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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 창세기의 현대적 이해성경신학창세기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 창세기의 현대적 이해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 창세기의 현대적 이해

저 자 : 김이곤
출판사 : 한국신학연구소

성경을 사랑하는 자는 성경을 통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하다. 본 책의 저자도 그러한 분이다. 이 분에 있어 성경을 탐구하는 이유는, 진리는 오직 성경에만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본 책은, 같은 확신을 가진 자라면 누구에게든지 공유될 수 있는 진리이기를 기대하면서 쓰여졌다. 누가 시켜서 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참으로 바르게살기 위한 순수한 몸부림이 독자들에게 진리의 세계를 구경시켜 주었다.

참된 목회란, 오직 성경을 알리는 것뿐이다. 구약은 이렇고, 신약은 저렇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에게 있어 문제는, 말해 줄게 없다는 것이다. 구약의 해답을 서술한 책도 없고 신약의 해답을 나타낸 책도 없다. 구약과 신약을 모르는 채 강단에 서면,나오는 것은 오직 원초적 종교 성향과 유교적 시민 윤리뿐이다. 해답을 알려준 책이 없다는 점이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결코 포기의 원인은 못된다. 해답이 없으면 스스로 찾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바로 그 작업을 저자는 20년 전에 했던 것이다. 신구약의 대가들이 도저히 해답이 없다 고 결론 내린 그 작업을 저자는 외로이 자신과의 싸워가면서 시작한 것이다. 정말 해답이 없다면 기독교는 그 자체로서 정교한 거짓 집단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생이 살아가야 될 근원적인 근거가 와해된다. 정말 해답이 없다면 가롯 유다처럼 자살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 해보니 성경 안에 해답은 들어 있었다. 바로 변함없는 '약속의 일관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가들은 그 점을 캐치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성경을 보지 않고, 자기의 학문적 변명과 방어책을 최우선 보루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기만 신경을 쓴다.

그러니깐 고대 종교서적인 중의 하나로 성서를 보게 되고, 신앙자라는 독선에 억매이지 않는 신학자로 대우받겠다는 의지가 앞서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대가가 되겠다는 자기애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눈껍풀이 내려앉은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또 더 나아가서 이 진리를 순수하게 전달해서 뭇 영혼을 살리겠다는 주님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심이 없이는 성경은 결코 해답을 내놓지 않게 되어 있다.

성경만이 단일성을 지닌 유일 무일한 해답이 있다는 전제는 복음 정신에서 생겨나지 결코 성경 연구 그 자체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자기변명에 급급한 비소명적 자세를 가지고서는 성경에서 주체할 수 없는 다양성만 튀어나온다. 그 현란스러운 다양성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피해가면서 낙심치 않고 한 데로 모아서 단아하고 단일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자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다. 어떻게 보면, 비정직하게 성경을 분해한 반칙성 학문 작업처럼 보이지만, 이점을 누구보다도 우려하는 김이곤 씨는 스스로 철두철미한 비평가가 되어 자기 자신에게 더욱 냉정해지려고 한다. 그런 심적인 무게 아래서 철저히 성경의 숲을 헤친 결과, 결국 광맥을 발견되었다.

구약성경은, ‘약속’이라는 징검돌의 정렬이다. 약속과 약속들을 조사해 보면, 그 사이에 끼여든 사건들이 한결같이 앞뒤의 약속을 기적처럼 연결을 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누구나 쉽게 동의할 만이 이 원리에 관심들이 없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축복 받는다’는 의식으로 접근해 왔기 때문이다. 즉 “‘좋으신 하나님’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내가 풍족하게 될 수 있겠나” 라는 사고방식이 성경을 오해케 했고 복음을 망쳐놓은 것이다. 김이곤 씨에 의해 밝혀진 성경의 흐름에 의하면 오히려 반대로 기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주의 이름을 고난의 사람이 될 수 있겠나?” 하는 점이다.

고난도 있고 또 그 고난 뒤에는 축복도 따르는 이런 저런 다양성을 지닌 게 맥이 아니라, 고난 그 자체가 곧 축복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하나님이셨다. 이런 고난 속에 들어 있는 심정으로 성경을 보라. 성경이 구약부터 신약까지 안뜷릴리 없다. 아담으로 보여지는 약속, 아벨을 통해서 보여지는 약속, 셋을 통해서 보여지는 약속,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지는 약속은 한결같이 한 소리로 합창을 한다. 그것은 순교의 고난이다. 왜 고난당해야 하는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이다.

또한 백성들의 죄를 대표해서 벌받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만 구약은 신약과 관계되는 성경으로 남는다. 번영에 대한 환상, 족장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인간인 이상 이 유혹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약속의 계열에 여전히 남는 것은 죄가 무엇인지를 고난으로 보여준 증인들이기 때문이다. 구약에는 치졸스럽고 더러운 인간성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신학 작업은 바로 그 죄의 권세의 깊이를 측정하는데 유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거칠어지고 수척해진다. 그것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은혜마저 핍박하고 훼손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참혹한 모습의 긍휼과 은총이 동원되어야만 했다. 이런 점에서 약속은, 고난의 모습으로 드러나 예언과 성취 사이를 끈질기게 이어 나간다.추가된 약속을 통해서 은혜도 같이 삽입되지만 여기에 극렬하게 대드는 인간의 교만함도 만만치 않다. 약속 초기에는, 단순히 사적인 성격 차이처럼 보이던 족장들의 술수와 죄의 뿌리는, 예언서에 의하면 온 우주마저 휘감아 버리는 사탄의 포효와 같다. 약속이 국가라는 공동체로 집단화가 되니깐 죄의 권세도 같이 집단적이다. 사랑하라고 붙여준 이웃이건만 근원적인 죄악의 밑에서는 지배와 학대의 연결 고리로 형태 지어질 뿐이다.

구약에 의하면 대파국은 필연적이다. 구원의 날은, 예언자들에 의하면 오히려 차마 기다리고 싶지 않는 깜깜한 날이다. 바로 이러한 파멸이 애초부터 족장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제대로 성취된 것을 뜻한다. 마지막 때의 구원받을 자는, 종말이 주는 고난 속에 합류한 자들이다. 예언자들이 바로 이런 자들이었다. 그들만이 제대로 족장의 계약을 이해했고 또 그 약속의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고수했다.

평 가

이 ‘파기될 수 없는 약속’을 김이곤 씨는 정돈된 복음으로 내놓는다. 책머리에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구약에도 설교적 주제가 있는가?” 이 뜻은, “구약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마당에 과연 신약의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는가” 라는 의문도 함께 제시한 것이라 봐야 한다. 성급하게 복음-구원, 복음-구원 외치고들 있지만 구약의 원줄기의 뜻을 함유하고 있지 않는 복음이 과연 복음이겠는가? 인간의 원색은 처음부터 달라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구약은 오늘날에도 설교되어야 한다. 구약 안에 들어 있는 복음이 밖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구약의 종말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 이 와중에서 제대로 고난을 받는 자만 여전히 약속 계열에 속해 있는 자임이 드러난다.

신학 따로 설교 따로 성립될 수 없다. 신학이 전체적으로 정립되지 않는 자는 결코 설교해서는 안 된다. 확신 거리가 없이 무엇을 전할 것인가. 너절한 문서 가설의 숲만 제거된다면 보다 깔끔한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첨가되는 책이다.

첨부파일 : 신의약속은파기될수없다.hwp (32.0K), Down:36

관리자(IP:124.♡.84.82)

09-02-16 17:12

신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 창세기의 현대적 이해

이 근 호 목사

저 자 : 김이곤
출판사 : 한국신학연구소

성경을 사랑하는 자는 성경을 통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하다. 본 책의 저자도 그러한 분이다. 이 분에 있어 성경을 탐구하는 이유는, 진리는 오직 성경에만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본 책은, 같은 확신을 가진 자라면 누구에게든지 공유될 수 있는 진리이기를 기대하면서 쓰여졌다. 누가 시켜서 하는 작업이 아니었다. 참으로 바르게살기 위한 순수한 몸부림이 독자들에게 진리의 세계를 구경시켜 주었다.

참된 목회란, 오직 성경을 알리는 것뿐이다. 구약은 이렇고, 신약은 저렇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에게 있어 문제는, 말해 줄게 없다는 것이다. 구약의 해답을 서술한 책도 없고 신약의 해답을 나타낸 책도 없다. 구약과 신약을 모르는 채 강단에 서면,나오는 것은 오직 원초적 종교 성향과 유교적 시민 윤리뿐이다. 해답을 알려준 책이 없다는 점이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결코 포기의 원인은 못된다. 해답이 없으면 스스로 찾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바로 그 작업을 저자는 20년 전에 했던 것이다. 신구약의 대가들이 도저히 해답이 없다 고 결론 내린 그 작업을 저자는 외로이 자신과의 싸워가면서 시작한 것이다. 정말 해답이 없다면 기독교는 그 자체로서 정교한 거짓 집단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생이 살아가야 될 근원적인 근거가 와해된다. 정말 해답이 없다면 가롯 유다처럼 자살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될 것이다. 해보니 성경 안에 해답은 들어 있었다. 바로 변함없는 '약속의 일관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가들은 그 점을 캐치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성경을 보지 않고, 자기의 학문적 변명과 방어책을 최우선 보루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기만 신경을 쓴다.

그러니깐 고대 종교서적인 중의 하나로 성서를 보게 되고, 신앙자라는 독선에 억매이지 않는 신학자로 대우받겠다는 의지가 앞서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대가가 되겠다는 자기애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눈껍풀이 내려앉은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또 더 나아가서 이 진리를 순수하게 전달해서 뭇 영혼을 살리겠다는 주님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심이 없이는 성경은 결코 해답을 내놓지 않게 되어 있다.

성경만이 단일성을 지닌 유일 무일한 해답이 있다는 전제는 복음 정신에서 생겨나지 결코 성경 연구 그 자체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자기변명에 급급한 비소명적 자세를 가지고서는 성경에서 주체할 수 없는 다양성만 튀어나온다. 그 현란스러운 다양성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피해가면서 낙심치 않고 한 데로 모아서 단아하고 단일한 해답을 찾아내는 것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자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다. 어떻게 보면, 비정직하게 성경을 분해한 반칙성 학문 작업처럼 보이지만, 이점을 누구보다도 우려하는 김이곤 씨는 스스로 철두철미한 비평가가 되어 자기 자신에게 더욱 냉정해지려고 한다. 그런 심적인 무게 아래서 철저히 성경의 숲을 헤친 결과, 결국 광맥을 발견되었다.

구약성경은, ‘약속’이라는 징검돌의 정렬이다. 약속과 약속들을 조사해 보면, 그 사이에 끼여든 사건들이 한결같이 앞뒤의 약속을 기적처럼 연결을 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누구나 쉽게 동의할 만이 이 원리에 관심들이 없었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축복 받는다’는 의식으로 접근해 왔기 때문이다. 즉 “‘좋으신 하나님’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내가 풍족하게 될 수 있겠나” 라는 사고방식이 성경을 오해케 했고 복음을 망쳐놓은 것이다. 김이곤 씨에 의해 밝혀진 성경의 흐름에 의하면 오히려 반대로 기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주의 이름을 고난의 사람이 될 수 있겠나?” 하는 점이다.

고난도 있고 또 그 고난 뒤에는 축복도 따르는 이런 저런 다양성을 지닌 게 맥이 아니라, 고난 그 자체가 곧 축복이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하나님이셨다. 이런 고난 속에 들어 있는 심정으로 성경을 보라. 성경이 구약부터 신약까지 안뜷릴리 없다. 아담으로 보여지는 약속, 아벨을 통해서 보여지는 약속, 셋을 통해서 보여지는 약속,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지는 약속은 한결같이 한 소리로 합창을 한다. 그것은 순교의 고난이다. 왜 고난당해야 하는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이다.

또한 백성들의 죄를 대표해서 벌받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만 구약은 신약과 관계되는 성경으로 남는다. 번영에 대한 환상, 족장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인간인 이상 이 유혹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약속의 계열에 여전히 남는 것은 죄가 무엇인지를 고난으로 보여준 증인들이기 때문이다. 구약에는 치졸스럽고 더러운 인간성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신학 작업은 바로 그 죄의 권세의 깊이를 측정하는데 유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거칠어지고 수척해진다. 그것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은혜마저 핍박하고 훼손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참혹한 모습의 긍휼과 은총이 동원되어야만 했다. 이런 점에서 약속은, 고난의 모습으로 드러나 예언과 성취 사이를 끈질기게 이어 나간다.추가된 약속을 통해서 은혜도 같이 삽입되지만 여기에 극렬하게 대드는 인간의 교만함도 만만치 않다. 약속 초기에는, 단순히 사적인 성격 차이처럼 보이던 족장들의 술수와 죄의 뿌리는, 예언서에 의하면 온 우주마저 휘감아 버리는 사탄의 포효와 같다. 약속이 국가라는 공동체로 집단화가 되니깐 죄의 권세도 같이 집단적이다. 사랑하라고 붙여준 이웃이건만 근원적인 죄악의 밑에서는 지배와 학대의 연결 고리로 형태 지어질 뿐이다.

구약에 의하면 대파국은 필연적이다. 구원의 날은, 예언자들에 의하면 오히려 차마 기다리고 싶지 않는 깜깜한 날이다. 바로 이러한 파멸이 애초부터 족장들에게 주어진 약속이 제대로 성취된 것을 뜻한다. 마지막 때의 구원받을 자는, 종말이 주는 고난 속에 합류한 자들이다. 예언자들이 바로 이런 자들이었다. 그들만이 제대로 족장의 계약을 이해했고 또 그 약속의 노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고수했다.

평 가

이 ‘파기될 수 없는 약속’을 김이곤 씨는 정돈된 복음으로 내놓는다. 책머리에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구약에도 설교적 주제가 있는가?” 이 뜻은, “구약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 마당에 과연 신약의 의미가 제대로 정립되는가” 라는 의문도 함께 제시한 것이라 봐야 한다. 성급하게 복음-구원, 복음-구원 외치고들 있지만 구약의 원줄기의 뜻을 함유하고 있지 않는 복음이 과연 복음이겠는가? 인간의 원색은 처음부터 달라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구약은 오늘날에도 설교되어야 한다. 구약 안에 들어 있는 복음이 밖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구약의 종말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 이 와중에서 제대로 고난을 받는 자만 여전히 약속 계열에 속해 있는 자임이 드러난다.

신학 따로 설교 따로 성립될 수 없다. 신학이 전체적으로 정립되지 않는 자는 결코 설교해서는 안 된다. 확신 거리가 없이 무엇을 전할 것인가. 너절한 문서 가설의 숲만 제거된다면 보다 깔끔한 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첨가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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