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종말
과학의 종말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과학의 종말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존 호건 (John Horgan)
번 역 : 김동광
출판사 : 까치 출판사
세상의 모든 진리를 과학에서부터 수여 받아야 비로소 진리로서 통용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내세우는 주장들은 항상 궁지에 몰린다. 어릴 때부터 학교 품에서 자라나는 사람들은 졸업할 때쯤 되면 과학 신봉가로 거듭 태어나서 사회에 진출한다. 물론 이들도 나름대로 종교라는 게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교주들이 강단에서 외치는 말씀이라도 비과학적 요소가 담겨 있다면 가차 없이 과학으로서 반박해 버리는 용감한 과학 감시자로 처신하고 있다. 즉 자기의 신앙 세계마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과학 교도들은 세계관과 인생관 사회관 전부를 과학적 토대 위에 건설해 놓고 있기에 기술적으로 자신들에게 편리를 가져오는 자가 곧 자신의 메시아요 산타클로스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메시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이 시대 최고의 과학자들은 직접 두루 만나 본 과학 저널리스트가 여기에 대해서 보고서를 써 놓았다. 하지만 그의 펜 끝은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오늘날 과학은 대중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인류 최후의 종교의 자리에 있기에 이 과학에 거는 기대도 대단하다. 활발한 활동은 보이는 분야는, 물리학과 우주론과 진화생물학과 사회과학과 신경과학과 카오스 이론과 기계과학, 등이다. 그런데 이 활발한 분야가 DNA와 초끈 이론과 고온 초전도체 발견 이후에는 정체 상태로 일관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대중들뿐만 아니라 과학계에 종사하는 모든 자들이 초조감을 나타낸다. 우선 물리학에 있어서, 물질적인 세계를 이루는 궁극적인 실재는 의외로 물리적이지 않다는 제안이 부각이 되고 있다. 입자물리학의 통일 이론이 실제로는 만물을 다 통괄하는 이론이 아니라 단지 입자와 힘에 국한되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힘이 어디서 기인된 것일까? 여기에 기하학적 원리가 도입된다. 위상기하학에서 빌려 온 통찰력으로 초끈 이론이 등장된다. 물질의 형태와 크기와 상관없이 같이 다룰 수 있는 수학적 해법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이 초끈은 중력을 생성할 수 있고 또한 중력을 필요로 하는 시간과 공간까지 생성한다. 그러니 물리학을 원천적으로 성립시켜 주는 수학적 원료인 것이다. 초끈은 물질도 에너지도 아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상응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모든 에너지 법칙과 물리적 법칙에 예속되지도 않고 증명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수학계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궁극적 원리는 그저 선택만을 요구하는 정보일 뿐이다. 현대 우주론에 대한 연구는 빅뱅으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빅뱅이란, 은하들이 내뿜은 빛들이 스펙트럼상 붉은 색으로 이동하는 현상과 그리고 가벼운 원소의 풍부함과 그리고 극초단파 우주배경복사 현상을 근거로 최초의 우주가 탄생한 시점을 두고 말한다. 빅뱅이론 이후에는 이 빅뱅이론을 보다 짜임새 있게 규정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은하가 서로 응축되는 과정이라든지 그 과정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물질, 즉 암흑물질이 과연 있겠느냐 에 관한 논쟁이라든지, 우주가 정상상태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고 있느냐에 관한 것들이다. 물론 이런 논쟁은 우주가 물리적 양자 이론에 그대로 따른다고 하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들이다.
진화생물학 분야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어떤 식으로 수정, 보완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문제는 왜 생물들이 형질을 그대로 보존하느냐 하는 것과 또한 그 반대로 왜 변이하느냐 하는 것이다. 보존하는 문제는 DNA의 발견으로 거의 확정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종들이 갑자기 많이 나타나는 점에 대해서는 자연 선택론으로서는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고 있다. 그것은 생물이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는데 머물지 않고 도리어 환경에게 영향을 주어 환경조차 조절하게 만든 결과가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환경은 상이한 변화를 일으키는데 복잡함이 어떤 한계에 도달하면 극적인 전이가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생명탄생의 그 조건과 시간적 제한성 때문에 차라리 지구 밖에서 주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도 있다. 사회과학, 혹은 사회생물학이란, 동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생존 원리가 인간의 모든 사회적 변동 상황을 근원적으로 체계를 세울 수 있는 원리가 된다는 초점을 맞춘 학문이다. 예를 들면, 인간들끼리의 애타심은,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충동이라는 것이다.
신경과학 분야는,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을 물질적 기반 위에서 그 현상을 규명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주의, 기억, 집중을 유발시키는 두뇌 안에 있는 물질들의 화학적 반응 뿐 아니라 두뇌 스스로의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그 메커니즘까지 밝히려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하기"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두뇌신경 집합 자체의 확률 조정은 누가 최종 결정하는지는 모호한 가운데 있다.
혼돈이론으로 알려진 소위 카오스 이론은, 고성능 컴퓨터를 통한 모의실험이 각광을 받으면서 크게 유행되었다. 즉 자연의 복잡성을 미리 예측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질서 위주의 이론으로서는 자연의 불합리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직이 스스로 되먹임 하는 가운데 새롭게 자기 조직을 재생해 나간다. 질서정연해 보이는 조직도 언젠가는 파국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우연마저 보다 세밀하게 미리 계산에 넣어서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과학이란, 사람 같은 기계를 만드는 시도를 말한다. 사람인 일거리와 지능을 대신할 로봇 생산이 여기에 속한다.
저자는, 과학을 통해서 궁극적인 진리를 안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과학은 단지 진리를 추구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리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물음 속에 이미 답변을 지닌 채 말이다. 저자는, 과학의 한계와 대가들의 비합리적인 자기 신앙적 논조에 대해서 큰 실망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마땅히 믿을 게 없는 현대인들은 그래도 과학 이외에 다른 대안을 원치 않는다. 과학의 종말에 대해서 단지 과학 한계의 종말로만 좋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성경적인 평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스스로 작은 신이 된 양 착각한다. 신이란, 스스로 되고 싶은 대로 존재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 흉내를 내고 있다. 소위 창의성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자기 영역을 구축해왔다. 인간 세계 안에서는 오로지 인간의 사상만 인정받는다. 신이든지 종교라든지는 하는 것도 인류가 보편적으로 납득이 되는 것만 허용된다.
‘보편성’, 과학은 이 ‘보편성’의 절정이다. 인류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과학은 계속 인류를 대변하는 최종적 신학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저자는 궁극적인 해답을 얻기 위해 과학의 대가들과 인터뷰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의 궁극적인 해답은 이미 간단하게 나와 있다. 그것은 인간들이 내뱉는 모든 것이 진리요, 계시라는 사실이다. 즉 과학하고 있는 주체가 이미 인간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리요, 행복이요, 선이요, 극락이다. 절망을 해도 절망하는 자기네들은 엄연히 살아있는데 뭐가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있는가?
그런데 성경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사실에서 이미 인류는 종말이요 저주요 심판이다. 과학이 무시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간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시당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희망을 가질 하등의 권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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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IP:124.♡.84.82)
09-02-20 23:02
과학의 종말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존 호건 (John Horgan)
번 역 : 김동광
출판사 : 까치 출판사
세상의 모든 진리를 과학에서부터 수여 받아야 비로소 진리로서 통용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내세우는 주장들은 항상 궁지에 몰린다. 어릴 때부터 학교 품에서 자라나는 사람들은 졸업할 때쯤 되면 과학 신봉가로 거듭 태어나서 사회에 진출한다. 물론 이들도 나름대로 종교라는 게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교주들이 강단에서 외치는 말씀이라도 비과학적 요소가 담겨 있다면 가차 없이 과학으로서 반박해 버리는 용감한 과학 감시자로 처신하고 있다. 즉 자기의 신앙 세계마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정도이다.
이런 과학 교도들은 세계관과 인생관 사회관 전부를 과학적 토대 위에 건설해 놓고 있기에 기술적으로 자신들에게 편리를 가져오는 자가 곧 자신의 메시아요 산타클로스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메시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이 시대 최고의 과학자들은 직접 두루 만나 본 과학 저널리스트가 여기에 대해서 보고서를 써 놓았다. 하지만 그의 펜 끝은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오늘날 과학은 대중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인류 최후의 종교의 자리에 있기에 이 과학에 거는 기대도 대단하다. 활발한 활동은 보이는 분야는, 물리학과 우주론과 진화생물학과 사회과학과 신경과학과 카오스 이론과 기계과학, 등이다. 그런데 이 활발한 분야가 DNA와 초끈 이론과 고온 초전도체 발견 이후에는 정체 상태로 일관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대중들뿐만 아니라 과학계에 종사하는 모든 자들이 초조감을 나타낸다. 우선 물리학에 있어서, 물질적인 세계를 이루는 궁극적인 실재는 의외로 물리적이지 않다는 제안이 부각이 되고 있다. 입자물리학의 통일 이론이 실제로는 만물을 다 통괄하는 이론이 아니라 단지 입자와 힘에 국한되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힘이 어디서 기인된 것일까? 여기에 기하학적 원리가 도입된다. 위상기하학에서 빌려 온 통찰력으로 초끈 이론이 등장된다. 물질의 형태와 크기와 상관없이 같이 다룰 수 있는 수학적 해법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이 초끈은 중력을 생성할 수 있고 또한 중력을 필요로 하는 시간과 공간까지 생성한다. 그러니 물리학을 원천적으로 성립시켜 주는 수학적 원료인 것이다. 초끈은 물질도 에너지도 아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상응되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모든 에너지 법칙과 물리적 법칙에 예속되지도 않고 증명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수학계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괴델의 불완전성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궁극적 원리는 그저 선택만을 요구하는 정보일 뿐이다. 현대 우주론에 대한 연구는 빅뱅으로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빅뱅이란, 은하들이 내뿜은 빛들이 스펙트럼상 붉은 색으로 이동하는 현상과 그리고 가벼운 원소의 풍부함과 그리고 극초단파 우주배경복사 현상을 근거로 최초의 우주가 탄생한 시점을 두고 말한다. 빅뱅이론 이후에는 이 빅뱅이론을 보다 짜임새 있게 규정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은하가 서로 응축되는 과정이라든지 그 과정에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물질, 즉 암흑물질이 과연 있겠느냐 에 관한 논쟁이라든지, 우주가 정상상태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계속해서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고 있느냐에 관한 것들이다. 물론 이런 논쟁은 우주가 물리적 양자 이론에 그대로 따른다고 하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것들이다.
진화생물학 분야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어떤 식으로 수정, 보완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문제는 왜 생물들이 형질을 그대로 보존하느냐 하는 것과 또한 그 반대로 왜 변이하느냐 하는 것이다. 보존하는 문제는 DNA의 발견으로 거의 확정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종들이 갑자기 많이 나타나는 점에 대해서는 자연 선택론으로서는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고 있다. 그것은 생물이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는데 머물지 않고 도리어 환경에게 영향을 주어 환경조차 조절하게 만든 결과가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환경은 상이한 변화를 일으키는데 복잡함이 어떤 한계에 도달하면 극적인 전이가 일어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생명탄생의 그 조건과 시간적 제한성 때문에 차라리 지구 밖에서 주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도 있다. 사회과학, 혹은 사회생물학이란, 동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생존 원리가 인간의 모든 사회적 변동 상황을 근원적으로 체계를 세울 수 있는 원리가 된다는 초점을 맞춘 학문이다. 예를 들면, 인간들끼리의 애타심은,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충동이라는 것이다.
신경과학 분야는, 인간의 의식이나 정신을 물질적 기반 위에서 그 현상을 규명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주의, 기억, 집중을 유발시키는 두뇌 안에 있는 물질들의 화학적 반응 뿐 아니라 두뇌 스스로의 어떤 선택을 내릴 때, 그 메커니즘까지 밝히려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하기"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두뇌신경 집합 자체의 확률 조정은 누가 최종 결정하는지는 모호한 가운데 있다.
혼돈이론으로 알려진 소위 카오스 이론은, 고성능 컴퓨터를 통한 모의실험이 각광을 받으면서 크게 유행되었다. 즉 자연의 복잡성을 미리 예측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질서 위주의 이론으로서는 자연의 불합리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직이 스스로 되먹임 하는 가운데 새롭게 자기 조직을 재생해 나간다. 질서정연해 보이는 조직도 언젠가는 파국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우연마저 보다 세밀하게 미리 계산에 넣어서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과학이란, 사람 같은 기계를 만드는 시도를 말한다. 사람인 일거리와 지능을 대신할 로봇 생산이 여기에 속한다.
저자는, 과학을 통해서 궁극적인 진리를 안다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라고 보고 있다. 과학은 단지 진리를 추구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리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물음 속에 이미 답변을 지닌 채 말이다. 저자는, 과학의 한계와 대가들의 비합리적인 자기 신앙적 논조에 대해서 큰 실망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기대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러나 마땅히 믿을 게 없는 현대인들은 그래도 과학 이외에 다른 대안을 원치 않는다. 과학의 종말에 대해서 단지 과학 한계의 종말로만 좋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성경적인 평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스스로 작은 신이 된 양 착각한다. 신이란, 스스로 되고 싶은 대로 존재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이 흉내를 내고 있다. 소위 창의성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자기 영역을 구축해왔다. 인간 세계 안에서는 오로지 인간의 사상만 인정받는다. 신이든지 종교라든지는 하는 것도 인류가 보편적으로 납득이 되는 것만 허용된다.
‘보편성’, 과학은 이 ‘보편성’의 절정이다. 인류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날까지 과학은 계속 인류를 대변하는 최종적 신학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저자는 궁극적인 해답을 얻기 위해 과학의 대가들과 인터뷰했다. 그러나 인간 세계에서의 궁극적인 해답은 이미 간단하게 나와 있다. 그것은 인간들이 내뱉는 모든 것이 진리요, 계시라는 사실이다. 즉 과학하고 있는 주체가 이미 인간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리요, 행복이요, 선이요, 극락이다. 절망을 해도 절망하는 자기네들은 엄연히 살아있는데 뭐가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있는가?
그런데 성경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세상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 사실에서 이미 인류는 종말이요 저주요 심판이다. 과학이 무시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간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시당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희망을 가질 하등의 권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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