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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생태학과 신학 : 생태학적 정의와 그의 영성을 향하여성경신학로마서

생태학과 신학 : 생태학적 정의와 그의 영성을 향하여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생태학과 신학 : 생태학적 정의와 그의 영성을 향하여

이 근 호 목사

편 저 : 이정배
출판사 : 종로 서적

사회 전반이, 짜증나는 생활환경과 오염된 자연을 바라보면서 괴로워 할 때, 신학계나 교계도 여기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 중의 하나가 본 책이다. 큰 장애물처럼 막아서고 있는 환경 보존 문제에 대해서 신학이 도울 수 있는 면을 근원부터 다시 정리 정돈하고 또 교회가 담당할 수 있는 점에 대해 그 신학적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 책이 쓰여졌다.

지금까지의 신학은 한결같이 인간 위주였다. 자연은 인간에게 소비되기 위해서 인간에게 붙여 준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성경을 제대로 보게 되면 이러한 주장은 과장된 것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에서, 씨 맺는 채소나 과일은 결코 인간만의 음식이나 양식이 아니라 다른 짐승과 공중의 새들의 먹이로도 제공되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뭔가 피조물간의 공동체적 삶의 연계 같은 것이 이미 창조 시부터 형성되어 있었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한 형상을 주신 것은, 다른 피조물을 학대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해 주라는 사명에서 비롯된 것이다.(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인간의 다스림 속에는, 하나님이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은총과 자비로서 유지하려는 '하나님 다스림의 원칙'이 대리적으로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인간이 본연의 사명을 상실하고 비은혜적으로 자행한다면 하나님은 그 인간을 징벌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반대로 자연 이 인간 세계에 대항하도록 조처하신다.

그 예가 구약 전체에 펴져 흘려 내려오고 있는데, 아담이 범죄 했을 때의 가시와 엉겅퀴의 출현, 그리고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했을 때 “네가 밭 갈아도 땅이 효력을 내지 않는다”는 징벌,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범죄 했을 때, 예상외의 흉년이나 메뚜기의 침해나 자연 사태가 일어난다는 사실 같은 예들이다.

이러한 예는, 땅의 피조세계와 인간이 같은 원칙 안에 하나로 묶여 있음을 증명한다. 모두 다 본디의 창조 틀 안에 놓여 있는 것이 가장 현실적 설명이며 구약 해석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의 황폐를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자연 파괴는, 단순히 인간들의 자위적인 행위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고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 설명되어져야 한다.

반면 만약 인간이 창조의 원칙을 준수하면 축복이 주어지는데 이도 추상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자연물의 풍성으로 제시된다.

"대머리 산에 개울물이 흐르고 평지에서 샘물이 터지리라 마른땅에서 물이 솟아 나와 사막을 늪으로 만들리라 사막에 송백과 아카시아와 소귀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심고 황무지에 전나무와 느티나무와 회양목을 함께 심으리라"(이사야 41:18/36:6)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희망을 구체적 자연 상황으로 예언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실제로 자연 세계 안에서 가시화된다."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놓으리라"(이사야 11:8)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에 와서도 하나님은 끝까지 현 세계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인간의 의로움은 곧 세계의 의로움으로 이어진다. 개인적인 종말적 구원 상황은 우주 전체의 영광 회복으로 귀속된다. 현 세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구원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함께 즐거워하는 지경을 구상하셨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로마서 8:19, 21-22)

피조물이 지금까지 고통 하게 된 것은 신약에 와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악마 때문이었다. 악마의 지배로 인해 만물은 하나님과 화해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만물은 새로운 지배 체제를 형성했다. 만물을 제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라 창조의 중재자로서 자신이 나서신 것이다. 이로서 만물은 그분에게 소속되며 그분의 우주의 머리가 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1:10)

사도 바울에 의하면, 창조라는 개념은 전면적인 새창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조를 통해서 보여진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창조의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구약에서 사용된 같은 차원에서 거론하고 있다. 즉 창조가 새로운 형성이며 갱신하는 작업이다. 세계는 여전히 소멸하지 않는 것이다. 변형되어야 될 세계이지 결코 없어질 세계는 아니다. 단 처음 창조 때의 세계로 원상 복귀하지는 않기에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고…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요한계시록 21:1,5)

만물은 처음부터 인간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소유였다. 그러하기에 새로운 몸으로 지음 받은 교회의 임무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인데 이 복음 안에는 세계 멸망의 원인을 묻는 사명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우주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다른 피조물들과 같은 공동체 관계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인간 자신들만의 생존에만 연연해 온 과거를 되돌아 봐야 한다. 소비를 위해서 그 어떤 착취와 훼손조차도 도리어 신의 은총으로 해석한 과오를 자인하고 이제는 인간에게 위임된 보호라는 사명까지도 감당해야 한다고, 논문 기고자 게르하르트 프리드릭은 말하고 있다.

평 가

신학이 사회에 대해서 무엇인가 해결책이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의식에는, 복음에 대한 경시와 무지가 깔려 있게 된다. 오늘날의 신학들은 자기 내용조차 다 채우지 못해서 조급한 나머지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세상의 여러 가지 일에 기웃 기웃 한다. 사상적 잔심부름이나 해줄 요량이다. 그러나 결과는 늘 사회부터로도 냉대와 천시의 대상이 된다. 복음이 능력이 있으려면 자기대로의 확고한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미 사회가 보편적으로 정립해 놓은 구획에 머물려 보조원 노릇이나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일거리 없는 건달처럼 보이기 쉽상이다. 기존의 환경 문제나 생태학이 어디까지나 땅에 관한 이슈이다.

그러나 복음은 땅을 저주하고 하늘나라의 축복을 터뜨리는 위력을 담고 있다. 같이 환경 문제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환경 문제로 고민해야만 하는 그 인간의 비자유성을 폭로시켜야 한다. 구약에서 땅은, 일반적 땅의 원칙을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보이기 위한 “약속의 땅” 이미지에 국한된다. 약속의 땅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환경이나 자연 보존 문제와 전혀 상관없다. 프레드릭은 이 점을 놓치고 있다. 약속의 땅은 항상 땅 자체를 초월하여 “하나님 계신 곳”이라는 하늘나라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신약에서의 초점도 피조 세계의 완성이 아니라 하늘 세계의 강림이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성전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오도록 되어 있지 결코 땅의 것이 갱신하거나 연결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요한계시록 21: 2).

첨부파일 : 생태학과신학.hwp (32.0K), Down:18

관리자(IP:124.♡.84.82)

09-02-17 20:08

생태학과 신학 : 생태학적 정의와 그의 영성을 향하여

이 근 호 목사

편 저 : 이정배
출판사 : 종로 서적

사회 전반이, 짜증나는 생활환경과 오염된 자연을 바라보면서 괴로워 할 때, 신학계나 교계도 여기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 중의 하나가 본 책이다. 큰 장애물처럼 막아서고 있는 환경 보존 문제에 대해서 신학이 도울 수 있는 면을 근원부터 다시 정리 정돈하고 또 교회가 담당할 수 있는 점에 대해 그 신학적 정당성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 책이 쓰여졌다.

지금까지의 신학은 한결같이 인간 위주였다. 자연은 인간에게 소비되기 위해서 인간에게 붙여 준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성경을 제대로 보게 되면 이러한 주장은 과장된 것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에서, 씨 맺는 채소나 과일은 결코 인간만의 음식이나 양식이 아니라 다른 짐승과 공중의 새들의 먹이로도 제공되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뭔가 피조물간의 공동체적 삶의 연계 같은 것이 이미 창조 시부터 형성되어 있었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한 형상을 주신 것은, 다른 피조물을 학대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보호해 주라는 사명에서 비롯된 것이다.(창세기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인간의 다스림 속에는, 하나님이 피조세계의 아름다움을 은총과 자비로서 유지하려는 '하나님 다스림의 원칙'이 대리적으로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인간이 본연의 사명을 상실하고 비은혜적으로 자행한다면 하나님은 그 인간을 징벌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반대로 자연 이 인간 세계에 대항하도록 조처하신다.

그 예가 구약 전체에 펴져 흘려 내려오고 있는데, 아담이 범죄 했을 때의 가시와 엉겅퀴의 출현, 그리고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했을 때 “네가 밭 갈아도 땅이 효력을 내지 않는다”는 징벌,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범죄 했을 때, 예상외의 흉년이나 메뚜기의 침해나 자연 사태가 일어난다는 사실 같은 예들이다.

이러한 예는, 땅의 피조세계와 인간이 같은 원칙 안에 하나로 묶여 있음을 증명한다. 모두 다 본디의 창조 틀 안에 놓여 있는 것이 가장 현실적 설명이며 구약 해석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의 황폐를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자연 파괴는, 단순히 인간들의 자위적인 행위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고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 설명되어져야 한다.

반면 만약 인간이 창조의 원칙을 준수하면 축복이 주어지는데 이도 추상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자연물의 풍성으로 제시된다.

"대머리 산에 개울물이 흐르고 평지에서 샘물이 터지리라 마른땅에서 물이 솟아 나와 사막을 늪으로 만들리라 사막에 송백과 아카시아와 소귀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심고 황무지에 전나무와 느티나무와 회양목을 함께 심으리라"(이사야 41:18/36:6)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희망을 구체적 자연 상황으로 예언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실제로 자연 세계 안에서 가시화된다."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 뗀 어린 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놓으리라"(이사야 11:8) 구약과 마찬가지로 신약에 와서도 하나님은 끝까지 현 세계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인간의 의로움은 곧 세계의 의로움으로 이어진다. 개인적인 종말적 구원 상황은 우주 전체의 영광 회복으로 귀속된다. 현 세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구원을 통해 모든 피조물이 함께 즐거워하는 지경을 구상하셨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로마서 8:19, 21-22)

피조물이 지금까지 고통 하게 된 것은 신약에 와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악마 때문이었다. 악마의 지배로 인해 만물은 하나님과 화해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만물은 새로운 지배 체제를 형성했다. 만물을 제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라 창조의 중재자로서 자신이 나서신 것이다. 이로서 만물은 그분에게 소속되며 그분의 우주의 머리가 된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1:10)

사도 바울에 의하면, 창조라는 개념은 전면적인 새창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조를 통해서 보여진 하나님의 창조 행위와 창조의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구약에서 사용된 같은 차원에서 거론하고 있다. 즉 창조가 새로운 형성이며 갱신하는 작업이다. 세계는 여전히 소멸하지 않는 것이다. 변형되어야 될 세계이지 결코 없어질 세계는 아니다. 단 처음 창조 때의 세계로 원상 복귀하지는 않기에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고…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요한계시록 21:1,5)

만물은 처음부터 인간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소유였다. 그러하기에 새로운 몸으로 지음 받은 교회의 임무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인데 이 복음 안에는 세계 멸망의 원인을 묻는 사명도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우주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다른 피조물들과 같은 공동체 관계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인간 자신들만의 생존에만 연연해 온 과거를 되돌아 봐야 한다. 소비를 위해서 그 어떤 착취와 훼손조차도 도리어 신의 은총으로 해석한 과오를 자인하고 이제는 인간에게 위임된 보호라는 사명까지도 감당해야 한다고, 논문 기고자 게르하르트 프리드릭은 말하고 있다.

평 가

신학이 사회에 대해서 무엇인가 해결책이나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의식에는, 복음에 대한 경시와 무지가 깔려 있게 된다. 오늘날의 신학들은 자기 내용조차 다 채우지 못해서 조급한 나머지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세상의 여러 가지 일에 기웃 기웃 한다. 사상적 잔심부름이나 해줄 요량이다. 그러나 결과는 늘 사회부터로도 냉대와 천시의 대상이 된다. 복음이 능력이 있으려면 자기대로의 확고한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미 사회가 보편적으로 정립해 놓은 구획에 머물려 보조원 노릇이나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일거리 없는 건달처럼 보이기 쉽상이다. 기존의 환경 문제나 생태학이 어디까지나 땅에 관한 이슈이다.

그러나 복음은 땅을 저주하고 하늘나라의 축복을 터뜨리는 위력을 담고 있다. 같이 환경 문제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환경 문제로 고민해야만 하는 그 인간의 비자유성을 폭로시켜야 한다. 구약에서 땅은, 일반적 땅의 원칙을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보이기 위한 “약속의 땅” 이미지에 국한된다. 약속의 땅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환경이나 자연 보존 문제와 전혀 상관없다. 프레드릭은 이 점을 놓치고 있다. 약속의 땅은 항상 땅 자체를 초월하여 “하나님 계신 곳”이라는 하늘나라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신약에서의 초점도 피조 세계의 완성이 아니라 하늘 세계의 강림이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성전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오도록 되어 있지 결코 땅의 것이 갱신하거나 연결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요한계시록 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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