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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기호와 현대 예술성경신학미가

기호와 현대 예술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기호와 현대 예술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번 역 : 김광현
출판사 : 열린 책들

다양한 문화들을 허용하는 시대를 맞이해서 이들 문화 사이에서 소통의 매체가 되는 기호에 대해 자연적으로 철학적 해석이 풍미해졌다. 서로가 문화의 주체로서 한자리를 점하고 있다는 자부심들이 대단하기에 동등한 입지 조정을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어깨 수위를 엇비슷하게 맞추어 주려는 배려를 통해서 기호학은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성사시키는 메타언어로서의 구실을 단단히 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풍토에서 독보적으로 튀는 의견을 고수하고 개진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망치기 일 수라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문화가 이 현대 시대에 들어와서는 눈치껏 목청을 수그려뜨릴 것을 강요받는 것은, 기독교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이데오르기 성향을 듬뿍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호학은 그 어떤 독보적 의미 추구를 용납하지 않고 단호하게 그 시도를 이단으로 매도한다. 왜냐하면 의사소통을 방해하기 때문이요 더 나아가서 현 문화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호학에 관해 전반적으로 언급하면서 특히 고정된 구조를 만들어 내보려는 구조주의에 대해서 맹렬하게 비난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현실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특정 모델을 구성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그것은 가면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도적인 조작이 가미되는 그 선택적 행위로 말미암아 현실은 새로운 변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립되는 또 다른 현실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신(神)을 언급할 때에도 '결핍으로서의 무(無)'를 대립시킬 때만 신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밝혀진다. 이 현상을 '현존과 부재(不在)의 변증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신은 자체적으로 완전하다고 한다면 신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모른다. 모든 현실을 한눈에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인간에게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체를 한눈에 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모르는 것들을 서로 서로 말해주어야 한다. 이런 신과의 차이로 인해 인간은 현존이 아닌 부재 쪽에 위치에서 모든 철학적 담화를 출발하게 된다. 이런 긴장 속에서 언어 행위가 개시된다.

말한다는 것은 무언가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폭로된다는 뜻이요 그 언어 행위는 존재함을 미리 가정하는 행위이다. 동시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도 같이 분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차이 위에 위치하고 늘 중심이 부재된 상태에서 끝없는 환유와 은유의 전환이 일어난다. 이런 차이에 의해서 언어는 파악될 수 없는 정보의 흐름을 확률에 의거해서 접근하고자 함으로서 게임의 영역이 되어 버린다. 기호학의 한계가 여기에 있는데 곧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코드에 준해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코드란 의미를 영글어내는 단위의 체계이자 결합 규칙이다. 문법과 같은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물론 말하는 자의 언어 능력으로 간주되는 개념들의 총체이지만 사회적 공동 규약으로서의 언어 능력이요 제약이다. 이것이 기호학이 가진 상위적 한계이며 이것 말고 기호학은 신호의 세계를 의미의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하위적 경계선도 갖고 있다.

신호를 통해 정보가 전달되는데 여기서 특정 질서가 발생하게 되고 코드가 확률적으로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 메시지 정보 코드 대한 기계적 반응에서는 의미라는 것이 사실상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수신자가 되어 신호를 받게 되면 여기서 의미라는 것이 생긴다. 의미라는 것에는 필히 문화적 코드가 개입된다. 상징어와 결합하는 지시대상은 하나의 개체로만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총체적인 면과 일부분적으로 결합된다. 그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문화적 단위들끼리 변별성과 잉여성(수사학)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되는 것이다.

담화 또한 그것을 선행하는 단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어들의 근원에 담화가 있다. 마치 장기 게임에서 다른 말들과의 배치에 의거하는 말의 가치가 변화되는 것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문화권이 만나면 서로 다른 의미를 나타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적 메시지에 있어 그 정보량은 매우 풍부해져 결과적으로 모호해 진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소위 '하위 차원'이라는 언어 이전의 자의적 코드에 대해서 탐색해야 한다. 기이함과 낯설게 함을 통해 우주적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 작품들이다. 위반된 운율이 새로운 운율로서 합법성을 지닐 때 예술적 창조력은 발휘된다.

시각의 차원에서도 기호학은 성립된다. 표현의 실체가 바뀌어도 표현의 형태는 불변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코드가 발생한다. 도상기호는 여러 영상 가운데서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떠올리게 하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델과 대등한 관계에 놓이게 한다. 형상으로서는 분활 되지만 기호로서는 분활 되지 않는 의미소를 나름대로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 의미소들의 다중적인 분절을 통해 식별이 가능하다.

음표를 가지고 표현하는 음악이나, 카드놀이와 같이 모양과 색깔에 따라 다양한 규칙을 보여준다. 시각적 코드가 언어 코드보다 편리한 점은, 규약적인 디지털 개념보다 다소의 정도를 나타내는 아날로그적 개념 표현을 쉽게 해주는 실용적 이유 때문이다. 영화나 현대 미술에 있어 기호학은 형상을 통해 엄청난 양의 기호를 보유할 수 있다. 변별적 차이를 드러내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 형태를 통해서 숱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현대 광고에 있어는 특히 설득을 위한 수사학적 코드가 들어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메시지에 주목하게 만드는 자극을 유발하기 위해 잉여 정보를 도입하여 대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적 단위를 대조하고 반립하면서 연결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이데오르기적인 기대치마저 뒤엎고 재구성하기도 한다.

건축물도 단순한 지시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형태와 기능을 명령하는 코드를 지닌 하나의 기호 체계이다. 특히 건축이 지닌 의사소통 기능은 역사에 따라 그 원래의 기능은 상실되고 다른 기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건축은 역사와 사화를 바꾸는 방법이 아니라 사회가 건축에게 강요하는 것을 도로 토해 놓는 코드를 지니게 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기호학을 구성하는 코드와 메시지와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상황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변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개념이란 사물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들이 적용시킨 구조라는 점에서 존재론적으로 닫힌 구조론을 제창할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접근하는 열린 모델이 바로 임상학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기호학 연구라는 것이다. 특히 예술 작품을 분석하는데는 대상을 응고시키는 구조주의적 정의보다 해석학적 방법이 작품의 특수성을 규명하는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에 적용되는 코드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나, 혹은 정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의 조건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메시지만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은 모두 다 사이비 철학으로 전락된다는 충고도 아울러 던져주고 있다.

성경적 평가

사람들이 메시지를 해석하는데 있어 선과 악, 참과 진리, 이익과 불이익이라는 정신적 요인을 통해서 풀이하게 된다. 개인적인 이러한 분석 행위는 기존 사회의 가치 형성에 있어 균형과 조정에 기여하는바 되는데 이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규범과 권력에 순응하고 굴복하는 식으로 흘려 가게 마련이다. 안정된 문화 창달이라는 정당성을 내세워보지만 인간은 현 체제 안에서 유연하고 부담 없는 의사소통만이 하도록 압력 받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조치에 구애받지 않는다. 영생으로 통하는 좁은 길은 결코 많은 사람들이 의사소통의 결과로 이어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의 개입은 도발적으로 인간 세계의 의기투합을 심판하고 부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뿐이다.

첨부파일 : 기호와현대예술.hwp (32.0K), Down:18

관리자(IP:124.♡.84.82)

09-02-24 10:02

기호와 현대 예술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번 역 : 김광현
출판사 : 열린 책들

다양한 문화들을 허용하는 시대를 맞이해서 이들 문화 사이에서 소통의 매체가 되는 기호에 대해 자연적으로 철학적 해석이 풍미해졌다. 서로가 문화의 주체로서 한자리를 점하고 있다는 자부심들이 대단하기에 동등한 입지 조정을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어깨 수위를 엇비슷하게 맞추어 주려는 배려를 통해서 기호학은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성사시키는 메타언어로서의 구실을 단단히 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풍토에서 독보적으로 튀는 의견을 고수하고 개진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망치기 일 수라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문화가 이 현대 시대에 들어와서는 눈치껏 목청을 수그려뜨릴 것을 강요받는 것은, 기독교가 형이상학적이면서도 이데오르기 성향을 듬뿍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호학은 그 어떤 독보적 의미 추구를 용납하지 않고 단호하게 그 시도를 이단으로 매도한다. 왜냐하면 의사소통을 방해하기 때문이요 더 나아가서 현 문화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호학에 관해 전반적으로 언급하면서 특히 고정된 구조를 만들어 내보려는 구조주의에 대해서 맹렬하게 비난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현실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특정 모델을 구성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그것은 가면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도적인 조작이 가미되는 그 선택적 행위로 말미암아 현실은 새로운 변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립되는 또 다른 현실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신(神)을 언급할 때에도 '결핍으로서의 무(無)'를 대립시킬 때만 신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밝혀진다. 이 현상을 '현존과 부재(不在)의 변증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신학자들이 말하기를, 신은 자체적으로 완전하다고 한다면 신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모른다. 모든 현실을 한눈에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인간에게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전체를 한눈에 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모르는 것들을 서로 서로 말해주어야 한다. 이런 신과의 차이로 인해 인간은 현존이 아닌 부재 쪽에 위치에서 모든 철학적 담화를 출발하게 된다. 이런 긴장 속에서 언어 행위가 개시된다.

말한다는 것은 무언가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폭로된다는 뜻이요 그 언어 행위는 존재함을 미리 가정하는 행위이다. 동시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도 같이 분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이런 차이 위에 위치하고 늘 중심이 부재된 상태에서 끝없는 환유와 은유의 전환이 일어난다. 이런 차이에 의해서 언어는 파악될 수 없는 정보의 흐름을 확률에 의거해서 접근하고자 함으로서 게임의 영역이 되어 버린다. 기호학의 한계가 여기에 있는데 곧 그 사회가 만들어내는 코드에 준해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코드란 의미를 영글어내는 단위의 체계이자 결합 규칙이다. 문법과 같은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물론 말하는 자의 언어 능력으로 간주되는 개념들의 총체이지만 사회적 공동 규약으로서의 언어 능력이요 제약이다. 이것이 기호학이 가진 상위적 한계이며 이것 말고 기호학은 신호의 세계를 의미의 세계와 연결시켜 주는 하위적 경계선도 갖고 있다.

신호를 통해 정보가 전달되는데 여기서 특정 질서가 발생하게 되고 코드가 확률적으로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 메시지 정보 코드 대한 기계적 반응에서는 의미라는 것이 사실상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수신자가 되어 신호를 받게 되면 여기서 의미라는 것이 생긴다. 의미라는 것에는 필히 문화적 코드가 개입된다. 상징어와 결합하는 지시대상은 하나의 개체로만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총체적인 면과 일부분적으로 결합된다. 그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문화적 단위들끼리 변별성과 잉여성(수사학)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되는 것이다.

담화 또한 그것을 선행하는 단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어들의 근원에 담화가 있다. 마치 장기 게임에서 다른 말들과의 배치에 의거하는 말의 가치가 변화되는 것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문화권이 만나면 서로 다른 의미를 나타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적 메시지에 있어 그 정보량은 매우 풍부해져 결과적으로 모호해 진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소위 '하위 차원'이라는 언어 이전의 자의적 코드에 대해서 탐색해야 한다. 기이함과 낯설게 함을 통해 우주적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 작품들이다. 위반된 운율이 새로운 운율로서 합법성을 지닐 때 예술적 창조력은 발휘된다.

시각의 차원에서도 기호학은 성립된다. 표현의 실체가 바뀌어도 표현의 형태는 불변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코드가 발생한다. 도상기호는 여러 영상 가운데서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떠올리게 하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모델과 대등한 관계에 놓이게 한다. 형상으로서는 분활 되지만 기호로서는 분활 되지 않는 의미소를 나름대로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 의미소들의 다중적인 분절을 통해 식별이 가능하다.

음표를 가지고 표현하는 음악이나, 카드놀이와 같이 모양과 색깔에 따라 다양한 규칙을 보여준다. 시각적 코드가 언어 코드보다 편리한 점은, 규약적인 디지털 개념보다 다소의 정도를 나타내는 아날로그적 개념 표현을 쉽게 해주는 실용적 이유 때문이다. 영화나 현대 미술에 있어 기호학은 형상을 통해 엄청난 양의 기호를 보유할 수 있다. 변별적 차이를 드러내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 형태를 통해서 숱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현대 광고에 있어는 특히 설득을 위한 수사학적 코드가 들어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메시지에 주목하게 만드는 자극을 유발하기 위해 잉여 정보를 도입하여 대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적 단위를 대조하고 반립하면서 연결시키는 것이다. 때로는 이데오르기적인 기대치마저 뒤엎고 재구성하기도 한다.

건축물도 단순한 지시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형태와 기능을 명령하는 코드를 지닌 하나의 기호 체계이다. 특히 건축이 지닌 의사소통 기능은 역사에 따라 그 원래의 기능은 상실되고 다른 기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건축은 역사와 사화를 바꾸는 방법이 아니라 사회가 건축에게 강요하는 것을 도로 토해 놓는 코드를 지니게 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기호학을 구성하는 코드와 메시지와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상황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변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개념이란 사물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들이 적용시킨 구조라는 점에서 존재론적으로 닫힌 구조론을 제창할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인 접근하는 열린 모델이 바로 임상학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기호학 연구라는 것이다. 특히 예술 작품을 분석하는데는 대상을 응고시키는 구조주의적 정의보다 해석학적 방법이 작품의 특수성을 규명하는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에 적용되는 코드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나, 혹은 정반대로 커뮤니케이션의 조건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메시지만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은 모두 다 사이비 철학으로 전락된다는 충고도 아울러 던져주고 있다.

성경적 평가

사람들이 메시지를 해석하는데 있어 선과 악, 참과 진리, 이익과 불이익이라는 정신적 요인을 통해서 풀이하게 된다. 개인적인 이러한 분석 행위는 기존 사회의 가치 형성에 있어 균형과 조정에 기여하는바 되는데 이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규범과 권력에 순응하고 굴복하는 식으로 흘려 가게 마련이다. 안정된 문화 창달이라는 정당성을 내세워보지만 인간은 현 체제 안에서 유연하고 부담 없는 의사소통만이 하도록 압력 받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조치에 구애받지 않는다. 영생으로 통하는 좁은 길은 결코 많은 사람들이 의사소통의 결과로 이어가는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의 개입은 도발적으로 인간 세계의 의기투합을 심판하고 부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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