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과학 : 과학과 히브리 창조론의 조화
신의 과학 : 과학과 히브리 창조론의 조화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신의 과학 : 과학과 히브리 창조론의 조화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제랄드 슈뢰더
번 역 : 이정배
출판사 : 범양사 출판부
종교에 있어 과학이란 골칫거리이며, 과학에 있어 종교란 박대할 처지가 못되는 옛 친구 같은 것이다. 막무가내 입담 하나로 버티어 온 옛 친구의 행세에 대해서 속으로는 측은함을 금할 길 없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과학의 치마 속으로 집어던지기에는 너무 큰 정신적 손실이 예상되므로 달래듯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달래는 것도 정도 문제이다. 결국 무의미하게 될 비과학적인 요소는 자르는 것이 과학의 생리에 맞다. 그래서 개념상은 종교라도, 실내용은 과학의 논리로만 채우는 타협책을 과학 쪽에서 넌지시 제시해 본다. 옛 친구인 종교가 미워서가 아니라 종교를 불쌍히 여겨 아예 구원해 주려는 것이다. 본 책이 그러한 책이다.
구약 성경의 창조론을 다룰 때 주의할 점은, 지구가 생성되기 전이라든지 아담에 태어나기 전의 상황은 결코 지구의 환경이나 아담의 관점에서 봐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지구나 인간의 관점을 초월해서 우주를 총괄해서 지배하는 물리 원칙은 이미 현대 과학에 의해서 확정되어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상대적으로 강한 중력 안에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이 밝혔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지구 중력에 준해서 지구나 해와 별의 탄생 전의 시간을 동일한 질적 간격으로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계산해 보니, 우주의 역사 150억년은 오늘날의 질적 시간의 차원에서 6일과 완벽하게 합치된다. 성경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단 자연 법칙을 만드시고 자신이 제정한 자연법칙을 지키시면서 일하신다. 물론 인간에게는 그 자연법칙에 합당한 바탕으로 참여하기 위해 자유 의지를 주시고 이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적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다. 창조 사역을 표현하는데는 두 개의 히브리어의 사용되는 출애굽기 31:17에는 분명히 'make'라는 차원을 언급하신다.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여기서 '창조'는 바라, , create, 가 아니라 make, 아사, 이다.)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재료를 일단 만드시고 그 재료를 가지고 6일 동안 창조에 나서신 것이다. 그 재료는 하늘과 땅인데 더불어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자연 법칙도 함유된다. 흔히 종교를 공격하던 주종의 과학이론이 다윈의 진화론이었는데 오늘날의 현대 물리학과 현대 생물학은 다윈의 진화론과 신다윈론도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결코 점진적으로 진화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즉 원시 무기질 환경→아미노산→단백질→DNA→진핵 생명체→원핵 생명체→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무척추동물→척추동물)로 진화되게 아니다. 화석의 증거들이 결코 다윈의 진화론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하게 된다. 1909년, 윌 코트라는 지질학자는 무려 60000개나 되는 화석을 한 지역에서 수집했었다. 그 화석의 진가는 1989년에 가서야 밝혀졌는데 그 화석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생명체가 점진적으로 발전되고 진화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5억 3000만 년 전, 캄브리아기에 한꺼번에 지상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들이 DNA의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했다는 모든 학설을 뒤엎는 것이다. 실제로 수학적 계산을 해봐도 DNA의 돌연변이의 의한 새로운 종이나 생물의 출현은 0에 가깝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도리어 DNA는 일단 생물이 된 이상 그 종의 안정적 경향성은 너무나도 확고하다는 점을 보일 뿐이다. 이 확고성 또한 수학적으로 볼 때 기적적인 안정성의 연속이다. 신다윈주의자들의(대표자:도킨스) 주장은, 진화되었다는 그 대상을 미리 염두에 두고 진화를 설명하기에 실제 진화 과정의 정확성보다는 투입한 자료와 그것을 정확인 분석해 낸 컴퓨터의 정확성만 드러낼 줄뿐이다. 꼭 진화라는 표현을 쓴다면, 신에 의해 생명을 대한 어떤 지속적 목적 생물들이 창조된 유신론적 진화론이어야 옳다. 물론 시계처럼 기계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시계는 자기 증식을 하지 못하지만 생물들은 그 스스로를 만들 뿐 아니라 자신과 조금씩 다른 후손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것은 자연 환경에 대한 선택권을 생물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했다는 말이 된다.
사람 창조에 대해서도 히브리 성경 해석에 있어 유원인의 두 개골을 보고서 당황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15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이나 약간 후대(4만년 후)에 나타난 크로마뇽인들은 비록, 그들이 매장의 관습을 가지고 있고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사용하고 토기를 만들고, 바늘을 제조한다 할지라도 참 인간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 나타난 참 인간,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네샤마를 받은 자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네샤마( )란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코에 불어넣어 준 '신'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들 때는 모든 새와 짐승과 유인원들의 공통적 요소인 네페쉬( )적 땅의 존재를 재료로 해서 새롭게 make하신 것이다. 창세기 1:26에도 창조(create)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제조(make)로 나와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이러한 인간 작업을 하나님은 우주 전체의 창조 사역의 목표로 삼으신 것이다. 창세기 1:27에서 create(창조)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네샤마적 존재로서의 인간만이 인간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이다. 어떤 창조론자들은 과학적 노아 홍수 이전의 연대측정법의 측정치를 모두 부정하는데 그 생각은 잘못이다. 탄소 14 측정법은, 대기 중의 방사성 탄소(즉 탄소 14)의 잔여 양이 우주복사열의 강도에 의해 변동되므로 믿을게 못되지만 우라늄-토륨 측정 방식이나 열熱 루미네선스 측정법은 우주 복사열과 상관없으므로 아담 이후와 홍수 이전의 청동기 유물에 대해서 타당한 연대를 제공한다. 만약 홍수로 인해 아담 시대 이전의 유물이 달라졌다면 이들 청동기 자료도 같이 변경되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들 연대 측정법은 거뜬하게 노아 홍수를 통과한다. 어쨌든 아담 이전에도 현 아담 같은 인간의 육체를 지닌 선조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육체들이었고 그들의 후손들이 바로 네피림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6:2-4) 유인원들과 그 후손들은 그저 사람의 모양을 한 짐승에 불과한 자들이다. 이들은 물론 여타의 동물들과는 공통적인 두뇌 구조를 두루 지니고는 있다. 예를 들면, r-콤플렉스(파충류: 생존 본능 필요한 기능), 번연계(포유류: 자식에 대한 애정과 분노, 등 기타 감정 표현 기능), 대뇌 피질(원숭이: 분석, 판단 기능)을 두루 갖추었지만 구약 성경에만 나와 있는 신비적 요소인 네샤마가 누락되어 있다. 참된 인간은 아담의 후손에 국한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 앞에서 윤리적이고 영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이다. 이 인간의 영성을 고려한다면 오늘날 과학자들이 구약 성경의 심오한 지혜를 거역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오직 과학만 내세우는 것이 절대적 인과율이 깨어져 버린 현대 양자 역학 시대의 현실 정서에 부합되지도 않는다. 과학도 전부를 모르기에 침묵해야 할 것은 침묵하고, 영성의 인간이 기록한 성서의 지혜에 기울려야 진정한 우주의 창조 목적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평 가
과학과 히브리 사상의 융합한 저자의 사상과 여기에다 번역자의 주장처럼 신약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삽입해서 과정 하나님관(God-in-Process)에 준한 창조론을 펼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창조론이 완성될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호기심은 그 어떤 경우에도 무죄(無罪)가 아닌 것이 아니다. 인간들의 진리 추구나 생명 추구는 모두 그리스도에 의해 애초에 정죄 당했다. 문제는 왜 자꾸만 창조론에 관심 두는 그런 경향성을 띠면서 신을 사모하고 발견하려 하는가에 대한 언약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려는 악마적 성향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이상적인 창조론을 정죄한다. 그러면서도 창조에 대하여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계속해서 호기심을 보이는 자신들의 지독한 근성에 대해서 문제 있다고 봐야 한다. 도대체 창조론 가지고 어디에 써먹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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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IP:124.♡.84.82)
09-02-24 13:16
신의 과학 : 과학과 히브리 창조론의 조화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제랄드 슈뢰더
번 역 : 이정배
출판사 : 범양사 출판부
종교에 있어 과학이란 골칫거리이며, 과학에 있어 종교란 박대할 처지가 못되는 옛 친구 같은 것이다. 막무가내 입담 하나로 버티어 온 옛 친구의 행세에 대해서 속으로는 측은함을 금할 길 없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과학의 치마 속으로 집어던지기에는 너무 큰 정신적 손실이 예상되므로 달래듯이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달래는 것도 정도 문제이다. 결국 무의미하게 될 비과학적인 요소는 자르는 것이 과학의 생리에 맞다. 그래서 개념상은 종교라도, 실내용은 과학의 논리로만 채우는 타협책을 과학 쪽에서 넌지시 제시해 본다. 옛 친구인 종교가 미워서가 아니라 종교를 불쌍히 여겨 아예 구원해 주려는 것이다. 본 책이 그러한 책이다.
구약 성경의 창조론을 다룰 때 주의할 점은, 지구가 생성되기 전이라든지 아담에 태어나기 전의 상황은 결코 지구의 환경이나 아담의 관점에서 봐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지구나 인간의 관점을 초월해서 우주를 총괄해서 지배하는 물리 원칙은 이미 현대 과학에 의해서 확정되어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상대적으로 강한 중력 안에서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이 밝혔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지구 중력에 준해서 지구나 해와 별의 탄생 전의 시간을 동일한 질적 간격으로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계산해 보니, 우주의 역사 150억년은 오늘날의 질적 시간의 차원에서 6일과 완벽하게 합치된다. 성경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연 법칙을 무시하고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단 자연 법칙을 만드시고 자신이 제정한 자연법칙을 지키시면서 일하신다. 물론 인간에게는 그 자연법칙에 합당한 바탕으로 참여하기 위해 자유 의지를 주시고 이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적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다. 창조 사역을 표현하는데는 두 개의 히브리어의 사용되는 출애굽기 31:17에는 분명히 'make'라는 차원을 언급하신다.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여기서 '창조'는 바라, א, create, 가 아니라 make, 아사, ח 이다.)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재료를 일단 만드시고 그 재료를 가지고 6일 동안 창조에 나서신 것이다. 그 재료는 하늘과 땅인데 더불어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자연 법칙도 함유된다. 흔히 종교를 공격하던 주종의 과학이론이 다윈의 진화론이었는데 오늘날의 현대 물리학과 현대 생물학은 다윈의 진화론과 신다윈론도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결코 점진적으로 진화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즉 원시 무기질 환경→아미노산→단백질→DNA→진핵 생명체→원핵 생명체→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무척추동물→척추동물)로 진화되게 아니다. 화석의 증거들이 결코 다윈의 진화론을 용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하게 된다. 1909년, 윌 코트라는 지질학자는 무려 60000개나 되는 화석을 한 지역에서 수집했었다. 그 화석의 진가는 1989년에 가서야 밝혀졌는데 그 화석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생명체가 점진적으로 발전되고 진화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5억 3000만 년 전, 캄브리아기에 한꺼번에 지상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생물들이 DNA의 돌연변이에 의해 진화했다는 모든 학설을 뒤엎는 것이다. 실제로 수학적 계산을 해봐도 DNA의 돌연변이의 의한 새로운 종이나 생물의 출현은 0에 가깝다.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도리어 DNA는 일단 생물이 된 이상 그 종의 안정적 경향성은 너무나도 확고하다는 점을 보일 뿐이다. 이 확고성 또한 수학적으로 볼 때 기적적인 안정성의 연속이다. 신다윈주의자들의(대표자:도킨스) 주장은, 진화되었다는 그 대상을 미리 염두에 두고 진화를 설명하기에 실제 진화 과정의 정확성보다는 투입한 자료와 그것을 정확인 분석해 낸 컴퓨터의 정확성만 드러낼 줄뿐이다. 꼭 진화라는 표현을 쓴다면, 신에 의해 생명을 대한 어떤 지속적 목적 생물들이 창조된 유신론적 진화론이어야 옳다. 물론 시계처럼 기계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시계는 자기 증식을 하지 못하지만 생물들은 그 스스로를 만들 뿐 아니라 자신과 조금씩 다른 후손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것은 자연 환경에 대한 선택권을 생물에게 하나님께서 부여했다는 말이 된다.
사람 창조에 대해서도 히브리 성경 해석에 있어 유원인의 두 개골을 보고서 당황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15만 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이나 약간 후대(4만년 후)에 나타난 크로마뇽인들은 비록, 그들이 매장의 관습을 가지고 있고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사용하고 토기를 만들고, 바늘을 제조한다 할지라도 참 인간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에 나타난 참 인간,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네샤마를 받은 자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네샤마(ת)란 창세기 2:7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코에 불어넣어 준 '신'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들 때는 모든 새와 짐승과 유인원들의 공통적 요소인 네페쉬()적 땅의 존재를 재료로 해서 새롭게 make하신 것이다. 창세기 1:26에도 창조(create)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제조(make)로 나와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이러한 인간 작업을 하나님은 우주 전체의 창조 사역의 목표로 삼으신 것이다. 창세기 1:27에서 create(창조)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네샤마적 존재로서의 인간만이 인간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이다. 어떤 창조론자들은 과학적 노아 홍수 이전의 연대측정법의 측정치를 모두 부정하는데 그 생각은 잘못이다. 탄소 14 측정법은, 대기 중의 방사성 탄소(즉 탄소 14)의 잔여 양이 우주복사열의 강도에 의해 변동되므로 믿을게 못되지만 우라늄-토륨 측정 방식이나 열熱 루미네선스 측정법은 우주 복사열과 상관없으므로 아담 이후와 홍수 이전의 청동기 유물에 대해서 타당한 연대를 제공한다. 만약 홍수로 인해 아담 시대 이전의 유물이 달라졌다면 이들 청동기 자료도 같이 변경되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들 연대 측정법은 거뜬하게 노아 홍수를 통과한다. 어쨌든 아담 이전에도 현 아담 같은 인간의 육체를 지닌 선조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육체들이었고 그들의 후손들이 바로 네피림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6:2-4) 유인원들과 그 후손들은 그저 사람의 모양을 한 짐승에 불과한 자들이다. 이들은 물론 여타의 동물들과는 공통적인 두뇌 구조를 두루 지니고는 있다. 예를 들면, r-콤플렉스(파충류: 생존 본능 필요한 기능), 번연계(포유류: 자식에 대한 애정과 분노, 등 기타 감정 표현 기능), 대뇌 피질(원숭이: 분석, 판단 기능)을 두루 갖추었지만 구약 성경에만 나와 있는 신비적 요소인 네샤마가 누락되어 있다. 참된 인간은 아담의 후손에 국한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 앞에서 윤리적이고 영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이다. 이 인간의 영성을 고려한다면 오늘날 과학자들이 구약 성경의 심오한 지혜를 거역할 이유가 없다. 차라리 오직 과학만 내세우는 것이 절대적 인과율이 깨어져 버린 현대 양자 역학 시대의 현실 정서에 부합되지도 않는다. 과학도 전부를 모르기에 침묵해야 할 것은 침묵하고, 영성의 인간이 기록한 성서의 지혜에 기울려야 진정한 우주의 창조 목적을 알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평 가
과학과 히브리 사상의 융합한 저자의 사상과 여기에다 번역자의 주장처럼 신약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삽입해서 과정 하나님관(God-in-Process)에 준한 창조론을 펼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창조론이 완성될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호기심은 그 어떤 경우에도 무죄(無罪)가 아닌 것이 아니다. 인간들의 진리 추구나 생명 추구는 모두 그리스도에 의해 애초에 정죄 당했다. 문제는 왜 자꾸만 창조론에 관심 두는 그런 경향성을 띠면서 신을 사모하고 발견하려 하는가에 대한 언약적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려는 악마적 성향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이상적인 창조론을 정죄한다. 그러면서도 창조에 대하여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계속해서 호기심을 보이는 자신들의 지독한 근성에 대해서 문제 있다고 봐야 한다. 도대체 창조론 가지고 어디에 써먹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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