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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하느님 : 과학시대를 위한 신론입문성경신학마태복음

하느님 : 과학시대를 위한 신론입문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하느님 : 과학시대를 위한 신론입문

이 근 호 목사

저 자 : G. 하센휫틀 (Gotthold Hasenhuttl)
번 역 : 심상태
출판사 : 성바오로출판사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마디씩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의 본성에 각기 새겨진 하나님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제시하기란 난해한 일이다. 신의 존재와 본성에 대한 호기심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또한 자기 생활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만약 평소에 알고 있던 하나님이 실제로 성경에서 계시하는 하나님과 다르다면…? 이것은 중차대한 문제이다.

거짓된 하나님의 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는 참된 하나님 상으로 교체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해결 안 된다. 거짓된 하나님 관은 연쇄적으로 거짓된 예수상을 유발하고 이로서 신앙의 전체 틀이 우상의 창고로 저장고로 변모되게 마련이다. 성경과 마주 대하여야 한다. 거짓된 하나님 모습의 실체를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으로 인해 진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음을 자인해야 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체험될 수 있는 하나님이다. 현재 자기 백성과 늘 관계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강한 통치력으로 다가오신다. 이스라엘은, 자기의 하나님이 그 어느 종족의 신들보다 더욱 더 강한 하나님으로 인식했다. 이점에 그들은 감사했다. 여호와는 감사 명칭이지 단순한 호칭을 위한 명칭이 아니다. 이렇듯 감사하는 자기 백성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시기에 늘 그 감사를 요구하시기도 한다.

본질적으로 제사나 봉헌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 백성으로부터 올라오는 사랑을 그리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에게 다가오시면서 ‘자신의 형상’이라는 입장을 고려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복수자, 통치권자라는 강한 이미지의 하나님이 ‘사랑의 인물’로 구체화된 것은 신약에 들어와서이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그리고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영역이 그분 안에서만 열리게 되어 있지 다른 곳에서 여전히 닫혀 있다. 그분은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시고 누군가를 찾으려 오셨다. 다정다감한 아버지로서 구원의 선물을 줄자를 찾았던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들 속에 계시고 곁에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 체험은 묵시적이 아니라 가장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것이 되었다. 그분은 인간들의 자기 의의 기초들을 포기하라고 촉구하신다. 이것이 “회개하라”라는 뜻이다. 자기 선행이나 자기 종교는 접근된 하나님 곁에서 불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그분의 용서뿐이다.

예수님이 부활되고 난 뒤에도 과연 하나님의 체험이 역사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 성령의 공동체가 등장된다. 다양한 신의 체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가운데서 일치성을 갖춘다. 이 체험들은 사랑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한1서 4:20).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시킬 수 없다.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마태복음 25:40)라고 하셨다. 과거 예수님 지상에 계실 때도 그러하듯이 성령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실재는 계속 역사적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실은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더욱 유익하다”(요16:7).

하나님의 체험에 대해서 교회는 삼위로 해석했다. 즉 체험을 하나로 모으게 하시는 성부, 지독한 고통과 버림의 체험을 교회 안에 발생시키시는 성자, 그리고 그 고통을 오히려 사랑의 기쁜 소식으로 제공하시는 성령, 이 셋의 체험이 교회에서 공통적 고백이 된다. 하지만 교회 역사 속에서 이 세 가지 체험에 도전하는 이단들이 등장되었다.

대략적으로, 종속론, 우주론, 삼신론, 무신론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종속론이란, 성자와 성령을 성부에게 종속시켜 하위 계급으로 간주하는 이론이요, 우주론은, 성자를 성부의 변형체로 인식하는 이론이요, 삼신론은, 세 가지 체험들이 객관화되는 과정에서 본성과 분리된 채 각자 단일성을 지닌다는 이론이요, 무신론은, 인간들의 만남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뿐이지 결코 자아 스스로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체험을 부정하는 이론이다.

이 무신론들 가운데서는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 인식의 중재자라고 주장하는 전통주의자들도 포함된다. 이 네 가지 이론들과 배타적으로 대결하는 가운데서 삼위일체는 체험의 신론으로 자리잡아 나간다. 이 삼위일체 이론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론까지 비판할 수 있다. 개신교의 루터와 칼빈은 토마스의 초월적 신론을 극복하기 위해 신앙과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 관을 강조했다.

즉 신앙을 주시고 그 신앙은 항상 역사적으로 점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공격하는 것이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그 죄악된 역사 안에 들어 있는 인간을 버리지 않고 무조건 찾아 들고 관계하시는 하나님이기도 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역사 안에 매여 있으신 분이다. 이러한 루터의 견해가 오늘날까지 신론의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상반성은 점차 무의미해지고 남은 것은 타인뿐이다.

평 가

저자는,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긍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하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로서 역사는 신의 체험을 맛보게 되며 새로운 현실들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인간과 신을 경쟁시키고 있다. 그리고 대비하고 있다. 통치력 대비, 사랑 대비, 존재 대비, 관계 대비 같은 것으로 신의 위상을 정립하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신다. 인간을 향하여 계시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필요로 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론과 인간론을 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쓰여진 책이다(요5:39). 저자가 신을 인간과의 관계적 체험으로만 정립하려 하니 영역 만들어 주기에 분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들이 신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싶어한다는 적극적 배도성 앞에 그 영역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자는 인간 내부에 있는 신에 대한 공격성을 놓치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의 언어로 신을 한껏 높여 주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자기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적절한 유신론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그 언어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마치 복음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해 주는 교회의 경솔함이 더 큰 문제이다. 구원의 능력은 분명히 십자가에 있다(고전 1:18,23/ 2: 2). 참된 하나님도 이것만을 영광으로 삼으신다(요한복음 17: 1).

첨부파일 : 하느님.hwp (32.0K), Down:12

관리자(IP:124.♡.84.82)

09-02-17 22:08

하느님 : 과학시대를 위한 신론입문

이 근 호 목사

저 자 : G. 하센휫틀 (Gotthold Hasenhuttl)
번 역 : 심상태
출판사 : 성바오로출판사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마디씩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과 인간의 본성에 각기 새겨진 하나님과의 차이를 극명하게 제시하기란 난해한 일이다. 신의 존재와 본성에 대한 호기심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또한 자기 생활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만약 평소에 알고 있던 하나님이 실제로 성경에서 계시하는 하나님과 다르다면…? 이것은 중차대한 문제이다.

거짓된 하나님의 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는 참된 하나님 상으로 교체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해결 안 된다. 거짓된 하나님 관은 연쇄적으로 거짓된 예수상을 유발하고 이로서 신앙의 전체 틀이 우상의 창고로 저장고로 변모되게 마련이다. 성경과 마주 대하여야 한다. 거짓된 하나님 모습의 실체를 감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으로 인해 진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돌아가시게 되었음을 자인해야 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체험될 수 있는 하나님이다. 현재 자기 백성과 늘 관계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 관계는 강한 통치력으로 다가오신다. 이스라엘은, 자기의 하나님이 그 어느 종족의 신들보다 더욱 더 강한 하나님으로 인식했다. 이점에 그들은 감사했다. 여호와는 감사 명칭이지 단순한 호칭을 위한 명칭이 아니다. 이렇듯 감사하는 자기 백성을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시기에 늘 그 감사를 요구하시기도 한다.

본질적으로 제사나 봉헌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 백성으로부터 올라오는 사랑을 그리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에게 다가오시면서 ‘자신의 형상’이라는 입장을 고려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복수자, 통치권자라는 강한 이미지의 하나님이 ‘사랑의 인물’로 구체화된 것은 신약에 들어와서이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그리고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영역이 그분 안에서만 열리게 되어 있지 다른 곳에서 여전히 닫혀 있다. 그분은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시고 누군가를 찾으려 오셨다. 다정다감한 아버지로서 구원의 선물을 줄자를 찾았던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들 속에 계시고 곁에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 체험은 묵시적이 아니라 가장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것이 되었다. 그분은 인간들의 자기 의의 기초들을 포기하라고 촉구하신다. 이것이 “회개하라”라는 뜻이다. 자기 선행이나 자기 종교는 접근된 하나님 곁에서 불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그분의 용서뿐이다.

예수님이 부활되고 난 뒤에도 과연 하나님의 체험이 역사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여기에 성령의 공동체가 등장된다. 다양한 신의 체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가운데서 일치성을 갖춘다. 이 체험들은 사랑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한1서 4:20).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시킬 수 없다.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마태복음 25:40)라고 하셨다. 과거 예수님 지상에 계실 때도 그러하듯이 성령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실재는 계속 역사적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실은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더욱 유익하다”(요16:7).

하나님의 체험에 대해서 교회는 삼위로 해석했다. 즉 체험을 하나로 모으게 하시는 성부, 지독한 고통과 버림의 체험을 교회 안에 발생시키시는 성자, 그리고 그 고통을 오히려 사랑의 기쁜 소식으로 제공하시는 성령, 이 셋의 체험이 교회에서 공통적 고백이 된다. 하지만 교회 역사 속에서 이 세 가지 체험에 도전하는 이단들이 등장되었다.

대략적으로, 종속론, 우주론, 삼신론, 무신론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종속론이란, 성자와 성령을 성부에게 종속시켜 하위 계급으로 간주하는 이론이요, 우주론은, 성자를 성부의 변형체로 인식하는 이론이요, 삼신론은, 세 가지 체험들이 객관화되는 과정에서 본성과 분리된 채 각자 단일성을 지닌다는 이론이요, 무신론은, 인간들의 만남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뿐이지 결코 자아 스스로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체험을 부정하는 이론이다.

이 무신론들 가운데서는 오직 교회만이 하나님 인식의 중재자라고 주장하는 전통주의자들도 포함된다. 이 네 가지 이론들과 배타적으로 대결하는 가운데서 삼위일체는 체험의 신론으로 자리잡아 나간다. 이 삼위일체 이론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론까지 비판할 수 있다. 개신교의 루터와 칼빈은 토마스의 초월적 신론을 극복하기 위해 신앙과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 관을 강조했다.

즉 신앙을 주시고 그 신앙은 항상 역사적으로 점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공격하는 것이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그 죄악된 역사 안에 들어 있는 인간을 버리지 않고 무조건 찾아 들고 관계하시는 하나님이기도 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역사 안에 매여 있으신 분이다. 이러한 루터의 견해가 오늘날까지 신론의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상반성은 점차 무의미해지고 남은 것은 타인뿐이다.

평 가

저자는,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긍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하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로서 역사는 신의 체험을 맛보게 되며 새로운 현실들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인간과 신을 경쟁시키고 있다. 그리고 대비하고 있다. 통치력 대비, 사랑 대비, 존재 대비, 관계 대비 같은 것으로 신의 위상을 정립하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신다. 인간을 향하여 계시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필요로 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은 신론과 인간론을 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쓰여진 책이다(요5:39). 저자가 신을 인간과의 관계적 체험으로만 정립하려 하니 영역 만들어 주기에 분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들이 신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싶어한다는 적극적 배도성 앞에 그 영역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저자는 인간 내부에 있는 신에 대한 공격성을 놓치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의 언어로 신을 한껏 높여 주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자기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적절한 유신론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그 언어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마치 복음 안에 있는 것으로 간주해 주는 교회의 경솔함이 더 큰 문제이다. 구원의 능력은 분명히 십자가에 있다(고전 1:18,23/ 2: 2). 참된 하나님도 이것만을 영광으로 삼으신다(요한복음 1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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