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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교의와 교의신학성경신학사도행전

교의와 교의신학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교의와 교의신학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알렉산드레 가노치
번 역 : 전헌호
출판사 : 분도 출판사

현대에 들어와서 교회 안의 교리들이 밉상을 받고 있다. 진리에 대한 객관적 탐구를 은연중에 방해하고 있다는 혐의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강요된 신앙들이 현대인의 품위를 손상시켜 준다고 회자되고 있다. 과연 교회가 스스로 교리를 포기해야만 하는가?

교리라는 것이 한 시절을 모두 점령했었던 종교의 열반세계에 대한 그리움의 흔적인가? 교회의 교리가 가장 큰 공격을 받는 이유는, 교리 자체가 스스로 진리를 요청하는 그 교만성 때문이란다. 교만이란, 근거 없는 주장을 말한다. 과연 교회 내의 교리가 근거 없이 고수되는 치매현상의 일종인가? 저자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변호한다. 이제 그의 변호를 들어보자.

교리의 형성은 신앙고백이 역사 안에서 갖는 제 모습이다.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사도들이 선포한 내용을 유지 보전해야 하는 일이다. 사도의 선포에 대해서 신앙으로 반응을 나타내게 되면 그들의 고백한 내용 또한 다음 후세를 위한 계시가 된다. 계시를 전달하는 일과 받아 드리는 일, 모두다 계시 사건으로 간주해야 된다.

교리란, 현재 발생된 이 계시 사건을 언어에다 담아 놓은 것으로서 신조와 동일시된다. 즉 그 시대의 교회의 신앙고백이 교리이다. 최초의 계시 현실이 신앙을 유발시키는 내용이라면 후대의 교리도 동일한 신앙을 발생시켜 나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교리나 신조에 반응하는 교회 공동체의 느낌이 중요하다. 단순히 괜찮은 내용을 언어로 조립해 놓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신앙이 일어난다는 말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에 주도권이 있다. 주입식 교육에 강요된 적이 없이 선포된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전적으로 헌신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 선포된 내용은 계시 사건으로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

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초창기 교회에 있어 가치 있는 경험으로 대우받는 것은, 그 당시에도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면 갖가지 전승들과 예수님의 말씀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가 차츰 체계화되고 조직화되면서 중요한 복음의 테마들만 신앙고백의 대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말씀이 더 유익하고 더 구원에 효력을 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포에 반응하는 교회 공동체의 입지에 달린 문제이다. 그 시절의 교회가 처해 있던 역사적 상황은 그 시대의 계시 사건의 환경이다. 사도가 전해 준 복음이 그들의 역사와 부딪치면서 신앙을 표현하는 함축된 언어들과 문장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첫 번째 사도회의 같은 경우이다.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더 지우지 않으려는 것이 성령의 뜻이며 우리의 결정입니다.”(15:28)

교회가 역사 안에서 결정하는 바가 곧 성령께서 일하시는 계시방식이다.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숱한 전통과 갖가지 이야기들이 그 시대에 유용하게 필요했던 계시 사건들이었듯이 후대의 복음도 그 시대가 동원할 수 있는 갖가지 역사 활동 안에서 구현될 것이다.

무엇이 복음의 핵심인지 참 선포의 본질인지 하는 것은 그 시대의 교회 공동체가 결정할 문제이다. 후대의 교회는 전대의 교회와 영속선 상에 있다. 전대의 교회는 모든 것을 그대로 후대에게 이어진다. 사도에 의해서 선포된 게시의 내용은, 각 시대의 교회들이 이단과 비진리와 투쟁한 열매의 모습으로 후일까지 전수된다. 계시가 새로이 첨가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그 내용을 지키고 순수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갈수록 더욱더 정밀한 표현으로 전달된다는 말이다.

삼위일체 같은 신조들이, 오직 성경만을 고수하는 루터와 칼빈의 개혁주의 교회에서도 같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해 준다. 옛날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구원의 도가 후대에 와서 불량품으로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류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선포내용의 무오류성을 누가 대신 보증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교회 판단의 무오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계시를 유지 보전해야 한다는 양보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 때문에 보조적인 교리 같은 것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교황의 무오류성과 마리아의 무오염성이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 카톨릭은 개신교와 대결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상황 때문에 이 보조적 교리를 전통 핵심 교리로 포함시켜 이단 판정책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 카톨릭은 최고의 규범은 역시 성경이다. 전통적으로 치러지는 7성례는 보조적인 교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함축적이고 주변적인 기능밖에 못하는 교리가 아직 존재하는 이유는, 신앙 등급이 낮은 자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미 성인의 성품을 지닌 자에게는 이런 부차적인 교리의 저촉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전통이란 성경의 내용을 해설하고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계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는 인간 역사 안에서 또 하나의 나름대로 역사를 펼치기 때문이다. 진리의 규범은 오직 성경 안에 있고, 교리로 확정된 규범은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 전통 안에 있다. 누가 규범의 해설자가 될 수 있는가? 단순히 성직자나, 주교 또는 교황만이 아니라 소박하고 일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모든 신자들이 다 해설자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결론을 맺는다.

평 가

저자는, 교회를 정의하면서 “언제나 새로워지는 교회” 또는 “개혁되는 교회상” 모델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이다. 성경에서는 이런 교회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에서의 교회는 이미 완성된 교회상이다. 완전한 교회와 불완전한 현실 교회 둘을 계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완전한 교회 편에 서서 그 외의 모든 것과 유감없는 전쟁을 벌리시는 것이 주님의 일이다.

저자가 교회에 대해서 오해를 지닌 원인은, 역사의 실재성으로 최종 증거물 장만하기 위해 교회를 숨겨두고 간주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선상에 있어 특정 집단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해서 당연히 어떤 의미나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 로마 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가 지금까지 내려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 나라와는 그 어떤 관련성도 갖지 못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예수님만이 홀로 가치있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다. 이것 외에 다른 가치를 등장시키는 것은 큰 실수를 범하는 짓이다.

저자의 이러한 오류는 비단 카톨릭뿐 아니라 현금의 한국 개신교단과 교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직도 자신이 진리와 복음 안에 있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교회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자는, 그 집단을 자신의 존재성 속에서 섞어버리고서는 돌아서서 곧 자기 소유물의 일부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자기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거기에다 정신을 파묻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진정으로 진리와 복음 속에 있는 자는 그 현장에서 자신을 붕괴하는 자이다. 과거이든 미래이든 생각지 않고 날마다 죽는 자일 따름이다. 이런 자가 진정 완성된 교회에 소속된 자가 아닐까.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첨부파일 : 교의와교의신학.hwp (32.0K), Down:15

관리자(IP:124.♡.84.82)

09-02-16 21:38

교의와 교의신학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알렉산드레 가노치
번 역 : 전헌호
출판사 : 분도 출판사

현대에 들어와서 교회 안의 교리들이 밉상을 받고 있다. 진리에 대한 객관적 탐구를 은연중에 방해하고 있다는 혐의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강요된 신앙들이 현대인의 품위를 손상시켜 준다고 회자되고 있다. 과연 교회가 스스로 교리를 포기해야만 하는가?

교리라는 것이 한 시절을 모두 점령했었던 종교의 열반세계에 대한 그리움의 흔적인가? 교회의 교리가 가장 큰 공격을 받는 이유는, 교리 자체가 스스로 진리를 요청하는 그 교만성 때문이란다. 교만이란, 근거 없는 주장을 말한다. 과연 교회 내의 교리가 근거 없이 고수되는 치매현상의 일종인가? 저자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변호한다. 이제 그의 변호를 들어보자.

교리의 형성은 신앙고백이 역사 안에서 갖는 제 모습이다.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사도들이 선포한 내용을 유지 보전해야 하는 일이다. 사도의 선포에 대해서 신앙으로 반응을 나타내게 되면 그들의 고백한 내용 또한 다음 후세를 위한 계시가 된다. 계시를 전달하는 일과 받아 드리는 일, 모두다 계시 사건으로 간주해야 된다.

교리란, 현재 발생된 이 계시 사건을 언어에다 담아 놓은 것으로서 신조와 동일시된다. 즉 그 시대의 교회의 신앙고백이 교리이다. 최초의 계시 현실이 신앙을 유발시키는 내용이라면 후대의 교리도 동일한 신앙을 발생시켜 나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교리나 신조에 반응하는 교회 공동체의 느낌이 중요하다. 단순히 괜찮은 내용을 언어로 조립해 놓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신앙이 일어난다는 말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앙에 주도권이 있다. 주입식 교육에 강요된 적이 없이 선포된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 전적으로 헌신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 선포된 내용은 계시 사건으로 유효하다고 봐야 한다.

교회 공동체의 신앙고백이 초창기 교회에 있어 가치 있는 경험으로 대우받는 것은, 그 당시에도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면 갖가지 전승들과 예수님의 말씀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가 차츰 체계화되고 조직화되면서 중요한 복음의 테마들만 신앙고백의 대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말씀이 더 유익하고 더 구원에 효력을 주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포에 반응하는 교회 공동체의 입지에 달린 문제이다. 그 시절의 교회가 처해 있던 역사적 상황은 그 시대의 계시 사건의 환경이다. 사도가 전해 준 복음이 그들의 역사와 부딪치면서 신앙을 표현하는 함축된 언어들과 문장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첫 번째 사도회의 같은 경우이다.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더 지우지 않으려는 것이 성령의 뜻이며 우리의 결정입니다.”(15:28)

교회가 역사 안에서 결정하는 바가 곧 성령께서 일하시는 계시방식이다.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숱한 전통과 갖가지 이야기들이 그 시대에 유용하게 필요했던 계시 사건들이었듯이 후대의 복음도 그 시대가 동원할 수 있는 갖가지 역사 활동 안에서 구현될 것이다.

무엇이 복음의 핵심인지 참 선포의 본질인지 하는 것은 그 시대의 교회 공동체가 결정할 문제이다. 후대의 교회는 전대의 교회와 영속선 상에 있다. 전대의 교회는 모든 것을 그대로 후대에게 이어진다. 사도에 의해서 선포된 게시의 내용은, 각 시대의 교회들이 이단과 비진리와 투쟁한 열매의 모습으로 후일까지 전수된다. 계시가 새로이 첨가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그 내용을 지키고 순수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갈수록 더욱더 정밀한 표현으로 전달된다는 말이다.

삼위일체 같은 신조들이, 오직 성경만을 고수하는 루터와 칼빈의 개혁주의 교회에서도 같이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해 준다. 옛날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구원의 도가 후대에 와서 불량품으로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류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선포내용의 무오류성을 누가 대신 보증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교회 판단의 무오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계시를 유지 보전해야 한다는 양보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 때문에 보조적인 교리 같은 것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교황의 무오류성과 마리아의 무오염성이다. 종교개혁 당시, 로마 카톨릭은 개신교와 대결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상황 때문에 이 보조적 교리를 전통 핵심 교리로 포함시켜 이단 판정책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 카톨릭은 최고의 규범은 역시 성경이다. 전통적으로 치러지는 7성례는 보조적인 교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함축적이고 주변적인 기능밖에 못하는 교리가 아직 존재하는 이유는, 신앙 등급이 낮은 자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미 성인의 성품을 지닌 자에게는 이런 부차적인 교리의 저촉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전통이란 성경의 내용을 해설하고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계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는 인간 역사 안에서 또 하나의 나름대로 역사를 펼치기 때문이다. 진리의 규범은 오직 성경 안에 있고, 교리로 확정된 규범은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 전통 안에 있다. 누가 규범의 해설자가 될 수 있는가? 단순히 성직자나, 주교 또는 교황만이 아니라 소박하고 일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모든 신자들이 다 해설자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결론을 맺는다.

평 가

저자는, 교회를 정의하면서 “언제나 새로워지는 교회” 또는 “개혁되는 교회상” 모델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이다. 성경에서는 이런 교회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성경에서의 교회는 이미 완성된 교회상이다. 완전한 교회와 불완전한 현실 교회 둘을 계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완전한 교회 편에 서서 그 외의 모든 것과 유감없는 전쟁을 벌리시는 것이 주님의 일이다.

저자가 교회에 대해서 오해를 지닌 원인은, 역사의 실재성으로 최종 증거물 장만하기 위해 교회를 숨겨두고 간주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선상에 있어 특정 집단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해서 당연히 어떤 의미나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도 그 로마 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가 지금까지 내려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 나라와는 그 어떤 관련성도 갖지 못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예수님만이 홀로 가치있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다. 이것 외에 다른 가치를 등장시키는 것은 큰 실수를 범하는 짓이다.

저자의 이러한 오류는 비단 카톨릭뿐 아니라 현금의 한국 개신교단과 교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직도 자신이 진리와 복음 안에 있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교회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자는, 그 집단을 자신의 존재성 속에서 섞어버리고서는 돌아서서 곧 자기 소유물의 일부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자기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거기에다 정신을 파묻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진정으로 진리와 복음 속에 있는 자는 그 현장에서 자신을 붕괴하는 자이다. 과거이든 미래이든 생각지 않고 날마다 죽는 자일 따름이다. 이런 자가 진정 완성된 교회에 소속된 자가 아닐까.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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