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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소비의 사회 : 그 신화와 구조성경신학사도행전

소비의 사회 : 그 신화와 구조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소비의 사회 : 그 신화와 구조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번 역 : 이상률
출판사 : 문예출판사

현대의 소비 성향은 예감이 좋지 않다. 사물이 충분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진열대에 놓여 있는 상품들은 단순히 생산물의 총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진열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과잉의 시리즈이다. 초(超)사물(super-objet)이 질서의 위용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이 질서에 따라 자체적인 논리성 안으로 빠져들어 간다. 이것은 바로 세계에 대한 오인의 차원이다. 호기심과 오인은 현실에 대해 체계화된 특징적인 행동을 갖게 한다. 이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기호에 굶주리고 또 기호에 의해 증폭되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기초한 일상적 현실 생활이다. 일상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일상적인 사건 및 행위의 전체, 진부함과 반복의 차원이 아니라 해석의 체계인 것이다.

전체성이라고 하는 객관적 관점에서 보면 일상성은 보잘것없는 찌꺼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세계의 재해석이며 의기양양한 행복을 지향한다. 바로 여기에 사생활의 일상적 영역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깊은 결탁이 존재한다. 울타리, 혹은 은거로서의 일상성은 이로서 모조의 세계에 참여된다. 거기서 증대된 이미지와 만나게 되고 그 증대된 기호를 먹고살지 않으면 안 된다. 평온 무사한 일상생활은 현실과 역사의 현기증 속에서 지내게 되며 정신적 폭력에 의해 소비성이 늘 자극하고 흥분되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외설인데 이것을 흔히 '교양'이라고 부른다.

행복의 모조품들이 기호 장치를 만들어 내는 주된 내용물들이다. 생산물들이 소비 단계에 접어들면 모두 기호로 변하고 또한 기호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 기호들은 곧 현실처럼 이해되고 동시에 그것이 주술적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주술이라는 것은, 현실이 주는 현기증 안에서도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자기만의 정당성을 장만해 주는 행위를 말한다. 그 어떠한 폭력과 비인간성이 동원되더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이것은 광기이다. 자기만을 위한 종교적 광기이다. 이처럼 소비 세계 안은 늘 흥분되어 있다. 자신들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낄 때는, 초과분과 여분의 생산물을 함부로 소모시킬 때이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낭비를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그 시점에서 사물의 사용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빼앗는 모습이기도 하다.

소비는 단순히 물자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파괴로 변모한다. 왜냐하면 대량생산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사물들이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존재하고 있기에 파괴적 소비를 부추기는 쪽으로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풍부함이란 곧 가난해져야 함을 뜻한다. 사람의 행복은 누리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실현해야 된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행복을 경제적 평등이라는 원칙으로 실현에 옮기려는 실수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행복을 계량(計量)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대량 생산으로 이어진다. 재화의 양을 증대시킴으로써 내부 모순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에게 있어 빈곤은 '남은 찌꺼기'로 이해되어 성장의 증가에 의해 머지않아 흡수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달 의지는 곧 생산 지상주의로 기초된다. 그러나 소비 양식이 사용 가치 위주가 아니라 교환 가치 위주로 바뀌면서 소비가 모든 사람의 속성으로 자리 잡게 되어 더 이상 사물 자체를 놓고서 가치나 평등을 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소화 기관은 한계가 있지만 음식물에 관한 소비 양식은 한계가 없다. 따라서 무한을 향한 질주는 이미 인간의 욕구로서가 아니라 사회 자체가 지닌 욕구로 가동되게 되었다. 실제로 생산 수단에 선행하는 것에 대해서(여론 조사, 시장 조사, 치안, 국방, 행정, 교육 등 서비스 업)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종사하는 사람의 수가 실제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아지는 사태가 일어난다. 여기서 특권 계층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들이 소비 사회를 주도하게 된다. 그들의 낭비벽이 곧 사회 전반의 생산을 이끄는 힘이다.

빈곤이란 개인의 결핍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체제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만을 알고 있을 뿐 개인에 대해서는 모른다. 존재하는 것은 성장의 욕구뿐이다. 이 체제 성장 요구가 각 개인의 소비 성향을 규정짓는다. 소비는 더 이상 향유의 기능이 아니라 생산 기능에 속한다. 그것도 개별적 기능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기능이다. 소비할 때는 결코 혼자서 임의로 하지 못한다. 소비는 이제 사회적 노동이 되었다. "각자 개성화 하시오"는 요구 속에서 이루어진다. 엇비슷한 사물들이 줄줄이 생산된다. '조금 더 밝은 색', '조금 더 다양한 기능성'을 앞장세우면서 '조금의 차이'의 신화에다 숭배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 숭배'가 소비 집단을 통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가치만을 무의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그만큼 수월해 지는 것이다. 개인들은 어느 새 타인이 보는 기호에 객관화되어진다. 나의 자동차가 아니라 그의 자동차로서, 나의 향수가 아니라 그의 향수로서 구매된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남과 한패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아름답고, 자신에게 필요해서 구매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패 거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에 나서게 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기호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 유행에 따라가야 하는 것이 이 사회 안에서 교양 있게 견뎌 내는 게임의 법칙이다. 새로움에 대한 예찬이 소비문화의 기(氣)요 혼(魂)이다. 이 혼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 호기심은 오인 작용으로 이끈다. 광고 메시지는 대중들 안에서 공범 내지는 공모 관계를 형성시킨다. 그리고 유행될 새로운 기호를 생산해 낸다. 광고는 이처럼 진위(眞僞)를 초월하여 새 가치를 창출한다. 광고는 대중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얼마나 새로움에 의해서 속고 싶어 하고 오인하고 싶어 하는 가를 증명해 줄뿐이다. 즉 사회가 얼마나 환각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속속들이 나타내는 매개체 구실을 한다. 이처럼 소비 시장은 인간들의 광기를 먹고 존재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자아 상실이다. 자기 통일성을 잃고 있다. 늘 피곤해지는 무력함에 빠져 있다. 만성적으로 찾아오는 지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마약 찾듯이 새로움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걸고 살아갈 뿐이다.

인간들이 이미 욕구의 충족이나 여가 선용이나 복지 정책으로 해결될 수 없는 공격성 앞에 놓여 있다. 소비하는 즐거움에 대해서 저자는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혼을 이미 악마에게 넘겨주었다는 뜻이다. 자신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들은 벌써 환영화(幻影化)되어 정처 없이 떠도는 자아의 혼불임을 알아야 한다.

성경적 평가

인간들은 상징 없이는 못산다. 자기 욕구를 대리 만족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 행위란 곧 상징을 구매하는 행위이다. 교회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에 있어 교회도 소비 패턴의 영향 하에 있다. 교회도 쇼핑센터의 한 부류처럼 이용되고 있다. 자기의 행복을 위하여 교회 상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도 나름대로의 광고 메시지를 띄운다. 심리적인 안정과 가정 화목에 관한 아이디어 상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 출입이 곧 ‘악마의 계약’이 되는 셈이다. 사실상 유혹은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교회나 교인이나 서로가 서로를 볼 때 하나는 소비자로, 또 다른 쪽을 소비 시장터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자기 체제 유지밖에 모를 때, 낯선 신흥종교로 변모한다. 교회의 참된 본질은, 사람 수의 넘침으로 확인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으로 충분하다(행 20:28).

첨부파일 : 소비의사회.hwp (32.0K), Down:17

관리자(IP:124.♡.84.82)

09-02-20 22:07

소비의 사회 : 그 신화와 구조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번 역 : 이상률
출판사 : 문예출판사

현대의 소비 성향은 예감이 좋지 않다. 사물이 충분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많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진열대에 놓여 있는 상품들은 단순히 생산물의 총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진열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과잉의 시리즈이다. 초(超)사물(super-objet)이 질서의 위용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이 질서에 따라 자체적인 논리성 안으로 빠져들어 간다. 이것은 바로 세계에 대한 오인의 차원이다. 호기심과 오인은 현실에 대해 체계화된 특징적인 행동을 갖게 한다. 이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기호에 굶주리고 또 기호에 의해 증폭되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기초한 일상적 현실 생활이다. 일상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일상적인 사건 및 행위의 전체, 진부함과 반복의 차원이 아니라 해석의 체계인 것이다.

전체성이라고 하는 객관적 관점에서 보면 일상성은 보잘것없는 찌꺼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세계의 재해석이며 의기양양한 행복을 지향한다. 바로 여기에 사생활의 일상적 영역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깊은 결탁이 존재한다. 울타리, 혹은 은거로서의 일상성은 이로서 모조의 세계에 참여된다. 거기서 증대된 이미지와 만나게 되고 그 증대된 기호를 먹고살지 않으면 안 된다. 평온 무사한 일상생활은 현실과 역사의 현기증 속에서 지내게 되며 정신적 폭력에 의해 소비성이 늘 자극하고 흥분되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외설인데 이것을 흔히 '교양'이라고 부른다.

행복의 모조품들이 기호 장치를 만들어 내는 주된 내용물들이다. 생산물들이 소비 단계에 접어들면 모두 기호로 변하고 또한 기호의 보호를 받게 된다. 이 기호들은 곧 현실처럼 이해되고 동시에 그것이 주술적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주술이라는 것은, 현실이 주는 현기증 안에서도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자기만의 정당성을 장만해 주는 행위를 말한다. 그 어떠한 폭력과 비인간성이 동원되더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이것은 광기이다. 자기만을 위한 종교적 광기이다. 이처럼 소비 세계 안은 늘 흥분되어 있다. 자신들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낄 때는, 초과분과 여분의 생산물을 함부로 소모시킬 때이다. 왜냐하면 쓸데없는 낭비를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그 시점에서 사물의 사용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 빼앗는 모습이기도 하다.

소비는 단순히 물자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 파괴로 변모한다. 왜냐하면 대량생산으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사물들이 그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존재하고 있기에 파괴적 소비를 부추기는 쪽으로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풍부함이란 곧 가난해져야 함을 뜻한다. 사람의 행복은 누리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실현해야 된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행복을 경제적 평등이라는 원칙으로 실현에 옮기려는 실수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행복을 계량(計量)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대량 생산으로 이어진다. 재화의 양을 증대시킴으로써 내부 모순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에게 있어 빈곤은 '남은 찌꺼기'로 이해되어 성장의 증가에 의해 머지않아 흡수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달 의지는 곧 생산 지상주의로 기초된다. 그러나 소비 양식이 사용 가치 위주가 아니라 교환 가치 위주로 바뀌면서 소비가 모든 사람의 속성으로 자리 잡게 되어 더 이상 사물 자체를 놓고서 가치나 평등을 논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소화 기관은 한계가 있지만 음식물에 관한 소비 양식은 한계가 없다. 따라서 무한을 향한 질주는 이미 인간의 욕구로서가 아니라 사회 자체가 지닌 욕구로 가동되게 되었다. 실제로 생산 수단에 선행하는 것에 대해서(여론 조사, 시장 조사, 치안, 국방, 행정, 교육 등 서비스 업)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종사하는 사람의 수가 실제 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아지는 사태가 일어난다. 여기서 특권 계층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들이 소비 사회를 주도하게 된다. 그들의 낭비벽이 곧 사회 전반의 생산을 이끄는 힘이다.

빈곤이란 개인의 결핍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 이미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체제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만을 알고 있을 뿐 개인에 대해서는 모른다. 존재하는 것은 성장의 욕구뿐이다. 이 체제 성장 요구가 각 개인의 소비 성향을 규정짓는다. 소비는 더 이상 향유의 기능이 아니라 생산 기능에 속한다. 그것도 개별적 기능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기능이다. 소비할 때는 결코 혼자서 임의로 하지 못한다. 소비는 이제 사회적 노동이 되었다. "각자 개성화 하시오"는 요구 속에서 이루어진다. 엇비슷한 사물들이 줄줄이 생산된다. '조금 더 밝은 색', '조금 더 다양한 기능성'을 앞장세우면서 '조금의 차이'의 신화에다 숭배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 숭배'가 소비 집단을 통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가치만을 무의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훈련시키기가 그만큼 수월해 지는 것이다. 개인들은 어느 새 타인이 보는 기호에 객관화되어진다. 나의 자동차가 아니라 그의 자동차로서, 나의 향수가 아니라 그의 향수로서 구매된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남과 한패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아름답고, 자신에게 필요해서 구매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패 거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에 나서게 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기호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 유행에 따라가야 하는 것이 이 사회 안에서 교양 있게 견뎌 내는 게임의 법칙이다. 새로움에 대한 예찬이 소비문화의 기(氣)요 혼(魂)이다. 이 혼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 호기심은 오인 작용으로 이끈다. 광고 메시지는 대중들 안에서 공범 내지는 공모 관계를 형성시킨다. 그리고 유행될 새로운 기호를 생산해 낸다. 광고는 이처럼 진위(眞僞)를 초월하여 새 가치를 창출한다. 광고는 대중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얼마나 새로움에 의해서 속고 싶어 하고 오인하고 싶어 하는 가를 증명해 줄뿐이다. 즉 사회가 얼마나 환각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속속들이 나타내는 매개체 구실을 한다. 이처럼 소비 시장은 인간들의 광기를 먹고 존재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자아 상실이다. 자기 통일성을 잃고 있다. 늘 피곤해지는 무력함에 빠져 있다. 만성적으로 찾아오는 지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마약 찾듯이 새로움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걸고 살아갈 뿐이다.

인간들이 이미 욕구의 충족이나 여가 선용이나 복지 정책으로 해결될 수 없는 공격성 앞에 놓여 있다. 소비하는 즐거움에 대해서 저자는 '악마와의 계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혼을 이미 악마에게 넘겨주었다는 뜻이다. 자신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들은 벌써 환영화(幻影化)되어 정처 없이 떠도는 자아의 혼불임을 알아야 한다.

성경적 평가

인간들은 상징 없이는 못산다. 자기 욕구를 대리 만족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 행위란 곧 상징을 구매하는 행위이다. 교회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에 있어 교회도 소비 패턴의 영향 하에 있다. 교회도 쇼핑센터의 한 부류처럼 이용되고 있다. 자기의 행복을 위하여 교회 상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도 나름대로의 광고 메시지를 띄운다. 심리적인 안정과 가정 화목에 관한 아이디어 상품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 출입이 곧 ‘악마의 계약’이 되는 셈이다. 사실상 유혹은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교회나 교인이나 서로가 서로를 볼 때 하나는 소비자로, 또 다른 쪽을 소비 시장터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자기 체제 유지밖에 모를 때, 낯선 신흥종교로 변모한다. 교회의 참된 본질은, 사람 수의 넘침으로 확인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으로 충분하다(행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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