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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역사 철학 : 역사 순환론 속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성경신학[철학]

역사 철학 : 역사 순환론 속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역사 철학 : 역사 순환론 속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그레이스 E. 케언스
번 역 : 이성기
출판사 : 대원사

과연 예언이 가능할까?

예언한다는 것, 참으로 위험한 부담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만 모험이 아니다. 현존하지 않는 미래의 세상을 미리 말해 버리는 것도, 정신을 중요시하는 하는 자들의 안정된 마음을 뿌리째 유혹하는 모험 중의 하나이다.

미래를 어떻게 예언할 수 있는가? 미래의 영역을 신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 활동의 영역으로 정돈해 놓으면 인간들의 그 다음 수순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즉 결과란 원인만 적당하면 필히 방출하게 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과거에 있었던 원인과 결과의 고리를 현재와 장래의 사이를 규정 짓는 원칙으로 설치해 놓는 것이다. 과거를 앎으로 미래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 하에 이 [역사철학]이라는 글이 쓰여졌다.

과거는 어떤 법칙을 되풀이시키면서 진행되었는가?

‘과거’라는 말속에다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은 인류를 정신적으로 지배해 왔던 대 사상들이다. 쉽게 말해서 종교이다. 종교로부터 지배받고 살았던 각 시대의 각 민족들은, 종교가 이야기해 주는 대로의 역사와 장래를 믿어 왔다.

종교란, 신의 이야기이다. 신이 어떻게 지상과 미래에 활약할 것인가에 대해서 인간들은 그저 감탄하며 추종하고 순복 할 따름이다. 신이 지정한 미래에 대해서 대항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적절하게 수용하는 방식만을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신은 시간을 율동화 시켰다. 그 안에 투쟁이 발생된다. 밝음과 어두움은 각기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인간 사회는 그 힘의 지층 사이에 끼어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두움은 밝음 앞에 꿇게 된다. 이러한 신의 승리로 인해 인간 사회는 새 창조의 힘을 분배받게 된다. 새 인간 문명이 탄생된다. 이것이 1주기이다. 죽음과 재생으로 구성되는 주기 법칙이다.

종교 의식이나 제의란 바로 이러한 죽음과 재생을 기리며 축하하는 모임이다. 여기에 그 나라의 왕이 제사의 중매자로 등장된다. 어두웠던 과거는 중매자의 제사 집례로 깨끗이 정화가 되고 왕과 백성은 하늘로부터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받게 된다. 이것이 순환론적 역사관이다. 파괴와 쇄신의 반복 역사관은 인도 철학을 거쳐 불교 사상에도 그대로 전수되었다.

다만 우주의 순환론은 대 우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우주인 인간의 신체의 각 변화를 통해서도 미리 참여될 수 있다는 사상으로 번져 나가게 된다. 인간 신체의 미묘성은 곧 우주 순환과 유사성을 갖기에 예측 할 수 있는 감지 기능체로서의 작용이다. 보다 순결하고 투명한 해탈의 상태에 도달된 정신 상황은 곧 우주의 최고 질서인 만다라에 합일된 흔적으로 본다. 온 우주가 언젠가는 복귀되는 그 세계, 즉 시간 조차 완성되는 세계는 현재 공간에서도 도약이 가능한 것으로 보는데 그 방법은 현상에 대한 집착과 아집을 분쇄하므로서 곧 시간 그 자체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방법이다.

이런 순환론과는 달리 일직선상으로 발전과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는 식의 역사관이 있다. 유일신을 표방한 유대교나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그 영향을 받는 사상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상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진보 또한 그 결정적 원리에 준해서 필연적으로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신의 은총에 의해 악마가 뿌려 놓은 죄는 결국 정복이 될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온 우주가 안식을 즐기는 희년 뿐이다.

인류의 역사란 단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한 순간의 악몽과 같은 중간 시대에 불과하다. 희망이란 인간이 일구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서 주어진다. 영원한 낙원 시대에는 다시는 악이 침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진보 사상은 헤겔이나 마르크스, 토인비 등에 영향을 끼친다. 다만 이들은 신의 정신을 물질 세계까지 개입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신의 세속화이다. 인간 노동의 이름으로, 물질의 이름으로 진보되어지고 또한 반복되는 문명 변천은 곧 옛날 신화의 시절에서의 신의 작업들이었다. 이것을 ‘문화 순환론’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문화 순환론에 관심을 쏟은 학자는, 오스발트 슈펭글러와 소르킨과 토인비이다. 스펭글러는 말하기를, 한 문명이 태어나서 소멸되기까지 대략 1000년의 생명 주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1000년 동안 인간들은, 자기 문화에 영감을 불어넣고 그것을 무한의 세계와 연결시키고 나중에는 그것마저 허무한 허상으로 간주해 버린다. 소르킨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 선조들의 영웅들을 모방하면서 초월적인 상징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나중에서 그 상징성이 감각적인 것으로 퇴화되면서 퇴폐적인 것으로 변모된다고 한다.

토인비는, 문화의 시작이 창조력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로 인해 문명은 성장한다. 그러나 전체를 위한 이슈가 시들해지고 개체의 가치가 증가하면서 문명은 해체되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자의식을 우상시하면 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유형의 문화 역사관을 진단하면서 저자는 미래를 내다보기를, 얼마 안 가서 정신이 우위에서는 그런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관

성경은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in)’을 말씀하고 ‘아래’를 말씀하신다. 아담 안에 있는 자에게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인간 세계는 이미 배후를 장악한 악의 세력에 의해 조종 받아 왔다(에베소서 2: 1- 3). 복음은 단순히 유대교적 역사관과 시간관을 그대로 베껴 온 것이 결코 아니다. 십자가 이후에 이미 완성된 상태로 인수해 온 것이다. 이 완성된 복음은, 아직도 미완성에 매달려 그 미완성을 인간의 노력으로 완성으로 전환시키려는 인간의 본성을 집요하게 고발하고 있는 입장에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완성일 따름이다. 즉 아직도 고발 거리가 남아 있는 세상을 통해서 완성을 확인시키는 심판 작업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미완성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구원 사역이 다 완성되지 않아서 미완성이 아님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첨부파일 : 역사철학.hwp (32.0K), Down:10

관리자(IP:124.♡.84.82)

09-02-17 22:53

역사 철학 : 역사 순환론 속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그레이스 E. 케언스
번 역 : 이성기
출판사 : 대원사

과연 예언이 가능할까?

예언한다는 것, 참으로 위험한 부담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만 모험이 아니다. 현존하지 않는 미래의 세상을 미리 말해 버리는 것도, 정신을 중요시하는 하는 자들의 안정된 마음을 뿌리째 유혹하는 모험 중의 하나이다.

미래를 어떻게 예언할 수 있는가? 미래의 영역을 신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 활동의 영역으로 정돈해 놓으면 인간들의 그 다음 수순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즉 결과란 원인만 적당하면 필히 방출하게 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과거에 있었던 원인과 결과의 고리를 현재와 장래의 사이를 규정 짓는 원칙으로 설치해 놓는 것이다. 과거를 앎으로 미래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 하에 이 [역사철학]이라는 글이 쓰여졌다.

과거는 어떤 법칙을 되풀이시키면서 진행되었는가?

‘과거’라는 말속에다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은 인류를 정신적으로 지배해 왔던 대 사상들이다. 쉽게 말해서 종교이다. 종교로부터 지배받고 살았던 각 시대의 각 민족들은, 종교가 이야기해 주는 대로의 역사와 장래를 믿어 왔다.

종교란, 신의 이야기이다. 신이 어떻게 지상과 미래에 활약할 것인가에 대해서 인간들은 그저 감탄하며 추종하고 순복 할 따름이다. 신이 지정한 미래에 대해서 대항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적절하게 수용하는 방식만을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신은 시간을 율동화 시켰다. 그 안에 투쟁이 발생된다. 밝음과 어두움은 각기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인간 사회는 그 힘의 지층 사이에 끼어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어두움은 밝음 앞에 꿇게 된다. 이러한 신의 승리로 인해 인간 사회는 새 창조의 힘을 분배받게 된다. 새 인간 문명이 탄생된다. 이것이 1주기이다. 죽음과 재생으로 구성되는 주기 법칙이다.

종교 의식이나 제의란 바로 이러한 죽음과 재생을 기리며 축하하는 모임이다. 여기에 그 나라의 왕이 제사의 중매자로 등장된다. 어두웠던 과거는 중매자의 제사 집례로 깨끗이 정화가 되고 왕과 백성은 하늘로부터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받게 된다. 이것이 순환론적 역사관이다. 파괴와 쇄신의 반복 역사관은 인도 철학을 거쳐 불교 사상에도 그대로 전수되었다.

다만 우주의 순환론은 대 우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소우주인 인간의 신체의 각 변화를 통해서도 미리 참여될 수 있다는 사상으로 번져 나가게 된다. 인간 신체의 미묘성은 곧 우주 순환과 유사성을 갖기에 예측 할 수 있는 감지 기능체로서의 작용이다. 보다 순결하고 투명한 해탈의 상태에 도달된 정신 상황은 곧 우주의 최고 질서인 만다라에 합일된 흔적으로 본다. 온 우주가 언젠가는 복귀되는 그 세계, 즉 시간 조차 완성되는 세계는 현재 공간에서도 도약이 가능한 것으로 보는데 그 방법은 현상에 대한 집착과 아집을 분쇄하므로서 곧 시간 그 자체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방법이다.

이런 순환론과는 달리 일직선상으로 발전과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는 식의 역사관이 있다. 유일신을 표방한 유대교나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그 영향을 받는 사상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상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진보 또한 그 결정적 원리에 준해서 필연적으로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신의 은총에 의해 악마가 뿌려 놓은 죄는 결국 정복이 될 것이고 이제 남은 것은 온 우주가 안식을 즐기는 희년 뿐이다.

인류의 역사란 단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한 순간의 악몽과 같은 중간 시대에 불과하다. 희망이란 인간이 일구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서 주어진다. 영원한 낙원 시대에는 다시는 악이 침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진보 사상은 헤겔이나 마르크스, 토인비 등에 영향을 끼친다. 다만 이들은 신의 정신을 물질 세계까지 개입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신의 세속화이다. 인간 노동의 이름으로, 물질의 이름으로 진보되어지고 또한 반복되는 문명 변천은 곧 옛날 신화의 시절에서의 신의 작업들이었다. 이것을 ‘문화 순환론’이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문화 순환론에 관심을 쏟은 학자는, 오스발트 슈펭글러와 소르킨과 토인비이다. 스펭글러는 말하기를, 한 문명이 태어나서 소멸되기까지 대략 1000년의 생명 주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1000년 동안 인간들은, 자기 문화에 영감을 불어넣고 그것을 무한의 세계와 연결시키고 나중에는 그것마저 허무한 허상으로 간주해 버린다. 소르킨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 선조들의 영웅들을 모방하면서 초월적인 상징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나중에서 그 상징성이 감각적인 것으로 퇴화되면서 퇴폐적인 것으로 변모된다고 한다.

토인비는, 문화의 시작이 창조력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도전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로 인해 문명은 성장한다. 그러나 전체를 위한 이슈가 시들해지고 개체의 가치가 증가하면서 문명은 해체되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자의식을 우상시하면 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유형의 문화 역사관을 진단하면서 저자는 미래를 내다보기를, 얼마 안 가서 정신이 우위에서는 그런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역사관

성경은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안(in)’을 말씀하고 ‘아래’를 말씀하신다. 아담 안에 있는 자에게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인간 세계는 이미 배후를 장악한 악의 세력에 의해 조종 받아 왔다(에베소서 2: 1- 3). 복음은 단순히 유대교적 역사관과 시간관을 그대로 베껴 온 것이 결코 아니다. 십자가 이후에 이미 완성된 상태로 인수해 온 것이다. 이 완성된 복음은, 아직도 미완성에 매달려 그 미완성을 인간의 노력으로 완성으로 전환시키려는 인간의 본성을 집요하게 고발하고 있는 입장에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미완성일 따름이다. 즉 아직도 고발 거리가 남아 있는 세상을 통해서 완성을 확인시키는 심판 작업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미완성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구원 사역이 다 완성되지 않아서 미완성이 아님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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