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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지와 바람 : 동양 신학의 조형을 위한 해석학적 시도성경신학[신학]

대지와 바람 : 동양 신학의 조형을 위한 해석학적 시도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대지와 바람 : 동양 신학의 조형을 위한 해석학적 시도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김승철
출판사 : 다산글방

신학이란 결국 인간의 삶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 동양인의 의식에 합당한 신학을 구성하여 그 동안의 서방 신학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책이다. 동양 신학을 구태여 조성해야만 하는 이유는, 신학이란 어디까지나 자생적 문화 산물로서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지역민의 신학이 인류 전체의 사상을 통치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식론이 다르면 다른 신학 체제를 갖추는 것이 늘 마땅하며 늘 가능하다. 따라서 저자는 우선 서양 신학의 토대를 이루는 인식론을 철저히 분해해서 그 속살을 내보인다. 그리고 난 뒤 동양적 사고에 맞는 독창적 신학을 제안하여 서양 신학에다 승부를 건다.

서양 신학의 속성

서양 신학은 시간과 역사라는 범주로서 땅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시도한 신학이다. 이는 근세 서방 신학에 있어 진리를 규정하는 척도로서 시간 의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공간이란 동일한 것의 ‘순환’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무대로 여겨졌다. 여기에 비해 시간이 지니는 가변성이 오히려 유일회성을 지닌 진리적 속성을 반영해 주는 것으로서 인식되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공간의 신들에 대항하는 시간의 하나님으로 표상 된다.

비창조적이고 균일화된 우상 숭배적 공간 종교에 대해서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께서 투쟁을 벌리시고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서 인간은 시간의 하나님을 통해 자기 초월과 자기 구원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서구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시간 중심적 자기 인식으로 인해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공간에 대한 철저한 우위를 점하는 역사 철학으로 일관되어 있다.

유대― 기독교 역사는 공간에 대한 시간의 투쟁과 그 승리의 역사인 것이다. 시간에 의해서 공간의 제한이 극복되고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와 정의와 평화의 나라가 성취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 중심의 서구적 인식은, 현재적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는 의식으로서 스스로 자기 폐쇄성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흔히 유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민사상이란, 신에 대한 인간들의 자기중심성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은 대지(大地)의 정신 속으로 자아가 철저히 무화(無化)되어야 한다.

동양 신학의 속성

대지는 신앙의 장소이다. 성경적으로 봐서도 신앙이란 대지와 연관성 속에서 피어난다. 구약성서의 신앙과 역사는 어디까지나 ‘땅’ 모티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땅에 대한 약속과 성취와 상실로서 신앙을 표출해 내고 있다. 대지란 인간이 거기서 태어나 그곳으로 돌아갈 존재의 근원이다. 그래서 종교의 대지성은 여러 종교적인 상징과 표현들이 나타나게 한다. 여호와의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그 약속의 땅은 주인 없는 공간이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하는 장소이다. 여호와에 대한 기억이 있는 곳이요 언약들이 교환되는 장소였다. 약속의 땅은 텅 빈 공간으로서의 대지가 아닌 것이다. 풍토성이라는 사회적 구조가 형성되는 곳이다. 인간이란 단순히 하나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끼리의 결합과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으로 실존하게 된다. 이렇듯 동양 신학은 인간과 대지를 연결시키고 대지와 조화되는 인간상을 구현하므로 서 신학을 원형을 제대로 제시해 줄 수 있다.

동양 신학에 있어서의 대지는 저항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 대지― 하늘이 하나가 되고 투명하게 되는 사사무애의 세계인 것이다. 결국 신앙이란 대지 안에서 실존하는 인간이 자기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자기를 제대로 “보는”(見性) 신학이다. 그리고 마음이란 바로 대지에서 생성되는 것이지 별도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 신학은 그 동안 주체성 확립을 위하여 특별 계시 안에서만 자아를 묶어 두었다. 그래서 기독교 초기에는 바울에 의해서 ‘복음과 율법’이라는 대립 도식이 도입되었고 서기 3세기 변증가들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희랍 철학’의 대립으로, 어거스틴에 와서는 ‘불가항력적인 은총과 자유 의지’의 대립으로, 중세 신학에서는 ‘은총과 자연’의 대립으로, 루터의 종교 개혁 시대에는 ‘십자가의 신학과 영광의 계시’의 대립으로,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에게 와서는 ‘특수 계시와 일반 계시’의 대립으로, 19세기 문화 개신교에 와서는 ‘복음과 문화’의 대립으로, 서구 종교 철학에 와서는 ‘계시와 이성’의 대립으로, 20세기 신정통주의에 와서는 ‘계시와 종교’의 대립 속에서 자의 주체성을 찾으려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성경이라고 하는 경전을 절대화하는데서 야기된 일이다.

그러나 동양 신학에서는 주― 객의 이분법 자체가 무의미하다. 성서나 경전도 그것은 책이 아니라 그런 언어조차 파열되고 투명해지게 된다. ‘깨달음― 읽음― 표현’은 신성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의 일종의 ‘흔적 남기기’이다. 깨달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직접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 신학의 신앙에 있어서도 맥과 같이 하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는 단절성이 있다. 그리스도를 먼저 믿은 후에 그것을 근거로 십자가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십자가를 믿는 것을 뜻한다.

복음의 증명 불가능성은 증명하므로 서 더욱 확실한 복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고히 증명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내고 그름으로서 신앙의 결단성은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이란 끊임없이 자기 이해 체계의 폐쇄성과 미완결성을 폭로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의 대상에 대해서 계속 '낯섦'으로 접근하게 되고 타인과 타인의 만남에서 ‘낯섦’과 ‘낯섦’은 절대적 자아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계시가 된다. 자기 부정을 통해서 자아는 참된 자기와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참된 이해란 곧 오해이며 오직 오해로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타종교와의 대화는 기독교 신앙 뒤에 있는 부록이 아니라 신앙의 처음과 나중이 되는 것이다. 즉 ‘타’ 신앙 세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자기 신앙 이해가 불가능해진다. 마치 기독교에서 메시야 재림을 대상화하지 않는 희망으로 여기면서 그저 ‘인내’하듯이 신앙이란 이처럼 스스로 부정의 길로 들어서는 의미한다. 신의 즉흥성, 이것은 인간의 자아를 죽이므로서 도리어 자유케 되고 신을 향하여 개방되게 하는 지배 형식이다. 그것이 ‘장소 없는 장소’ 즉 자기 주장이 없는 대지이다.

성경적인 평가

저자는 죄의 세력을 무시하고 있다. 죄의 왕노릇 현상으로 인해 아담 이후의 인간 세계에 어떤 사고방식을 야기했는지 전혀 관심 두지 않고 있다. 저자가 단지 관심 두는 것은, 소위 ‘신앙한다’고 하는 인간들의 신앙 현상에 대한 종교적 분석뿐이다. 이미 죄로 물든 인간들에게 있어 ‘신앙’이라는 것은 그저 삶의 피곤과 권태에서 오는 하소연이요 심심풀이 오락과 여가 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거기에는 거룩한 하나님에 의해서 실행되는 무서운 전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0-12)

그런데 저자는 이런 사도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싸울 의사도 없고 싸울 대상도 없다. 인간이 자기에 대해서 꼭 알아야 되는 그 이유와 정당성을 미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저 자아 존재성만 반복하면서 확인하는 것으로 신앙을 대체한다. 저자는 사도 바울에 대해서 왜 그토록 미워하는가?

첨부파일 : 대지와바람.hwp (32.0K), Down:12

관리자(IP:124.♡.84.82)

09-02-23 22:05

대지와 바람 : 동양 신학의 조형을 위한 해석학적 시도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김승철
출판사 : 다산글방

신학이란 결국 인간의 삶에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 동양인의 의식에 합당한 신학을 구성하여 그 동안의 서방 신학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책이다. 동양 신학을 구태여 조성해야만 하는 이유는, 신학이란 어디까지나 자생적 문화 산물로서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지역민의 신학이 인류 전체의 사상을 통치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식론이 다르면 다른 신학 체제를 갖추는 것이 늘 마땅하며 늘 가능하다. 따라서 저자는 우선 서양 신학의 토대를 이루는 인식론을 철저히 분해해서 그 속살을 내보인다. 그리고 난 뒤 동양적 사고에 맞는 독창적 신학을 제안하여 서양 신학에다 승부를 건다.

서양 신학의 속성

서양 신학은 시간과 역사라는 범주로서 땅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시도한 신학이다. 이는 근세 서방 신학에 있어 진리를 규정하는 척도로서 시간 의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 공간이란 동일한 것의 ‘순환’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무대로 여겨졌다. 여기에 비해 시간이 지니는 가변성이 오히려 유일회성을 지닌 진리적 속성을 반영해 주는 것으로서 인식되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하나님은 공간의 신들에 대항하는 시간의 하나님으로 표상 된다.

비창조적이고 균일화된 우상 숭배적 공간 종교에 대해서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께서 투쟁을 벌리시고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서 인간은 시간의 하나님을 통해 자기 초월과 자기 구원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서구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시간 중심적 자기 인식으로 인해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공간에 대한 철저한 우위를 점하는 역사 철학으로 일관되어 있다.

유대― 기독교 역사는 공간에 대한 시간의 투쟁과 그 승리의 역사인 것이다. 시간에 의해서 공간의 제한이 극복되고 우주적인 하나님 나라와 정의와 평화의 나라가 성취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 중심의 서구적 인식은, 현재적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는 의식으로서 스스로 자기 폐쇄성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흔히 유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민사상이란, 신에 대한 인간들의 자기중심성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간은 대지(大地)의 정신 속으로 자아가 철저히 무화(無化)되어야 한다.

동양 신학의 속성

대지는 신앙의 장소이다. 성경적으로 봐서도 신앙이란 대지와 연관성 속에서 피어난다. 구약성서의 신앙과 역사는 어디까지나 ‘땅’ 모티브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땅에 대한 약속과 성취와 상실로서 신앙을 표출해 내고 있다. 대지란 인간이 거기서 태어나 그곳으로 돌아갈 존재의 근원이다. 그래서 종교의 대지성은 여러 종교적인 상징과 표현들이 나타나게 한다. 여호와의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그 약속의 땅은 주인 없는 공간이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하는 장소이다. 여호와에 대한 기억이 있는 곳이요 언약들이 교환되는 장소였다. 약속의 땅은 텅 빈 공간으로서의 대지가 아닌 것이다. 풍토성이라는 사회적 구조가 형성되는 곳이다. 인간이란 단순히 하나의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끼리의 결합과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으로 실존하게 된다. 이렇듯 동양 신학은 인간과 대지를 연결시키고 대지와 조화되는 인간상을 구현하므로 서 신학을 원형을 제대로 제시해 줄 수 있다.

동양 신학에 있어서의 대지는 저항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 대지― 하늘이 하나가 되고 투명하게 되는 사사무애의 세계인 것이다. 결국 신앙이란 대지 안에서 실존하는 인간이 자기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자기를 제대로 “보는”(見性) 신학이다. 그리고 마음이란 바로 대지에서 생성되는 것이지 별도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서구 신학은 그 동안 주체성 확립을 위하여 특별 계시 안에서만 자아를 묶어 두었다. 그래서 기독교 초기에는 바울에 의해서 ‘복음과 율법’이라는 대립 도식이 도입되었고 서기 3세기 변증가들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희랍 철학’의 대립으로, 어거스틴에 와서는 ‘불가항력적인 은총과 자유 의지’의 대립으로, 중세 신학에서는 ‘은총과 자연’의 대립으로, 루터의 종교 개혁 시대에는 ‘십자가의 신학과 영광의 계시’의 대립으로,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에게 와서는 ‘특수 계시와 일반 계시’의 대립으로, 19세기 문화 개신교에 와서는 ‘복음과 문화’의 대립으로, 서구 종교 철학에 와서는 ‘계시와 이성’의 대립으로, 20세기 신정통주의에 와서는 ‘계시와 종교’의 대립 속에서 자의 주체성을 찾으려 했는데 이 모든 것은 성경이라고 하는 경전을 절대화하는데서 야기된 일이다.

그러나 동양 신학에서는 주― 객의 이분법 자체가 무의미하다. 성서나 경전도 그것은 책이 아니라 그런 언어조차 파열되고 투명해지게 된다. ‘깨달음― 읽음― 표현’은 신성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의 일종의 ‘흔적 남기기’이다. 깨달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직접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 신학의 신앙에 있어서도 맥과 같이 하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사이에는 단절성이 있다. 그리스도를 먼저 믿은 후에 그것을 근거로 십자가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십자가를 믿는 것을 뜻한다.

복음의 증명 불가능성은 증명하므로 서 더욱 확실한 복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고히 증명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내고 그름으로서 신앙의 결단성은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앙이란 끊임없이 자기 이해 체계의 폐쇄성과 미완결성을 폭로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의 대상에 대해서 계속 '낯섦'으로 접근하게 되고 타인과 타인의 만남에서 ‘낯섦’과 ‘낯섦’은 절대적 자아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계시가 된다. 자기 부정을 통해서 자아는 참된 자기와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참된 이해란 곧 오해이며 오직 오해로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타종교와의 대화는 기독교 신앙 뒤에 있는 부록이 아니라 신앙의 처음과 나중이 되는 것이다. 즉 ‘타’ 신앙 세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자기 신앙 이해가 불가능해진다. 마치 기독교에서 메시야 재림을 대상화하지 않는 희망으로 여기면서 그저 ‘인내’하듯이 신앙이란 이처럼 스스로 부정의 길로 들어서는 의미한다. 신의 즉흥성, 이것은 인간의 자아를 죽이므로서 도리어 자유케 되고 신을 향하여 개방되게 하는 지배 형식이다. 그것이 ‘장소 없는 장소’ 즉 자기 주장이 없는 대지이다.

성경적인 평가

저자는 죄의 세력을 무시하고 있다. 죄의 왕노릇 현상으로 인해 아담 이후의 인간 세계에 어떤 사고방식을 야기했는지 전혀 관심 두지 않고 있다. 저자가 단지 관심 두는 것은, 소위 ‘신앙한다’고 하는 인간들의 신앙 현상에 대한 종교적 분석뿐이다. 이미 죄로 물든 인간들에게 있어 ‘신앙’이라는 것은 그저 삶의 피곤과 권태에서 오는 하소연이요 심심풀이 오락과 여가 보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거기에는 거룩한 하나님에 의해서 실행되는 무서운 전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0-12)

그런데 저자는 이런 사도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싸울 의사도 없고 싸울 대상도 없다. 인간이 자기에 대해서 꼭 알아야 되는 그 이유와 정당성을 미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저 자아 존재성만 반복하면서 확인하는 것으로 신앙을 대체한다. 저자는 사도 바울에 대해서 왜 그토록 미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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