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고대 노예제도와 초기 그리스도교성경신학고린도전서

고대 노예제도와 초기 그리스도교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고대 노예제도와 초기 그리스도교

이 근 호 목사

저 자 : F. 라우프
번 역 : 박영옥
출판사 : 한국신학연구소

노예에 대한 내용을 대하면 설교자는 곧 잘 난처해진다. 노예 제도가 없어진 사회를 향해 새삼스럽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본 책은 노예에 대해서 힌트를 주는 책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취지를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그 노예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사도 바울은 현대인에게 무엇을 말할까 ….

노예란 로마 시대 때는 각 가정에 위치해 있었다. 로마 사회는 가정 중심의 사회였다. 가정에서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다. 물론 노예와 더불어 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한 가정이다. 각가지 물건과 생산 기계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예이다. 노예는 법적으로 물건에 속한다. 그렇다면 여타의 재산들과 함께 가정의 주인이 되는 가장에 철저하게 예속되는 입장이다. 무권리이며 가장의 복지와 유익을 위한 소유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노예의 권리로 인하여 가정의 평화나 질서가 깨어지는 것은 로마법에서 허용될 수 없다. 인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과의 권력 관계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노예란, 자유민의 반대 개념이다. 자유민으로 하여금 그 가치와 의미를 더욱 부각되기 위해서도 경계선은 항상 뚜렷해야 한다. 노예를 함부로 살해하거나 천하게 대하거나 학대하는 짓은 주인 되는 자유민의 품위 손상과 관련되기 때문에 법으로도 보호받는다. 결코 노예 자체의 인권을 위함이 아니다. 그런데 로마 시대에 하층민들 사이에 상부조합이라 것이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서로의 경제적 부담도 들고 친목을 도모했다.

그런데 이 조합에 노예들도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조합 안에서만은 자유민과 노예라는 구분이 철폐된다. 단지 회부를 납부한 회원이라는 자격자로만 모임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조합원들 가운데, 전파된 기독교와 접촉한 자들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고 추측이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로마의 자유민의 가정에서 복음을 영접할 때 가장의 입장에 따라 온 가정 식솔 전부에 일시에 세례 받고 기독교 교도가 되는 경우가 벌어진다. 고넬료의 경우와 그 예이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 가정에 속한 노예도 기독교 교인이 되는 것이다.

가정교회의 흔적은 신약 서신 여러 군데서 비치고 있다(디도서 1:11/ 고린도전서 16:15). 로마서 16장의 경우 4개의 가정이 등장되기도 한다. 초창기 때는 믿는 가정과 교회라는 용어를 상호 교환해서 사용해도 괜찮을 정도이다. 그 당시 한 가정 안에서는 분명히 자유민과 노예, 남자와 여자, 종족 간에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3:28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새로 시작된 가정 안에서 ‘형제’, ‘자매’ 라는 호칭이 등장되면서 외부적으로 신분 구조가 상실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현상은 도시에 위치한 다른 가정에도 반향이 주어졌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와 접촉된 노예들은 사도 바울의 복음을 오해하여 자기 주인과 맞먹어도 되는 것인 양 인식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7:20-24에서 사도 바울은, 노예 상태로 그대로 머물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 6:5-8이나 베드로전서 2:18에서는, 보이지 않는 주님께 하듯이 성심 성의껏 주인 되는 사람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같은 형제라는 이유 때문에 주인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임을 버리고 제멋대로 하는 짓은 주님의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다만 오네시모의 경우 같은 것은 사도 바울 자신이 그 노예가 주님의 일의 꼭 동원되어야 하는 필수요원이기 때문에 자신이 데리고 있다가 돌려 줄 터이니 주인 되는 빌레몬은 마치 사도 자신을 영접하는 양으로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을 노예에 위치에 일치시킨다.

사도 바울은 노예 제도 자체를 철폐를 시도하는데 관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를 통해 사회개선에 나선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예 제도를 절대적으로 옹호한 것도 아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예 제도를 이용하겠다는 뜻도 없었다. 사도 바울의 관심은 오직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노예가 자신의 신자라고해서 주인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신분 해방만을 고집해서도 안 되고 또한, 주인은 주인대로 자신의 경제적 손익만 생각해서는 참다운 종말적 교회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교회는 복음을 띄워야 한다. 일시에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날이 오더라도 부지런히 일해서 자기 먹을 것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데살로니가전서 4:11-12). 사도 바울은 열광스럽게 재림을 고대하는 자의 무질서함을 염려한다. 쓸데없는 일로 외부로부터 교회가 악평 받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점차 교회가 대규모가 되면서 가정의 가장이 담당하던 은사가 감독직으로 대체되었다. 가부장적 권위가 감독의 권위이다. 각기 다른 가정교회들끼리 모여 특정한 지역 교회가 되었다. 이때부터 범사회적 문제가 거론된다. 국가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이다. 바른 시민으로서 행동에 대해 일치된 의견이 필요했다. 노예라고 해서 가장되는 주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듯이 성도라고 해서 국가의 권세자의 권위를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공연히 칼 가진 것이 아니다. 상벌에 관해서 하나님께 위임받은 일이 있는 것이다(로마서 13:1-7). 지상에 살 동안은 성도라 할지라도 위에 있는 권세의 지배는 늘 받아야 한다. 모두 다 원만하게 복음 전파하기 위한 주님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자유자라고해서 그 자유를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위한 빌미로 동원되어서는 아니 된다(갈라디아서 5:13).

교회는, “모든 참된 것과 모든 고상한 것과 모든 옳은 것과 모든 순결한 것과 모든 사랑스러운 것과 모든 명예로운 것, 곧 덕스러운 것과 칭찬할 만한”(빌립보서 4:8) 것을 도덕적으로 유발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평 가

과연 오늘날에는 노예가 없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관계이며 노동 제공으로 맺어지는 관계이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교회는 남다른 모습을 보이기를 요구받는다. 적어도 교회에서만큼은 하늘나라의 모습 속에서 인간관계가 맺어져야 한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린도후서 8:15). 즉 교회 안에서만큼은 노동과 무관하게 모자람을 채워 주는 원칙이 유지되어야 한다.

노예가 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지만 불쌍한 노예들이 형제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사용자와 고용인이라는 칼 날 선 긴장 관계가 엄연히 현존한다. 자진해서 고용인의 신분일 것이라는 인정하고 고개 숙이기를 좋아하는 자도 복음을 심하게 훼손하는 사람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그러한 노예근성을 유도하고 또한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은 전혀 천국 사람이 아니다. 이런 자가 권세를 휘두르는 교회는 성도가 모여 있는 교회가 아니라 단지 많은 노예와 많은 부하 직원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일개 종교기업일 따름이다.

첨부파일 : 고대노예제도와초기그리스도교.hwp (32.0K), Down:26

관리자(IP:124.♡.84.82)

09-02-17 11:48

고대 노예제도와 초기 그리스도교

이 근 호 목사

저 자 : F. 라우프
번 역 : 박영옥
출판사 : 한국신학연구소

노예에 대한 내용을 대하면 설교자는 곧 잘 난처해진다. 노예 제도가 없어진 사회를 향해 새삼스럽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본 책은 노예에 대해서 힌트를 주는 책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취지를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그 노예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사도 바울은 현대인에게 무엇을 말할까 ….

노예란 로마 시대 때는 각 가정에 위치해 있었다. 로마 사회는 가정 중심의 사회였다. 가정에서 경제 활동이 이루어졌다. 물론 노예와 더불어 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한 가정이다. 각가지 물건과 생산 기계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예이다. 노예는 법적으로 물건에 속한다. 그렇다면 여타의 재산들과 함께 가정의 주인이 되는 가장에 철저하게 예속되는 입장이다. 무권리이며 가장의 복지와 유익을 위한 소유물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노예의 권리로 인하여 가정의 평화나 질서가 깨어지는 것은 로마법에서 허용될 수 없다. 인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과의 권력 관계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노예란, 자유민의 반대 개념이다. 자유민으로 하여금 그 가치와 의미를 더욱 부각되기 위해서도 경계선은 항상 뚜렷해야 한다. 노예를 함부로 살해하거나 천하게 대하거나 학대하는 짓은 주인 되는 자유민의 품위 손상과 관련되기 때문에 법으로도 보호받는다. 결코 노예 자체의 인권을 위함이 아니다. 그런데 로마 시대에 하층민들 사이에 상부조합이라 것이 자발적으로 결성되어 서로의 경제적 부담도 들고 친목을 도모했다.

그런데 이 조합에 노예들도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조합 안에서만은 자유민과 노예라는 구분이 철폐된다. 단지 회부를 납부한 회원이라는 자격자로만 모임을 갖는 것이다. 바로 이 조합원들 가운데, 전파된 기독교와 접촉한 자들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고 추측이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로마의 자유민의 가정에서 복음을 영접할 때 가장의 입장에 따라 온 가정 식솔 전부에 일시에 세례 받고 기독교 교도가 되는 경우가 벌어진다. 고넬료의 경우와 그 예이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그 가정에 속한 노예도 기독교 교인이 되는 것이다.

가정교회의 흔적은 신약 서신 여러 군데서 비치고 있다(디도서 1:11/ 고린도전서 16:15). 로마서 16장의 경우 4개의 가정이 등장되기도 한다. 초창기 때는 믿는 가정과 교회라는 용어를 상호 교환해서 사용해도 괜찮을 정도이다. 그 당시 한 가정 안에서는 분명히 자유민과 노예, 남자와 여자, 종족 간에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3:28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새로 시작된 가정 안에서 ‘형제’, ‘자매’ 라는 호칭이 등장되면서 외부적으로 신분 구조가 상실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현상은 도시에 위치한 다른 가정에도 반향이 주어졌다. 개인적으로 기독교와 접촉된 노예들은 사도 바울의 복음을 오해하여 자기 주인과 맞먹어도 되는 것인 양 인식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7:20-24에서 사도 바울은, 노예 상태로 그대로 머물라고 당부하고 있다. 그리고 에베소서 6:5-8이나 베드로전서 2:18에서는, 보이지 않는 주님께 하듯이 성심 성의껏 주인 되는 사람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같은 형제라는 이유 때문에 주인을 무시하고 자신의 소임을 버리고 제멋대로 하는 짓은 주님의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다만 오네시모의 경우 같은 것은 사도 바울 자신이 그 노예가 주님의 일의 꼭 동원되어야 하는 필수요원이기 때문에 자신이 데리고 있다가 돌려 줄 터이니 주인 되는 빌레몬은 마치 사도 자신을 영접하는 양으로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을 노예에 위치에 일치시킨다.

사도 바울은 노예 제도 자체를 철폐를 시도하는데 관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독교를 통해 사회개선에 나선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예 제도를 절대적으로 옹호한 것도 아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노예 제도를 이용하겠다는 뜻도 없었다. 사도 바울의 관심은 오직 교회가 교회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노예가 자신의 신자라고해서 주인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신분 해방만을 고집해서도 안 되고 또한, 주인은 주인대로 자신의 경제적 손익만 생각해서는 참다운 종말적 교회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교회는 복음을 띄워야 한다. 일시에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 날이 오더라도 부지런히 일해서 자기 먹을 것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데살로니가전서 4:11-12). 사도 바울은 열광스럽게 재림을 고대하는 자의 무질서함을 염려한다. 쓸데없는 일로 외부로부터 교회가 악평 받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점차 교회가 대규모가 되면서 가정의 가장이 담당하던 은사가 감독직으로 대체되었다. 가부장적 권위가 감독의 권위이다. 각기 다른 가정교회들끼리 모여 특정한 지역 교회가 되었다. 이때부터 범사회적 문제가 거론된다. 국가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이다. 바른 시민으로서 행동에 대해 일치된 의견이 필요했다. 노예라고 해서 가장되는 주인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듯이 성도라고 해서 국가의 권세자의 권위를 함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공연히 칼 가진 것이 아니다. 상벌에 관해서 하나님께 위임받은 일이 있는 것이다(로마서 13:1-7). 지상에 살 동안은 성도라 할지라도 위에 있는 권세의 지배는 늘 받아야 한다. 모두 다 원만하게 복음 전파하기 위한 주님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자유자라고해서 그 자유를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위한 빌미로 동원되어서는 아니 된다(갈라디아서 5:13).

교회는, “모든 참된 것과 모든 고상한 것과 모든 옳은 것과 모든 순결한 것과 모든 사랑스러운 것과 모든 명예로운 것, 곧 덕스러운 것과 칭찬할 만한”(빌립보서 4:8) 것을 도덕적으로 유발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평 가

과연 오늘날에는 노예가 없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의 관계이며 노동 제공으로 맺어지는 관계이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교회는 남다른 모습을 보이기를 요구받는다. 적어도 교회에서만큼은 하늘나라의 모습 속에서 인간관계가 맺어져야 한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린도후서 8:15). 즉 교회 안에서만큼은 노동과 무관하게 모자람을 채워 주는 원칙이 유지되어야 한다.

노예가 사라졌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지만 불쌍한 노예들이 형제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사용자와 고용인이라는 칼 날 선 긴장 관계가 엄연히 현존한다. 자진해서 고용인의 신분일 것이라는 인정하고 고개 숙이기를 좋아하는 자도 복음을 심하게 훼손하는 사람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그러한 노예근성을 유도하고 또한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은 전혀 천국 사람이 아니다. 이런 자가 권세를 휘두르는 교회는 성도가 모여 있는 교회가 아니라 단지 많은 노예와 많은 부하 직원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일개 종교기업일 따름이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577건 중 21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77 성경신학 신비사상 : 동·서양의 풍부한 신비체험을 분석·정리한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6-11-27
76 성경신학 사랑의 역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6-11-27
75 성경신학 포스트 모던 사회와 열린 종교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06-11-27
74 성경신학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 THE TURNING POINT - 최고관리자 06-11-27
73 성경신학 가스통 바슐라르 [신학] 최고관리자 06-11-27
72 성경신학 성경 어휘와 그 의미 : 어휘의미론 서론 [신학] 최고관리자 06-11-27
71 성경신학 근본주의 신학 [신학] 최고관리자 06-11-27
70 성경신학 호모 루덴스 : 놀이와 문화에 관한 한 연구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6-11-27
69 성경신학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다니엘 최고관리자 06-11-27
68 성경신학 역사 철학 : 역사 순환론 속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 [철학] 최고관리자 06-11-27
67 성경신학 하느님 : 과학시대를 위한 신론입문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6-11-27
66 성경신학 식인과 제왕 로마서 최고관리자 06-11-27
65 성경신학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최고관리자 06-11-27
64 성경신학 생태학과 신학 : 생태학적 정의와 그의 영성을 향하여 로마서 최고관리자 06-11-27
63 성경신학 바울과 예수 : 그리스도론의 근본문제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06-11-27
62 성경신학 시뮬라시옹 : 포스트모던 사회문화론 - 최고관리자 06-11-27
61 성경신학 여자란 무엇인가 [신학] 최고관리자 06-11-27
열람 ➜ 성경신학 고대 노예제도와 초기 그리스도교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6-11-27
59 성경신학 루가 신학의 통일성 : 루가복음과 사도행전의 분석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6-11-27
58 성경신학 법의 심리학 - 최고관리자 06-11-27
57 성경신학 교의와 교의신학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06-11-27
56 성경신학 종말 의식과 인간적 시간 : 허구 이론의 연구 [신학] 최고관리자 06-11-27
55 성경신학 인 간 미가 최고관리자 06-11-27
54 성경신학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 창세기의 현대적 이해 창세기 최고관리자 06-11-27
53 성경신학 메시야왕국 미가 최고관리자 06-11-2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