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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인 간성경신학미가

인 간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인 간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위르겐 몰트만 (Jürgen Moltmann)
출판사 : 대한기독교서회

인간을 보는 관점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시킬 수 있다.기독교인의 관점과 비기독교인의 관점이다. 이 두 관점이 서로 일치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 옳은가하는 것은, 어느 쪽이 현 사회의 인간의 괴로움과 슬픔을 보다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치료시킬 수 있느냐로 결정지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른 말로 말하지만, 누가 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비기독교인들은, 인간에서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본질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고 분석하기 때문에 미흡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치료책도 그 자체적으로 허점을 안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독교적 관점의 우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면서 저자는 기존에 논의된 인간론의 전반적인 검토 작업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략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비교하는 방법, 인간을 같은 인간과 비교하는 방법, 인간을 신성과 비교하는 방법, 십자가 앞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방법 같은 것이다.

첫째로, 인간과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소위 생물학적 인간학으로 인간을 분석해 보자. 이 방법은, 동물이 그 주변의 환경에 어떤 식으로 적응하는가를 탐구해서 인간도 그 동물의 적응 방식과 같은 맥락 선상에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인간을 동물의 하나로 간주하고 들어가는 이 방법은, 인간을 전적으로 환경과 대결 내지는 적응하는 본능과 충동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본다. 즉 본능과 충동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방법이다.

여기에 대해서 저자는 반박하기를,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에 순응하기만 하는 일개 동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연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나가려는 문명적 활동은, 오직 정신이라고 하는 다른 바탕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둘째로, 인간을 사회 속에서 파악하는 소위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자는 방법이다.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분석도 개인을 따로 떼서 시행해서는 안 되고 가족과 부족 그리고 국민들 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전체적으로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인간이란 그 귀속된 사회나 조직에 얼마나 유용한 존재로 활동하느냐에 따라 가치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과거 역사에 비추어서 현재의 인간을 정의하자는 것이다. 인간이라도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 자기 민족, 자기 국가에 적용될 이해도만 필요한 인간론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높은 인간류가 생겨나고 낮은 인간류가 발생된다. 그러나 다른 인간류와의 교류를 가지게 되므로 이 모든 것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맹목적으로 역사의 그 다음 선을 그어보지만 이 선이 어디에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이 없기에 생겨나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손쉽게 메울 수 없다.

셋째로, 인간을 신성과 비교하므로서 파악하려는 방법이다. 인간에 본격적인 관심사는,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서 생겨났다. 그들은 인간을 신과 비교시켰다. 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림자와 같이 허상에 불과하다. 신은 불멸자이지만 인간은 소멸자이다. 신은 무한대로 크지만 인간은 잠시 나타났다가도 깜빡하는 사이에 어디 갔는지 아무도 찾을 수 없는,또는 찾을 필요도 없는 무상한 존재이다. 신의 무한성에 늘 기죽고 사는 자들이 영글어내는 표상이 곧 종교이다. 종교란 무한자에 대한 감각이며 취미이다. 주위의 같은 인간만을 살피다가 불안에 떠는 인간도 무한자 되시는 신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신의 자리가 하늘에 무한히 고정된 것과 상응하여 인간의 마음도 제 자리를 찾아 평온해진다. 종교적인 성격자로서의 인간을 고려해야 제대로 인간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인간학을 기독교적 인간학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넷째로, 십자가 위에서 나타난 인간상이다. 신약 성경에서의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인간 나사렛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서 말하게 된다. 신앙 안에서 사는 것은, 이 분의 안고 있는 생애와 죽음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도 알고 자아를 제대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분은 한마디로 말해서 비참한 분이다. 착하고 의로운 분이지만 역시 가난한 자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라는 비밀스러운 말을 남기고 돌아 다니셨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사회에서 비인간 취급받는 그들을 오히려 인간의 본질로 간주하신 것이다.

결국에는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은 자로서 쓸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다.동족에게서 버림받은 자였고,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았고, 심지어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이로서 그분은 어떠한 국민이나, 어떠한 인종이나, 어떠한 계급이나 어떠한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자꾸만 ‘사람의 아들’이라고 우긴다. 여기서 참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저자는 보았다.

해골만 보고 그것이 부자의 것인지 또는 가난한 자의 것인지 또는 의로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버림받은 자인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비로소 공평하다. 모두 다 저주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에서 공평한 것이다. 바로 예수님은 참 인간, 그 자체였다.

기독교적 인간학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기독교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고 더불어 기독교적 인간학은, 얼마든지 위대할 가능성이 있는 우상적인 인간학으로 대체되었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손으로 달성해야만 한다는 강한 의욕을 위하여 기술 사회가 충실하게 뒷받침되어 왔다. 이러한 기술 사회에 분위기에 대해서 저자는 스스로 신으로 등극하려는 무모한 인간들의 실험 정신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대신 다시 기독교적 인간학으로 되돌아 갈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인자 신학을 기술 사회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사회는, 기독교의 자아도취적 우상성을 비판해야 하고 또한 기독교는 인간 사회의 우상성을 비판하되 서로 서로 그 비판을 수용하므로 하나님에게는 창조의 권한을 인정해드리고 인간은 겸손한 인간으로서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인자를 십자가 못 박은 하나님은, 그 인자를 통해 다시 화해의 손길을 인간 세계에 내비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사회가 거부하지 말고 가난한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화해의 삶이 피조 세계인 인간사회에 고루 적용될 때 비로소 인간 나라의 희망은 하나님부터로도 그 정당함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저자는 결론을 내놓는다.

평 가

몰트만의 인간론은, 시작부터 목적으로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인간 구원과 더불어 인간 사회의 구원이다. 그러나 성경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의 구원론에 치중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라는 계시론에 핵심이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도울 것인가 라는 선입감이 성경이 나타내는 하나님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저자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 기독교는 인간이 허무하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되고, 허무해야지만 제대로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피조물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첨부파일 : 인간.hwp (32.0K), Down:16

관리자(IP:124.♡.84.82)

09-02-16 19:44

인 간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위르겐 몰트만 (Jürgen Moltmann)
출판사 : 대한기독교서회

인간을 보는 관점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시킬 수 있다.기독교인의 관점과 비기독교인의 관점이다. 이 두 관점이 서로 일치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 옳은가하는 것은, 어느 쪽이 현 사회의 인간의 괴로움과 슬픔을 보다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치료시킬 수 있느냐로 결정지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른 말로 말하지만, 누가 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비기독교인들은, 인간에서 있어 가장 근본이 되는 본질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고 분석하기 때문에 미흡하기 이를 데 없다. 따라서 치료책도 그 자체적으로 허점을 안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독교적 관점의 우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면서 저자는 기존에 논의된 인간론의 전반적인 검토 작업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략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비교하는 방법, 인간을 같은 인간과 비교하는 방법, 인간을 신성과 비교하는 방법, 십자가 앞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방법 같은 것이다.

첫째로, 인간과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소위 생물학적 인간학으로 인간을 분석해 보자. 이 방법은, 동물이 그 주변의 환경에 어떤 식으로 적응하는가를 탐구해서 인간도 그 동물의 적응 방식과 같은 맥락 선상에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인간을 동물의 하나로 간주하고 들어가는 이 방법은, 인간을 전적으로 환경과 대결 내지는 적응하는 본능과 충동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본다. 즉 본능과 충동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방법이다.

여기에 대해서 저자는 반박하기를,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환경에 순응하기만 하는 일개 동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연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나가려는 문명적 활동은, 오직 정신이라고 하는 다른 바탕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둘째로, 인간을 사회 속에서 파악하는 소위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자는 방법이다.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분석도 개인을 따로 떼서 시행해서는 안 되고 가족과 부족 그리고 국민들 간의 상호 관계 속에서 전체적으로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인간이란 그 귀속된 사회나 조직에 얼마나 유용한 존재로 활동하느냐에 따라 가치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과거 역사에 비추어서 현재의 인간을 정의하자는 것이다. 인간이라도 똑같은 인간이 아니라 자기 민족, 자기 국가에 적용될 이해도만 필요한 인간론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높은 인간류가 생겨나고 낮은 인간류가 발생된다. 그러나 다른 인간류와의 교류를 가지게 되므로 이 모든 것이 편견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하다. 맹목적으로 역사의 그 다음 선을 그어보지만 이 선이 어디에 닿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끝이 없기에 생겨나는 공허함과 허탈감은 손쉽게 메울 수 없다.

셋째로, 인간을 신성과 비교하므로서 파악하려는 방법이다. 인간에 본격적인 관심사는,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서 생겨났다. 그들은 인간을 신과 비교시켰다. 신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림자와 같이 허상에 불과하다. 신은 불멸자이지만 인간은 소멸자이다. 신은 무한대로 크지만 인간은 잠시 나타났다가도 깜빡하는 사이에 어디 갔는지 아무도 찾을 수 없는,또는 찾을 필요도 없는 무상한 존재이다. 신의 무한성에 늘 기죽고 사는 자들이 영글어내는 표상이 곧 종교이다. 종교란 무한자에 대한 감각이며 취미이다. 주위의 같은 인간만을 살피다가 불안에 떠는 인간도 무한자 되시는 신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신의 자리가 하늘에 무한히 고정된 것과 상응하여 인간의 마음도 제 자리를 찾아 평온해진다. 종교적인 성격자로서의 인간을 고려해야 제대로 인간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인간학을 기독교적 인간학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넷째로, 십자가 위에서 나타난 인간상이다. 신약 성경에서의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인간 나사렛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서 말하게 된다. 신앙 안에서 사는 것은, 이 분의 안고 있는 생애와 죽음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도 알고 자아를 제대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분은 한마디로 말해서 비참한 분이다. 착하고 의로운 분이지만 역시 가난한 자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라는 비밀스러운 말을 남기고 돌아 다니셨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사회에서 비인간 취급받는 그들을 오히려 인간의 본질로 간주하신 것이다.

결국에는 모든 이로부터 버림받은 자로서 쓸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힌다.동족에게서 버림받은 자였고, 제자들로부터 버림받았고, 심지어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이로서 그분은 어떠한 국민이나, 어떠한 인종이나, 어떠한 계급이나 어떠한 종교에도 속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자꾸만 ‘사람의 아들’이라고 우긴다. 여기서 참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저자는 보았다.

해골만 보고 그것이 부자의 것인지 또는 가난한 자의 것인지 또는 의로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버림받은 자인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비로소 공평하다. 모두 다 저주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에서 공평한 것이다. 바로 예수님은 참 인간, 그 자체였다.

기독교적 인간학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기독교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고 더불어 기독교적 인간학은, 얼마든지 위대할 가능성이 있는 우상적인 인간학으로 대체되었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손으로 달성해야만 한다는 강한 의욕을 위하여 기술 사회가 충실하게 뒷받침되어 왔다. 이러한 기술 사회에 분위기에 대해서 저자는 스스로 신으로 등극하려는 무모한 인간들의 실험 정신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대신 다시 기독교적 인간학으로 되돌아 갈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인자 신학을 기술 사회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사회는, 기독교의 자아도취적 우상성을 비판해야 하고 또한 기독교는 인간 사회의 우상성을 비판하되 서로 서로 그 비판을 수용하므로 하나님에게는 창조의 권한을 인정해드리고 인간은 겸손한 인간으로서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인자를 십자가 못 박은 하나님은, 그 인자를 통해 다시 화해의 손길을 인간 세계에 내비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사회가 거부하지 말고 가난한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화해의 삶이 피조 세계인 인간사회에 고루 적용될 때 비로소 인간 나라의 희망은 하나님부터로도 그 정당함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저자는 결론을 내놓는다.

평 가

몰트만의 인간론은, 시작부터 목적으로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인간 구원과 더불어 인간 사회의 구원이다. 그러나 성경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의 구원론에 치중하기보다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라는 계시론에 핵심이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도울 것인가 라는 선입감이 성경이 나타내는 하나님의 본질을 파악하는 게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저자는 모르고 있는 듯하다. 기독교는 인간이 허무하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되고, 허무해야지만 제대로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피조물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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