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주체는 죽었는가 : 현대철학의 포스트 모던 경향성경신학[철학]

주체는 죽었는가 : 현대철학의 포스트 모던 경향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주체는 죽었는가 : 현대철학의 포스트 모던 경향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강영안
출판사 : 문예출판사

오늘날의 철학은 자체적으로 나타난 딜레마를 부끄럼 없이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 여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모든 이에게 단비와 같은 것이다. 저자는, 종교의 도움 없이도 철학이 구비해야 제 품위를 다시 회복시킬 방안을 제시한다. 네비나스가 현대 철학을 구출해 준다. 음울함 속에서 비옥한 윤리성을 끄집어 내준다. 종교마저 안으로 삭여 버리고 사람 사는 맛을 회복시켜 준 이 네비나스의 철학의 특이성이 어떤 철학적 한계 안에서 시작된 것인가?

주체 철학으로부터의 주체 지움

주체 철학의 시작은 데카르트부터이다. 세계를 지탱하는 근거와 그것을 인식해 내는 유한 자아로서의 관계를 정립하기 시작했는데 대상을 앞에 세우는 부동의 위치에 주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자아의 존재로부터 대상으로 나아갈 때는 오직 사유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자기 존재 이외에 대해서는 진정한 존재의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과 존재의 분리를 극복하고 인식과 행위의 보편적인 근거를 찾아야 할 과제를 칸트는 떠맡았다.

인간이라는 주체는 공간과 시간 의식을 통해 주어진 형식적 조건이다. 이 주체의 주체성을 떠나서는 세계는 아무 것도 규정될 수 없다. 하지만 인간들이 무한하게 실현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뭔가 하나의 이념의 세계를 전제해야만 했다. 어떻게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에 관한 의식이 꼭 발생되어야만 하는가? 셀링은, 순수한 절대 존재를 오직 인간의 자아 안에서만 찾기를 요구한다.

그래야 인간은 객관 세계의 미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관이나 객관에 의해서는 제약받지 않는 '무제약자'를 찾아야 한다. 주관도 아니요 객관도 아니면서 모든 지식의 실질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최고 원리로서의 무제약자의 자리는, 자아의 자발성으로 표출되는 절대 자아에게 있다고 보았다. 불변하는 자아성과 무제약적인 자유와 무한의 활동성을 실현하는 절대 자아는, 결코 자아 반성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속하지 않고 초월적인 절대자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념론적 주체 사유에 커다란 전환이 온다. 사회적, 실존적 요소를 고려한 주체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구체적 삶에서 형성된 주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 주체란, 헤겔이 주장한 추상적 사유로서의 주체관을 탈피하여 현실에서 빚어지는 무한과 유한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그대로 팽팽하게 맞이해야 하는 실존적 자아를 뜻한다. 우선 자아의 감성적 단계에서는 순간적인 행복으로 충족된 삶을 살려고 하지만 주어지는 것은 반복되는 지겨움과 공허감뿐이다. 진정한 자기만의 삶은 없고 일반적 인간상을 모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무한성이 결여된 이러한 삶은 결국 절망으로 끝나는데 하지만 이러한 절망이 인간으로 하여금 윤리적 단계에 접어들게 한다.

이것은 스스로 절대적인 가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자신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개인으로 하여금 사회 보편적 규범에 개입하는 삶을 살게 한다. 그러나 개별성의 관점에서 볼 때 아직도 완전한 자아실현은 아니다. 신과 단독자 관계를 가질 때 즉 신 앞에서 홀로 서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자아를 찾는다.

이처럼 키에르케고르가 주체를 파악하기 위한 신 앞에 데려가려는 것이 비해 니체는 아예 주체의 죽음을 선언해 버린다. 주체란 기껏해야 전통이 만들어 낸 가상된 개념이다. 전통적 형이상학은, 이 세계를 떠받쳐 주는 실체가 필히 요청되어야 한다는 강한 신앙으로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욕망을 버리고 스스로 입법자가 되고 창조자는 되는 것이 참된 자아라는 것이다. 니체에 있어 주체 개인은 초월적 주체, 혹은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에게로 복귀하는 주체가 아니다. 단지 자연으로의 복귀만 있을 뿐이다.

현대 철학에 넘어와서, 푸코가 이해하는 주체는, 어떤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자신과 일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주체상이 그 시대, 그 역사에 있어 권력 관계에서 구성된 것들이다.

푸코가 주체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조명했다면 라캉은 정신분석학적으로 규명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주체 개념은 자기 자신과의 소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즉 인간은 상상적 질서에서의 상징적 질서로의 진입이다. 상징적 질서에서 이미 기존의 언어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 언어란 인간의 무의식의 질서를 반영한 것이다. 거기에는 명령과 금지의 체계가 조성되어 있다. 언어 질서로 제공되는 명령과 금지를 통해 자아는 욕망 충족이 제한 받는다. 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은 타자를 인정하면서 자아를 그 타자와 분리 인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체이다.

따라서 주체는 결코 자아와 일치되지 않고 새로운 주체상을 계속 형성하게 된다. 아기가 금방 태어났을 때는 자기 몸의 지체들 간에 서로 연관 없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생후 6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이른 거울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몸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게 된다. 비로소 '자기'를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자기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기일 뿐이다. 이 거울이 '타자' 역할을 한 것이다. 타자를 통한 주체 형성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하지만 아기는 이 단계에서 아직도 그것이 단지 거울상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와 동일시한다. 아이가 좀 더 커서 가족과 사회의 관계 그물 속에 들어오게 되면 자기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객관화된 자리는 타인이 배정해 준 위치이다. 그 자리에 머물려고 함으로서 타인을 통한 자아상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의식하는 자아는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만들어진 상징물에 불과하다. 자아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다르게 된다. 그리고 영원히 오인한다. 자신의 무의식이 제조해 낸 주체상에서 영구히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주체 분실 이론들을 통하여 철학의 한계와 종말이 엿보인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존재로부터 내던져진 자이다. 따라서 여전히 자기에게로 돌아오지 못한 채 자신의 근원이 존재에 대해서만 쉴 새 없이 물음을 던지는 입장에 놓여 있을 뿐이다.

네비나스가 제시하는 해결책

그 동안의 철학은 전체성을 해명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전체성 추구는 기껏해야 인간들의 자아실현의 장을 무한한 확장하는 체계에 불과하다. 죽음이 찾아 들면 모든 손을 놓아야 하기에 결코 절대적 의미를 줄 수 없다.

따라서 전체성을 근거 지어 주기 위한 '무한' 개념이 요구된다. 이 무한은 결코 포착될 수 없는 무의미가 아니라 구체적 얼굴로 나타난다. 그것이 낯선 타인이다. 쉽게 상처받을 수 있고 무저항적인 얼굴로 다가오기에 너무나도 낯선 얼굴이다. 그 얼굴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지적 받는다. 그 낯선 얼굴의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죄책을 느낀다.

나는 타자의 얼굴을 받아드림으로서 보편적 곤궁과 어려움에 처한 타자와 결속되는 차원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타자는 결코 나와 동등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난과 고통 속에서 나의 주인이 된다. 즉 나는 나의 주인이 되는 타자를 보살피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죽음 안에서 타자에 대한 관계를 통해 확보되는 주체 개념을 네비나스은 무한한 인간의 현존재로 보고 있다.

성경적인 평가

성경이 제시하는 언약 안에는 주체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조물이란 고유의 의미를 가질 권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모든 언약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낼 뿐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결코 지체에게 가치를 주기 위함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첨부파일 : 주체는죽었는가.hwp (31.0K), Down:24

관리자(IP:124.♡.84.82)

09-02-23 22:08

주체는 죽었는가 : 현대철학의 포스트 모던 경향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강영안
출판사 : 문예출판사

오늘날의 철학은 자체적으로 나타난 딜레마를 부끄럼 없이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 있다. 여기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의 종말을 두려워하는 모든 이에게 단비와 같은 것이다. 저자는, 종교의 도움 없이도 철학이 구비해야 제 품위를 다시 회복시킬 방안을 제시한다. 네비나스가 현대 철학을 구출해 준다. 음울함 속에서 비옥한 윤리성을 끄집어 내준다. 종교마저 안으로 삭여 버리고 사람 사는 맛을 회복시켜 준 이 네비나스의 철학의 특이성이 어떤 철학적 한계 안에서 시작된 것인가?

주체 철학으로부터의 주체 지움

주체 철학의 시작은 데카르트부터이다. 세계를 지탱하는 근거와 그것을 인식해 내는 유한 자아로서의 관계를 정립하기 시작했는데 대상을 앞에 세우는 부동의 위치에 주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자아의 존재로부터 대상으로 나아갈 때는 오직 사유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자기 존재 이외에 대해서는 진정한 존재의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과 존재의 분리를 극복하고 인식과 행위의 보편적인 근거를 찾아야 할 과제를 칸트는 떠맡았다.

인간이라는 주체는 공간과 시간 의식을 통해 주어진 형식적 조건이다. 이 주체의 주체성을 떠나서는 세계는 아무 것도 규정될 수 없다. 하지만 인간들이 무한하게 실현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는 뭔가 하나의 이념의 세계를 전제해야만 했다. 어떻게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에 관한 의식이 꼭 발생되어야만 하는가? 셀링은, 순수한 절대 존재를 오직 인간의 자아 안에서만 찾기를 요구한다.

그래야 인간은 객관 세계의 미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관이나 객관에 의해서는 제약받지 않는 '무제약자'를 찾아야 한다. 주관도 아니요 객관도 아니면서 모든 지식의 실질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최고 원리로서의 무제약자의 자리는, 자아의 자발성으로 표출되는 절대 자아에게 있다고 보았다. 불변하는 자아성과 무제약적인 자유와 무한의 활동성을 실현하는 절대 자아는, 결코 자아 반성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속하지 않고 초월적인 절대자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관념론적 주체 사유에 커다란 전환이 온다. 사회적, 실존적 요소를 고려한 주체 논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구체적 삶에서 형성된 주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 주체란, 헤겔이 주장한 추상적 사유로서의 주체관을 탈피하여 현실에서 빚어지는 무한과 유한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그대로 팽팽하게 맞이해야 하는 실존적 자아를 뜻한다. 우선 자아의 감성적 단계에서는 순간적인 행복으로 충족된 삶을 살려고 하지만 주어지는 것은 반복되는 지겨움과 공허감뿐이다. 진정한 자기만의 삶은 없고 일반적 인간상을 모방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무한성이 결여된 이러한 삶은 결국 절망으로 끝나는데 하지만 이러한 절망이 인간으로 하여금 윤리적 단계에 접어들게 한다.

이것은 스스로 절대적인 가치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자신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이 단계는 개인으로 하여금 사회 보편적 규범에 개입하는 삶을 살게 한다. 그러나 개별성의 관점에서 볼 때 아직도 완전한 자아실현은 아니다. 신과 단독자 관계를 가질 때 즉 신 앞에서 홀로 서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자아를 찾는다.

이처럼 키에르케고르가 주체를 파악하기 위한 신 앞에 데려가려는 것이 비해 니체는 아예 주체의 죽음을 선언해 버린다. 주체란 기껏해야 전통이 만들어 낸 가상된 개념이다. 전통적 형이상학은, 이 세계를 떠받쳐 주는 실체가 필히 요청되어야 한다는 강한 신앙으로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욕망을 버리고 스스로 입법자가 되고 창조자는 되는 것이 참된 자아라는 것이다. 니체에 있어 주체 개인은 초월적 주체, 혹은 자신을 초월하여 자신에게로 복귀하는 주체가 아니다. 단지 자연으로의 복귀만 있을 뿐이다.

현대 철학에 넘어와서, 푸코가 이해하는 주체는, 어떤 불변하는 '실체'가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자신과 일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주체상이 그 시대, 그 역사에 있어 권력 관계에서 구성된 것들이다.

푸코가 주체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조명했다면 라캉은 정신분석학적으로 규명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주체 개념은 자기 자신과의 소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즉 인간은 상상적 질서에서의 상징적 질서로의 진입이다. 상징적 질서에서 이미 기존의 언어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 언어란 인간의 무의식의 질서를 반영한 것이다. 거기에는 명령과 금지의 체계가 조성되어 있다. 언어 질서로 제공되는 명령과 금지를 통해 자아는 욕망 충족이 제한 받는다. 그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은 타자를 인정하면서 자아를 그 타자와 분리 인식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주체이다.

따라서 주체는 결코 자아와 일치되지 않고 새로운 주체상을 계속 형성하게 된다. 아기가 금방 태어났을 때는 자기 몸의 지체들 간에 서로 연관 없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생후 6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이른 거울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몸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게 된다. 비로소 '자기'를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자기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자기일 뿐이다. 이 거울이 '타자' 역할을 한 것이다. 타자를 통한 주체 형성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하지만 아기는 이 단계에서 아직도 그것이 단지 거울상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와 동일시한다. 아이가 좀 더 커서 가족과 사회의 관계 그물 속에 들어오게 되면 자기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객관화된 자리는 타인이 배정해 준 위치이다. 그 자리에 머물려고 함으로서 타인을 통한 자아상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의식하는 자아는 타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만들어진 상징물에 불과하다. 자아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다르게 된다. 그리고 영원히 오인한다. 자신의 무의식이 제조해 낸 주체상에서 영구히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주체 분실 이론들을 통하여 철학의 한계와 종말이 엿보인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존재로부터 내던져진 자이다. 따라서 여전히 자기에게로 돌아오지 못한 채 자신의 근원이 존재에 대해서만 쉴 새 없이 물음을 던지는 입장에 놓여 있을 뿐이다.

네비나스가 제시하는 해결책

그 동안의 철학은 전체성을 해명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전체성 추구는 기껏해야 인간들의 자아실현의 장을 무한한 확장하는 체계에 불과하다. 죽음이 찾아 들면 모든 손을 놓아야 하기에 결코 절대적 의미를 줄 수 없다.

따라서 전체성을 근거 지어 주기 위한 '무한' 개념이 요구된다. 이 무한은 결코 포착될 수 없는 무의미가 아니라 구체적 얼굴로 나타난다. 그것이 낯선 타인이다. 쉽게 상처받을 수 있고 무저항적인 얼굴로 다가오기에 너무나도 낯선 얼굴이다. 그 얼굴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지적 받는다. 그 낯선 얼굴의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죄책을 느낀다.

나는 타자의 얼굴을 받아드림으로서 보편적 곤궁과 어려움에 처한 타자와 결속되는 차원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타자는 결코 나와 동등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난과 고통 속에서 나의 주인이 된다. 즉 나는 나의 주인이 되는 타자를 보살피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죽음 안에서 타자에 대한 관계를 통해 확보되는 주체 개념을 네비나스은 무한한 인간의 현존재로 보고 있다.

성경적인 평가

성경이 제시하는 언약 안에는 주체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조물이란 고유의 의미를 가질 권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모든 언약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낼 뿐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결코 지체에게 가치를 주기 위함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25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3,042 성경신학 전 략 론 전도서 최고관리자 06-11-27
3,041 성경신학 외채 부메랑 : 제3세계 외채는 어떻게 우리 모두를 해치는가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06-11-27
3,040 성경신학 앙띠 오이디푸스 :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06-11-27
3,039 성경신학 은유로서의 건축 : 언어, 수, 화폐 미가 최고관리자 06-11-27
3,038 성경신학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미가 최고관리자 06-11-27
3,037 성경신학 이기적 유전자 :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 - 최고관리자 06-11-27
3,036 성경신학 종교의 기원 - 최고관리자 06-11-27
3,035 성경신학 국가 권력 사회주의 - 최고관리자 06-11-27
3,034 성경신학 이성의 기능 [신학] 최고관리자 06-11-27
3,033 성경신학 총, 균, 쇠 :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 최고관리자 06-11-27
3,032 성경신학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6-11-27
3,031 성경신학 신의 과학 : 과학과 히브리 창조론의 조화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06-11-27
3,030 성경신학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 - 최고관리자 06-11-27
3,029 성경신학 종교란 무엇인가 : 종교와 절대무 골로새서 최고관리자 06-11-27
3,028 성경신학 교회직무론 :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와 그 지도자들 로마서 최고관리자 06-11-27
3,027 성경신학 담론의 공간 : 주체철학에서 담론학으로 [철학] 최고관리자 06-11-27
3,026 성경신학 기호와 현대 예술 미가 최고관리자 06-11-27
3,025 성경신학 묵시문학의 기원 에스겔 최고관리자 06-11-27
3,024 성경신학 나를 따르라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6-11-27
3,023 성경신학 공관복음 문제 :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 본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6-11-27
3,022 성경신학 감각의 논리 로마서 최고관리자 06-11-27
열람 ➜ 성경신학 주체는 죽었는가 : 현대철학의 포스트 모던 경향 [철학] 최고관리자 06-11-27
3,020 성경신학 대지와 바람 : 동양 신학의 조형을 위한 해석학적 시도 [신학] 최고관리자 06-11-27
3,019 성경신학 종교에서 철학으로 [철학] 최고관리자 06-11-27
3,018 성경신학 과학의 종말 - 최고관리자 06-11-2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