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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여자란 무엇인가성경신학[신학]

여자란 무엇인가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여자란 무엇인가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김용옥
출판사 : 통나무

구약 성경에 보면, 가나안 이방민족들이 섬기는 바알 신에 대해서 빈번하게 나온다. 이 바알 신이 한국의 정서와는 아마 상관없는 신일 것이라는 편한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 당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알 신에 대해서 쉴 새 없이 경계심을 갖기를 당부하는데 대해서 의아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실상을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구석구석에 바알 신을 찬미하는 예배로 일관되어 있다. 마치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겉으로는 여호와를 거론하면서도 알갱이는 바알 신학에 기초한 것과 같다. 이제 이 바알 신의 실체를 알 때가 되었다. 철학가 김용옥씨가 이 일을 도와준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자연과 상대하면서 살아왔다.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자연을 배제하지 않았다. 자연세계가 하늘과 땅 사이의 교류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점을 인간들의 감을 잡고 그 원칙의 해법을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했다. 곧 남성과 여성과의 상관관계이다. 하늘과 땅을 남성과 여성의 속성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대림관계가 아니다. 마치 남성과 여성이 대립관계일 수 없듯이. 여성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땅이 하늘 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을 묻는 것과 같다.

예전부터 여성은 남자의 가계를 잇기 위한 기능자로서 가치가 있었다. 종족 보존이라는 천래적 타당성에 적절한 역할이다. 조상숭배는 모든 민족종교의 공통점이다. 부권 강화를 위한 이미지는 자연에서 빌려왔다. 즉 하늘은 남자요 땅은 여자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하늘을 우러러 숭배하고 땅을 하늘에 종속시킨 우주관에서 유래된다.

땅에 사는 미물들은 하늘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살 재주가 없다. 특히 농경문화에 처해 있는 민족들이 더욱 그러했다. 하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종교 제전의 형식은 바로 여성성을 자진해서 취하는 형태이다. 제사에 암소가 제물로 바쳐진다. 이 여성적인 요소들로서 남성적인 요소인 하늘과 결합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면 제 때에 적절한 비를 하늘로부터 공급받게 된다고 그들은 인식했다.

하늘과 땅의 성적인 결합의 결과로 신성한 생명물이 쏟아진다. 정착 생활로 일관하는 농경사회에서 적절한 강우는 농사에 필수적이다. 하늘을 남성으로 이해하고 땅을 여성으로 이해해서 상호간의 결합을 시도하고자 애쓰는 모든 이유는, 가문과 핏줄의 영구 보존과 불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국가가 이로서 성립이 되는 것이다.

전에는 한 가문의 성소를 통해서 신과 교류하던 풍습도 국가 사회가 되면 정식으로 제사장 계급이 있어 행적으로 체계화되고 그 성전 일에만 전념하는 특수 계급이 생겨난다. 소위 제사장들이다. 종교가 제 틀을 잡는 것도 이런 시기이다. 농사짓는 자들에게는 5월과 10월에 비가 내리는 것이 요긴하다. 봄 가을이 하늘의 축복이 가시화 되는 시기이다. 이 봄 가능의 축복은 해마다 반복이 된다.

이 반복의 횟수가 그 국가의 역사가 된다. 기억남을 만한 축복의 시기를 핵심으로 삼는 것이다. 한 국가의 역사란 곧 그 소속된 가문과 핏줄들이 영속적으로 이어온 기간의 양이다. 이 기간이 길면 길수록 하늘의 복을 많이 함유했다고 믿는 것이다. 이 축복의 때를 맞추어 종교 축제를 한 바탕 벌어지는 것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온 대지가 여성화되어 여성으로 되돌아온다. 여성이기를 원한다. 하늘의 축복이 쏟아져 들어올 공간을 준비하고 마음가짐을 갖춘다.

이 땅의 축제는 진정 여성의 가치성과 의미를 확고히 하는 모임이다. 일은 남성이 힘들게 하지만 여성을 통한 하늘의 복을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이다. 하늘을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땅도 숭배의 대상이다. 하늘과 땅을 배합되는 그 축복의 장소, 그 중심에는 인간이 서 있으며 남성과 여성이 서 있다. 그래서 얻어진 것은 자손의 번창이다. 새로운 아드님과 따님의 번식이다.

이 일의 활력의 원천은 하늘과 땅의 기로부터이다. 대지에서의 죽음이라는 것이 자손 번식을 통해 극복된다. 비롯 개인적인 죽음사건을 발생될지 모르겠지만, 자자손손의 무한한 연쇄 고리 안에서 인간의 불멸성은 전체적으로 확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어서 흙이 되어 썩는다는 자연현상도 사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땅 내부에서 거름으로 순환되는 것이다. 땅은 여성이며 영원한 어머니이다. 그 자궁 안으로 들어가서 대지의 근원에 합류되는 것에 불과하다. 육신은 썩지만 대지 안에서 이미 와 있던 그 조상들의 생명력에 의해 계속해서 후손 번식에 영향을 준다. 조상이나 후손이나 모두 다 대지라고 하는 한 여성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상호 교류되는 것이다.

땅 위와 땅 밑의 구분이란 사실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시간도 공간도 땅의 다양한 변화 안에서 순환되고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땅에서 일어나는 각가지 다양함도 실제에 있어 하늘의 신령한 영이 대지 곳곳에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하다고 해서 둘이나 여럿으로 분리되어지지 않는 것이 땅의 세계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호 협동적인 이유가 여기 있었다. 약한 것은, 강함의 약함을 보충하고, 강함은 약함의 모자람을 보충시켜 준다. 하늘을 숭상하되 땅을 배척하고 도외시하고 천시 여기기 하면서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땅과 하늘의 결합을 시도하기 위한 존경이다. 진정 현실을 제대로 고려한 땅의 문화, 바로 이것이 마땅히 이 사회에 회생되어야 될 문화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평 가

땅 없이 하늘 없고, 사람 없이 하나님도 무의미하다는 이 생래적 인간본성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든지 기독교에 문을 두드리는 것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히브리서 12:29). 기존의 가슴 가득히 상상되었던 신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세계를 방문하려고 꿈도 꾸어서는 안 된다. 출입구는 이미 결정되어 버렸다. 오직 한군데뿐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 죽음뿐이다. 따라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자 아니하면 영원히 하나님을 뵐 수 없다(갈라디아서 2:20).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살아야 할 텐데, 살아야 할 텐데, 이 바닥에서 기어이 살아남아야 할 텐데…”라는 정신 상태로 신의 흔적을 더듬는 사람이 있다면 김용옥의 망령은 그 사람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히죽 히죽 웃으면서 접근해서 다음과 같이 일러 줄 것이다. “너는 분명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야!”

바알 종교, 이 종교는 세상 사람에게는 영원한 친구요 같은 운명의 길을 간다. 그러나 복음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계속 적이다. 자신의 가문과 핏줄과 자아의 불멸성을 우선한다면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족과의 친화성은 감추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본능이다.

바알 종교에서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자도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오히려 벗어날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령은 새로운 핏줄을 소개하고 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마태복음 12:48, 50).

첨부파일 : 여자란무엇인가.hwp (32.0K), Down:19

관리자(IP:124.♡.84.82)

09-02-17 12:56

여자란 무엇인가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김용옥
출판사 : 통나무

구약 성경에 보면, 가나안 이방민족들이 섬기는 바알 신에 대해서 빈번하게 나온다. 이 바알 신이 한국의 정서와는 아마 상관없는 신일 것이라는 편한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 당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알 신에 대해서 쉴 새 없이 경계심을 갖기를 당부하는데 대해서 의아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실상을 알고 보면 그게 아니다. 구석구석에 바알 신을 찬미하는 예배로 일관되어 있다. 마치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겉으로는 여호와를 거론하면서도 알갱이는 바알 신학에 기초한 것과 같다. 이제 이 바알 신의 실체를 알 때가 되었다. 철학가 김용옥씨가 이 일을 도와준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자연과 상대하면서 살아왔다.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자연을 배제하지 않았다. 자연세계가 하늘과 땅 사이의 교류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점을 인간들의 감을 잡고 그 원칙의 해법을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했다. 곧 남성과 여성과의 상관관계이다. 하늘과 땅을 남성과 여성의 속성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대림관계가 아니다. 마치 남성과 여성이 대립관계일 수 없듯이. 여성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땅이 하늘 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을 묻는 것과 같다.

예전부터 여성은 남자의 가계를 잇기 위한 기능자로서 가치가 있었다. 종족 보존이라는 천래적 타당성에 적절한 역할이다. 조상숭배는 모든 민족종교의 공통점이다. 부권 강화를 위한 이미지는 자연에서 빌려왔다. 즉 하늘은 남자요 땅은 여자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하늘을 우러러 숭배하고 땅을 하늘에 종속시킨 우주관에서 유래된다.

땅에 사는 미물들은 하늘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살 재주가 없다. 특히 농경문화에 처해 있는 민족들이 더욱 그러했다. 하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종교 제전의 형식은 바로 여성성을 자진해서 취하는 형태이다. 제사에 암소가 제물로 바쳐진다. 이 여성적인 요소들로서 남성적인 요소인 하늘과 결합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면 제 때에 적절한 비를 하늘로부터 공급받게 된다고 그들은 인식했다.

하늘과 땅의 성적인 결합의 결과로 신성한 생명물이 쏟아진다. 정착 생활로 일관하는 농경사회에서 적절한 강우는 농사에 필수적이다. 하늘을 남성으로 이해하고 땅을 여성으로 이해해서 상호간의 결합을 시도하고자 애쓰는 모든 이유는, 가문과 핏줄의 영구 보존과 불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국가가 이로서 성립이 되는 것이다.

전에는 한 가문의 성소를 통해서 신과 교류하던 풍습도 국가 사회가 되면 정식으로 제사장 계급이 있어 행적으로 체계화되고 그 성전 일에만 전념하는 특수 계급이 생겨난다. 소위 제사장들이다. 종교가 제 틀을 잡는 것도 이런 시기이다. 농사짓는 자들에게는 5월과 10월에 비가 내리는 것이 요긴하다. 봄 가을이 하늘의 축복이 가시화 되는 시기이다. 이 봄 가능의 축복은 해마다 반복이 된다.

이 반복의 횟수가 그 국가의 역사가 된다. 기억남을 만한 축복의 시기를 핵심으로 삼는 것이다. 한 국가의 역사란 곧 그 소속된 가문과 핏줄들이 영속적으로 이어온 기간의 양이다. 이 기간이 길면 길수록 하늘의 복을 많이 함유했다고 믿는 것이다. 이 축복의 때를 맞추어 종교 축제를 한 바탕 벌어지는 것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온 대지가 여성화되어 여성으로 되돌아온다. 여성이기를 원한다. 하늘의 축복이 쏟아져 들어올 공간을 준비하고 마음가짐을 갖춘다.

이 땅의 축제는 진정 여성의 가치성과 의미를 확고히 하는 모임이다. 일은 남성이 힘들게 하지만 여성을 통한 하늘의 복을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허사이다. 하늘을 숭배하는 것과 마찬가지고 땅도 숭배의 대상이다. 하늘과 땅을 배합되는 그 축복의 장소, 그 중심에는 인간이 서 있으며 남성과 여성이 서 있다. 그래서 얻어진 것은 자손의 번창이다. 새로운 아드님과 따님의 번식이다.

이 일의 활력의 원천은 하늘과 땅의 기로부터이다. 대지에서의 죽음이라는 것이 자손 번식을 통해 극복된다. 비롯 개인적인 죽음사건을 발생될지 모르겠지만, 자자손손의 무한한 연쇄 고리 안에서 인간의 불멸성은 전체적으로 확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어서 흙이 되어 썩는다는 자연현상도 사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땅 내부에서 거름으로 순환되는 것이다. 땅은 여성이며 영원한 어머니이다. 그 자궁 안으로 들어가서 대지의 근원에 합류되는 것에 불과하다. 육신은 썩지만 대지 안에서 이미 와 있던 그 조상들의 생명력에 의해 계속해서 후손 번식에 영향을 준다. 조상이나 후손이나 모두 다 대지라고 하는 한 여성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상호 교류되는 것이다.

땅 위와 땅 밑의 구분이란 사실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시간도 공간도 땅의 다양한 변화 안에서 순환되고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땅에서 일어나는 각가지 다양함도 실제에 있어 하늘의 신령한 영이 대지 곳곳에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하다고 해서 둘이나 여럿으로 분리되어지지 않는 것이 땅의 세계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호 협동적인 이유가 여기 있었다. 약한 것은, 강함의 약함을 보충하고, 강함은 약함의 모자람을 보충시켜 준다. 하늘을 숭상하되 땅을 배척하고 도외시하고 천시 여기기 하면서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땅과 하늘의 결합을 시도하기 위한 존경이다. 진정 현실을 제대로 고려한 땅의 문화, 바로 이것이 마땅히 이 사회에 회생되어야 될 문화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평 가

땅 없이 하늘 없고, 사람 없이 하나님도 무의미하다는 이 생래적 인간본성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든지 기독교에 문을 두드리는 것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히브리서 12:29). 기존의 가슴 가득히 상상되었던 신의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의 세계를 방문하려고 꿈도 꾸어서는 안 된다. 출입구는 이미 결정되어 버렸다. 오직 한군데뿐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 죽음뿐이다. 따라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자 아니하면 영원히 하나님을 뵐 수 없다(갈라디아서 2:20).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저 “살아야 할 텐데, 살아야 할 텐데, 이 바닥에서 기어이 살아남아야 할 텐데…”라는 정신 상태로 신의 흔적을 더듬는 사람이 있다면 김용옥의 망령은 그 사람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히죽 히죽 웃으면서 접근해서 다음과 같이 일러 줄 것이다. “너는 분명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야!”

바알 종교, 이 종교는 세상 사람에게는 영원한 친구요 같은 운명의 길을 간다. 그러나 복음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계속 적이다. 자신의 가문과 핏줄과 자아의 불멸성을 우선한다면 이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족과의 친화성은 감추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본능이다.

바알 종교에서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자도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오히려 벗어날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령은 새로운 핏줄을 소개하고 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마태복음 12:48,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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