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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공관복음 문제 :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 본성경신학마가복음

공관복음 문제 :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 본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공관복음 문제 :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 본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안병철
출판사 : 가톨릭대학 출판부

진리 찾기를 위한 집요함과 끈질김은 목회자에게 있어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러나 그러한 집착이 자동적으로 신앙의 열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과도한 학문 정신이요 과학 정신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진리 찾기 정신으로 성경에 접근한 책이 여기 있다. 공관 복음 상호 간에 어떤 관계에 놓여 있으며 집필하게 된 동기나 사상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탐색해 간 책이다.

공관 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세 복음서들이 외형상 진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당연히 궁금증이 일어난다. 이 복음서들의 저자들은 원래 무엇을 참고로 하여 각기 각색한 것일까? 원래의 자료 찾기 작업의 취지는 참 예수상을 정립하는데 있어 세 복음서 간의 차이성이 눈의 가시처럼 거추장스럽다고 보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복음서 상호 간에 다르다는 말은, 셋 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충분치 않다는 아쉬움을 유발한다. 단 이들 복음서 기록자들의 의도와 나름대로의 사상을 이해하므로서 총괄적인 예수상 정립은 독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들 개성 있는 세 복음서 각자의 윤곽을 어느 정도 구성하게 되면 원래의 참된 예수님 사상에 종합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세 복음의 출처를 찾아내는 방식은 무엇인가?

세 복음을 우선 둘씩 둘씩 상호 간에 짝을 짓고 이 두 복음서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일단 가려낸다. 여기서 공통성이란 단순히 내용상 일치점만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가 기록된 차례까지 일치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내용뿐만 아니라 사건 배열 순서까지 일치된다면 이것은 저자의 임의로 창작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선행되는 자료에서 두 저자가 다 충실하게 인용한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선행되는 자료를 같이 인용했는데 내용과 배열에 있어 차이점은 왜 나타나는가?

바로 이런 차이점이 있다는 점 때문에 세 복음은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았음이 증명된다. 즉 저자 나름대로 또 다른 자료를 참조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의 경우 마태복음 말고도 누가복음과도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는 종속되어 있지 않기에 누가복음이 인용한 선(先) 자료를(BC) 마가도 같이 인용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또 마태가 인용한 선 자료를(AC) 마가도 역시 인용할 수 있다. 특히 마가복음은, 마태, 누가, 마가 세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전승(C)의 사건 배열을 철저히 종속됨을 나타낸다.

또한 마가복음 구조를 살펴보면, 마태나 누가에 따로 따로 나오는 내용들을 마가가 임의로 그 둘을 결합시킨 내용들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이 병합 현상이다. 이러한 병합 현상은 마태나 누가 복음에는 없는 현상이다. 이것은 곧 선 마태 자료, 선 누가 자료에 해당에 내용을 마가가 독자적으로 참조한 것이다. 그 대신 마태나 누가 복음에서는 중복 현상이 있다. 처음에는 마가복음과 같은 취지로 그 내용을 사용하면서도 또 다른 상황에서는 똑같은 내용을 마가복음의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또 다시 거론하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이 병합 현상과 중복 현상을 종합해 보면 마태와 누가 복음서는 각자의 편집 의도를 지니고 마가복음과 더불어 인용될 수 있는 원래의 자료를 사용하고는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데 마태나 누가에게는, 세 복음서 공통 전승인 C의 사건 배열을 따르지 않는 일정하게 규격화된 공통된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을 Q 라고 호칭한다. 물론 이 Q 자료를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마태나 누가가 각자의 편집 의향에 따라 다르게 배치한다. 그러면 세 복음서의 편집 의향은 초창기의 자료들의 사상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세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내용은 (C) 초창기 12사도의 복음서이다. 이 복음서의 주된 사상은 다음과 같다.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예고, 다윗의 아들이라는 예수상 확립, 죄 사해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 유대인들의 관습에 대한 예수님의 질타, 자발적인 청빈 사상, 12제자들이 주축이 되는 새로운 예수 가족 출현 등의 내용이다. 바로 이러한 전승이 안디옥 교회로 흘러 들어갔음을 추측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바로 7 집사들의 책임 하에 운영되던 교회였다.

이들 헬라인들의 복음은 (AC) 이방인 구원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믿었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내용들이 마태와 마가복음에 삽입되었다. 즉 할례 받지 않는 자에게도 예수님의 기적의 떡은 제공되는 것을 봐서 구원은 유대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에게도 확산됨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 백성이라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도리어 무화과나무의 저주처럼 말라비틀어진다는 것이다. 성전을 정화하는 의식이나 희생의 제물 바침이 없이도 회개의 동반한 죄 고백만 있으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사도 바울이 실시한 전도 여행에 등장했던 복음서가 있다. (BC) 소위 바울 환경권에서 통용되던 복음서로서 마가와 누가 복음에서 공통적으로 인용한 내용들이다. 여기에는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도 바울이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신앙을 자신의 이익 추구의 원천으로 삼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다. 바로 이들을 겨냥해서 인용된 것이다. 그리고 노출된 복음의 비밀성과, 악령을 축출하는 활동, 특히 복음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번에는 마태와 누가가 공통적으로 사용한 자료가 있다. 소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복음서'이다.(Q)

이 자료는, 유대 땅 내에서 이방 나라 취급받는 가버나움에 살던 고넬료와 같은 로마 군병들 사이에서 신앙을 가졌던 자들의 복음서이다. 이들에 의해 가이사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경건하고 진실 되게 하나님을 섬겼던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돌들로도 얼마든지 아브라함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관복음서의 각 저자들은 그들이 처해 있던 선교적 상황을 고려해서 거기에 적합한 전승을 골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서를 편집해서 펴낸 것이다.

성경적인 평가

저자는, 공관 복음 내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그 유사성을 원 복음서 존재의 흔적으로 간주하고 탐색 작업을 펼쳤다. 또 내세우는 다른 가설로는, 신앙 공동체가 교인들의 교리 교육과 전례를 전수할 목적에 다급해서 예수님과 관련되는 자료를 수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서가 요청된 이유라는 것이다. 즉 공관 복음서는 과도기적인 교회들이 각기 서로 다른 필요에 의해 출현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과 마찬가지로 복음서나 사울 서신이나 다 같이 성령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근본 원칙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저자는 복음서의 차이 남의 이유와 원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리지 않고 있다. 누가 복음의 저자가 비록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펴봤지만 결코 자의의 의도나 뜻은 전혀 개입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생성과 존립과 운영은 완벽하게 인간의 손을 떠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사건이 이를 반영한다. 그리고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이나 빌립 집사가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난 것이나 사도 바울의 모든 행적이 다 그러하다. 따라서 복음서끼리의 유사성 개념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차라리 모든 복음서가 스스로 완전함을 증거 해야 할 것이다.

다각적으로 교회에 대해 유용함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앞에서 복음서로 남겨졌다는 점 그 자체가 곧 기적이요 완전성이다. 따라서 복음서를 새삼스럽게 통합시킨다든지 다른 원전을 염두에 두어서는 아니 된다. 복음서 원전 찾기에 나서는 작업, 그 자체가 복음서나 사도가 인정하지 않는 신앙 행태이다.

첨부파일 : 공관복음문제.hwp (31.5K), Down:38

관리자(IP:124.♡.84.82)

09-02-23 22:16

공관복음 문제 :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 본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안병철
출판사 : 가톨릭대학 출판부

진리 찾기를 위한 집요함과 끈질김은 목회자에게 있어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러나 그러한 집착이 자동적으로 신앙의 열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과도한 학문 정신이요 과학 정신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진리 찾기 정신으로 성경에 접근한 책이 여기 있다. 공관 복음 상호 간에 어떤 관계에 놓여 있으며 집필하게 된 동기나 사상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철저하게 탐색해 간 책이다.

공관 복음은,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세 복음서들이 외형상 진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여기에 당연히 궁금증이 일어난다. 이 복음서들의 저자들은 원래 무엇을 참고로 하여 각기 각색한 것일까? 원래의 자료 찾기 작업의 취지는 참 예수상을 정립하는데 있어 세 복음서 간의 차이성이 눈의 가시처럼 거추장스럽다고 보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복음서 상호 간에 다르다는 말은, 셋 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충분치 않다는 아쉬움을 유발한다. 단 이들 복음서 기록자들의 의도와 나름대로의 사상을 이해하므로서 총괄적인 예수상 정립은 독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들 개성 있는 세 복음서 각자의 윤곽을 어느 정도 구성하게 되면 원래의 참된 예수님 사상에 종합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세 복음의 출처를 찾아내는 방식은 무엇인가?

세 복음을 우선 둘씩 둘씩 상호 간에 짝을 짓고 이 두 복음서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일단 가려낸다. 여기서 공통성이란 단순히 내용상 일치점만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가 기록된 차례까지 일치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내용뿐만 아니라 사건 배열 순서까지 일치된다면 이것은 저자의 임의로 창작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선행되는 자료에서 두 저자가 다 충실하게 인용한 것임을 장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선행되는 자료를 같이 인용했는데 내용과 배열에 있어 차이점은 왜 나타나는가?

바로 이런 차이점이 있다는 점 때문에 세 복음은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았음이 증명된다. 즉 저자 나름대로 또 다른 자료를 참조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의 경우 마태복음 말고도 누가복음과도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서로가 서로에게는 종속되어 있지 않기에 누가복음이 인용한 선(先) 자료를(BC) 마가도 같이 인용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또 마태가 인용한 선 자료를(AC) 마가도 역시 인용할 수 있다. 특히 마가복음은, 마태, 누가, 마가 세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전승(C)의 사건 배열을 철저히 종속됨을 나타낸다.

또한 마가복음 구조를 살펴보면, 마태나 누가에 따로 따로 나오는 내용들을 마가가 임의로 그 둘을 결합시킨 내용들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이 병합 현상이다. 이러한 병합 현상은 마태나 누가 복음에는 없는 현상이다. 이것은 곧 선 마태 자료, 선 누가 자료에 해당에 내용을 마가가 독자적으로 참조한 것이다. 그 대신 마태나 누가 복음에서는 중복 현상이 있다. 처음에는 마가복음과 같은 취지로 그 내용을 사용하면서도 또 다른 상황에서는 똑같은 내용을 마가복음의 취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또 다시 거론하는 경우를 말한다. 따라서 이 병합 현상과 중복 현상을 종합해 보면 마태와 누가 복음서는 각자의 편집 의도를 지니고 마가복음과 더불어 인용될 수 있는 원래의 자료를 사용하고는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데 마태나 누가에게는, 세 복음서 공통 전승인 C의 사건 배열을 따르지 않는 일정하게 규격화된 공통된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을 Q 라고 호칭한다. 물론 이 Q 자료를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마태나 누가가 각자의 편집 의향에 따라 다르게 배치한다. 그러면 세 복음서의 편집 의향은 초창기의 자료들의 사상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세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내용은 (C) 초창기 12사도의 복음서이다. 이 복음서의 주된 사상은 다음과 같다.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한 예고, 다윗의 아들이라는 예수상 확립, 죄 사해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 유대인들의 관습에 대한 예수님의 질타, 자발적인 청빈 사상, 12제자들이 주축이 되는 새로운 예수 가족 출현 등의 내용이다. 바로 이러한 전승이 안디옥 교회로 흘러 들어갔음을 추측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바로 7 집사들의 책임 하에 운영되던 교회였다.

이들 헬라인들의 복음은 (AC) 이방인 구원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믿었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내용들이 마태와 마가복음에 삽입되었다. 즉 할례 받지 않는 자에게도 예수님의 기적의 떡은 제공되는 것을 봐서 구원은 유대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에게도 확산됨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 백성이라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도리어 무화과나무의 저주처럼 말라비틀어진다는 것이다. 성전을 정화하는 의식이나 희생의 제물 바침이 없이도 회개의 동반한 죄 고백만 있으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사도 바울이 실시한 전도 여행에 등장했던 복음서가 있다. (BC) 소위 바울 환경권에서 통용되던 복음서로서 마가와 누가 복음에서 공통적으로 인용한 내용들이다. 여기에는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들어 있다.

사도 바울이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신앙을 자신의 이익 추구의 원천으로 삼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다. 바로 이들을 겨냥해서 인용된 것이다. 그리고 노출된 복음의 비밀성과, 악령을 축출하는 활동, 특히 복음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번에는 마태와 누가가 공통적으로 사용한 자료가 있다. 소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복음서'이다.(Q)

이 자료는, 유대 땅 내에서 이방 나라 취급받는 가버나움에 살던 고넬료와 같은 로마 군병들 사이에서 신앙을 가졌던 자들의 복음서이다. 이들에 의해 가이사랴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경건하고 진실 되게 하나님을 섬겼던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돌들로도 얼마든지 아브라함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관복음서의 각 저자들은 그들이 처해 있던 선교적 상황을 고려해서 거기에 적합한 전승을 골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서를 편집해서 펴낸 것이다.

성경적인 평가

저자는, 공관 복음 내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그 유사성을 원 복음서 존재의 흔적으로 간주하고 탐색 작업을 펼쳤다. 또 내세우는 다른 가설로는, 신앙 공동체가 교인들의 교리 교육과 전례를 전수할 목적에 다급해서 예수님과 관련되는 자료를 수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서가 요청된 이유라는 것이다. 즉 공관 복음서는 과도기적인 교회들이 각기 서로 다른 필요에 의해 출현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과 마찬가지로 복음서나 사울 서신이나 다 같이 성령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근본 원칙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저자는 복음서의 차이 남의 이유와 원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리지 않고 있다. 누가 복음의 저자가 비록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펴봤지만 결코 자의의 의도나 뜻은 전혀 개입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생성과 존립과 운영은 완벽하게 인간의 손을 떠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사건이 이를 반영한다. 그리고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이나 빌립 집사가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난 것이나 사도 바울의 모든 행적이 다 그러하다. 따라서 복음서끼리의 유사성 개념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차라리 모든 복음서가 스스로 완전함을 증거 해야 할 것이다.

다각적으로 교회에 대해 유용함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앞에서 복음서로 남겨졌다는 점 그 자체가 곧 기적이요 완전성이다. 따라서 복음서를 새삼스럽게 통합시킨다든지 다른 원전을 염두에 두어서는 아니 된다. 복음서 원전 찾기에 나서는 작업, 그 자체가 복음서나 사도가 인정하지 않는 신앙 행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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