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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성경신학다니엘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이 근 호 목사

저 자 : 다니엘 벨
번 역 : 김진욱
출판사 : 문학세계사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메 달리고 싶은 이데오르기가 상실된 것이다. 전에는 강렬한 사상이 있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더 강렬한 문화적 유행뿐이다. 현 사회를 진단하기도 간단치가 않다. 너무 번잡스럽기 때문이다. 이 번잡하고 혼란한 사회의 진단을 위해 다니엘 벨이 나선다.

왜 오늘날의 문화는 부조화를 이루는가?

저자는 문제의 진단을 위해 사회를 세 분야로 나눈다. 하나는 기술 분야, 다른 하나는 경제, 정치 분야, 다른 하나는 문화 분야이다. 기술 분야는 효용성을 목표로 흐름이 형성된다. 정치 분야는 상호 간의 이익을 조정하는데 주력한다. 문화는 인간의 존재성 표출을 허락하는 장으로서 마련된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이 세 분야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자의 대량 생산으로 인해 필요(need)에 의해서 생활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욕구(desire)를 만족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욕구의 경쟁 시대이다. 경제가 이제는 맹목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 경제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공동체의 이상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개개인의 무분별한 소모 성향 때문이다. 소모하기 위해 여유 있는 소득을 얻으려 한다. 과거의 소득이란 합리적인 노동의 양에 준해서 주어졌었다. 따라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문화 활동도 경제 여건에 따라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즉 경제와 정치 이념과 사회 윤리가 문화를 규정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 자체가 소득을 낳는 현상에 들어와 있다. 문화, 즉 자아성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는 문화가 이 시대에 환영받는 상품의 일종이 된 것이다.

과거에는 사회에는 돈 벌고 출세하기 위해서는 자아를 절제시키고 조직의 말에 순응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 반대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자신의 살아온 바탕을 배신하므로 서 보다 일찍 어른스러운 문화에 길들여지는 것이 하나의 문화 상품 가치로서 효과가 있는 것이다. 자신을 무한히 확대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든지 상품화되고 돈이 된다. 문화가 독자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자본주의가 개인의 부를 풍성케하기 보다는 점잖은 부르조아적인 국가 공동체의 부 축적에 이바지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인으로부터 평등을 요구하는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국가나 민족이나 혈통에 대해서 그 어떤 신앙심도 갖지 않는다. 각자의 충동들을 절제할 하등의 이유가 사라졌다. 이제 공통된 사회 윤리나 계시도 필요 없고 공통된 생활 방식도 필요 없다. 오직 정렬에 의해서 움직이고 충동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타인의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만을 숭배한다.

자기 자신만의 이해되는 언어와 용어를 스스로 창안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이 즐기는 평등과 자유를 누린다. 세상은 모두 확률에 의해 지배되기에 확률 높은 게임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생에 승부를 건다. 모든 것이 그저 산만할 뿐이다. 주변에 제각기의 생활 패턴만 깔려 있다. 도시, 그것은 지나간 유행의 쓰레기 하치장이다. 문화의 인플레이션은 늘 따라 잡아야만 한다. 그것은 내일의 게임을 위해서이다. 도시가 너무도 많은 엘리트를 배출했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타인과의 협력보다도 타인과의 식별에 더 관심을 쏟는다. 하나 같이 평등을 외치고 있으나 그러나 개성이 없는 평등은 곧 자신의 불평등을 의미하게 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도시의 매스컴들은 새로운 게임들을 시민들 앞에 출시하므로 서 특별나고 또 다른 평등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문화가 정치 경제를 제치고 독자적으로 부를 생산하는 시대가 되지 현대인들은 의정 활동과 투표권 행사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이제는 문화 세계가 과거에 정치가들이 하던 사명까지 떠맡아야 한다. 사회 질서를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문화 예술인들은 이런 요구를 거부한다. 그들에게는 이미 합리성이라든지 계획성이라 것도 또 하나의 불평등을 유발하게 되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성적인 질서 체제나 권위가 아니라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해프닝들뿐이다.

고급 예술은 필요 없다. 대중들은 창조적인 감각만을 원한다. 긴장을 풀어 줄 정신의 사우나탕이면 족하다. 모두가 엘리트들이니 각자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 대중들이 이 시대에 원하는 것은 오직 '환상' 뿐이다.

종교? 종교는 그 동안 국가의 권위나 가정의 권위로부터 보호를 받아 오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보호막이 달아나 버리고 허위 권위의 본질을 드러낸 채 놀림감이 될 뿐이다. 더 이상 아버지 같은 권위를 종교가 지니고 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 가 아버지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종교가 살아남는 길은 바로 대중들이 원하고 환상을 연극화하는데 있다. 종교적인 의식은 성스러운 연극의 일종이어야 한다. 환상의 힘으로 대중들에게 다가도록 해야 한다. 이성을 기피하는 현대 엘리트에게는 교리 공부보다 즉흥적인 감정을 유발시키는 환상만이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 환상 안에서 대중들 스스로가 악마와 신을 분간할 수 있는 자율성을 종교가 인정해 주도록 해야 한다. 종교는 현대인의 탈출구 사명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간절히 초월을 원하고 있다. 환상을 통해 초월의 세계로 인도해 줄 종교인을 현대인들은 전보다 더욱 고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오히려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문화에 대한 성경적 이해

역사는 하나같이 동일하다. 종교 부흥기 때는 악마가 제대로 힘을 못써 안타나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종교 안으로 교회 안으로 늘 파고들어 왔었다. 그 종교 엘리트들이 다스리던 세계가 이제는 제는 단지 현대인들이라는 교육받은 엘리트 각자에게 맡겨졌을 뿐이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보다 더 한다"(디모데후서 3:1-4)는 말세의 현상은 예수님 부활 이후에 한결같이 교회 안과 밖으로 유지되어 온 현상들이다.

완벽한 교회 체제나 부흥 운동으로도 이 세력을 차단하지 못했다. 그것은 일찍부터 교회가 민중들의 호응도로부터 권위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을 비판할 자격자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죄마저 비판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첨부파일 : 자본주의의문화적모순.hwp (32.0K), Down:23

관리자(IP:124.♡.84.82)

09-02-18 16:16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이 근 호 목사

저 자 : 다니엘 벨
번 역 : 김진욱
출판사 : 문학세계사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 메 달리고 싶은 이데오르기가 상실된 것이다. 전에는 강렬한 사상이 있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더 강렬한 문화적 유행뿐이다. 현 사회를 진단하기도 간단치가 않다. 너무 번잡스럽기 때문이다. 이 번잡하고 혼란한 사회의 진단을 위해 다니엘 벨이 나선다.

왜 오늘날의 문화는 부조화를 이루는가?

저자는 문제의 진단을 위해 사회를 세 분야로 나눈다. 하나는 기술 분야, 다른 하나는 경제, 정치 분야, 다른 하나는 문화 분야이다. 기술 분야는 효용성을 목표로 흐름이 형성된다. 정치 분야는 상호 간의 이익을 조정하는데 주력한다. 문화는 인간의 존재성 표출을 허락하는 장으로서 마련된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이 세 분야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자의 대량 생산으로 인해 필요(need)에 의해서 생활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욕구(desire)를 만족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욕구의 경쟁 시대이다. 경제가 이제는 맹목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 경제 성장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공동체의 이상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개개인의 무분별한 소모 성향 때문이다. 소모하기 위해 여유 있는 소득을 얻으려 한다. 과거의 소득이란 합리적인 노동의 양에 준해서 주어졌었다. 따라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문화 활동도 경제 여건에 따라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즉 경제와 정치 이념과 사회 윤리가 문화를 규정시키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 자체가 소득을 낳는 현상에 들어와 있다. 문화, 즉 자아성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는 문화가 이 시대에 환영받는 상품의 일종이 된 것이다.

과거에는 사회에는 돈 벌고 출세하기 위해서는 자아를 절제시키고 조직의 말에 순응했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 반대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자신의 살아온 바탕을 배신하므로 서 보다 일찍 어른스러운 문화에 길들여지는 것이 하나의 문화 상품 가치로서 효과가 있는 것이다. 자신을 무한히 확대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든지 상품화되고 돈이 된다. 문화가 독자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기존의 자본주의가 개인의 부를 풍성케하기 보다는 점잖은 부르조아적인 국가 공동체의 부 축적에 이바지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인으로부터 평등을 요구하는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국가나 민족이나 혈통에 대해서 그 어떤 신앙심도 갖지 않는다. 각자의 충동들을 절제할 하등의 이유가 사라졌다. 이제 공통된 사회 윤리나 계시도 필요 없고 공통된 생활 방식도 필요 없다. 오직 정렬에 의해서 움직이고 충동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타인의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만을 숭배한다.

자기 자신만의 이해되는 언어와 용어를 스스로 창안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이 즐기는 평등과 자유를 누린다. 세상은 모두 확률에 의해 지배되기에 확률 높은 게임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생에 승부를 건다. 모든 것이 그저 산만할 뿐이다. 주변에 제각기의 생활 패턴만 깔려 있다. 도시, 그것은 지나간 유행의 쓰레기 하치장이다. 문화의 인플레이션은 늘 따라 잡아야만 한다. 그것은 내일의 게임을 위해서이다. 도시가 너무도 많은 엘리트를 배출했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타인과의 협력보다도 타인과의 식별에 더 관심을 쏟는다. 하나 같이 평등을 외치고 있으나 그러나 개성이 없는 평등은 곧 자신의 불평등을 의미하게 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도시의 매스컴들은 새로운 게임들을 시민들 앞에 출시하므로 서 특별나고 또 다른 평등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문화가 정치 경제를 제치고 독자적으로 부를 생산하는 시대가 되지 현대인들은 의정 활동과 투표권 행사에 무관심하게 되었다. 이제는 문화 세계가 과거에 정치가들이 하던 사명까지 떠맡아야 한다. 사회 질서를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문화 예술인들은 이런 요구를 거부한다. 그들에게는 이미 합리성이라든지 계획성이라 것도 또 하나의 불평등을 유발하게 되는 이념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성적인 질서 체제나 권위가 아니라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해프닝들뿐이다.

고급 예술은 필요 없다. 대중들은 창조적인 감각만을 원한다. 긴장을 풀어 줄 정신의 사우나탕이면 족하다. 모두가 엘리트들이니 각자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 대중들이 이 시대에 원하는 것은 오직 '환상' 뿐이다.

종교? 종교는 그 동안 국가의 권위나 가정의 권위로부터 보호를 받아 오면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보호막이 달아나 버리고 허위 권위의 본질을 드러낸 채 놀림감이 될 뿐이다. 더 이상 아버지 같은 권위를 종교가 지니고 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 가 아버지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종교가 살아남는 길은 바로 대중들이 원하고 환상을 연극화하는데 있다. 종교적인 의식은 성스러운 연극의 일종이어야 한다. 환상의 힘으로 대중들에게 다가도록 해야 한다. 이성을 기피하는 현대 엘리트에게는 교리 공부보다 즉흥적인 감정을 유발시키는 환상만이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 환상 안에서 대중들 스스로가 악마와 신을 분간할 수 있는 자율성을 종교가 인정해 주도록 해야 한다. 종교는 현대인의 탈출구 사명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간절히 초월을 원하고 있다. 환상을 통해 초월의 세계로 인도해 줄 종교인을 현대인들은 전보다 더욱 고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오히려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문화에 대한 성경적 이해

역사는 하나같이 동일하다. 종교 부흥기 때는 악마가 제대로 힘을 못써 안타나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종교 안으로 교회 안으로 늘 파고들어 왔었다. 그 종교 엘리트들이 다스리던 세계가 이제는 제는 단지 현대인들이라는 교육받은 엘리트 각자에게 맡겨졌을 뿐이다.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보다 더 한다"(디모데후서 3:1-4)는 말세의 현상은 예수님 부활 이후에 한결같이 교회 안과 밖으로 유지되어 온 현상들이다.

완벽한 교회 체제나 부흥 운동으로도 이 세력을 차단하지 못했다. 그것은 일찍부터 교회가 민중들의 호응도로부터 권위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을 비판할 자격자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죄마저 비판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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