.82)

09-02-24 16:08

국가 권력 사회주의

이 근 호 목사

저 자 : 니코스 풀란차스
번 역 : 박병영
출판사 : 백의 출판사

일, 이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이상적인 국가 정체성 정립을 시도했던 것이 20세기였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하는 국가 체제는 모호한 상태에 있다. 그렇지만 그 동안 시도했던 실험들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들이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귀중한 교훈들을 참작하면 현 시대에 적합한 국가상을 정립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저자가 왜 이런 결론을 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점검해 본다.

현 시대는 '권위적 국가주의' 시대가 되어 있다. 그것은 권력을 국가가 전부 함유해야만 된다는 의식 때문에 정당한 것처럼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는 어디까지나 권력의 장안에서의 하나의 계급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도 계급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은 생산관계 및 사회적 분업에 기초한 현 경제 구조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경제 안에는 끊임없이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권력이란 바로 이런 계급투쟁의 산물이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노동력 자체를 상품화함으로써 잉여노동을 잉여가치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 구조로 인해 국가와 경제의 공간 사이에 상대적인 분리가 일어난다. 각자 고유한 공간을 따로 갖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치적 공간이 경제적인 타사회계급 공간에 정치적으로 관여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생산관계의 실제적 모습을 은폐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이 '권력'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이데올로기는 결코 중립일 수 없으며 도리어 계급적으로 다가와서 억압하고 지배하면서 경제 재생산에 관여한다.

요컨대 계급권력은 다른 권력에 대해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미셀 푸코는 말하기를, 권력이란 경제적 과정의 외재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권력이 경제적 관계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권력이 착취 기능을 계속 수행하는 것을 통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선행하는 '자연 상태'니 '사회 상태'니 하는 것은 없다. 시초부터 바로 국가는 생산관계의 투쟁을 포함하는 투쟁의 장을 조직하는데 이것이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이다.

근대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적 분업의 거대한 재 조직화 기반이다. 사회적 분업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으로 나뉘어진다. 이것에서 정신노동(지식-권력)은 국가 장치에서 물질화 된다. 지식은 곧 권력과 통하게 된 것이다. 국가는 육체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정신노동을 구현하고 구조화한다. 마치 중세 시대의 교회를 대신하는 역할이다. 이 지식-권력에서 전략과 전술을 낳는 실천 담론이 형성된다. 국가 자체가 과잉코드화 되는 것이다. 이 틀에 의해 재생산을 위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재분할이 이루어진다.

언어의 통일도 그 일환 중의 하나이다. 문법과 철자법을 권력 조직망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국가 내에서 개인-인격은 정치적 존재를 획득하지 않고서는 통일될 수 없으며 사회적 존재에 도달할 수도 없다. 그 결과 개인의 자유는 국가의 권위 앞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근대 국가가 사적 영역을 침해하는 것에는 법적인 또는 원리적인 제한이 없다. 이는 권력에 어떠한 한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가 개인적-사적 영역의 어떠한 자연 상태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권력을 제한하는 한계는 대중 투쟁과 계급들 사이의 세력관계에 의존한다. 이러한 한계가 바로 대의제 민주주의이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지형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 대의제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의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인권과 시민권이 발생된 뿌리도 국가와 대치한 개인에 의해 획득한 것이 아니라 피억압계급들의 획득성과이다. 자본주의의 계급은 열려 있는 계급이다. 따라서 사회의 개체화의 존재성 자체로부터 국가의 조직적 틀을 연역하고 그리고 다음으로 그 틀을 계급투쟁과 정치적 지배와 관계 짓는 것이 국가의 물질화 과정의 전부가 아니다.

개체화된 행위자의 분배와 할당과 유통이 국가 역할을 발생시킨다. 국가는 행위자가 혈통이나 출생과는 무관한 계급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자격을 부여하고, 복종시키는 역할을 요구받게 된다. 이러한 개체화의 메카니즘은 국가의 물질성에 자본주의적 계급성들의 특수성을 새겨 넣는 과정이다. 여기에 법이 동원된다.

법치국가는 전쟁을 독점한다는 의미에서 폭력의 조직화는 필수적이다. 미셸 푸코의 이론에 의하면, 현대에 와서 국가 권력은 법률이 아니라 기술에, 법이 아니라 표준화에, 형벌이 아니라 통제에 의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근대 권력은 조직된 물리적 폭력에 기초하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상징적 조직 및 동의의 조직화와 억압의 내면화('두뇌 속의 경찰')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권력에 대한 원망(願望) 또는 애호(愛好) 속에서 '복종의 근거'를 찾으려는 형태를 취하는 권력행사의 주관화이다. 이 때 법이 개입된다면, 법은 물리적 억압의 코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의 존재와 언표 및 담론을 통해서 신민들의 원망과 애호를 이끌어 내는 지배자라는 형상으로서 등장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오류이다. 근대 권력이 더 이상 물리적 폭력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 널리 펴져 있는 환상이다. 국가 폭력의 역할이 과소평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어떻게 투쟁의 존재를 허용할 수 있는가가 밝혀질 수 없다. 권력에 대한 저항의 논거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논리에 의하면 실제로 조직된 물리적 폭력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동의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같은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현실 국가에 있어 투쟁은 항상 권력의 기초이다. 고대나 중세 국가와는 달리 자본주의 국가는 합법적인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고 있다. 국가에 의해 독점된 물리적 폭력은, 이 폭력이 직접 행사되지 않을 때조차도, 그것은 지배가 작용하는 사회체의 물질성을 형성한다.

심지어 국가 권력을 한계 지우는 의회의 구성조차도 근대 국민군대라는 제도가 없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국가는 종종 법의 외부에서 행동할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법에 반(反)하여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제정한 법-규범을 위반한다.

자본주의의 법은 생산관계로부터 국가의 상대적 분리와 관련되어 있다. 즉 경제적 지배계급(부르주아)의 행위자와 국가의 지지자 및 국가의 행위자가 직접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밀접히 관련 있는 것이다. 일치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치 투쟁에서 고유한 좌표를 정해 놓고 규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자본주의 법이다.

자본주의는 특수한 공간, 영토, 국경 개념을 창출했다. 들뢰즈-콰타리가 주장하는 그런 자연주의적 고정된 영토 개념이 아니다. 노동자가 노동수단에서 분리되고 생산분업이 활성화되면서 자본의 이동과 단순재생산이 아닌 확대재생산, 대량의 화폐유통으로 인해 코드로 분절되는 공간과 시간이 발생했다.

여기에서는 주체는 없고 단지 계급투쟁만 있을 뿐이다. 권력이란 측정가능한 양도 아니요 소유될 사물도 아니다. 모든 것이 관계적이다. 현대 사회의 특징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민주주의의 거리의 멀어짐이다. 즉 중앙집권화의 강화이다. 의회의 쇠퇴와 행정부-행정부처의 우월적 역할은 국민적 대표성의 단절 현상이다. 현재의 모든 권력은 권위적 국가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민중운동의 전개를 통해서, 그리고 직접 기층 민주주의적 기구 및 자주관리적 거점의 분산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권력이란 누가 무엇을 하기 위해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민주주의란 국가장치의 분쇄와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표성이 상실된 대의제 민주주의와 국가 우상주의를 철폐시키고 그 자리에 자주관리적 '대항 권력'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중권력' 상황으로 이끌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평 가

인간이 자기를 스스로 지탱하고자 하는 것은 가나안 이방민족에서나 현대 국가에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국가란, 보이지 않는 우상일 뿐이다. 곧 인간의 자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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