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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국가의 신화성경신학-

국가의 신화

이름 : 관리자(IP:219.249.86.250)

국가의 신화

저 자 : 에른스트 캇시러 (Ernst Cassirer:1874∼1945)
번 역 : 최명관
출판사 : 서광사

언제부턴가 인간은 국가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가두고, 소득을 강제로 수탈해도 사람들은 국가라는 이름 아래에 묵묵히 순응했다. 도대체 그 국가라는 게 무언가? 저자는 국가의 실체를 찾기 위해 역사라는 지류를 이용한다. 거기서 만나게 되는 몇 가지 국가 형태에 대해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본다.

"왜 그런 식으로 꼭 존립해야 하는가?" 국가란, 일부러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다. 이 낯선 현상의 근원은 신화이다. 무한자에 대한 느낌이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신화의 포로가 되게 했다. 후대에 계속 등장하는 국가라는 조직은, 기실 이 신화의 정돈화에 불과하다. 무한에 대한 그리움이 구체적 형틀 안으로 집결되면 그것이 곧 국가가 된다. 신화시대 이후, 그리스는 신화에 대한 반성과 회의에 대해서 논의하게 된다. 여기서 과학적인 사고가 생겨난다. 세상을 보다 경험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다. 삶을 혼돈에게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무한자의 성격과 유사하게 맞추어 가면서 사는 것이 보다 진리다워 보였다.

여기서 이성과 법과 질서가 등장된다. 이성, 즉 로고스라 불리는 의지는, 하늘에 있는 신의 본성이다. 신이 여럿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된 신화시대의 혼란을 그리스 철학자들은 거부했다. 오직 하나의 신으로 단일화시켰다. 신이 여럿이 하나로 통합하는 것과 동시에 지상에서의 사회 질서도 같이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개성과 지엽성과 분리함으로 어수선했던 요소들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신과 땅의 인간이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다.존재냐 운동이냐 서로 갈등을 유발했던 난제들이 하나의 질서 밑으로 통합되면서 존재의 우위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비로소 윤리와 도덕이 힘을 발한다. 윤리의 할 일이란, 바로 존재의 단일성을 지키는 것이다. 질서와 조화를 깨트리는 것을 발생하고자 규제하고 교육시키는 것이 윤리이다. 이 윤리 교육을 정치인들은 해야 한다.국가의 힘은, 바로 이 윤리의 힘이다. 정치란, 하늘의 정의를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최선을 다했다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상을 추구하는 노력만이 최선의 질서를 구현하는 윤리로서 옹호될 만하다. 이러한 그리스 국가 형태가 중세 기독교 국가 형태로 그대로 연결된다. 백성들이 각자 소지하고 있는 직업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목수는 평생 목수이어야 한다. 귀족은 대대로 귀족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조화와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 우위의 국가 형태가 중세를 지나면서 희석해지기 시작한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그리스 철학이 서서히 유포되었기 때문이다. 존재 속에 모든 운동을 꼭 포함시킬 필요 없다는 주장들이 등장된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함께 거론해도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에 침해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하나님은 존재로만 계시지 않고 생성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그 생성은 인간의 자유를 통해서 구현하신다. 하나님의 정의는 초경험적인 계시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지상에서 경험되는 경험적 원리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를 어떻게 받느냐에 주안점이 있었던 중세가 끝나고, 인간들이 이 지상에서 어떻게 정의를 만들 수 있느냐에 촛점이 모아진다. 교회의 간섭에서 벗어난 사회에서의 국가관이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 군주의 횡포를 인정해 주자는 국가관이다. 전에는 윤리가 힘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실질적인 폭력이 힘이다. 군주의 개인적인 윤리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다수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무능한 군주가 정말 나쁜 군주이다. 이제는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현실 생활을 책임지는 국가, 그 자체가 목적이다.

대중은 머리가 없으면 아무 힘도 못쓴다. 머리가 확고해야 나라도 튼튼하다. 강한 나라를 위해서는 강한 군주가 필수적이다. 군주는 때로는 잔인해야 하고 반 짐승이 되어야 한다. 정치는 윤리가 아니라 기술이다. 숙달된 관리 기술만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자를 영웅시해야 한다. 영웅을 받들 줄 아는 국민이 훌륭한 백성이다. 여기에 영웅 숭배 풍토에서 인종 숭배 풍토로 이어진다. 소위 민족 우월주의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에게 보다 이성적이 될 것을 요구한다. 국가란 단지 신화의 변형인 것에 불과함을 폭로한다. 신화란, “인격화된 집단적 욕망”이다. 비자연적이고 폭력적인 국가는 인간의 친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적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한다. 남는 것은, 영도자의 신화적인 권력과 권위뿐이다. 그의 말이 곧 살아있는 법이 된다. 인류는,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검토를 통해서 이러한 전체주의 국가관의 과오를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꿈을 밖에서 쏟아낸다. 그 꿈은 환경에 따라 변형된다. 꿈의 이상형으로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쪽으로 환경을 해석하기도 한다. 자아는 거기에서 실현되려고 한다. 큰 환경 안에서 왜소한 자아는 정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과 편안을 확보하고자 한다. 국가란, 소속된 인간들이 꿈을 실현하는 배경이다. 그래서 국가의 운명을 자아의 운명과 동일시된다. 국가의 이상이 곧 자아의 이상이다.

국가는 교주가 되고 자아는 그 신도가 된다. 교회가 화목한 가운데 국가의 보호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이다. 막강한 집단이 지닌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교회도 자본주의 교회로 변신하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교회도 사회주의 교회로 변신한다.

전제 군주 체제 아래에서는 교회는 오직 독재자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조찬 기도회를 열어주는 교회로 변신한다. 교회가 생존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큰 질서에서 나오는 큰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평 가

성경을 제대로 보게 되면 “교회를 인간의 손에 의해 어떤 식으로 계속 유지시키느냐?” 에 대해 질문조차 성립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의 관심은 하늘나라의 질서이다. 그 질서는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유지되는 질서이다. 교회는 일체 무력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세상 무력 앞에 맥없이 무너짐으로 교회로서 제 소임을 다한 것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마땅히 지녀야 될 덕목이 무엇이었던가? 애굽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의 생존 방식을 채용한다면 그 날부터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못된다. 그저 이방 나라 중의 소수 민족에 불과하다. 교회는 악마의 권세를 폭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더 더구나 이방나라식의 체제 유지책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 악마가 힘에 두려워하는가? 아니다. 악마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사랑이다.

악마를 이길 수도 없는 단순한 조직 유지에 관심을 쏟는다는 것은 교회가 이방화로 전락되었음을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보고 힘을 축적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관심사를 바꾸라고 독촉하시는 분이다. 교회, 그 자체에 관심 두지 말고 교회가 보여야 되고 전해야 될 것에 관심 두라고 하신다. 성도라면 복음의 종이 되어야지 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쓸데없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민족 우월주의와 애국주의는 푹 빠져 있는 것은, 복음과 상관없는 비성도의 소일거리 이다.

첨부파일 : 국가의신화.hwp (30.5K), Down:12

관리자(IP:124.♡.84.82)

09-02-16 17:00

국가의 신화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에른스트 캇시러 (Ernst Cassirer:1874-1945)
번 역 : 최명관
출판사 : 서광사

언제부턴가 인간은 국가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가두고, 소득을 강제로 수탈해도 사람들은 국가라는 이름 아래에 묵묵히 순응했다. 도대체 그 국가라는 게 무언가? 저자는 국가의 실체를 찾기 위해 역사라는 지류를 이용한다. 거기서 만나게 되는 몇 가지 국가 형태에 대해서 근원적인 물음을 던져본다.

"왜 그런 식으로 꼭 존립해야 하는가?" 국가란, 일부러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다. 이 낯선 현상의 근원은 신화이다. 무한자에 대한 느낌이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신화의 포로가 되게 했다. 후대에 계속 등장하는 국가라는 조직은, 기실 이 신화의 정돈화에 불과하다. 무한에 대한 그리움이 구체적 형틀 안으로 집결되면 그것이 곧 국가가 된다. 신화시대 이후, 그리스는 신화에 대한 반성과 회의에 대해서 논의하게 된다. 여기서 과학적인 사고가 생겨난다. 세상을 보다 경험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이다. 삶을 혼돈에게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무한자의 성격과 유사하게 맞추어 가면서 사는 것이 보다 진리다워 보였다.

여기서 이성과 법과 질서가 등장된다. 이성, 즉 로고스라 불리는 의지는, 하늘에 있는 신의 본성이다. 신이 여럿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된 신화시대의 혼란을 그리스 철학자들은 거부했다. 오직 하나의 신으로 단일화시켰다. 신이 여럿이 하나로 통합하는 것과 동시에 지상에서의 사회 질서도 같이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개성과 지엽성과 분리함으로 어수선했던 요소들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신과 땅의 인간이 동질성을 유지할 수 있다.존재냐 운동이냐 서로 갈등을 유발했던 난제들이 하나의 질서 밑으로 통합되면서 존재의 우위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비로소 윤리와 도덕이 힘을 발한다. 윤리의 할 일이란, 바로 존재의 단일성을 지키는 것이다. 질서와 조화를 깨트리는 것을 발생하고자 규제하고 교육시키는 것이 윤리이다. 이 윤리 교육을 정치인들은 해야 한다.국가의 힘은, 바로 이 윤리의 힘이다. 정치란, 하늘의 정의를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최선을 다했다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상을 추구하는 노력만이 최선의 질서를 구현하는 윤리로서 옹호될 만하다. 이러한 그리스 국가 형태가 중세 기독교 국가 형태로 그대로 연결된다. 백성들이 각자 소지하고 있는 직업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목수는 평생 목수이어야 한다. 귀족은 대대로 귀족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조화와 질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 우위의 국가 형태가 중세를 지나면서 희석해지기 시작한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그리스 철학이 서서히 유포되었기 때문이다. 존재 속에 모든 운동을 꼭 포함시킬 필요 없다는 주장들이 등장된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함께 거론해도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에 침해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하나님은 존재로만 계시지 않고 생성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그 생성은 인간의 자유를 통해서 구현하신다. 하나님의 정의는 초경험적인 계시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지상에서 경험되는 경험적 원리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를 어떻게 받느냐에 주안점이 있었던 중세가 끝나고, 인간들이 이 지상에서 어떻게 정의를 만들 수 있느냐에 촛점이 모아진다. 교회의 간섭에서 벗어난 사회에서의 국가관이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 군주의 횡포를 인정해 주자는 국가관이다. 전에는 윤리가 힘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실질적인 폭력이 힘이다. 군주의 개인적인 윤리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 다수의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무능한 군주가 정말 나쁜 군주이다. 이제는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현실 생활을 책임지는 국가, 그 자체가 목적이다.

대중은 머리가 없으면 아무 힘도 못쓴다. 머리가 확고해야 나라도 튼튼하다. 강한 나라를 위해서는 강한 군주가 필수적이다. 군주는 때로는 잔인해야 하고 반 짐승이 되어야 한다. 정치는 윤리가 아니라 기술이다. 숙달된 관리 기술만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자를 영웅시해야 한다. 영웅을 받들 줄 아는 국민이 훌륭한 백성이다. 여기에 영웅 숭배 풍토에서 인종 숭배 풍토로 이어진다. 소위 민족 우월주의이다. 저자는, 현대인들에게 보다 이성적이 될 것을 요구한다. 국가란 단지 신화의 변형인 것에 불과함을 폭로한다. 신화란, “인격화된 집단적 욕망”이다. 비자연적이고 폭력적인 국가는 인간의 친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적이라는 사실을 알리려 한다. 남는 것은, 영도자의 신화적인 권력과 권위뿐이다. 그의 말이 곧 살아있는 법이 된다. 인류는,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검토를 통해서 이러한 전체주의 국가관의 과오를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꿈을 밖에서 쏟아낸다. 그 꿈은 환경에 따라 변형된다. 꿈의 이상형으로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쪽으로 환경을 해석하기도 한다. 자아는 거기에서 실현되려고 한다. 큰 환경 안에서 왜소한 자아는 정착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과 편안을 확보하고자 한다. 국가란, 소속된 인간들이 꿈을 실현하는 배경이다. 그래서 국가의 운명을 자아의 운명과 동일시된다. 국가의 이상이 곧 자아의 이상이다.

국가는 교주가 되고 자아는 그 신도가 된다. 교회가 화목한 가운데 국가의 보호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이다. 막강한 집단이 지닌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교회도 자본주의 교회로 변신하고,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교회도 사회주의 교회로 변신한다.

전제 군주 체제 아래에서는 교회는 오직 독재자의 안녕과 번영을 위하여 조찬 기도회를 열어주는 교회로 변신한다. 교회가 생존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큰 질서에서 나오는 큰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평 가

성경을 제대로 보게 되면 “교회를 인간의 손에 의해 어떤 식으로 계속 유지시키느냐?” 에 대해 질문조차 성립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의 관심은 하늘나라의 질서이다. 그 질서는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유지되는 질서이다. 교회는 일체 무력이 필요치 않다. 오히려 세상 무력 앞에 맥없이 무너짐으로 교회로서 제 소임을 다한 것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마땅히 지녀야 될 덕목이 무엇이었던가? 애굽의 말과 병거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의 생존 방식을 채용한다면 그 날부터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못된다. 그저 이방 나라 중의 소수 민족에 불과하다. 교회는 악마의 권세를 폭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집단이다.

그렇다면 더 더구나 이방나라식의 체제 유지책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 악마가 힘에 두려워하는가? 아니다. 악마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사랑이다.

악마를 이길 수도 없는 단순한 조직 유지에 관심을 쏟는다는 것은 교회가 이방화로 전락되었음을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보고 힘을 축적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관심사를 바꾸라고 독촉하시는 분이다. 교회, 그 자체에 관심 두지 말고 교회가 보여야 되고 전해야 될 것에 관심 두라고 하신다. 성도라면 복음의 종이 되어야지 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쓸데없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민족 우월주의와 애국주의는 푹 빠져 있는 것은, 복음과 상관없는 비성도의 소일거리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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